2017년 3월 26일 일요일

적멸비기 - 이 세상과 인간의 진실, 인류의 미래, 그리고 사후세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법, 그리고 행복

이 세상과 인간의 진실, 인류의 미래, 그리고 사후세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법, 그리고 행복.

세상과 인간의 실체와 진실을 말한다.

왜 인간은 태어나서 세상을 느낄까? 진화해서라면 왜 진화했을까?
진화론은 과정을 설명하나 최초 설계도 필요하다.
자기가 있는 자체, 실존을 의식하는 자체가 이 모든게, 계획됨이다. 짐승은 짐승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우주를 인격체로 본다면, 우주도 자기가 진화하거나 살 길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카오스가 사실 우주 유전자들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자생적이라면. 그럼 우주 밖에는? 인간의 실존은 우주 안에서도 설명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조건신호에 자극이 되고 반응을 한다. 그리고 그걸 인식하는 우리는 ‘인간성’ 이라 착각하여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도 여전히 조건반응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걸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뇌가 있고, 감정으로 처리하는 뇌가 있다. 그걸 ‘자기감정’ 으로 안다.

인간성도 과학이론과 합쳐져야 한다.
만약우리가 사슴으로 태어났다면 풀밭이 익숙하고 정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사자로 태어났다면 피냄새와 사냥감고기가 익숙할 것이다. 인간의 악이 사자의 선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악은 절대적일 수 있다.
그리고 돌로 태어났다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우리가 이렇게 생겼기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서로 인간에게 의미가 있다.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이것이 별거 아닌 사실로 치부해도 될 수도 있고, 여기서 진실을 알고 집착할 수도 있지만, 어쨌건 죽는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세상의 구성, 진행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철학적으로 ‘인과’ 와 ‘자유의지’ 의 존재로 돌아가는 세상의 본질적 실체에 관한 문제이다.

입체처럼 음양을 주어서 평면에 입체처럼 보이게 하는 그림기법이 있다. 그런 것 처럼 우주도 사실 컴퓨터 화면처럼 평면으로 풀 수 있는데 그 안에 투영된 그런 사람들의 요소들때문에 입체처럼 보이게 하는건 아닌지 암흑물질등의 특수한 구조로 인해 그런건 아닌지 잠깐 생각해봤다.

누구나 처음 겪는 세상은 생소하다.

적응하는거지


원래는 아프리카에서 인간도 원숭이나 사자나 하이에나나 사슴이나 코뿔소나 하마나 악어나그런 것들하고 비슷한 동물체였을 것이다 원숭이도 직립보행을 하기도 하니까 그러다가 인간은 인간만의 그런 수법을 개발하고 뇌의 어떤 식으로 장족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커피위에 얹은 휘핑크림처럼 그런 지혜를 가지게 되어 그런 부분으로 아프리카를 떠나 맹수를 피해
-혹은 그안에서 도구를 만들어 맹수를 대항하는 수법으로(사자도 전략을 짜서 그렇게 사냥하는 식으로 인간보다 못할게 없으므로) 덫을 개발하는 등 그런식으로 사냥을 하여서 먹고 살다가 집이나 망대나 동굴이나 집단 조직을 더 사자보다 치밀하게 운용을 하면서 살아남아서 그런 건축기술의 발달 가로등배치등 미감각을 휘핑크림 부분을 아주 발달을 시켜서 그런걸 이루었는데 그런 휘핑크림이 총이나 무기같은 집약적인 구조물까지 발달시켜 물리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남은 그런 동물적인 부분이 그런 인간의 것들을 위협하고 파괴하는데 자연을 보면 거의 물형론이다 생긴대로 되는데 그런 덩치나 이미지등 사자를 보니까 아예 그렇게 애초에 사냥하고 공격하게 짜여져 태어난 그것 그런것에서 폭력성이 나오고 비인도적인걸 하는데 그런걸 보고 사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실제로 그렇게 키울 수 있다는게 사자형제 이야기 실사례에서 증명이 되긴 했으나- 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 스럽고 우스울 정도. 그리고 그런 동물들이 진화를 원하면 진화를 하지만 사실 하이에나나 들개무리는 진화에 역행하여 진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충분하고 오히려 그편이 살아가고 영역유지하기가 쉬우므로 그래서 오히려 진화를 거슬려서 퇴보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하는 쪽은 하는 것이고 그러나 초식동물은 매일 위협하고 불리한 상황이라 진화를 간절히도 원할 것이다 독수리처럼 그래서 그런 것들의 충돌로 결국 원하는 자신들이 그렇게 되는 그런 식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전체 세상으로 보면 분명히 혼란이고 단지 그걸 자기가 맞다고 주장할 수 있는 최후의 길은 물소가 하이에나를 지배할 방법을 찾아 고안하는 것일텐데 그게 종교적세뇌도 될 수가 있으나 보통은 법이나 덫, 우리 같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미 하이에나로 태어난걸 양으로 만들기는 아주 힘드므로 -설령 인간이라도 아예 사냥을 하지 말라는 소리 초식으로 살다가 죽고 개인에겐 불행 하이에나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왜사나 싶을 것- 그리고 그런 자기들이 원하는걸 하는게 암사자의 입장에서는 숫사자가 평화롭던 자기무리를 차지하고 하는일없이 놀면서 사냥감 잡아온것 먹는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숫사자에게 밀리거나 혹은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런걸 깨고 싶은 불합리를 극복하고 싶을 것이다. 완전한 상황이 아닌데 그런 부당함을 극복하고 원하는 모습을 찾아가는게 진화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탱크는 탱크이고 상어는 상어이고 사자는 사자이다. 그런 동물에서 인간이 된 그런 포인트 그런걸 바탕으로 잘해나가는 것이 아마 인간이 발전해야할 그런 방향 - 인간의 도덕으로 볼땐 이세상이 개판이고 암울하지만 동물이었다는 그런 통찰로 볼땐 그나마 나은 초식 육식 본능의 원래 그런 그렇게 생겨서 그런 세계-인간은 휘핑크림으로 위장도 하고 자기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게 사람다움을 만든 그리고 초식동물을 보면 비인격화 오히려 감정이입이 떨어지는데 육식동물 같이 전략적 체계적 그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에너지성을 오히려 인간 진화심리 본능은 감정이입하고 더 사람성으로
생물성으로 그렇게 보는 진화심리 인식구조가 있다.
마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고 광신하다가 자기 자식을 세상을 알고
그런 축소판으로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깨닫는 그런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휘핑크림이 짐승성의 불합리함을 지양하고 그런 타 생물체 잃어버린 본능성 야생성에서 좋은걸 찾아내어 채택하여 프로그래밍하는 재구조화하는 그런 장점은 구조화 단점은 도태시키는 식으로 모든 본능과 그런 야생판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휘핑크림의 강력함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총한자루만 가지고 인간 몇명이 가서 아프리카 야생초원의 서열화를 만들 수는 없겠으나- 언어도 다르고 (인간이 추상적인 단어 휘핑크림부분으로 더 복잡한걸 축적하여 지식체계를 만들 수 있었으나:내가 발전하는 방향이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게 만든 핵융합의 원동력의 방식) 하이에나가 되서 그들의 서열 윗서열이 될 수 없듯이-아예 생긴 빠꾸가 다르므로 휘핑크림이 많은 인간끼리는 그런게 사회적 제도등의 약속으로 가능하나 본능이 여전히 밀어내나 인간은 그런 부분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서 소통할 수 있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반목 약육강식 구조가 아니라 아직도 부족하고 말이 안통하는 짐승도 반이상이 넘으나 생긴대로 다보는 그런 짐승의 짐승뇌구조 원숭이 생김새를 사자, 토끼 등으로 착각하는듯 아마 지네끼리 인간은 그래봤자 원숭이이다. 사자가 될 수 없고 원숭이사이의 조금더낫고 조금덜할뿐- 그렇게 총과 어설픈 전략으로 할 수는 없지만 만약에 탱크가 있고 치밀한 몰이 전략이 있고 덫,구덩이가 있고 사자보다 뛰어난 몇수앞을 계산하여 완벽하게 통제하는 허를 찌르는 몰이하다가 상상도 못한 구덩이에 발견못하고 빠지게 하는등-(사자의 한계를 이용해서 능력상의 한계)-그런식으로 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서열화 는 못해도 우리에 가두어 관리는 할 수 있다 범죄자들 관리하듯이
그리고 인간이 맞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인도주의를 뿌리내리고 평화시대를 만들 수는 있는데 오히려 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동등한 주민등록 인격부여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어설픈 학자들의 세상이해 때문에 그러나 그런 장점을 도외시하고 아직도 원숭이나 고릴라 차원의 그런 방식의 운용만 주장하는-불합리한 점이 많다는게 너무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소모임이나 그런데서 그런식으로 하다가 부당하거나 비인간적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그 전체를 한번에 바꿀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있듯이 아마도 인간이 사자를 가두어 관리하거나 부하로 삼는 메커니즘을 할 수 있는 휘핑크림과 원숭이 본능의 통합 융합수소 시너지 연결체계를 적극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진화발전하는 것이야 말로 최후의 세상정복의 길이다. 세상을 한번에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통찰상자를 얻었다.
인간이 자연계를 장악한 방식 거기서 인간동물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이 가능한 것이다.
일반대중에게도 짐승같은 그런뇌로 살고있는 대부분의 인간말종들에 대해서도 제도와 휘핑크림과 덫과 기술집약(권총,덫,우리제도-감금제도약속합의(교묘히 속이는 그런심리전략의 힘의 역할이 중요할 것)-등)의 힘으로 전략과 조련법 인간의 쌓아온 기술집약 사자사냥수송법 등으로 말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교묘한 사기술수와(모두 전쟁실력에 속함) 정치력 그런것만이 쓸데없는 국영수보다 중요한 진정한 사회와 세상 세계자체에 중요한 힘과 반지를 얻는 중요한 힘이라는걸 깨달았다.그것에의 무한매진 그것만이 세상을 발아래두어 재미있게 다루는 일이다.
그걸 하기위해 인간은 더더욱 중요한 사자이상으로 강해지는 강해지게 만드는 자기단련 휘핑크림의 용광로를 이미 가지고 있으나 망치지 말고 잘써서 의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필하
학자는 항상 적을걸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담을 능력이나 체화하거나 반복새기는 우물안 개구리가 될 수 없기에 현장현상을 겪어야 하는 그런 그와 동시에 굳건한 갑옷안에 있어야 하는 참 다양한 능력 요구 소구 능력개발을 필요로 하는 직업 현장이다.
나같은 타인이 아닌 제대로 된 연구하는 그런 사람들 방구석이나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사자대중조련격리법-잡히고도 뭐라고 하지 못하는 법을 이용하려해도 사형판결이면 사형이다;그러나 요즘은 그걸 감옥을 잡아뜯기엔 너무 견고하고 거대하게 굳혀져있어서 힘들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님 원숭이가 인간이 된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혹은 온 사자무리를 죽이고 아프리카의 씨를 말릴 그럴 엄청난 시너지의 인간 책략 기술집약이 있다면(실제로 씨를 말리고 고엽제, 화학약품 다루기 능력,. 전략책략 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수 있듯이)-세상장악법등

내가 관념속에서만 생각할땐 그다지 성과가 없었으나 그걸 현실 실물을 보고 완전히 뼛속깊이 우려내어 파악할때 그런 구체적인게 보여서 훨씬 잘 활용해낼 수 있었다. 체화하여 그렇듯이 그런 실물이 중요한데 우물안 학자가 안되려면 학자는 쓸데없지만 인간방식은 발전시킬만 하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걸 깨닫고 알아서 자기 생각방향까지 조절할 수 있는데 마치 그런 자연타큐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이 진행이 되듯이 그런걸 활용하여 어떤 분야에 감정동기라는게 끌림반응이라는게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으니까 그렇게 몰입하여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일 것이다 무의식이 동하는게 아주중요 나의 업적처럼 적멸비기 그대로 인간의 세뇌를 빠져나오게 생각흐름을 조절해주거나 그런 우매한 동물들의 정보를 캐내어 역습을 하여 궤멸시키는 등의 작업들이 모두 상위에서 우위를 장악할 수 있는 인간이 사자를 궤멸시킨 그런 방법들이다 체육계 새끼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 처벌 모두 다 갖고 있으면 더 좋으나 휘핑크림만 가지고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간-
본능전략이 방해될 수도 도움될 수도 있으나(최초 전쟁에의 동기등)역사적 인물을 보면
히틀러, 모택동등 인간전략만으로도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걸 보여준 사례.
특히 지금도 정치술수나 제도권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음.
오히려 마피아나 음지권력은 전통집약축적에 의지하는데 반해(그런 식의 축적을 전통으로
이어받기에 그정도 운영이라도 가능-불합리함을 이미 극복해있는 전통 이를테면 동성애를 사형에 처하는등)특정 종교단체들이나 그런것도 비슷한 진화방향
말하자면 전통물려받는게 경험성으로-잘못된 미확인도 있겠지만-마치 인류 제도권에서
핵폭탄 설계도를 이미지체계로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고 자유발휘하여 즉각써먹을 수 있게 정리해놓은 것 같은 비슷한 역할을 한다.


I. 인과에 대해서

우주의 구조를 논리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인과인데


그러면 설계가 된 것 같은데, 누가 설계했나? 신이라고 상정하면

만약에 신이

인간이 햄스터의 행동양식을 전부알고 예측이 된다고 치자. 그런데 햄스터의 다양한 반응을 보고 기뻐한다. 만약에 신도 그런 인간과 흡사한 구조를 가졌다면, 그런 논리적인 관점을 탈피해서 감성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렇게 인간세계가 예측 가능한 카오스로 존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인간세계는 신의 여흥을 즐기기위한 놀이터인 것이다. 인간이 햄스터를 보듯이 신도 그럴 것이라는 말이다.

감성만으로는 모든걸 할 수 없다. 그러나 감성이 “힘”이 된다면 무리가 된다면 아마 시민혁명이 나타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로운 법칙과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좌지우지의 “힘”. 단 여기엔 얼마간의 원리가 작용한다.


우주는 왜,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왜 철저하게 심리대로 돌아가고 운명과 유전자 확률대로 인간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일까?
동물들은 무엇을 내기 위해서 그런것일까? 아니면 신이 구경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진화해서 끝에서 남는게 뭘까? 단지 우주의 자기 해답의 열쇠를 찾는 것일까
왜 철저하게 인간의 심리대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인생을 살아갈까...무엇하러 자유는 실존하는가 제한된 영역과 사례는
그 원리라는것은 왜 생겨났는가
다른 어떤 필요가 있는것일까
하나님을 다시 믿게되는 근거가 되는 것일까
이런 과학적인 체계들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일까
성경은 왜 허술할까
진정한 신은 인간이 있는지도 모르는게 아닐까
우주내부에서 어떤 유전자를 키우는 것일까-인간내부에서 해답을 찾듯이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ㅡ인간세상에개입을안할 수도 있다.
우주가 카오스대로 단지 진행만한다면
왜 우리의 의식이 이런형태로 진화했을까
단지 외부 큰 부분과의 교신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우주의 프랙탈로 우주의 구조가 왜 이입이 되어 발현하는것일까
단지우주의카오스원리대로진행이되는것일까
안그러면 왜 이것을 다 시아는 것을 또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것일까
이 카오스가진행되고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왜 카오스가 되는 것일까
이게 궁극이고 끝일까 아니면 그이상의 어떤것이 있는 것일까
그건아마도 카오스자체가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어떤형태가 아닐까
-그이상의새로운무엇을만들어가는어떤것우주의팽창저너머
단지인간은심리에따른반응인데그이상의어떤것을만들어가고있다
이것은무엇일까
애초에 인과에 의해 생겼지만 시스템을 형성하여 상호교류하는 체계일까? 그 반대일까 그래서 공간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르고 뒤섞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과거가 미래에 영향을 주지만 역으로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줄수도 있는가.
드넓은우주와외계인따위에는관심이있다
하지만내게더중요한것은이세계에서의궁극ㄱ의행복이다
그러므로나는노력하는것이다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그렇다. ‘인과’ 라고 하는 건 존재한다. 그러나 시공간도 있다. 그런데 이 시공간은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가나 미래는 아직 백지와 같다. 다만 예측가능한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예측할 수 없는 여지’ 가 있는데 그건 자유의지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미래를 만들어 가고, 또한 “동시성” 도 있다. 그러나 그 동시성은 단지 시간은 가는데 일정한 공간 안에서 인간들이 자기 구조를 이용하여 맞닥뜨리거나 하는 일들이 단지 시간이 일정하게 간다는데서 발생하는 동시성이지 ‘동시에 하나로 묶여 진행되며 일어나는’ 동시성은 아니다.
또 시간에 대한 문제도 있는데 만약에 진공 수조안에 인간이 아니라 돌로 꽉 채워져 있고 어떠한 물질도 없다면 어떨까? 그건 돌 입장에선 시간이 안가는 것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지구라는 공간이 있고 물질 대사가 일어나 착각하는 것일 수가 있다. 시간의 존재를.

지금 내가 글을 적고 있는건 수많은 ‘인과’ 에 따른 거지만 ‘자유의지’ 에 의한 것이다. 그런 점. 아마 다른 속성들이 일차원 적인 인과구조 사슬이 아니라 입방체를 이루고 다양한 모양새를 이루어 시공간의 극한에선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자유’ 가 있고 분리된 ‘인과’ 와 함께.

‘인과’ 자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그런 기술도 존재할 수 있다. 빛의 속도를 넘어서는 것이나,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러나 그렇게 만든 것은 역시 ‘자유의지’ 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의 욕구는 인과사슬이다.

그리고 ‘자유의지’ 는 뇌로 가지고 태어나나 그것을 쓰기까지 계기가 있어야 한다거나 아니면 어릴때 억제가 된다거나 나이가 들어서야 깨이는 단점이 있다. 어릴때는 상당히 뇌자체 발달이나 주변환경, 부모의 의지에 구속되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고 그때 나오는 ‘자유의지’ 는 그냥 욕구의 표상인 경우가 많으니.

예를 들어 영웅으로 태어났다. 인과를 거쳤지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론 적으로는 중세나 과거에 권모술수로도 가능했다.

어쩌면 꼭두각시 인형처럼 현재 세계를 살면서 어쩌면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에 실이 매여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자기 작동이다. 자기를 잘작동하는게 자유이다.

모든 종의 기본 구조가 일치한다고 진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지구라는 환경 생존에 적합하게 동일하게 설계했기에 그럴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 아니다. 여러 불합리한 원리와 불합리한 구조로 인간은 진화하고 바뀌어 왔다. 짐승과 절반을 공유한 뇌로.-이것이 각자가 극복할(사람 마다 다른 시험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그게 공의이고 평등) 신의 테스트 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복잡한건 진화의 과오일 수도 있다. 이렇게도 반응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여러가지가 적자생존된. 그러나 기본구조는 설계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인간의 ‘두뇌’ 는 상당한 오류와 모순을 가진다.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게 많다. 그래서 세상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현실이. 일말의 자유의지도 포기함으로써 상황은 더 악화된다. 우주도 얼핏 아름 다워 보이나 상당히 오류 투성이로 디자인 되었고 인간도 보기 좋아 보이나 빙산 아래, 속을 들여다 보면 간신히 “사람” 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정도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자유의지를 되찾고 목적을 되찾아 세상을 개선코자 하는게 목표이다.

인간회로중 짐승의 진화에서 비롯된 속성이 있다.
가장 문제는 얼굴만 보고 판단하는 불합리이다.

또 상황에 따라서 진심이 유발될 수도 있는데, 그건 인지의 한계에서 비롯될 수도 있으나 실제 진심과 구분하기 힘들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 ‘나오는’ 것이지 자기가 신념으로 가지겠다 해서 나오는게 아니고, 또 그렇게 나온 ‘진심’ 이 오히려 거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합리중 하나는 약자를 보고 무시하는 것, 약육강식 고질적인 문제이다.

모든 인간은 악하다. 그리고 의지로 선할 수 있다.

인간들의 대체적인 속성만 보면 그 죄값에 멸종해야 마땅한 생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의지와 신념으로 긍정을 만들어 가기에 희망이 있다. 이 모든 짐승성 조차도 극복을 하여. 항상 자기를 들여다보고

글을 보겠다.

<1>

이세상은 뼛속까지 부조리다.
자신의 의지대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렇게 태어난 외모로 멸시당하고
가난으로 멸시당하고 의지로 자라나서
성공했는데 세상물에 찌든 인간들때문에
불행한 일이생긴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못다한 꿈을
이루려는 순수한 마음은 말초쾌락에찌든
악마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유린당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느끼려는 사람은 힘이없고 돈이없다는
이유로 머리를 땅에 짓이겨지고
여자의 다리가 벌려지고 조폭들에게 돈을
뺏기고도 법적으로 구제가 안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도
인간적 매력을 보고 안도와줄수있다.
인간적 매력이나 얼굴이 안되는 사람은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거나 자기 보상을 추구하는
사람의 본성상 가래침을 뱉을뿐 우주적으로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기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인간과 우주는 프랙탈구조로 닮아있다.
우주의 본성이 그대로 프랙탈구조로 인간에게
이입이되고 그런 본성을가진 -우주의 뇌의 모형인-
인간은 또우주를닮은뇌로 사물을 평가하면서
우주의 본능대로 평가한다.
그기준은 자기보전,진화이다.

한마디로 우주는 자기몸에필요없는 세포들은 가차없이
제거하는것이다.
자신의 생존에 필요없는 인간들을.
인간이보기엔 비인간적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합리적인것이아닌
유전자적 우열,(호감과 비호감이나 쾌락,임장감 대세로 나타나는
-그때가장인기있는것이당시생존에좋다)

매력,외모,가난 등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미세한 본능적감정들이 우주의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상위의 대뇌적인 것들이있는데
이것은 우주의대뇌이다. 인간의 대뇌적인 생각들로
나타난다.

이것이 우주와 인간의 감정시스템에 대한 관계이다.
-단지 인간공동체의 유지및보전을위해서 유전자가 진화한 것일 수도
있다. 우주가 프랙탈이아니라 단지 인류라는 종족과 생물이라는 종족만
그럴수도있는것이다. 말하자면 우주의 이입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입이다.

특정것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은 80,90이상 비슷하게 나타나는경향이있다.
이것은 본능적인 감정시스템과 인간에게 이입된 유전자나 혹은 특정 환경에
의한 교육이나 기타로 형성된 두뇌의 총체속의 생각,느낌반응들의 경쟁이다.
여기서 우세가 대세로 굳어지게 된다.

(이것이지지받는것이우주에겐좋다고여겨지므로다수결을선택하게되는것이다.)
우주처럼 인류도 불특정부분 일정비율 썩은부분이있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이것이 대세가 될수가 있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소멸로치닫게되는데 인류사회도마찬가지이다.
주기가 있는것이다.

멸망으로치닫고있는
반응이엇갈리고치열한전투가이루어지는사상이나의견은우주발전과진화의과도기인것이다.
여기서승자가앞으로의우주진화와발전을담당할수있게된다.
여기에역설적으로우주에게이입되어판단되는(2가지경로와구조-총체도있음.)
인간적인매력도중요한것이변수가된다.
그리고 인간처럼 우주도 본능적 감정들이있고,
미세한 감정들이있고, 생각과 사고가 있다.
이것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이 인간과 우주의 시스템의 모든 구조이다.
이에대한 일방적 대비책으로 가난하고 불쌍한것에 대한
동정,브레이크기능등이있지만 이것은 미비하다.
우주전체나역사적으로그렇게필요성이크지는않은것이다.
좋은음악이그런느낌이오는것은조화가되고그것이우주의긍정적인법칙으로
진행이되기때문이다.슬픔,허무함,행복,은혜,사랑,감동등 이모든 것들이
우주의 긍정적인 법칙대로 진행이되고 불협화음이짜증나는것은 부정적인
법칙으로 진행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식이 그렇게 느끼는것이다.
착하고 나쁘고를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본능으로 재수없기 때문이다.(단지안어울리고매력이없고)
독을 품고 성공하지 않고 복수를 하고
악마가 되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
침뱉고 여자나 따먹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우주의 잘난기준에의해
제한되고 갇히고 사형을 당한다.
인간이 하고자해서 그런것이 아니다.
다양한 우주의 본성이 인간들에게 이입된
것이다. 그리고 개같은 환경과 엔트로피의
증가가 만들어낸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사상과 쾌락이다.
선한것에 쾌락을 느끼는 뇌도 있고
아닌것에 쾌락을 느끼는 뇌도 있다.
견제하다가 가난한 선한 인간들이 작살났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도와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부조리한 세상은 근본부터
없애야 한다.
누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아니다.
즐거움때문에 쾌락때문에 뇌의 본성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행복과 쾌락의 동기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인류를 몰살시켜야한다.
이우주자체를 없애야한다.
나에게 동참할 사람은 따라라.
이인류를 절단내겠다.
정의는승리하지못한다.
영원히 인류가 멸종할때까지.
분신자살을 하더라도 그때뿐이고 이 거대한 세상속에
미물일뿐이다.
그래서 온인류를 멸종시켜야한다.
그길은 가스폭발도 아니고 염산을 들이붓는것도아니다.
가장근본적인 살육이일어나야한다.
난악마가되어버렸다.
조심해라.
아버지에게 맞은 것도
가래침을 당한것도
휴지통처럼 스트레스풀이용당한것도
모두 부조리다.

단지 열등자의 피해의식같아 보이나 사실상 이것은 ‘신호’ 이다. 마치 신체의 자살신호 같은 신호. 공동체는 상당히 비인간적이다. 그건 인간 대다수의 불합리한 본능과 그걸 조절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기려는 ‘자유의지’, 그리고 다수의 불합리한 표출들에 의해서 발생한다.

두번째 글을 보겠다.

<2>

이세상은 원래 이유없이 나쁜 일을 겪는 세상이다.
태어나는 것도 자기생김새로 태어나지 못하고
그냥 추첨처럼 약한 상태로 태어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아무리 착하고 성실한 자세로 살아도
자기들 마음에 안들면 깐다.
생긴것때문에 노력해도 싫어한다.
그리고 어줍잔은 본능의 심리대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이유없이 당하고 착하면 당하고
약하면당하고 이용당하고 그냥당한다.
지지도 있지만 그냥 심리일뿐이고 약하다.
그래서 이딴 우주시스템은 공격해도 된다.
왜냐하면 썩었고 허술하기때문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유없이 착한 사람을 죽여도 된다.
오히려 잉여인간제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가장 사악하고 잔인한 사람이 살아남아야
우주의 진화에 도움이 된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이런식의 합리화가 이상할거 없는 불합리한 구조이다.


한사람의 고백. 편협한 것 같지만 진실을 담고 있다.

“내가 절대적 이성의 세계에 있을때는 내가 능력으로 연구해서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정신이 정말 깨끗했고 이성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살다가 인간들의 감정감각에 움직이는 세상을 보면서 얼굴과 풍채만 그럴듯하고 그럴듯하게 보여야 알아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지가 좋아야 우러나와서 알아준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연구업적만 뛰어나면 이성으론 인정할지 몰라도 감정때문에 이성도 왜곡해서 생각한다- 혐오하거나 재수없게 생각한다.
그래서 알아준다는건 별 의미 없다. 문제는 어떻게 조종하느냐이다. 그럴듯해보이고 이미지 관리를 잘하면서 처세를 하는 것이다.”

소시오패스와 싸이코패스가 양산될 수 밖에 없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다. 사실 고속성장의 문제라기 보단 인간 본능의 문제도 포함.

원래 악인 구십이 선인 열을 탄압한다.


인간의 추잡한 행태들.



이세상은 절대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복을 받는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복이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쁜일이
더 일어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보증을 섰다가 온 재산을 날려먹고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어떻게든 남을 해코지해보려고
스트레스 풀어보고 자기 실현해보려고 장악한 세상에서
사회적인 지위도 지지받는 입장도 못되고 권력도 있지 않다.
그렇다고 남을 제압하고 압제하면서 권력을 만들지도 못하고 사회의
하층민이 되어간다.
(역사상으로 볼때도 가장 잔혹한 살인마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형벌조차도 그 왕들의 특성을 살린 잔혹한 것들 뿐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반란을 두려워하여 국민들의 공격성을 꺾고 착하고 선량하게
살라고 하였다. 그것이 권력유지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인간관계에서조차 자신을 지킬 힘을 구축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살게된다. 종교의 세뇌를 받게 되면더하다. 이세상은 종교가
지도를 할수도 없고 또한 종교대로 돌아가는 세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런 혜택도 받지못한채 무시당하고 흠흠거리고 까려고 하고
제압하고 가래침뱉기고 그런 신세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제대로된 행복도 가지지못하고 사소한 가족간의 행복조차 위협받게 된다.
그리고 특히 좆도아닌 개쓰레기 인간들이 길가에서 죽치고 위협하거나 자기 자지
쾌락풀려고 서있는꼬라지에 제압도 못하고 위협당하게 된다.
특히 권력자도 아니고 사자나 맹수도 아니기에 더더욱그렇다.
가족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쓰레기 아버지를 재수없게 만나서
분란만 일어나거나. 대다수를 아무런 힘도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

할머니랑 둘이 산다는 것 도와준다며 접근해 동네 아픈 초등학생 성추행하고 약점 이용해 가지고 논 사건.



인기는 이미지로 결정이되고 사랑은 단지 이미지에 대한 반응일뿐이다.
이미지와 상황으로유발되는여러심리적반응이사랑을만드는것이다
-예를들어돈이많고씀씀이가화려한사람이멋있다고느껴지는것은
그런행위가외적인이미지와함께멋있게느껴지기때문이고
어떤부족한인간에게사랑을느낄때자기와동일하다느끼고도와주고싶고
연민등여러심리가유발되기때문이고
비호감얼굴의부자가짜증나고위협적인것은 단지 느낌이그렇기때문이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의 부정적인 측면의 존재 목적이 있다.
첫번째는 보수기득권층의 권력유지와 자기들 세상의(에너지원,연료) 유지에
필요한 말잘듣는 부속품들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국가의 기존 권력에 쇄뇌를 시켜서 어릴때부터 교육이란 쇄뇌를
통해 기존 권력에 복종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산업혁명후 마을의 큰장로들도 모두 학교에 동의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도 전수할겸 자신의 기업에 필요한 일꾼을 필요로하고
기존 권력의 따까리들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을때 통치하기가 더 편리했던
중세시대때에는 서민들에게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으로 지식을 가르치고 쇄뇌를 시켜야만
통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위협이되는 모든 것들은 나이 30이 넘고 40이 되어서야
겨우 깨닫게 만든다.
예를 들어 정치학이나 권모술수 심리학을 20살에 가르치진 않는다.

III. 그럼 세부적으로 소통하는 것에 대해서 ‘진심’ 에 대해서.

만약에 진심이 아주 소중하고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면 왜 인간들은 어떤 인간에게는 마음을 다주고 진심이통하고 호감을 느끼고 어떤 인간에게는 그렇지 못하고 혐오가 쌓여서
(설령진심이라고하더라도) 나중엔 별로 한 것도 없이 증오까지 하게 되는가.

그리고 왜 이것이 유전적인 촉수와 정신형성에 따라 사람마다 운명마다 상황마다 기타 모든것마다 달라지게 되는가.
(인간촉수대로)

아무리 진심을 내어도 외적인 것과 다른 자극과 반응에 따라서 걸러지고 통하지 않고 왜 그 사람은 그런 이미지로 각인이 되는가.

철학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왜 생기는가.
(사람꼴에따라)

그리고 철학이 통하더라도 왜 무의식의 본능대로 그사람의 호불호가 갈리는가.

인간은 단지 물질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증거이다. 제3의시각으로
보았을때

그리고 구성된 상태의 그영역도 있는 그대로의 상황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단지 미토콘드리아가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과학을 배우지못하고 영혼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진심이란것의 실체는 착각이다.

그리고 나중에 우주적으로 권장되는 착하거나 선행을 하면
불쌍해지는 감정이 나오는가.

그리고 왜 이런 것들이 나에게서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무엇보다도 본능에 근거한 특정한 자극에 대해서 거의 모든
인간의 반응이 일치하는 경우가 생기는가.

왜약간호감도여러번보면정이드는가.
이것이 바로 인간의 기계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신의 룰이라면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그리고 한걸음떨어져서 생각하게된다면 나의 감정이나 정서의 영역을 벗어나서-심리대로 돌아가게하고 세상의 여러작용을

만드는 촉수들-통찰해본다면 인간은 철저하게 자극과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것이다.

이런 해당상황에대해 최적으로 먹히는 것을 진심으로 아주미묘한 느낌까지 커버한다면 모든 인간에 대해 90%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90%이상 진심이통하고 마음을 나누고 마음이 통할수가 있다.

결국 이런 것이다.
인간관계는 단지 의도에 따라 조종하는 최정점이 있을뿐이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그런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 적으론 그러나 실제로 그러는 자는 별로 없다. 안그러면 시청률이 더 올라가거나 투표 참여자가 늘어나겠지.

이세계에 진심이 없다는 증거
이세계에는 진심이없다.

왜냐하면 모든것은 조건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 신호조건이 부자지간이건 예를 들어서 얼굴이 못생겼는데 기부를 했을 경우와
얼굴이 예쁘고 호감가고 가녀린데 기부를 했을 경우와 틀려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신호자극의 조건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반응하게 되는데
똑같은 감정과 정신을 내어도 진심일지라도 그것에 대한 평가는 틀려지게 된다.
생긴게 안맞고 종교에의한것이면 욕을 먹게 된다.

(아마우주원리와연관되어있을것이다.)

첫인상이 모든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었을때와 마음이 닫히고 기분나쁘고 남자경험이 많아서 짜증나는데 정을 나누었을때와 그 인상이 틀려지고 나중에 예후가 틀려지게 된다.

그걸 업보라고 하기엔 선한 자가 외양 만으로 불이익을 당하는게 선한 사람이고 악한 사람이고 비뚤어진 자들만 그러는게 아니라는데에 있다-기본 적으로 장착되어 태어나는 측면이 있고.

그러므로 모든 것은 이런 조건들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데
-세뇌당해서 강권하는것도마찬가지이다.(일시적이긴하지만)

중요한것은 운명이라는 흐름과 카오스란 것과 이 신호자극들의 이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든지 역할이라든지 근본이란것들이중요한데,

한사람을 놓고봤을때 어떤때는 신호인데 나중에는 신호가 아닌것,
그것을 볼때

우주적인 발전이라든가 단지 전체적인것 이나 경험안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랑유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데,.
어렸을적경험이나 유전자지도나 그때 정신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진심이란 강렬한 것이 나오는데
현재느끼고 있는 이러한 중요한 의미나 느낌들이 이런 객관적인 조건에 좌우된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고
다시 재고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영화에 진심이 유발되지않는것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이란조건이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정신분열자는 진심이 유발이 될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식 같은 시나리오 창작자나 영화감독은 자기 영화나 시나리오에 인생 자체의 의미로서의 ‘진심’ 이 날 수가 있다.
조건없는 진심이란 것은 없다. 아가페란 것은 친자식이기때문에 나는 것이다.

결국엔 모든 것이 조건에따라 좌우되고 움직이는데,
이렇다고 진심을 포기해버리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그리고 운명의흐름이나 운명적인만남이나맞아떨어짐이나카오스라는것이나그자체가우주에서
어떤의미로있을지도모르는데,
(우주는하나뿐이라든가)
그이상의어떤의미가있고무슨세계가있고진행이있을지도모르는데
진심을놓칠수는없다.
그것이정답이다.

선한 마음이란 인간공동체가 긍정적으로 발달하도록 보통 드는 뉴런작용인데
이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하고 도와주려하고 순응하고 치료해줌으로써
그 혜택이 공동체에게가고 그것이 나도 누리는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감정이입이란 것이 인간유전자배열-인상,호감이 가지 않으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결정적인 오류가 아주 착하고 도덕적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도 그 유전자가 매력적이지 않고 비호감이면 감정이입이 안되고 살인충동이 난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신이 없다는 것이고 신이 있다면 아주 인간을 엉터리로 만들었다는 뜻인데
선한 마음이란 이런 것이고 결국 인간공동체가 살기위해 유전자를 변화시킨 것이므로
인간공동체의 노예가 될 뿐이고 인간들에게 복수할 수 없고 당하게 되므로 반드시,
절대로 남을 도와주면 안되고 철저한 전쟁원칙과 쾌락과 정서의 원칙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것만이 진화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인간의 뇌구조상 인간은 반사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인간의뇌는 잘못진화했고 그런 뇌로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다 보니
헐뜯고 경쟁하고 약하고 만만해보이면 까고 짓밟고 뜯어먹고
이런 사회가 당연시 되다 보니 본능과 이성의 충돌로
원숭이처럼 본능적인 것들을 반사회성으로 규정하게 되는데
여기서 조금 이런 짐승적인 경향이
심한 사람을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 규정하는데
그게 적으나 틀리나 그게 그거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똑같고
이런 뇌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한
약자는 당하고 인격은 파괴되고 쾌락과 공격만이 판을 치게된다.
어느나라나 제도로일하는 빌딩인간들의 무의식은 온갖 강간,
변태적 섹스와 쾌락
그리고 살인으로 가득차있다.
요즘은 인터넷발달로 이런 인간의 내면이 댓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다행이다.
그러나 십년전만해도 인간에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런 것은 잘 상상하지 못해서
인간에대한 일말의기대감이있었는데
요즘은 인간의 속 진짜모습
그걸 눈으로 보게 되니 인간들이 혼란이 오게되고 인간의 본질을 알게 되어가는 것이다.
도덕군자가 아니면 그렇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그런주제에 반사회성을 운운하는건 코미디다.
조금 덜 더러운 인간이
더 더러운 인간을 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녀사냥 군중재판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책에 있는 가치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이성의 뇌와 본능의 뇌가 진화로도 극복할 수 없는 애초에 잘못된 결합이기 때문이다.
고대중세 역대 군주들은 학살광에 잔인성이 뛰어나고 특히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군주들이 우리나라에도 조선 건국의 시조 이성계가 있다.
어느시대나 민중들은 쾌락강간 외모에대한 살의를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반사회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도덕군자들의 유희라는 것이다.
아무이유없이 인간들은 그러므로 그런 욕하는 인간들이 먼저 죽어야 한다.
욕하는 인간들이 정신은 더욱 더 더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자체가 멸종되어야 한다. 그것이 길이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미래의통치이론-

인간의 온갖 불합리를 극복하기 위해-두뇌 자체가 내포하는 불합리 부터 시시각각 고개를 드는 불합리한 작동방식의 불합리까지

미래에는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될 것이다.
거대한 중앙통제본부가 있고
그곳에서 평생을 시스템 관리만 하는 로봇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도시 농촌 땅이있는 모든 곳에 곳곳마다 모든 곳에 1m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가 될것이고 국민들의 생활은 24시간 감시가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반란의 낌새가 보이거나 무리를 짓거나 휴대폰에 불순한 내용의 통화가 이루어지면 즉각 화학약품형이나 과학의 탐지로 미사일과 로봇과 로보캅이 가서 사살을 할 것이다.
본능뇌와 폭력성 DNA나 학습행동이 제거되는 형벌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절대권력이 발생하는데 시스템 감시자의 교육받은 자식으로 계속 세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시와 통제는 로봇과 시스템이 맡기때문에 철저한 심리대로 통치하고 반란의 불씨를 끄고 세금을 걷고 모든 전쟁을 치룰 것이다. 이것이 과학의 힘으로 운영되는 세계의 모습이다. 이것은 연구의 힘으로 가능하다.

물론 모두가 원하는 사회는 아니지만 현재 민주주의 처럼 필요악으로 발전할 것이다.


사후세계는 존재하는가?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았다.

인간의 프랙탈 구조에 의해서 그 하위 단계로 계속 인간의 구조가 (프랙탈로)반복되면서 인간의 생전 정보가(시공간에서 기록된 파동정보) 프랙탈 하위로 빠지고 접혀진 11차원등을 통해 우주의 (신경계를 지나) 센터(뇌)로 가서 저장 되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 기억이 재생되면 죽은 후에도 '귀신'형태로 나타나고 그 사람의 흔적이 숨쉬는게 아닐까?(우주의 '상상') 그리고 이런 인간을 인식하는 신경계,미생물은 시공간자체이고 전자기파 같은 전파들이거나. (마치 우리 몸속에 털길이 인식세포가 있듯)
그래서 앞의 사실에 더하기해서 인간의 염원으로 신경계등에 자극을 일으켜 우주의 두뇌활동에 영향을 주고 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을까? 이론 적으론 썩기 전이라면 가능하다.

죽은(자연사) 직후의 사람을 (혹은 죽기 직전의 사람을) 줄기 세포를 이용하여 뇌간심장박동,폐의호흡관장 뉴런을 중심으로 뉴런을 재생시키고 (혹은 교환하고 새로 만들고 - 살아있는 상태에서 새로 재건됨.) 심장,폐등 장기도 줄기세포로 재생시킨후,
인체의 신경 전기신호 교환과 비슷한 성질,강도 등 조건의 전류를 전신에 지속적으로 흘려주면 (특히 뇌간 부위에) 심장 박동 뉴런 신호를 보내면서 심장에 신호를 보내고
(호흡도 마찬가지)다시 심장이 뛰면서 인간이 살아난다.
<마치 심장마비 일어난 사람을 응급처치,전기쇼크 등으로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죽은 직후의 사람을 어떻게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 상태로 유지해 보관하느냐가 문제
심장박동기계를 이용하거나 굳어진 몸을 다시 풀어지게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
그리고 줄기 세포를 최단 시간내에 완벽히 특정 부위에서 재생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1 일단 죽은 직후의 사람을 곧바로 인공심장박동기와 인공호흡기를 이용하여 계속해서 피가 돌고 호흡이 이루어지게 하면서 체온을 유지하는 기구로 체온을 유지시킨다
(이때 문제는
(1)어떻게 자연사로 죽은 사람을 최단 시간내에 병원으로 이송하여 이런 조치들을 취할 것인가
- 자연사가 임박한 사람을 대상으로 2 번을 시행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 그렇지 못할 경우
최단 시간내에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콜시스템과 전문 인력 충원을 제안한다
(집에 장비를 마련해 놓고 전문적인 인력이 항상 관찰한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된 굳어진 사체를 다시 이완시키고 응고된 혈액을 새로운 혈액으로 교환할 수 있는 기술도 마련해야 한다
(2)신체의 인식 물질등이 '죽었다'고 인식하고 생존에 필요한 여러 물질등이 급감하는
현상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 죽은 후이므로 '죽었다'고 인식하는 물질이 뇌까지 전달되지 않고 혼자 처리해야만 하니 우리가 인공적으로 마련해 주입한 물질들도 (이를테면 세포면역물질등) 활동가능한 충분한 환경이 된다는 소리이고 ,
설령 뇌가 죽은 후에도 일부 생존,신체기능 관련 뇌세포들이 활동한다 치면 2 번에서 뇌와 교신하는 미생물문제 해결이 좀 더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물질 관리가 가능하다.
모든 물질관리 해결이 가능하니 기본적인 신체 유지(혈액의 응고,세포의 부패등 지연)는 가능하다.
이제 남은 문제들은 다시 뇌와 장기,세포의 유전자의 활동을 시작시키는 것인데
이것들이 정지된 가장 근본 원인인 뇌간 뉴런의 노화와 각 생존 관여 장기들의 노화는 -혈액 순환(심장,혈관,...),호흡(폐,혈관,...),면역계(백혈구,적혈구,T세포,...),...- 2번에서 줄기세포를 통해 해결을 하니 다시 '최초 전류'(엄마 뱃속에서 시작된 카오스 흐름 중의 뇌간 신호)만 3 번에서 제대로 발생시켜 주면 사체는 다시 살아난다)
대뇌세포까지 산소부족,영양분 부족 등으로 빠른 속도로 사멸하지 않도록('죽었다'는 인식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 이런 명령 유전자 있다면 제거)유지
줄기세포가 분화하는데 엄청 오래 걸릴텐데 그기간동안 신체를 유지하는게 관건 -
뇌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이것을 인식하고 빠르게 사멸하는데 (이 유전자를 일단 제거하고) 산소를 계속 공급해 주면서(다른 물질도) 신체를 최대한 오래 유지시키는게 관건
이 안에 줄기세포 분화가 촉매를 이용해 급속도로 되어야 함
2 그리고 뇌간의 신경 세포들로 분화하고 , 뇌간의 기능들과 연계된 장기들 - 심장, 폐 , 체온조절 장기 등으로 분화할 수 있게 셋팅된 줄기세포를 이식하여 새로운 조직들로 분화시킨다 (분화가 되지 않는다면 이 장애물을 해결한다 - 사체라서 그런건 아니고 어떤 물질,미생물 등의 활동이나 -뇌와 교신하는 미생물일 수도- 단백질의 활동이 사라져서 그럴 수 있다 이 물질을 인공적으로 주입시킨다 : 뇌와의 교신에서 생성되는 물질이라면 그 상황에 맞는 특정 물질을 미리 만들어 급속 냉각을 이용해 보관해 둔다 - 급속 냉각시 해동을 통해 복원되지 않을 가능성
죽은 쥐,원숭이 사체 등에서 줄기 세포를 분화시키는 실험을 해 볼것.
-그런데 샬레에서도 줄기 세포가 분화되는 일이 가능할 것 같으니 사체에서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죽은 사체에서도 전체 대사(뉴런에도 특정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도록 전류를 발생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 심장이 멈추어도 유전자 활동은 일어난다 : ATP 등이 남아 있다면 얼마간은 - 를 유지하고
(혈액순환 , 호흡등도)살아 있을때와 비슷한 상태를 만들어 주면 (대뇌는 거의 관여 하지 않기에 뇌간기능만 활성화된 상태를 인공장기를 이용하여 조성하여 주면 된다) (자연사한 후 일정 시간내) 줄기 세포가 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줄기 세포 분화 자체의 방법이다 이것은 연구가 더 필요한데
나는 줄기세포를 체취하여 특정 기관으로 분화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특정 기관으로 분화하는 중간 과정을 유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
그리고 문제는 '시간'인데 분화하는 시간이 사체가 활성으로 유지되는 시간의 안쪽 범위에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줄기 세포를 죽기 전에 만드는 것이 좋은데 이것이 안되면 줄기세포를 수시간안에 분화할 수 있게 촉매를 만든다 줄기세포 분화에 한 일년 걸리는듯 싶다 뉴런 성장 속도를 보면) 대뇌 세포까지 많이 사멸한 상태라면 줄기 세포로 만들어준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체의 뉴런 사이의 신호전달체계와 똑같은 전류를 온몸에 흘려 보내준다(이때 뇌간에서 특정 신호를 발생시켜 심장을 뛰게하는데 이 '특정신호'가 안나타나고 단순한 전류여서 심장이 다시 안뛸 수도 있다. 따라서 뇌간에서 발생하는 이 특정 신호의 속성을 완벽하게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문제는 -
(1)전신에 전류를 흘려 보낼때 이 전류가 뇌간의 뉴런을 통과하면서 도파민 회로가 돌아가고 유전자들을 활성시키지 못할 수가 있다 그러면 특정 단백질(신경전달물질)은 만들어 질수 없고 심장도 다시 뛸 수 없다.
(그래서 뇌간에서 심장으로 어떤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을 어떻게 전달하여 심장을 뛰게 하고 심장 자체에서 이 신호를 받아(혹은 자체적으로) 어떤 물질을 생산하여 (+스스로를) 뛰게 하는지 연구를 하여 이런 물질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적절한 방식으로(이방법도 연구) 주입하여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온들의 미묘한 양적 조합도 연관 될 수 있으니 이것도 살펴본다.
또 심장이 뛴다,뇌간이 활동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인식 단백질이 있다면(유전자와 연관되어 있는) 이 단백질이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2)또한 신체 상태를 인식하는 세포,단백질 등이 신체가 죽었다고 인식하고
더이상 그런 작용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심장마비인 사람을 전기쇼크로 다시 뛰게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다시 심장만 뛰면 전신의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 온다
이런 경우와 실제로 자연사한 경우의 차이는 자연사할때 죽기전 죽기 직전을 인식하고 전신에 신호를 보낸다는 것인데 이것은 (3)을 참고하면 된다 효율성 측면에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 '죽기 직전'을 인식한다는건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보다 불확실하고 불명확한데 이것을 유전자가 인식하는 것은 죽음 같은 중대 문제를 다루는 진화 과정상 시스템으로는 부적합하다.
한 가지 가능성은 텔로미어길이나 세포의 상태등을 확인하고 '죽음'(생존 관련 유전자들에 대한 정지 명령) 명령을 내리는 것인데 이것은 한번 고려해 볼만하다 이런 유전자가 있다면 부작용을 검토해보고 제거해야 할것이다)
(3)또한 신체가 죽을때 '죽음 유전자'가 있어서 전신의 기능을 완전히 OFF시킬 수도 있다 : 이런 유전자가 있다면 이 유전자를 찾아 부작용을 살펴보고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가능성은 배제하는 것을 고려해보는 이유는 시체는 죽은 후에도 머리카락,손톱등이 계속 자라는 경우가 있다 이때 머리카락,손톱등을 자라게 하는 기관과 유전자가 아직 손상이 안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전체 유전자에 모두 '죽었다'는 신호를 보내어 정지시킬 경우 머리카락,손톱 유전자에만 신호가안가거나/전체에 신호가 안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머리카락,손톱 유전자만 예외일 이유는 있지만 또 효율성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심장이 멈추면 자연히 부패과정이 진행되는데 굳이 신체가 전신의 유전자에 정지 명령을 내리도록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진화 과정상 이런 기능은 아주 약화되어 남아있거나(없어도 좋을) 아예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3가지 단계를 거치고 다시 봉합 수술을 하면 '뇌사상태'로 되는데 ,
이때 대뇌까지 활성화 시켜 이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한가지 힌트가 되는 것은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경험담인데
이때 거의 '잠'에 가까운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두뇌의 특정상태와 관련이 깊다.
뇌파를 조절하고 수면상태 등의 전체적인 두뇌 상태들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
이 유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물질들과 연관이 깊다.
그래서 뇌사상태에서 대뇌를 활성시키고 잠에서 깨어나게 하려면
대뇌를 각성시키고 대뇌 작용을 가능케하는 특정 유전자들(잠에서 깨어나는 사람 ' 뇌사상태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의 특성과 대뇌,뇌간등의 유전자 활성을 관찰하고 연구하면 될 것이다)을 이해하고 이 유전자들이 생성하는 물질등을 특정한 위치에 적절한 방법으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두뇌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혹은 무의식에 정보,신호,파동흐름 등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두뇌의 유전자 활성을 변화시켜 특이한 상태의 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구조상 일어나는 에너지 신호 인데 이름을 계속 부르니 대뇌가 작동한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단독적으로 대뇌 손상 없는(보통 위에 언급한 유전자들과 그외 다른 물질들의 조합작용으로 뇌사가 일어나는데 이 손상을 회복시키면 손상된 상태라도 다시 깨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환자들의 뇌사 상태를 복구시키는 기술에도 응용될 수 있다)
또한 대뇌를 깨울 에너지(ATP류의)나 뇌간의 신호가 없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두뇌의 물리적 상태와 심리적 상태의 중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정 심리적 상태를 만들기 위해 어떤 물리적 상태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순서로 유발시켜야 하는지 알면 깨어나게 하는 것은 선택인 것이다.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에 대뇌가 형성되고 유전자들이 활동 할때 뇌사와 흡사한 상태를 거친다. 이때 특정 신호에 의해 대뇌가 돌아가도록 유전자들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 신호를 이해하고 주입,유발시키면 된다
그러면 대뇌도 작동하고 깨어난는 상태가 되면서 다시 주체적으로 외부 신호를 받아 각 장기로 신호를 보내는등 생명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줄 역할은(외부 환경 신호등은 주체가 알아서 하니) '주체시스템'을 다시 원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중요한 부분이고, 또 이것을 기반으로 현세-살아있는 세상에서 중요한 행복에 관해 말해볼까 한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들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낄 능력이 있다.
그런데 꼭 어떤 것에만 자신의 모든 촉수가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여행할때 최고로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노래부를때 최고로 행복하고
어떤 경우는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때 최고로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일할 때 최고로 행복하다.
그런데 이런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모두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것들에 뇌의 작용이 조금씩 틀려지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행복은 추상적인개념인데, 운명에있는 특정상황을 통틀어서 만든개념에 불과하다.
실체는 생활이고 현실인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하면된다. 불행을 피하고.


아인슈타인도 현대 한국에 태어났다면 길에 다니다 가래침을 맞지 않았겠는가.


과학 기술에 대한 상상


인간과 동물은 같은 법칙에의해서 같은 방식으로 DNA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진화한다.
DNA의 변이를 일으키는 원동력(필요)에 의해서 DNA가 특정방식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뱀이되고 뱀같은 인간이 된다.

그 DNA의 변이방식은 유전자간의 응집성,상호법칙들,가위운반자,~~~~~~~~~~~
DNA관여 호르몬의 법칙 의해서 결정된다.

이 모든 법칙은 하나로 표현될 수 있다.
조합방식은 날짜와도 관련이 있는데 초기에 뱀같은 그런 유전자 변이가 생겨난 방식은
부분적인 방식은 동일하다.

근데 왜 하필이면 뱀의 모양인지,말의 모양인지 그건 우리가 익숙하기 때문이고,
어쨌든 그런 대표적인 방식으로 변이가 일어나고
때론 새나 앵무새 펠리컨같은 방식으로 변이가 나기도 한다.

단지 유전자 결합법칙이 아닌 특정형(생물의물형)과 성격을 만들어내는 조합법칙이다.
그 유전자 변이의 동력과 양상은 카오스이고 미리 그리 변화할 소양에 대한 환경에의
반응이고, 무엇보다도 필요에 의해서다.

환경속에서 변이의 필요성을 자극신호로 받고 변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변이 방식에 10간 12지의 종류가 있고 DNA가 그런 식으로 변이되고 구성될 확률이 가장 높다.
왜그런지나 과정이나 모든 증명은 생화학유전학연구로 알 수가 있다.
유전자는 현세에 있는 모든 물형대로 DNA를 구성하고 변형시키고 진화시키는 법칙이 있다.
뱀, 말, 소 가 있듯이 인간 DNA도 비슷하게 변형이 되어 그게 얼굴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DNA 돌연변이 방식에 일정한 법칙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유전적 다양성 확보 변화 필요도 연관되어 있고, 필요때문에 변형이 되어서 현재와 같은 구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말을 닮은 사람이건 뱀이 사주에 들어 있는 사람이건 뱀을 만든 돌연변이 방식이 인간에서 그대로 일어났기 때문에 인간 얼굴과 사주에 뱀이 두세마리씩 들어있고 닮게 구성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게 인간정신적으로 그런 형질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게되고 그게 사업에 적합할지 아니면 음악에 적합할지 결정하고 판명이나고 이게 진화과정에서 분별할수있는게 두뇌에 누적이 되었기 때문에 느낌으로 판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뱀이진화한방식과 (탄생할때) 인간이 뱀관상으로 구성되어 발전된 방식은 동일하다. 같은 법칙에 의해서 종안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했다.
카오스내에서 이것이 어떻게 동작할지는 물리학의 문제 생물학적으로 DNA 진화시 돌연변이 패턴의 법칙이 존재한다.
원숭이를 만드는 DNA조합구성이 있고 뱀관상을 만드는 그것이 있고 어떤 생김새를 만드는 진화유발시의 조합구성들이 있다.
10천간12지지가대표적-해당천간과지지에해당되는 DNA를 뽑아서 날짜에 따라 배열하면 실제 진화법칙이 나오게 된다.
뱀의 DNA구성법칙과 인간의뱀관상DNA가 프랙탈로 동일한 법칙이 나올수있다.
하여튼 우주의 생물은 동일한 패턴의 진화상의 DNA 변형방식을 가지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은 12지 10의 방식이고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추론하면 알 수 있다.
유전자지도를 다 보고 찾아보아야 한다.법칙을
12간지에 해당하는 동물 유전자지도와 인간사주에 그렇게 동물이 강하게 들은 유전자지도를 펼쳐보고 공통 구성상의 법칙을 추론해내야하는데 그러면 공통 법칙이 나오게 된다.
돌연변이의 공통법칙
어떤 유전자끼리 모이는 법칙 패턴성이 있다.
혹은 날짜와의 연관성이 있거나x
유전자끼리의 어떤 법칙 구성되는 패턴성이 있다.
뱀을 진화시키고 만드는 유전자 조합법칙=인간종내에서 뱀관상이 탄생될때 유전자 조합법칙, 물리학이 가세된 어떤 법칙으로 연결이 되는 프랙탈적인 법칙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생물의 생존을 위해서 발달된 법칙이겠지만-태양과달이 도는 법칙처럼 인간은 물질이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인간이나같다-정신으로 나타나고 인식될 뿐이지-우주가 이런 고차원으로 진화해선 안된다:인간을 멸망시키고 부조리를 갚고 시작부터 잘못된 생물,인간공동체를 멸망시켜야한다. 인간은단지물질인것이다.
이런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생김새와 성격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랜 진화상 거기에 대한 인간의 반응도- 그뿐이다.
그런 모양이 익숙할뿐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고 지구에 환경에 맞는 방식과 법칙일텐데
어쨌건 그속에서 그걸 이용해서 생존하는게 중요하지 인간에게는 그 이상은 별로 중요치 않다.
우주가 어쨌든 진화방식이 어떻건 이미 그렇게 진화되고 있는데 그걸 활용해 신인간을 만든다든지한다는건 나에겐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법칙을 활용해서 인간진화방향을 변화시키거나 신세계를 만들수는 있어도.
이것을 알아내서 우주진화나 인간공동체진화의 원동력변수들을 알아내어 그것의 근본뿌리를 막아서 인간을 멸종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그 근본 동력은 환경과 필요 인식이고 본능 시공간변화이다.
결국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진화 연결고리상의 인식방해하는 바이러스를 퍼뜨리거나 dna 를 조합하는 것 상의 법칙을 방해하는 물질을 널리 퍼뜨리거나 기타 수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이런 진화상의 구조를 정지시키는게 복잡하기도하고 통할지 잘모르겠다.
가장 간단하고 확실하고 좋은 것은 전염병이다.


인간은 단지 생각과 행위를 유전자처럼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중에 생각하는일도 있고.
지역마다기질색이 틀린 이유중의 하나-
니코틴 패취라는게 있다.
그것이 피부에 붙여서 피부표면으로 니코틴이 흡수되게 만든것인데
인간피부는 이처럼 외부공기와 호흡을 하고 접촉해서 받아들인다
그런데 지역마다 이런 공기질이나 섞인 물질 분위기 조합상태같은게
틀리기때문에 이걸 받아들이고 그지역사람들의 공통성향같은게 기질로써 형성된다
이게 진화까지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어느환경에사느냐가중요하고
어떤공기를마시느냐가중요한것이다.-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은 멸종기가 있으면서 살아남았다.그런걸 볼때 그냥 멸종하면 뭐어떻겠냐 진화가 무슨의미냐 하지만 그래서 당대에 지금 살아 생존하는게 더 중요한것이다.어차피 돌연변이이니까 살면 어떻고 죽으면 어떻냐 하지만 지금 행복해야 하고 추억을 누리고 지금 살아남아야 생존해야 하기에.



전쟁비결, 심리전에서 주먹으로 끝나다.


이상적인 인간은 없다. 다만 이상적인 반응이 있을 뿐이다. 다만 빈도수로 그런 긍정적일 수 있고 부정적인게 대다수 일 수 있지만 아니면 어느시기엔 긍정적이든지.

웃기지만 잘난 자와 못난 자가 사는 세상은 틀리다. 같은 곳에서도 인간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1:1 자아,전인격적 교감이 있어야 동등한 부품(복잡하면서 주체적인 구성체)으로서 전면적 교감이 이루어 지는 것이고(1:1 로 복잡하게 커넥팅된 집단 단위도 있을 수 있다) 나머지는 전부 사물의 자극에 따른 반응이다. 사실 1:1 전인격적 교감도 자극에 따른 반응일 뿐인데,
다만 우리 두뇌신체구조상(생존에유리하고 효율적이니까) '교감'식으로 느끼는 반응이 생성되고 본능적으로 '인격적교감' '주체적교감'따위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인간에겐 이렇게 느끼는 경로가 전부이고 다른 경로는 없다. 하지만 우주적으로 볼때는 단지 자극에 따른 반응
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른 효율성을 위해 이것을 전인격적 교감을 할 것인지(행복을 낳을 수도 있으니까) 사물로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사물로 본다는 것은 이성의 경로,깨달음의 경로에 가까운데 삶에 있어 유리한 점이 아주 많음에도 아직 유전자 변형을 통한 진화로 유전적인 경로 형성이 안되었다.(살면서 이성으로 깨달아야만 한다.이런 사람은 신적인 직관적,논리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만 가능하다.) 인간이 학습으로 후대에 물려주기 시작하면서 유전자 진화는 거의 안일어나 아직도 원시시대 두뇌를 가지고 있다. 나는 신인류이다.
나는 진화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고차원적이고 깨달음적인 요소를 체화시켜 유전자적인 진화까지 이루겠다. 진정한 신인류가 되는 것이다.
두가지 경로 선택하는 진화가 안나온 것은 아마도 이런 복잡한 판단을 하는 체계를 유전자화 하는데 자연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가지 경로 선택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경로선택을 만들어 내고 할 수 있는 이성의 영역으로 넘겨버린 듯하다. 자연은 두가지 경로중에 '행복'을 더 쉽게, 근본적으로 느낄 수 있고 인간 사이의 소통에 더 효율적인(전인격적 교감에서 만약 인간심리를 자극과 반응으로 인식하는 교감으로 넘어가면 정서교감이 안되고 이는 본능적 유대,사랑 등 종족번식,종족생존 등에 뿌리가 되는 요소들이 도태되게 된다. 인간은 멸종하는 것이다.) 경로를 택했다. 1 인간 심리를 자반으로 보는 경로를 만들 능력도 없고 2 인간 심리는 자반 경로를 만들 수 있었더라도 이것보다는 다른 경로가 본능적 생존 및 번식에 더 겹치는 점이 많으므로 다른 경로를 택했지만, 기회 비용으로 아주 중요한 점을 손실했다.(-심리적 고통 처리와 인간 조종에 관한 점 : 이점에선 인간 심리는 자반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인간심리를 자극과 반응으로 보는 경로가 더 생존에 유리한 사람도 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나 심적 피해를 많이 입고 사는 인간이 그 예이다. 이런 인간이 유전적 진화가 된다면 '카리스마 지도자 종족'따위의 새로운 유전자 부류가 생겨날 것이다. 한가지 중요한 고려할 점이 있다. 그것은 이런 경로를 선택하면 정서,사랑 같은 요소를 아예 버리고 살아가거나 아니면 특정 상태(원하는때에)에만 정확히 발휘하도록 하여 사회생활에 혼선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정서적 교감을 할 사람을 선정하고 혹은 어떤 기준에 의한 시점이 지나 정서교감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람에게 정서 교감 단계로 넘어가는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복잡한 반응을 유전자로 할 수가 없어 이성에 넘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그래서 인간에게 이성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변연계,구피질로만 안되니까 필요성을 느껴 신피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직관적이든 논리,분석적이든 이런 반응은 이성으로 해결하고 가능하다면 유전적 기능화시켜 진화를 이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강한 존재가 명령따르게 하는 자극으로 명령했을때 이행하지 않아 위해를 당하는건(그리 심하지 않은-징계수준)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 느끼는데(충성 유전자들만) 만만한 놈이 명령 따르게 하는 자극도 아니고 명령했을떄 이행하지 않아 위해를 당하는건 부당하다고 느끼는게 본능적 회로다.

왜냐하면 원시시대때는 카리스마와 힘으로 위계가 결정되어 졌기 때문이다.
조직의 유지를 위해 윗계급의 말을 아래는 절대복종했어야 했고.
인간 이 정말 카리스마면 인간들은 카리스마로 대한다. 이것이 인간 심리이다. 자극에 따른 반응일 뿐이다. 자기도 모르게 따르는. 알면서도 따르고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단지 자극에 따른 반응이다. 꼴같잖게 침뱉으면 위협하고 제압할 자극이 준바되어 있고 싸움을 해서 죽일 자극이 준비되어 있으면 위협하고 제압하고 싸워서 죽인다.
단지 자극에 따른 반응일 뿐이다.
쫄이유는 없다. 나는 완전하고-전투(심리전포함)싸움실력이 엄청난 연습과 훈련이 있어야겠지-단지 자극에 따른 반응일 뿐이니까. 평생 이렇게 가서 방해되는 열등 반응 유전자를 제거하고 진화를 꾀한다.
찌질이라고 생각하고 인간도 아니고 사물이라고 생각하면 별 화가 안난다. 다만 움직일 적절한 자극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겠지.(만약사태 대비한 호신처럼)
수에서 이런 자기암시를 잘한다. 고기라고 생각하고 토막도 낼 수 있는 정신. 무엇이라도 냉철히 할 수 있는 정신인 것이다. 어설프게 자극을 주면 갈구거나 주춤할때 반격당하듯이 그렇게 파멸된다 반드시 확실히(어설픈 느낌 일부러 내는 것도 확실히) 주어야 살 수 있다-좆밥이 어설프게 겁주는 느낌으로 자극하면 갈구고 더 죽는 수밖에 없다

항상 왕따, 사회고립, 인격무시와 빈번한 차별 등 수세에 몰린 상황의 자는 20%를 지키기 위해 80%와는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걸 명심해라. 80%에겐 절대 진짜 속마음도 내비치지 말고 항상 방어와 공격(우호적인 공격도 많다-친분과 정을 나누는 활동같은 다만 인간을 조종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해야 진짜 20%(엄마나 배우자,동생등)를 지키고 20%에서 진정한 정서교감과 인격교감을 할 수 있다. 나머지 80%에선 기대하기도 힘들고 설령 이루어진다고 해도 약점으로 무의식에 저장되어 트러블이 생기거나 갈등상황이되면 공격당해 내가 살해당하고 아무 방어할 방어막이 사라질 수 있다. 이를 테면 왕따가 도와주려는 친구를 사겨도 갈등 상황에서 그 친구는'왕따 새끼가'하고 무시하고 그 약점으로 공격할 수 있다. 치명적이고 완전 내면이건 육체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치유할 수 없는-성폭행수준의) 따라서 80-20은 중요하다.

어떤 호감있는 자도 안티가 있고 눈에 어긋나면 공격당할 수 있다. 열린 마음은 방어막 없는 윈도우다. (해커가 수시로 작살내려 침입한다.) 100% 쾌락을 위해 살면 자길(쾌락도) 지킬 힘이 사라진다. 100% 전쟁만하면 20%쾌락을 맛보지 못하고 죽는다. 인생은 20쾌락과 80전쟁이다. 안그럼 지구를 떠나든지 인간을 진화시키는 방도를 내놓아야 한다.

인간이 약해보이고 맘에 안들면 개나소나 다건드려 본다. 개나소나 다 찔러보고 공격한다. 혹은 싸움상대로도 안보고(해볼가치도 없다) 배설을 한다.

유력해 보이거나 -사회의 권력 라인 계통이거나(2세건 3세건) 마음에 드는 형질들이거나(정이나 의리가 있어보이는등-부하로 삼을:하지만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없냐하면-보통 수가 사람을 잘보는데-마른 인간이 살이찌면 의리와 정이 있어 보여 반응이 달라진다) 존재감이 강한(카리스마) 인간이 아니고 존재감이 약해 보이거나 아무것도 없어 보이거나(공부를 그렇게 잘해보이지도 않고 약해보이고 -그런데도 자존심이 있어보이거나(힘은 없는데 자존심은 세다-이런 경우 많은 인간들이 까고 싶어한다 정신만으론 당장 나에게 해를 입히긴 어려우나 힘이 있으면 당장 맞아서 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 본능) 마음에 안드는 느낌이 있거나(머리가 크다든지 입이 나왔다든지) 하면 무시하거나 인사를 하려하지 않는다 또 인사를 해도 별 위해가 없을 것 같다 재수없으면 인사를 안한다-마음에 드는 쾌락 형질들이 아니면 인사를 잘 안할 수 있다. 더구나 권력라인도 없는 교회 버스에선 자기 마음에 들어야 한다.

이런 인간에겐 폭력이 약이다. 마음에 안들면 폭력과 위협이라도 있어야 본능적으로 굴복한다. 또 유대를 맺으려고 하고.(본능적으로 힘과 쾌락 앞에서 유대를 맺으려는 마음이 생긴다-쓰레기 세상)

특히 공부도 못해보이고 그리 싸움도 못해보이고 이런 어정쩡한 이미지에 약해보이고 착해보이는 건 공격1순위다.

이런 쓰레기 인간들 마음에 들려고 무얼하나? 마음에 들지 못하면 극악한 잔인무도함과 위협과 폭력으로 굴복시켜야 한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인간들 마음에 들고 유대를 맺으려고 한다. 조커를 생각해 보라.

악한 인간들이나 가식덩어리 전도사나 거기서 거기다. 조금 더럽나 많이 더럽나 모두 내입장에선 클린해야할 쓰레기 벌레들이다.

누구 마음에 들려고 얼굴을 고치나? -겁만 충분히 줄 수 있으면 된다. 진짜 1% 안되는 부류의 인간은 깊은 정서의 마약을 느끼려고 나를 선택한다.
나머진 죽이고 탄압해야 한다.


누군가의 갈굼 따위에 대한 인식을 해결하는 방법은 둘 중의 하나다. 본능의 룰대로 싸워 죽여 이겨 만족감을 얻거나 우주의 도를 깨달은

자의 인식으로 인간으로 보지 않거나.

누군가가 자기에게 침을 뱉을때 분노가 치밀고 격분하고 죽이려는 복수심이 드는 것은 그 대상을 인간으로 보고 (인격체로 보고) 주체적 인식을 가진 개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쓰레기나 똥이 내 옷에 묻어 더러워 졌을때는 쓰레기에게 화내진 않는다. 결국 개인도 '인간'이니 '주체'니 씨부리지만 우주적 효율성을 위해(복잡하게 움직이는 사물들-생명체-이 효율적으로 대사하기 위하여) 그런 과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인식 구조가 생겨난 것 뿐이다. 사실 우주의 입장에서 보고 우주적으로 볼때 그 침뱉는 인간도 사실 짐승이나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별반 다름없고 주체가 아니라 인과선상의 쓰레기굴림일 뿐이다. 우주적 본능은 사람을 사람으로 안본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자극에 따른 반응으로 본다.(사실 인간은 이런 과정이 단지 복잡하게 일어나는 것 뿐이니까.) 그런 쓰레기에게 괴물의 흉폭한 광기자극을(연출과 폭력)보이고 행하면 금방 쫄아들고 맞아 벌벌떤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인간이 아닌것이다.
행복이나 그 사람을 배려하고픈 사람이 있으면 주체를 인정해도 된다. '가치있다'는 것이니까. 이들은 사람이고 인간이다. 가족처럼.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전인격적)'교감을 해도 된다' '교감이 필요하다' 고 느끼는 사람들.
인식구조의 양면성 - 주체와 객체 주관과 객관. 정서와 이성. 이렇게 느끼도록-전인격적교감 : 사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식하고 : 정등 느끼고 (동맹맺고-전체 생존위해) 빠르게 물질 주고 받고(아원자처럼 닿지 않아도 주고 받도록) 대사일으키는데 가장 간편하고 효율적인 구조- (형성되고)진화한 정서를 이성에 의해 통제할 필요가 있다. 사는데 편하니까.

새디스트가 되면 오히려즐겁다.


캬악퇘는 일종의 공격인데 상대가 강해보이고 죽을 것 같으면 이런 의도가 안나온다.
캬악퇘는 일단 1.만만해 보여야 한다.(공격할 수 있는입장) 2.마음에 안드는 이미지여야 한다.(재수없거나 띠껍다든지-부조화 이미지나 아니면 쾌감을 안주는 이미지,자기 맘에 안드는 이미지:여자건 남자건-남자가 더 심할 수도 보통 여자는 기본적인 쾌감은 있으니까-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캬악퇘가 나온다. 쓰레기 정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해야 한다.)-흔히 '상대할 가치도 없다'할때(싸우나마나 이기거나,사람같지도 않다)캬악퇘가 나온다. 물건으로 보고 혹은 충격을 주어 공격하는 의도도 공존한다.(자신의 기분푸는 것-그자체로 배설쾌감이고 짓누르고 공격함으로써 기분도푼다 찌끼감 없애고 짓누르면서 우월쾌감+망가뜨리는쾌감+인격말살쾌감+...) 마음에 드는 부분이 대부분이면 좀 낫지만(캬악퇘감소) 언제까지 쓰레기들한테 비위 맞추고 살 수도 없고 전적으로 주도자의 기분에 달렸기에 그런 위치는 안된다. 주도자도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근본인식이나 내입장으로 볼때 엄청 재수없게 생겼을수도 있다. 결국은 힘의 우위가 결정한단 소리다.
강한이미지는 1.강하고 2.그자체로 쾌감이나서(강하다는것-단,형질,느낌등이 조화가 되어야 함-이 생존에 좋으니까) 시비를 못건다.
마음에 안드는 건 여러가지다. 보통 '재수없다' '띠껍다'하는 건데 얼굴이 안맞는다든지 생긴게부조화고 못생겼는데 평범한 옷입어도 안어울리는 느낌 조금이라도 난다든지 귀엽고 잘생긴것 같은데 흠이 있다든지 멀리서 쾌감 기대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살짝 부조화 좆이든지 여리고 힘없고 만만한 것 같은데(특히 여자인데 싸움잘하게 생겼다든지) 강한척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든지 여린데 부조화 이미지라든지 어디 하나 느낌이 이상하든지 여자인데 차갑고 촌스러워 보인다든지 그냥 약해보인다든지 마음에 들건 안들건 그냥 자극이 와서든지 가지가지다. 지 꼴리는데로. 잘난체하는 느낌나거나 지가 밀리거나하는 이유도 아주 가끔 있다.(까려고-언제나 지가 우위이고 기어오르지 말고 까지라고 한다.- 자기보다 세보이거나 우위이면 그러질 못한다. 맞거나 뒤질까봐. 맞으면 아프니까.)
지 대가리 똥만들고 얼굴구경 자지꼴리는 것만 중요하고 남은 뒤지고 찢겨도 즐거운 것이다. 오히려 쾌감. 만만한 것 앞에서만 그러고 강자앞에선 암만 불쾌당해고 다뺏겨도 네네 그런다.-이 세계(지구)가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조폭은 마음에 안들어도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조폭중에 그리 재수없거나 띠꺼운 인간은 없는데 험악하고 더러운 인간은 많다. 더럽게 생겨도-마음에 안드니- 약하고 만만해 보이면 침뱉는데 조폭은 못그런다는 것이다.-
마음에 그리 안드는건 없는데 약해보여서 건드려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보통 재수없고 띠꺼운데 만만해 보일 경우 한번 건드려보고 캬악퉤해본다. 아님 그냥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완전 좆으로 보고 쓰레기좆자지풀이 하고 가든지.
크게 두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짓누르려는 것이고 하나는 재수없으니 뒈져버리라고 충격을 주는 것이다-완전 좆으로 보고 '해볼테면 해봐라.
' '니까 짓게 어떻게 하겠냐' '설마 어떻게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둘다 센놈,강자에겐 감히 못그럴 것들이니 강해보이면 못그러는게 당연. 강자는 그자체로 보통 못생기고 재수없는 것도 어떻게 이해를 해보려하고 -무의식적인 심리- 또 강한이미지 자체도 그리 재수없는 느낌이 아니다.-생존에 도움되고 유리한 것이니.(강한척하는게 아니고 진짜 강해보이는것)
한번 뱉어볼까 캬악퉤 학원놈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난게 현실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왜 나에게 이러는지 아무 이유없이. 하지만 이유는 알았다. 아무 관계도 없는 새끼가 이래본다 이런다 그러면 나의 대답은 한가지다 엿같고 좆같은 대한민국이고 당한놈만 좆되는 대한민국 세상 이민을 왜 가려 했는가? 중요이유가 뭔가?... 이제 앞으로 어떤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고 좆으로 보여(또 평소 좆밥외모로 억눌리시고 살았는데 실력발휘좀 한번 해보려고) 카악했는데 안그럴 것 같은 인간이 계속 야리니까 침도 못뱉으시고 열뻗쳐 뒤지려는 표정.-이런게 인간들이다.
망가지건 말건 망가지면 더 쾌감느끼고 이것들이 40,50대 가 되어서도 찌질이 병신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왜 종교인이나 의리인들이나 걸러진 인간들 하고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여기서 이유가 있다.(선천적으로 사람을 가리는 유전자가 우성이고 제대로 생존하고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유전자다. 정치인들은 아무하고나 악수하지만 아무나 유대를 안맺는다. 아무나 유대를 맺으면 권력잡는데도 장해가 되고 인생도 밀릴 수 있고-찌질이들은 권모술수가 아니라 그냥 시간때우려고 쓸데없는 소문도 잘 퍼뜨린다 이것을 이용해서 심리전을 잘하는 인간들은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하지만-그런 유대에 말려 그런 행복도 없고 크나큰 고통도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찌질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고 찌질이와 같은 정신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찌질이 병신들은 지네끼리 치고받고 배신하고 하면서 좆같게도 친구있고 그 와중에도 왕따시키며 살아간다.(자기들이 사실 언제왕따당할지도 모르고 잡아먹힐지도 모를 타겟들인데 말이다.) 이해심도 없고 자비심도 없고 종교심도 없고 믿음도 없고 공부든 운동이든 성취하려는 마음도 강하지 않고(리플달고 욕이나 하고 사진이나 잘라붙이고 이걸로 인생의 성취감느낌.) 지지않으려는 마음도 강하지 않고 싸움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감각감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캐릭터가 나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찌질이다. 이들이 느끼는 정서는 XXX(내가 싫어하는 게임광 빠순이 타입의 여자)정도이다.(애초에 깊고 인간적인 정서교감이 안되는-남자면 똥인지 된장인지 가리지도 않고 달려들고 사랑한다)
일진들한테치이고 모범생들한테 밀리고 그나마 괜찮은 착한 애들은 좋은 관계맺고 살고 또 사귈만한데-사귀어야 하는데- 안그런 애들은 이도저도 아니고 그냥 그런 의리도 그저 그렇고 싸움도 그저 그렇고-꼴에 지보다 약해보이는 애들은 시비걸어본다-머리도 그저 그렇고 이도저도 아닌 쓰레기 찌질이 유전자들이다. 강간도 생각하고 비열한 생각도 하지만 용기도 없어 실행도 못하는 찌질이들. 이런 것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공포권력과 강제권력뿐이기에 건달들은 이를 알고 사냥감으로-뜯어먹을- 무리지어 공포심건드리는 연출을 하면 이성도 그저 그래서 알지도 못할뿐더러 설령 안다해도 감정통제도 안되는 찌질이일 뿐이어서 그냥 당하고 만다. 그냥 겁주고 뜯어먹기용으로 태어난 유전자들이다. 세상에 있어도 되고 없으면 먹잇감이 줄어드는. 먹이사슬로 보면 메뚜기 같은 곤충이나 벌레 같은 종류들이다. 이런 종류들이 자연계처럼 그정도 비율로(60%이상) 정말 많다. 우주의 법칙상 다 잡아먹고 뜯어먹으라고 있는 것들이다.(유전자들이 수많은 경우의 수로 합성되면서 모든 것을 최상으로 뽑아 낼 수는 없다. 수많은 경우를 뽑아내어-양에서 확률로 질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 가장 단순하고(에러적고) 효과도 좋은 체계-그래서 최상의 유전자들 소수가 질서를 잡고 세상을 발전시켜나가고 나머지는 모두 도태된채 다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려고 합성한다 그런데 운이란게 있어서 유전자들이 좋다고 모두 좋은 위치를 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위치에 엉망인 유전자들이 위치 할 수도 있다. 정서교감할만한 인간적이고 선하고 믿음있고 성취하려는 마음 강하고 지혜있는 사람이 운이나 계기가 잘못 흘러갈때 엉망인 인생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찌질이들과 섞여 버릴 수 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여전히 찌질이가 아니고 섞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근본 유전자와 형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언제고 다시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잠재가능성을 가진채 다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찌질이들은 정치인들한테 휘둘려서 권력이나 잡게 해주고.(밑층들이 있어야 권력도 발휘하고 행사할 수 있다.) 건달들한테 협박당하고 뜯어먹히고. 주권재민은 솔직히 우스운 말이다. 혁명을 하고 나서 민주주의가 되고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전쟁이 아닌 심리전-권력층이 생기고 자리를 잡아간다. 국민이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소수의 능력있는 자들이 권력이 있는 것이다. 한번 판이 뒤집혔지만 여전히 타짜는 살아남고 초짜는 죽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찌질이는 어쩔 수 없다. 의리를 기대할 수도 없고-설령 의리가 있어도 형질상 그렇게 많이 못나온다-약자에 대한 배려도 기대할 수 없는 그냥 소수의 능력있는 사람들이나 권력자들에게 뜯어먹히는 존재일 뿐이다. 층을 채워주고. 그들입장에선 행복도 그리 없고 고통도 그리 심하지 않은 그저 그런 삶을 사는 것이고. 그리 깊은 정서도 없고 감성도 없는 철저한 찌질이 유전자 관상인데 무엇을 느껴보고 정을 느껴보려고 시도하는 자체가 에너지 낭비고 소용없는 짓이다. 내가 원하는 정서는 공유될 수 없고 기침이나 하거나 '저새끼 왜저런데'하고 어이없어 하는데 아무 쓸데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정서적인 교감을 하려하는데 규칙없이 먹을 것에 미친 짐승처럼 달려들기나 하고. -이런 찌질이 유전자는 애초에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이 목마르고 정서가 느끼고 싶고 사소한 행복 마약이 느끼고 싶어도 찌질이와는 상대하지 마라. 항상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말 깊은 정서를 공유하는 존재는 이세상에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얼마 없을 것이다. 보통 '진정한 친구'라고 부르는데 이런 친구도 역사적 격언처럼 한명만 건져도 성공한 것이다. 나머진 사회적 유대에서 이루어지고 약해지고 불쾌감주면 왕따당할 그런 관계들이다. 이 한명마져도 최고의 유전자들 사이에서나(하층민이건 상류층이건 관계없이 정서적-정서나 지혜(인생의 철학적 측면들을 볼 수 있고 처지를 이해하는), 규칙(의리)같은 것은 인간 관계를 만들어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다- 유대 관계맺을 만한 인간에 있어 최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속으로 욕하고 뒤에서 욕하고 성적인 눈으로만 보는. 더이상 논할 가치도 없는 찌질이들과는 유대를 맺지 않는다. 단지 이용하기 위해 보서버를 설치하거나-인간에 따라 먹히는게 차이가 있다-나중을 위해 투자를 조금 해두거나 하는 식이다.<단, 가치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진정한 관계와 사회적 유대는 정말 훌륭한 유전자들,최고의 유전자들과만 맺어야 한다. 그리고 정서를 다 보여주고 통할 수 있는 관계는 엄마와 딱 몇사람과만 맺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몇사람도 가족같은 유대라고 볼 수 있다. 엄마가 최고이고 나머진 인생을 살면서 못찾을 지도 모르고 찾는다 해도 얼마 없다. '진짜'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로 나쁜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이제 나쁜 일일어나면 이 세계는 작살나고 멸망할 것이다.

심장 약한 사람을 캬악퉤 침뱉아서 수명을 단축시키는...그리고 만약 이 사실 알면 더 즐겁겠지...살인 행위...


집에 나오지 말라고 뱉는 것이다..(못생긴 여자에게 침뱉는 사연) 좆도아닌 지 자지쾌락때문에. 지 눈깔. 좆도아닌 새끼가 자지푸는 기분을 위해 남은 죽어도 되는 것이다. 지가 주인도 아닌데. 이런 새끼를 죽이면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수준이 이정도다.
쌈잘하는 새끼가 더 주가 되고 이기는 것이다.(여자는 평가당하는 위치) 좆같은 세상. 좆같은 본능 회로.
얼마나 병신으로 보였으면 쓰레기 좆도안되는 아랫집 미친개병신중년새끼가 침을 뱉냐.
싸움이지 지랄할것같은 살기. 착한게 소용없고 개하나님 소용없는거 알았으니..
병신들. 난 이세상 쓰레기들은 인간으로 안보인다.
좆도 아닌 새끼들이 뭔가 있는척 지랄하는 것 밖에...
그 얕은 감정으로 이현덕처럼 주먹날리는 그런 수준들이다...어떻게 저 여자나 따먹을까.
세상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 모습이 아니지. 속는 병신들.
공주로 보이면 걔가 진짜 공주냐. 조폭으로 보이면 걔가 진짜 조폭이냐.
이런 병신대가리를 노리고 니넬 대가리 뚫는거야.
어떻게 보이는 것에 능숙한 인간은 전략의 부분에 능숙한 것.
싸움을 잘하기 위한 기본 요건도 충족.
그래서 무섭게 연출하는 인간을 피한다 하지만 아직 이런 진화 시스템은 없다.
그냥 무섭게 보이니까 뇌가 착각하고 피하는 것이다.
인간 수준은 그렇다.

어떤 기분 나쁜 자극이 왔을때 그 짐승이 한 것을 반드시 보복한다는 마인드가 기본으로 있고 또 그것을 철저하게 보복할 능력이 있으면 그 순간 화를내기보단 좀 더 계획을 세우고 걸리거나 주변에 개의치 않게 일을 처리하기 위한 냉철한 계획들을 진행시킬 수 있다. 물론 그 일은 영원히 기억된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항상 의식하고 상기하고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배여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수의 통제이기도 하다. 수로써 화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계획이 진행되다보면 화는 별로 나지 않고 내가 그 놈의 철저한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며 즐거움과 만족,마약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계획을 실행시키고 성공했을땐 더 큰 성취와 희열을 맡보게 된다.
언제 당할지 모르는 그 놈을 생각하며 쾌락을 느끼며 즐겁게 통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전에 그런걸 본 일이 있었는데 교회에서 무거운 물건나르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아마추어 미숙한자들이 갑자기 어떤 놈이 밖에서 쾅 쇠부시는 듯한 큰소리가 확나서 모두 놀래서 밖을 보다가 전쟁났나 뭐떨어졌나 움직이고 옮기려던 급식판 선반 창고가 떨어져서 크게 다친사람이 있었다.
그런걸 볼때 심리에 개입이 된건 분명한데 작위건 부작위이건-아마 일부러 그랬을 것 같다. 교회에 대한 반감으로-심리에 개입하여 큰일을 만드는 것인데 그런 심리 헛점이 많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허공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그다지 인식은 못하나-눈앞에 나타난 그런 심리나 감정반응 물리적인 연장선상은 인식하나 그것이면에 보이지 않는 그런걸 인식하는 헤아리는 인간이 다수대중이아닌 소수인데-분명히 사람마다 무형의 형태로 공통이건 그 개인특성이건 인간이고 특별히 변화나 진화가 아니고 그렇게 태어나거나 그런게 없었다면 누구나 그러는 90%의 가지고 있는 중세마녀사냥을 했던 헛점의 진화심리 기타심리인데 그걸 심리전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를 하고 특히 사람마다 그런 심리의 헛점이나 그런게 다 다른데 그냥 무식함으로만 막아내는 사람도 있고 아예 개입안하고 낚임없이 그냥 살아가는 자도 있고 걸리지 않고 혹은 심리전하다가 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호구처럼 낚여서 호기심에 하다가 인생조지는 사람도 있고 헤아리지 못하고 당하지를 못해서 학자도 모르고 다 모르는데 그런 오랜 전통으로 발전시킨 빚을 받아내게 해서 족쇄올무로 오랫동안 묶어두는 일이 잠재산재해 있을줄을 누가 알겠는가 그냥 냄새이상하고 느낌이상해서 겉만보고 안하다가 그러는 인간들이 태반이지 그래서 그런 보이지 않는 심리전의 영역이란 분명히 존재하는데 전쟁을 봐도-아예 다른 영역이 다 제로이면 그런 특장점에도 힘들지만 부와 매력, 얼굴 체력,정력등 유전적인 형질과 함께 그런 전쟁잘하는 그런 연구성-그러나 비교적 근대 중세에 생기고 필요성이 대두되어 고대 원시는 거의 육탄전이었고 사자잡을때도 생존에도 단지 유대와 합동이 더 중요했던-그런 방법론적인 전략전술이 크게 필요성을 느꼈는데 심지어 전쟁에서 승패를 가름할 정도로 그것도 인식하는 촉수가 생겼고 그런식으로 진화심리적으로 권장되는 시스템도 생겼으나 -그러나 아직도 그런걸 부정하고 본능대로만 매장시키거나 받지 않는 대중이 많긴하나 분명 생존잘하는건 맞음 특히 현대 문명환경에 원시뇌로 살아가는 새끼들은 부정하겠지만 자기들도 당하고 굴복하고 이것과 그다지 별개로 누가뭐래도 분명히 살아남기 좋은 형질인 건 맞고 특히 요즘 심리전이나 전쟁적인 것에서 거의 상위에서 승리하는자는 이런 연구적이고 허를 치는 허를 파악하고 발견하여 쌓인 방대한 구조적 노하우-빌딩등과 마찬가지로 구조물적인-를 바탕으로 전략전술을 크게 병법적으로 구사하여 승리하는건 맞는 것 같다 저차원적이어도 크게 성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거의 완벽하다면 나라도 멸망시킬 수 있고 거의 지구도 두쪽낼 수 있다고 본다 히틀러나 천하통일류들이 거의 그런거 아닐까 근접한


과학연구결과를 보니 어떤 사람들은 그런 혈행안되는 경직된 특수한 상황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혈류량이 줄어들고 신경활동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그런걸 적극활용하여 반대로 생각만으로 혈행좋고 젊어지게 할 수 있다. 그게 NLP의 원리인데 비슷하게 심법이나 이미하고 있는 그런것 중요한건 자기에게 맞게 발달된 회로-운동선수들은 이미지로 자기를 조절하는게 익숙할 수 있으나 사람마다 그런 이미지로 해도 신체조절이 전혀 반응을 안하는 그런 상상하기 능력발달자체나 신체움직임회로 사이의 연결이 잘안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자기한테 맞는 식으로 하다가 보면-가장 좋은건 실전 모의훈련 그걸 지속하는 비언어적 통제력을 발달시키는 것 자기는 아는-그런식으로 자기를 잘조절하여 나가는 것이 그런 고난이도 활동을 잘할 수 있는 수행 할 수 있는 성취 비결이다.


책제목 ? 왜 그때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 인간 자유의지에 대하여 철학일상서

누구나 살다가 ‘왜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시공간 구조나 사람 마음상 돌이키기 힘든 일도 많다. 나는 이런 이유를 밝히고 인간이 그런 후회할 행동을 안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인간에겐 자유가 있을까?

내가 지금 생각하고 활동하고 살고 ‘원하는대로’ 하고 있으니 왜 자유가 없는가? 할 수도 있지만 과거에 원했는데도 못했거나, 아니면 그게 ‘자기’ 로써 구성된 신경의 명령이거나 다른 사람의 심리가 시킨 일이였거나 본능 욕구의 발현이 아니였던가? 그럼 “자유의지” 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과거 철학자들의 의견을 보겠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필연적인 인과로 인한 결과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과거의 인과가 있기에 현재의 자유발휘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의견이고 ‘결정론’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칸트는 인과율은 현상계를 지배하는 법칙이고 실천이성은 자연으로 부터 비롯되지 않고 영지계에서 부터 비롯되는 것이므로 의지의 자유는 자기 자신에게 도덕법칙을 부과하고 그것을 따르는 의지의 자율이므로 자유의지는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헤겔은 칸트는 아직 주관적이고 유한적인 자유의지에 머무른다고 진정으로 무한하고 자유로운 의지는 즉자적이고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의지이고 그것은 의지의 형태로 자기를 관찰하는 사고이고, 자유라는 것도 사실 인식되는 필연일 뿐이라고 했다.

또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인간의 두뇌는 그냥 인과를 정보처리하고 전전두엽으로 자기를 조절하는 두뇌로 본다. 물론 문화적인 것들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던가 하는 일상적인 이유들이나.

그런데 자유의지는 결정되었다, 아니면 자유의지는 존재한다 그런 의견이 철학계에서 오랜 기간 팽팽히 의견대립을 하였는데 나는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는 뜻에서 과거 철학자들의 의견을 비판하지 않겠다. 나부터 비판하지 않고 모두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과율로 인해서 이루어진 ‘선택’ 이든, 스스로에게 부과한 도덕법칙을 이행하는 ‘자유’ 이든, 그리고 사유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자신도 인과에 의한 것이건 초월이성이건 간에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방식대로 분류를 해보자면. ‘현상계’ ‘영지계’ 그렇게 나누지 않고 인과율은 현상계와 과학적인 관점에서의 두뇌, 그리고 자유의지나 생각을 하는 자신이나 인과자체를 인식하는 자신, 그런 모든 것을 관통하여 걸쳐있으므로 ‘인과율’(인간 내외 모두 포함) 인식-‘본능’,’타성’, ’자유의지’ 로 구분해 보겠다.

인간은 ‘본능’ 과 ‘타성’ 그리고 자유의지가 있다.

중요한 몇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그것이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문제를 푸는데 중요한 열쇠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과연 존재하는가?

인과로 인해서 제한을 받는 상황을 살펴보자.

1) 시공간 자체의 이유

인간 인식상 일상계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그런데 그것이 물리학적으로 시공간의 특수한 굴곡에서는 과거나 미래나 현재가 원자 차원에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타임머신 이론의 근거이다. 그러나 일상계, 특히 ‘인간’ 이란 구성된 차원에서는 인간 일상으로 볼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동시성의 착각]

[여기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이 ‘동시성’ 인데 사실 나의 의견으로 볼때 ‘동시성’ 이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든 산물이나 인간의 자유에 따른 행동의 결과-공간을 걷는다든지 하는 그런 ‘찰나’ 를 시간적 좌표로 봤을때 공간적으로 각기 다른 행동을 하기에 ‘동시성’ 이라 착각을 할 뿐이지, 사실상은 ‘동시성’ 이라기 보단 단지 흐르는 시간속에 다양한 행동들을 특정 좌표 기준에서 포착하여 만들어낸 인간 기준으로 해석한 개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동시성’ 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나 ‘이미 지난 시간’ 을 어쩌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거는 절대적이다.’ 라고 단정하는 논리적 오류에 빠지나 사실 ‘지나간 시간은 절대 바꿀 수 없다.’ 는 말이 ‘지나간 과거는 절대적이다.’ 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니고, 단지 수많은 가능성 있던 과거들중 하나가 동시성이란 좌표로 볼때 이미 지나간 시간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래서 ‘동시성’ 이라는 개념은 편의상 실용적인 것을 위해 써먹는 개념이지 일단 ‘이 세상 전체가 마치 찰흙덩어리처럼 한덩어리로 돌아간다.’ 는 생각 부터 해체를 하여야 한다.

그것이 인과율의 덫에 빠지고 더나아가 결정론의 오류를 범하는 근본 이유이기 때문이다.

(차후에 말할 것이지만 결정론의 덫에 빠지는 근본 이유중 하나가 개인의 무력감 때문이기도 하고 이건 시공간 자체보다는 사회나 개인에서 기인한 무력감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개인 감정이나 상태가 사고, 더나아가서 사상화된 위험한 케이스의 오류이다.)

그러면 ‘인간 구성 상태에서의 진리’ 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일단 인간 일상계입장에서 시간이 흘러간다고 보겠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런데 그 것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 일까? 앞서 동시성의 개념의 허구를 보았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은 아니다. 개개인에게 ‘저마다 흘러가는 시간’ 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새로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만의 ‘인생’ 이 생기고 그 아기의 ‘시간’ 이 흘러간다.  동시대에서 정보를 교류하여 노인 수준의 정보를 가질 수도 있지만 시공간 구조의 자연상태에서 구조적인 이유로 그런 것도 모두 인과율에 얽혀 평균 상식치가 높아지거나 인과율을 따르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므로 그것을 처리하고 겪는 주체는 결국 ‘시공간 속의 그사람’ 그 인간구조를 넘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일단, 일상 자연차원에서는 개인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보겠다.<차후에 말할 것이지만 이런 구조를 사회적으로나마 개선하면 모두가 자유를 획득하고 필요에 따라 엑기스의 전수를 통해 공동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인간은 저마다의 시간을 가진다. 적어도 일상계에서는 철학적으로 시간이 흐른다는 의미는 인간이 늙고 우주가 늙는다<순환을 하고 대사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상대성 이론과도 통한다.

그리고 우주 안에서 한덩어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부속품들은 근본 구조상 자유를 가진다. 다만 그것이 ‘인과율’ ‘본능’ 인간의 산물, 사회 문화적 환경, 상호작용, 인간 구조 특유의 작동성 등에 의해 많이 제한을 받는다.

그래서 ‘자유를 찾는 과정’ 은 이런 것들에서 해결을 얻는 과정이다. 해방-‘힘’(이조차도 구조에 대해서 상대적이나 특히 심리적인 힘이)과 직결

그러면 ‘인과율’ 은 무엇인가? 2)에서 이어지지만 인과율은 시공간 자체의 구조에서 파생되는 기본조건이 된다. 이를테면 인과가 생겨난 기본 토양은 ‘시간이 인간입장에서는 한방향으로 흐르는 우주 공간의 특정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인간과 모든 만물은 이런 기본 바탕위에서 생겨났다.

2) 인과적(사회문화적인 이유, 관점 포함)

‘인과율’이란게 우주의 생성과 인류 사회의 진행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창조를 하였든 저절로 생겨났든 초기에 생겨난 ‘인간’ 의 씨앗의 입장에선 지구라는 환경에 맞게 DNA 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자기 구조화 하여 반영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동안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자기 내부에서 정보전달이 일어나고 신경대사가 일어나고 타 개체 ‘타인’ 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그것으로 산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또 얽혀서 다양한 ‘인과’ 를 통해 ?물론 동시성으로 포착하여 사진을 찍으면 ‘한공간’ 에서 일어나는 한컷으로 나올 수 있으나 그것은 동시에 일어나도 공간적인 인과성을 가질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는 그렇다. 일상적인 인간에겐 ‘연속컷’ 으로 느껴지기 때문이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내가 따지는 방식도 다양한 원리로 연결되고 ‘시간’ 이란 환경속에 공간적으로 확대=자라난 인간이란 구조체를 중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에 관한 것- “인류역사” 라는 것이 생겨나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안에는 완전한 자유는 아니라도 간헐적으로 자유의지가 있었기에 ?물론 이론 적으로는 단지 인과율에 따른 정보처리 만으로도 현대 인류 문명이 가능하나 (“인간입장에서 대단하고 좋은 것” 이니까) 인간 인식이 궁극적으로 발전하면 정확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진리를 찾아 쌓아나가는 탑이 철학이기에- ‘이변’ 이 있었다고 본다. 단지 확률론이나 통계론을 넘어서 순수한 ‘자유의지’ 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경우가 생긴다.

[‘확률론’ 의 본질- 예를 들어서 ‘사살될 가능성이 높은’ 유태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따진다면 상당히 낮은 확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유태인’ 그리고 그 군인들은 사회주의-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초기 사상을 기반으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 그런 ‘두뇌 심리’ 를 거친 ‘심리에따라 움직이는 육체’ 들의 집합 이라면 그런 조건들을 모두 봤을때 결국 ‘인간
구조’ 나 ‘인간군집’ 라는 것 내에서의 ‘확률’ 이고 만약에 그런 조건을 모두 없애거나, 아니면 그것을 초월하여 본다면 그런 ‘확률’ 이란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 사회 밖에서 돌이 사살될 확률’ 은 0% 인데 그것이 ‘인간에게’ 의미 있는 ‘인간만의 개념’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확률’ 이란건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면 논의하는게 무의미해 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주내에서 운석이 충돌할 가능성’ 을 따지면 인간에게 생사가 걸린 중요한 의미이고 이런 성격때문에 앞서 말한 본질이 흐려질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운석이 충돌할 확률’이라는건 존재하지 않을 수 있고 생물체나 인간에게만 의미있을 수 있는데 지식의 개념이라는게 이런 식의 것이 많고, 또 나는 인간입장에서 실용성을 기준으로 하기에 이런 개념도 중요하게 채택을 하지만 사실은 실존의 입장에서 실재하는 것, 실재하지 않는 것은 구분될 수 있다. 또다른 관점에선 ‘모든 것은 실재한다’ 혹은 ‘실재하지 않는다.’ 할 수 있지만 그런 논의는 과외로 한다. 어쨌건 인간은 생각하기에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그래서 지금의 생이 일장춘몽이건 호접지몽이건 어쨌건 우린 지금 생각하고 이 산물이 실재하건 안하건 우리에겐 실재하므로 단지 여기서 우리는 이선에서 소통을 하고 지식과 진리를 추구해보자는 것이 결론이다.]

그래서 “확률론 의 본질” 에서 말한 관점에서 ‘자유의지’라 명명한 개념은 실존한다고 이번 궁구에서 분류를 해두었다.

그래서 ‘자유의지’ 까지 들어간 ‘인과율’ 로 인해 현재 핸드폰도 사용하고, TV도 보고, 인간에게 의미있는 책도 만들고 상호소통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나누어 먹고 건축 기술도 발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게 하나로 어우러져 인간이 인식하기에 그런 “현대 사회” 를 느끼나 그것이 모든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 분배의 문제 이전에 인과율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책이 나오거나 법제화가 되거나 금전의 흐름도 결국 ‘인간’ 이나 ‘인간의 산물’ 을 거쳐야 하고 특히 인간 자체는 구조적으로 ‘인과율’ 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이것에 대한 해방이 진정한 궁극적인 유토피아를 가능하게 만든다. 쉬운일은 아니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말하자면 원시무법사회에서 현대제도화된 사회로 도약하여 범죄율이 감소하였듯이 그런식으로 극복, 도약 가능한 패러다임이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작은 사상에서 시작하였듯이 새로운 인간이나 유토피아도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인과율’ 이 긍정적인 일만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온갖 부정적인 것들-역사상 전쟁이나 인간 실책으로 인한 과도한 일들 인간 DNA 두뇌 회로화된 부정적인 감정들과 차별, 소외, “인류는 멸망해야 한다.” 한다는 비관론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긍정적으로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도덕률로 잘사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어 다같이 공동체를 침잠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지금도 그런 ‘인과율’ 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만들어 지고 있고 그 “인과율” 의 영향을 가장 많이, 절대적으로 받고 반영하는 것도 ?아까 “인간은 제각각의 시간을 가진다.” 했던- 바로 인간 생물체이고 인간의 두뇌이고 인간의 인식이다.

그래서 ‘시간’ 에 따라서 ‘인과율’ 을 만들어내고 가장 많이 산물을 만들고 반영하고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인간’ 인데 또 그 특유의 복잡한 인간 두뇌와 작동 방식에 맞추어 자의던 타의던 제3의 이유이든 다양한 인간사회를 만들어 내거나 흘러온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로 그 ‘불합리한 점’ 인데 ?단지 인간이 심리적으로 부정적이거나 위협에 대해 반응하는 심리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만약에 긍정적인 결과만 나고 ‘인간 두뇌 구조상’ 행복하고 보상충족 되는 일만 나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한평생, 100년인생에 설령 철저하게 로보트로 자유의지가 없어도 인과로만 모두가 행복하다면 굳이 자유를 얻을 필요성이 인간 두뇌발생적으로 여지가 적을 것이다. 굳이 행복하고 원하는걸 얻는데 불행해질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못한다는데에 이유가 있고 그로 인해 생,로,병,사의 이유를 탐구하거나 인간이 자유로워져서 인과를 다룰 방안을 탐구하게 된다.

단지 인간이 자유를 얻는 것만으로 그런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 흐르는 시간속에 당대에 원하고 충족하고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으나 잠정적으론 가장 근원이 그것이라고 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자유였던 것이다. (자제력 강한 부자도 파산을 막을 수 없다.) 돈은 자유의 부속품이다.

그러면 그 ‘인과율’ 이 만들어 내는 그런 다양한 것들, 다양한 작동-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것:이것도 인간 공동체를 거치면서 진화 역사상 욕구가 생기고 단련 강화되고 ‘긍정’ ‘부정’ 이 ‘쾌’ ‘불쾌’ 로 나뉘어 지면서 결국 인간에게 충족하는 인간인식문제라는 점이 있지만 자기 충족이나 ‘행복’ 을 누리지 말아야 한다, 아기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의지를 없애고 ‘인과(업)’ 자체를 없애야 한다 는 식의 철학적 결론은 마치 자살과도 같고, 인간의 실존 자체를 위협하므로 일단은 “인간의 생존” 은 존속하여야 한다고 보고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통상적 방향에서 얘기해 보려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다 하여도 범죄를 합리화 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옳지 못한 것이듯 황금률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이 만들었든 진화의 산물이든 인간 자체가 다 사라질 방법이 있어도 인간 자체가 사라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적어도 어린이가 여자 친구에게 차였다고 자살을 하지 말라고 하는 말과도 같다. 통상적이지만 모든 철학과 인류 역사를 통틀은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이고 다른 지식으로 정신이 흐려져도 잡아야할 푯대, ‘중심’ 이다.

그러면 그 ‘인과율’ 의 본산지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인식, 두뇌를 보겠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일단 내용과 사정을 잘알 수 있는 철학적 관점으로 옮겨 놓고 본다면 일단은 그런 두뇌 구조로 인한 ‘인과’ 예를 들어서 본능적 욕망이라든가 화, 분노, 성격의 반영된 말과 행동, 인간의 공통적 특성과 문화적 정보처리의 산물의 내용,… 등 다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분석하고 통찰, 해석해 보면 인과율로 인한 것이 상당수이고 과거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고, 단지 그냥 두뇌에서 나오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인’ 을 가지고 그 산물은 ‘결과’ 라 할 수 있는데 이유없는 표출처럼 ‘원인’ 과 ‘결과’ 가 물론 한몸으로 나오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원인’ 이라 할 수도 있고 ‘결과’ 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산물의 대다수가, 그리고 전체 인구중 대다수가 “자유의지” 를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일부의 산물이 자유의지이거나 전체 인구중 극소수만 자유의지의 비율이 높거나 칸트의 실천이성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모든 사람들이 공간이란 곳에서 하나의 “사람” 이나 “대중” 으로 보이기에 혼란해 보이는데 근본적으로 나는 개개별 개체는 상호작용과 인과의 영향을 받으나 때론 분리해서 깊이 통찰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사실 바람직한 인간상은 그러한 “불합리하고 잘못된” 부당한 인과의 산물들이 아예 발생하지도 않고, 또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완벽하게 걸러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 인간 구조라고 본다.

만약 모든 인간이 다 그러면 어떨까?

나의 유토피아 사고실험에서 실제로 그런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을 시뮬레이션 했는데 결코 로보트도 아니였고, 인간 사회의 부정적인 것이 없는 완벽하게 긍정적인 유토피아였다.

예를 들어서 인간의 화를 내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을 폭행하지 않는다.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도둑질 하지 않는다. 남의 재산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절을 지킨다. 절대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자유롭게 해도 결코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공자님과 같은 사람이라면 실수조차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고쳐주고 능력까지 완벽하게 완성되도록 도와준다면 현재 같은 인간 사회의 폐해나 그늘없이 모두가 행복한 이상사회가 될 것이다. 행복하게 해주는 중요 변수는 돈이 아니라 자원과 산물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또 사람사이에 오가고 파동을 일으키는 그런 것들이라고 판단한다.

그런 것으로 볼때 자유의지가 인과율에 저해받지 않고 깨어나서 철저하게 “(긍정적인)자유의지대로만 작동하는 인간” 이 되는 것은 인간 진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점이라고 보고 여기에 인류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이론적인 유토피아가 현실화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 자체” 에 있기에 인간이 변하면 인간공동체도 변하고 그 산물(빌딩, 음식, 생필품 등)과의 어우러짐을 한번에 인식하는 현상인 “유토피아” 도 저절로 구성되고 존재할 수가 있게 된다. 다툼, 미움이 없고 사랑만이 가득 차있는.

그러면 그런 ‘불합리한 인과율’ 을 어떻게 없앨까? 그것은 일단 두뇌부터 생물학적으로 바꾸어 DNA조작으로 폭력성을 없애거나 긍정적인 행동을 하면 행복한 보상이 되도록 인간의 뇌를 바꾸는 수도 있겠지만 본능 자체가 나쁜 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이 나지 않도록 그것에만도 한계가 있다.

만약 ‘자유의지’ 로 나쁜 짓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그래서 이부분이 신이 남겨두고 부여한 ‘자유의지’ 부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인과라든가 불합리하다. 흘러 온 것은.. 그러나 만약에 인공지능 컴퓨터 생물체를 개발한 인간이 최악으로 부도덕하나 어쨌든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 내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 생물체를 개발하여 컴퓨터 내에서 살게 만든다면, 또 자기를 따르기를 강요한다면 아무리 불합리해도 또 컴퓨터내 프로그램으로 생겨난 ‘자기 자신’ 을 인식하고 ‘자유 의지’ 까지 가진 그 생명체가 거부를 하더라도 그 개발자에겐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삭제하거나 컴퓨터를 버려서 그 생물체를 못살게할 “힘” 이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의 상황이 이와 다를바 없다고 본다. 설령 나중에 그 컴퓨터 내의 생물체가 개발자보다 인성이나 모든 면에서 더 우월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죽음’ 의 권한은 개발자가 가지고 있고 근본적으로 컴퓨터 밖을 나와서 개발자에게 위해를 줄 수 없으므로 결국에는 ‘옳지는 않으나 힘은 있는’ 그런 상황이 된다. 거기서 컴퓨터 내의 생명체가 따르기를 거부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게 ‘정의’ 일 수 있으나 신은 자신이 기준이고 자기가 공의이다. 라고 했으므로 그건 개개별의 자유의지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증명을 떠나서 단지 분석만으로 “자유의지” 라는 개념의 명명은 필연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조절하는 상태” 를 붙일 마땅한 언어가 없다. 이것도 인과의 산물이다, 라고 해도 그렇게 따지면 “내가 지금 쓰는 것을 관두는 것” 을 그만 두고 아니고, 그것이 과연 인과의 영향을 받을 것인가? 하고 일주일 후까지 고민을 하건, 지금 당장 결정을 하려하건 행동 자체를 결정할 수 있는 지금 이상태’ 가 없다는 결론이므로 자체적으로 모순이 된다. 이조차도 ‘인과’ 라는 것은 두뇌를 단지 평면의 그림으로 보는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분명 ‘인과’ 를 넘어선 다른 구조가 있고 자유도 있다. 다만 자유가 제약을 받을 뿐이다.


[자유의지에 대하여]

“자유의지는 비교적 늦게 얻게된 인간의 능력인데 시공간 구조를 헤쳐나가다가 정보처리력이 극대화 되다 구조상 얻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설계가 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그때 못그랬을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 있다.

먼저 인간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 인간의 행동- 일단 시간은 흘러간다. 그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간’ 은 무엇일까? 그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보면 일단 시공간의 시간은 존재하고 그것이 공간과 함께 대사를 하나 인간 일상계에서는 절대 시간으로 느껴진다. 라는 결과가 나온다.

역으로 생각하면 일상에서의 시간은 일상에서만 통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인데 과거를 돌이키는 일이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현재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원자 차원에선 특정 시공간 환경속에서 시공간을 레이저로 굴절시켜 과거나 미래로 왔다갔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상태에선 힘들고 그조차도 ‘지금부터’ 만든 과거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일상중에 구성체를 유지하고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고, 차라리 “내가 왜 그랬을까?” 를 본질부터 알고 앞으로 안그러는 자세를 갖는게 더 낫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런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 성공을 한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본질적으로 “왜 그랬을까?” 를 아는게 중요하다.

인간은 일상에서 왜 “자유 의지” 가 제한 되는가.

한가지 측면으로는 주변이 작용하는 힘과 자기의 힘 때문이고 다른 측면으로는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여기에 필연적으로 “인과” 라는 것이 개입한다.

그 “인과” 라는 것은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사건에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인데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인간 사이에 정보가 오가고 개개인으로써는 두뇌 정보처리” 이다.

물론 그것으로 인간에겐 중요하도록 설계가 되었거나 진화되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보자.

시간은 절대적으로 간다. 인간 일상계에서. 그런데 ‘자유’ 가 제한되는 이유는 ‘인과’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착각일 수 있다. 인과는 결과이고 원인이 아니다.

인간은 저마다의 시간을 가진다. 동시간대 좌표로 보자면 인간 제각각의 구조상, 공간상 역량차이로 나타나지만

개개인에게는 인간뇌, 신체라는 구조를 기반하여 시기별 발달 상황이 있고 이론적으로는 노화를 안하면 무한대의 시간을 가진다. 또한 개인마다 무한대의 ‘인생’ 이 주어지고 비슷한 패턴이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기준의 의미. 인간사가 거의 그런 식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의미있기에 그렇게 푸는 것”

일단 ‘자유의지’ 는 존재하고, 그러면 ‘자유의지’ 에 영향을 주는 ‘인과율’ 과의 관계를 보자. 그러면 그 ‘인과율’ 에 의해서 ‘자유의지’ 가 제약을 받는 상황이 나온다.

일단은 정보에 따라서, 두뇌 능력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서, 과거 경험에 따라서, 현재 주변 환경에 따라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고, 부호, 이미지, 언어 등에 따라서 자신의 인과에 의한 선택, 생각이나 정보데이터처리 후 선택, 습관 반사신경 반응, 자유의지 선택 등 ‘행동’ 으로 이어지는 아웃풋이 달라진다.

그것을 전체적으로 ‘역량’ 이라고 한다고 보면 그 구성체 한사람의 ‘인간’ 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세상 모든 것을 시간 구애 없이 찰나적으로 정보처리가 가능하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하고, 긍정적인 자유의지를 발휘하려고 스스로 자기 구조적으로 ‘선택’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단지 현재 모든 능력을 maximum 으로 만든 것에 불과한데 그러면 인간 자체가 어떤 오류도 없어지게 되고 모두가 그렇다면 정리된 세상이 된다.

반대로 모든 것이 최저라고 보자. 그러면 아마 혼란 뿐인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현재는 어떤가? 아마 앞서 말한 두 극점의 어느 사이에 위치하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모든 인간이 같다면 마치 평형인 물처럼 ‘힘’ 이 발생하기 힘들다. 그런데 단지 인간전체의 상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제각각 다 다르다.
모든 인간이 다르거나 ‘차이’ 가 있기에 마치 위치에너지 처럼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힘’ 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두뇌가 진화 과정에서 호감을 느끼는 반응, 두려움을 느끼는 반응, 보상을 느끼는 반응, 군집 성향,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물리적 격투 능력,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두뇌 회로나 시대 문화적 정보 해석, 그 해석력 등에 의해서 우월한 자가 나머지를 ‘지배’ 하고 그러한 ‘인과’ 는 아메바를 넘어서 개미부터 꿀벌, 초식동물과 사자를 아울러 인간에게 까지 나타나고 있다.

다시말 해서 “힘” 의 기원은 “차이” 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정도 타고난다. 그것이 바로 세상 혼란성의 근원이고 또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자유의지의 제약” 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래서 아마 제도의 개선은 이런 “차이” 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는데 역시 또 남은 과제는 이런 제도가 생긴다고 인간이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반작용으로 여전히 작동하는 마치 모이면 파도 쓰나미와 같은 인간 불합리한 본능화, 또 사회 정보와 만나 반응하는 “부정적인 인과율”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인간 전체적으로 ‘역량’ 이 미비한 상태로 그런 상황에서 ‘차이’ 로 인해 부당한 정신들이 부당하게 군집이 되고 ‘무리’ 를 형성하여 시공간의 헛점을 활용해 물리로 세상을 장악하여 의인을 죽이고 씨족을 널리 퍼뜨려온 역사가 인류역사의 과거인데 발달된 인간이 보기엔 상당히 부끄러운 역사라 할 것이다.

또 인간에겐 “자유의지” 가 있다. 이것도 당연히 부당하게 돌아갈 수가 있고 긍정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이게 부당하게 합쳐지면 또다른 부당한 연쇄 쓰나미 부정적인 인과율들과 합쳐진다.

그래서 자꾸 흘러온 인류 사회의 ‘업’ 이 끈임없이 인간 사회를 괴롭히는 것이다. 아동학대, 범죄, 학교폭력, 빈부격차 등…..

그러면 일단 인간이 “자유” 를 획득하기 위해서 제일먼저 거쳐야 할 것은 “힘” 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아무리 자유의지가 확실하고 자기 자신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한들, 그런 식으로 이미 다양한 힘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떤 현자나 의인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역사를 보면 의인들이나 능력자들이 만들어온 역사가 아니다. 대다수가 운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부당하건, 인간의 부당한 본능을 자극하였든 “힘을 얻은 자들” 이 만들어온 역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양분자체도 그렇다. 초점은 ‘재산의 분배’ 였지 도덕에 따른 분배가 아니였다. 애초에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속에 시작이 잘못되었고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다양한 “힘” 인간 군집들이 비대해진 것이 현대 사회이다. 그래서 원래 이상적인 기대치가 100이라고 본다면 30~40 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본다.

긍정적인 것이 20 이라면 물밑 빙산은 80이다. 여전히…

그래서 그런 “힘” 을 극복하는 것-과거 원시 부터 전통적인 방법은 군사였다. 그러나 무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현대에는 무기가 힘의 균형을 맞춘다.

또한 심리전이나 전략도 무시할 수 없는 한축이다.

그러나 개인의 힘으론 ?특히나 부당한 것에 호소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자들은- 번번히 그런 군집의 힘에 당하므로(욕심에 눈을 가린 부당한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는 도덕적이고 정당한 전략은 더이상 전략이 아니니까) 아마 그나마 현대 사회의 깨끗함을 가져온건 무기 과학의 발달이라고 본다.

어쩔 수 없이 폭력으로 기대어 있다고 하나 그나마 원시 창칼로 인한 폭군의 시대를 마감시킨건 시민의식의 발달이였고 궁극적으로 반란없이 현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건 사실 무기와 책략, 시민들에게 이양된 앨빈토플러님이 말했듯이 정보권력이다.

현대에는 심리기반 다양한 힘이 존재한다. 또 물리력의 힘은 많이 그 영역이 줄어들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힘” 에 관한 것은 많은 실용서들이 말하고 있으므로 이만 줄인다.

사회 문화적인 것들은 일상에서 자기의 자유를 제한 하는 것들이다-부모의 윽박지름, 감금, 학교, 공권력 등 필요악도 있지만 부당한 측면도 많다. 예를 들어서 그렇게 무리를 지어 국민들을 지배하면서 불합리한 제도를 강요하는 그런 식의 일들은 분명히 잘못 되었다고 판단한다.

3)인간내적(근본작동적)

인간의 자기 작동의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자기의 인과를 다룸으로써 ‘인과율’ 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의지로만 작동하는 것인데 그러면 인과를 상당히 초월한다 그걸 지속하면. 특히 일상계에서 이미 경험적으로 그렇게 굳은 의지로 관철시킨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유전성분이나 체험등 인과가 받쳐주면 더 수월하게 될 수 있긴하나 심지어 그런 소양이 하나도 없어도 가능한 그런 사례를 확인했으니 그런 ‘순수 자유의지’ 란 성립하고 그런 판단대로만 스스로가 작동할 수 있다.

밖에서 그런 두뇌에 대해 상대적인 “힘” 자극 들이 들어 오는데 그것이 단지 심리차원의 것이라면 구성된 뉴런의 강도도 중요하고 내성이나 저항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인간 일상 인식 차원에선 그런 성격이나 그런식으로 나타나고-보통 어릴때는 자기를 잘 모르는 게 불행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이 취약할 수 있으나 그런 어린 애들이 강해질 수 있도록 평등하게 만들 수 있게 온 아이들을 대상으로 국영수 이전에 마음공부를 먼저 시켰으면 좋겠다. 도덕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마음을 열고 1:1 전인격적인 교육을 했으면 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고 특히 자본주의 환경에선 인성이 좋으면 오히려 피해자로 타겟이 되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시민들이 만든 정부인 민주주의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취약성으로 자기와 외부 상황이 맞물려 일어나는 시선공포증, 도태 등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겨내기 힘든 경우가 많아 제도적인 근본개혁이 필요하다.

남은 과제는 앞서 말한 “힘” 들에 대해 얼마나 자유를 얻느냐 하는 문제들이고 그런 “힘” 들을 이기는 능력 - 다시 말해 “자유”를 다른 말로 치환하면 “힘” 이고 그건 자기조절을 기초로한 모든 종류의 상대적인 “힘” 을 다 포함한다. 그래서 그것이 있으면 이론상으론 전 세계 군대를 거슬러 통수권을 장악할 수 있다면 그자가 왕이 되는 것이 가능하나 그러려면 인간 전체를 좀비에 감염시키든지 아니면 인간이 다 사라져야 할텐데 그러면 자기가 ‘왕’ 인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므로 결국 그런 문제이다.

예를 들어 트럭보다 더 강하게 부딪혀도 살아남는 것이 있다면 사고는 나지 않고 물리적으로 인과에 걸릴 일은 없다 물질계에서 그런 문제. 단 남은건 그렇게 물리계 이상에서 구성된 다른 차원의 존재 가능성으로 심리와 물리를 넘어선 어떤 도덕원리가 있어 거기에 저촉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일 것이다.

인간들이 아마 자유를 익히면 더 자유로운 삶을 살것

그러면 이세계는 무엇인가?

한가지 가능성!

인간 사회자체가 마치 TV를 전파로 구현하거나 컴퓨터 내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하여 움직이듯 근본이 파동=전파로 이루어진 물질이란 규칙을 가진(벽을 못뚫는등) 신의 TV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게임일 수가 있다. 성경을 보면 신이 외롭다고 그러는데 외로워서 만든 인간의 모형처럼 다양한걸 얻기 위한 심심풀이일 수 있는 것이다.

정보와 자유의지 만으로 '인간에게 의미있는' 그런 선택이나-제도적으로도-그런게 가능하다
물론 인과를 벗어난 것일 수 있음->말하자면 우주창조처럼 인간은 '힘과 구조물' 을 기반으로 창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힘과 역량의 미비가 있을 뿐이지.

아마 그선택을 하건 이선택을 하건 고립된 여기선 외부세계에 영향을 안줬을 것이다-이걸하건 저걸하건 대다수에 영향도 안주고 밖에선 각자 뇌구조상 비스무리하게 충족하고 살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인과' 란 허상 그냥 자기충족으로 펼쳐지는 인간 뇌구조상 충족들인 만들어가는 인생이였을 뿐이다. 인과는 뇌나 인간 당구 연쇄행동에서만 존재 대다수 중요한 일엔 영향 x-기관차엔 무영향 결정론은 허구 자기뇌구조상 충족하고 살뿐 괜히 결정론이란 바이러스, 허상 x 오류



절대성이란 무엇이고 상대성이란 무엇인가

“우주 내의 모든 것의 실존은 상대적이다.” 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불교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에서 절대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하다. 잊으면 상대적이고 그런 조건 반응이나 상품 포장지마저 추억의 절대적이라면 절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기준이 무엇이냐 “적어도 그 사람의 생전”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의미” 에 있어서.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설령 사기여도 그 사람에겐 절대적 진실이다. 그리고 상대에겐 상대적 거짓일 수 있다. 이런 속성이 있다.

그래서 ‘객관적 진리’ 에서 그런 상품포장지나 상대적 물질적 환원론 관점에서 그런 두뇌로인한 조건 반응성-곧 ‘심리’ 라 하는게 절대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그것으로 유발된 ‘진심’ 이라는 것이 심리도 실체이고 진심도 실체인데 심리는 심리이다.

인간이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느냐 아니냐의 문제,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있는가 없는가-인간이 진리를 안다고 하면 절대적이고 없다면 상대적이듯 그런 문제가 개입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는 인간에겐 절대적일 수 있고 객관적 진리를 추구한다면 상대적일 수 있으나 그게 결과적으로 ‘주체’ 가 없으므로 절대적 진리란게 인간 인식에만 유의미할 수 있다. 마치 어항속 금붕어 처럼.

심리를 조작하는게 옳은가, ‘진실’ 로 사는게 옳은가. 어떤자에겐 상대적 진실이 누군가에겐 절대적 진실. 그래서 ‘진심’ 으로 한다고 해도 생존에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다.

복잡하게 진화한 두뇌와 그간 진화역사의 반영과 시공간(시간은 일방 흐르고 공간은 조작가능-그리고 그걸 연속선 안에서 ‘변화’를 인식하고 ‘시간’ 이 지나도 공간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거울을 통해서도 확인한다.) 두뇌몸체로 이루어진 인간 작동의 특성상.

생존에 불리하다고 진실을 감추는 것이 선인가? 인간 머리가 그런 부분 구조가 있어 어쩔 수 없다. 절대적 선을 추구해도 인간 자체가 선해질 수 없으므로 신이 있다면 의미있겠지만 없다면 무의미. 단지 생존이 선이고 이렇게 진화한 자연이나 인간 유전자를 탓하는게 옳다.

자의에 의해 태어난 것도 아니므로. 자유의지를 획득하여도 지난 인생이 안바뀌듯이 변하는건 없다. 다만 ‘지금부터’ 인데 지금부터도 말이다.

달라지는건 없고 경험론 이전에 전체를 보면 진실이 보임-미비한 현실처럼 현주소와 근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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