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6일 일요일

적멸비기 - 자유를 찾아서

자유를 찾아서
<인간 자유에 대하여>

팡세

1.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
2. 인간 모두가 실수하지 않고 살 순 없을까.
3. 나는 왜 여기에 있나? 인간은 무엇인가?
4. 나를 있게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나’ 로 나타난 ‘결과’ 는?
5. 내가 여기 있게된게 이미 정해진 것인가? ‘팔자’ 일까?
6. 그래봤자 결국 인간 입장으로 생각하는 거잖아? 실체는 다를 수 있지 않나?
7. 그럼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이렇게 있는 “실존” 에 대해서는.
8. 그럼 인간이 “실존”을 하는걸 알았고, 그런 “실존하는 인간” 이 왜 자유가 없다고 느끼거나,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 논쟁이 되는가? 단지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 선천적으로 아는 “선지” 가 없어서 인가. 왜 모든 자가 공평하게 그런 자유를 깨닫고 쓰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가.
9. 그럼 인간은 “자유” 가 있는가? 그걸 쓰는 방법은.
10. 그럼 “자유” 는 인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되어 존재할 수 있는가.
11. 그럼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12.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고 하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럼 계속해서 지금도 흐르고 있는 시간으로 인해서 모순이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는가?
13. 그러면 미래를 다룰 수 있게 되는가? 그리고 이것의 효과는?
14. 그러면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초기에 실수를 하는 문제” 의 실체와 그것의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15. 그러면 그런식으로 불공평하게 시공간 특성의 “인과” 혹은 “계기” 나 선천적 결함으로 인해 “자유의지”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의 사람들이 처벌이나 고난을 받는 것은 부당한 점이 있다.
16. 그럼 성서의 사례는.
17. 이런 작동적인 측면 말고 인문적인 관점에서 해석을 하면 어떤가.
18. 지금까지 했던 것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간략하게 정리를 해본다면.
19. 마무리 하며 ? 이건 국가 차원의 일
20. 끝맺음.

1.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
 사람이면 누구나 '아 그때 왜 그랬지... 실수다.' 그런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나 '지나고 나니 후회하는' 그런 순간에 대해 해석하고 그걸 방지하고자 하는 책이다.

2. 인간 모두가 실수하지 않고 살 순 없을까.
 인간이 실수하는게 코미디의 재료로 이용되거나, 일상에서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웃지 못할 그런 실수들이 있다. 그것은 철학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 에 관한 문제와 직결된다. 인간 자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자유를 가질 수 있는가 등...
 일단 이것을 해석하고 방지하고 이런 노하우를 개인이 활용하고 성공하고 후대에 까지 유전화처럼 전수하려면, 이것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3. 나는 왜 여기에 있나? 인간은 무엇인가?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인과” (원인과 결과) 에 의해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에 의해 아기로 태어났다. 그리고 독립된 개체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곳, 지구라는 곳에서 인간이 개념화한 “자유의지” 라는 것으로 “지각” 즉, 듣고 보고 느끼고 인식하고 생각하고 다양한 행위를 한다.

4. 나를 있게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나’ 로 나타난 ‘결과’ 는?
 인과란 무엇일까? 자유의지의 실체는 무엇일까?를 철학적으로 탐구해 보아도 좋다. 그러나 탐구해도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고, 또 그것이 활용가능한 일상적 기술로써 많이 전수되지 않고 퍼지지 않았다. 철학은 인간이 사용함으로써 빛을 발한다. 보통은 일상적으로 경험한 지각과 자유의지의 선에서 처리하고 실수의 리스크가 크지 않아 그렇게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의 리스크가 크다면, 그리고 시공간 내에서 살아있는 동안 원하는 것을 모두 하고 원하는 수준을 얻고 싶다면, 결국 본인 ‘자신’ 의 충족의 문제이긴 하나 그런 외부적인 것을 다루고 싶다면, 이 기술은 필요하다. 꼭......

5. 내가 여기 있게된게 이미 정해진 것인가? ‘팔자’ 일까?
 ‘어쩔 수 없이 그랬다.’ 는 순간들을 운명으로 정해져 있었다거나 팔자였다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시공간 특성상 ‘이미 지난 것’을 되돌릴 수 없다고 해서,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천연두의 창궐을 막을 수 없었다. 분명히 천연두란 병균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몰랐고, 그것의 특성에 대한 지식 축적이나 실체를 알기 위한 노력 시도도 없었던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막을 힘도 없었다. 그러나 후에 ‘충분한 시간’ 과 인간의 지적인 추구의 정보 축적 및 정보 처리를 거친 후에 드디어 천연두에 걸리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고, 인간이 공간안에서 시간이 감에도 천연두를 다룰 수 있게 되어졌다.

6. 그래봤자 결국 인간 입장으로 생각하는 거잖아? 실체는 다를 수 있지 않나?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의 의미”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에게 의미가 없으면 사실상 모든 지식이나 추구 자체도, 우주가 어떻게 생겼던들 돌에만 의미가 있고 인간에게 의미가 없다면, 그 지식을 억만장을 써놓는다 한들 또다른 외계 생명체나 신이 아니고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을 읽고 느끼고 써먹어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산물인 지식은 인간 자신의 관점에서 스스로가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원리를 밝혔기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인간 자체도 정자와 난자가 “있었고” 그것이 “인간” 이란 형태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이것이 실존이다. 그리고 돌아가면 시공간 자체가 현재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그 자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이것이 어디서 왔건 이유야 어쨌건 물질로써 현재와 같이 인간에게 의미가 있기에 유의미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물질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조성이 된 세계 였다면 그 안의 ‘지각을 할 수 있는’ 개체에게 유의미했을 것이지 현재 시공간에 ‘물질’ 로써 존재하는 인간에겐 모르는 일이다. 본질적으로 ‘시공간’ 자체도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존재하는’ 형태 그것을 현재 인간이 그 안에서 이런 형태로 지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지 상대성 이론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본질이 상대적이거나, 아니면 원리를 적는 자에 의해서 크게 다른 본질로 보이게 되는 그런 속성이다. 말하자면 시공간이 이렇게 생겼기에 인간에게 유의미한 것이지, 다르게 생겼다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고 자유의지니 지각이니 하는 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당장 이러한 시공간 구성 상태의 다른 개체를 보면 돌은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게 조성된 시공간의 내에서 단지 구성 상태가 다른 다른 개체만 해도 돌에겐 이 세상 구조가 무의미할 수 있고,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뇌조차 발생하지 않아 무의미 한데 인간마저 사라지게 되는 다른 구성 상태의 상황에선 우주가 매우 정교한 원리로 짜여져있다 한들 누구에게 원리가 의미가 있겠는가?

7. 그럼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이렇게 있는 “실존” 에 대해서는.

인간은 태어나서 실존이 있는 것이고, 생각해서 생각이 존재하는 것이고, 자유 행동을 해서 자유 행동이 실존하게 되는 것이다. 후에도 말하겠지만 “정해진 것이 없는 미래” 속에서 확률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그런 구조 속에 “자유 행동을 하겠다.” 하고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그로 인해 자유가 실존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그랬던 같은 사람이든 다른 사람이든 “난 자유가 없어.” 하고 자유 행동을 하지 않으면 역시 자유는 실존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그렇고, 역시 이것도 마치 상대성 이론이 사람은 제각각의 시계를 가지듯, 사람은 제각각의 자유를 가지게 되는 그런 구조이고 문제이다. 그러면 “본질적으로” 그 사람은 원래 자유가 있던 사람인가, 없던 사람인가? 그보다는 그 사람은 “자유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 이 있는 구조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고, 순수한 진화이건 지적 설계이건 그것은 ‘시공간‘ 안에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이 갖추어진 그런 상태가 되었다고 파악할 수 있다.

8. 그럼 인간이 “실존”을 하는걸 알았고, 그런 “실존하는 인간” 이 왜 자유가 없다고 느끼거나,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 논쟁이 되는가? 단지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 선천적으로 아는 “선지” 가 없어서 인가. 왜 모든 자가 공평하게 그런 자유를 깨닫고 쓰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가.

 분명히 “인과” 라 하는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의 산물이나 자연 등의 “힘” 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자유” 가 제한되고 때론 “자유” 의 존재 자체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그것을 쓰지도 못하고 평생을 살 수도 있다. 그것은 “그냥 그런 상태” 이다. 도처럼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인과적 사건이나, 혹은 “자유” 의 존재 자체도 깨닫지 못하도록 “계기” 가 오지 않았거나 아니면 “힘” 에 영향받아 묶여서 “난 자유가 없어.” 할 수도 있다. 이미 흘러온 인생이 무력하여 더 그런 심증을 굳힐 수 있다.

9. 그럼 인간은 “자유” 가 있는가? 그걸 쓰는 방법은.

 그러나 난 “자유가 있다.” 고 말한다. 왜냐하면 힘의 제한이나 인과의 계기를 어쩌지 못했을 뿐, 그것을 깨닫고 쓰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때부터 “자유” 가 실존하는 그런 시공간 세계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의 이유를 분석, 통찰하여 다음번에 실수를 하지 않는” 그런 습관과 방법은 수많은 성공처세 서적이나 자기계발 서적에 많이 담겨 있고 많은 사람이 알고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미 그런 것이 나와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나 그런 것을 갖추지 못한 시절에 실수를 하고 그 댓가가 참혹하리 만치 심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단순하게 “인과” 의 책임이라고만 돌릴 수 없다. 또 “팔자” 도 아니다. 단지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을 못하였을 뿐이고, 마치 민주주의 이전의 왕정들에선 그것이 절대적이었다가 민주주의가 발생한 이후에는 거의 모든 국가가 그런식으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중세의 불합리함을 많이 개선을 하였듯(그러나 역시 지금도 민주주의는 개선할 점이 많다. 그러나 적어도 중세 왕정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또 천연두나 페스트의 실체를 알고 관리할 수 있어, 지금은 천연두나 페스트가 지구 상을 휩쓰는 일이 없듯이 그런식으로 인간의 지혜와 “자유의지” 와 그것을 지속하는 제도화로 관리가 가능한 인간 자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제도화” 도 유전으로 전수를 받건, 인간이 창안을 하건 그때부터 “실존” 하게 되는 그런 속성을 가졌다.

10. 그럼 “자유” 는 인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되어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자유의지”를 쓰고, 그런 아이디어를 창안하기 까지 인과도 개입을 하였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의지” 도 가능하게끔 돌아가는 그런 식의 시공간의 구조이다. 그것을 “현재 단지 인과로 진행하고만 있는 세상을 자연적으로 어쩌다가 혹은 어떤 이유로 발생한 인간의 두뇌라는 것이 인식만 하고 있는거면 어쩌냐?”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또 최근에 뇌과학 연구로 인간이 의지 신호가 발생한 이후에 스스로의 행위를 지각하기 때문에 “자유” 는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대기도 한다. 그러나 경험칙상 논리와 분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의 합”에서 발생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고, 그것에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우주 밖에서 인간의 자유가 존재할 수 있느냐.-그건 우주의 밖에 나가서 인간이 생존할 수 없기에 6. 번 같은 문제라고 본다.

11. 그럼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그것은 역시 어떻게 증명을 하냐고? 증명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시공간 안에 인간이 현재처럼 있기에 “인간이 있다.” 고 하듯이 그러한 문제이다. 현재와 같은 시공간 구조이기에 “자유” 가 발생해 있고 이것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시공간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설명 편의상 구분을 한다면-을 넘어서면 과연 자유 작동이 있는가 없는가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아마 그땐 인간이란게 거기서 작동을 안할 수 있고, 또 생각이나 지각이란게 무의미해 질 수도 있어서, 시공간 내 현재처럼 존재하고 또 빅뱅-이 있다면-과 우주 진행으로 인하여 계기가 되고 영향을 받아 생겨난 “인간” 에게 역시 “자유는 유의미하고 있다.“ 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생각함으로 인해 그 생각이 실존하게 되고 행동함으로써 자유가 실존할 수 있다.

12.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고 하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럼 계속해서 지금도 흐르고 있는 시간으로 인해서 모순이 발생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는가?

 인간에게 ‘자유’ 가 존재한다 함은 미래를 다룰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미래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과” 는 있을지 언정 “힘” 도 역시 작용하고 인간의 “자유” 로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면 단편적으로 생각한다면 시간이 시시각각 바뀐다면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기에 미래를 다루는 원천적인 “자유” 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미래가 오기전에 빛보다도 빠르게 신경 신호가 먼저 발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일단 인간은 구성체다. 분자에선 자유가 없다가 구성 상태 자체가 시공간내에서 “자유”를 갖기도 한다. 그건 정자와 난자가 양분에 의존하나 그렇게 정자와 난자를 만나게 까지 만든 어떤 ‘힘’ 의 존재도 그런 구조에 작용한다. 다시 말해 다른 차원이 있고 그건 자유의 영역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구성체’ 에선 희안한 일이 발생한다.-시공간이긴하나 시간보단 공간위주와 그걸 인식하는 거시계적 발달로 그간 기억이 형성되고 사물을 분별하고 시간이 흐르나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인식이 나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계의 인식이 상대성 이론으로 맞든 틀리든 어쨌든 실존이다. 인간에겐.(6번) 그러므로 여기서의 세계도 실존으로 다루어 주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물리적 관점에서도 풀이해 보자면,
 상대성 이론을 참고하여 ”시간 개념“ 이란 것을 뒤엎고 조작을 한다면 빅뱅과 시간진행이란 것도 사실은 ”일시에“ 일어난 사건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수식으로 푸는게 가능할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우주의 역사가 ”시간“ 이란 개념을 빼고 ”공간“ 으로 치환을 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시간“ 은 모두 공간적으로 자리 이동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안의 물질 작용도 모두.
 이러한 생각의 확장은 사실 “모든 인과” 라는 시간의 연속을 공간적으로 치환해 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본다. 구체적으로 “미래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하여 지금 모든 필요한 정보와 그것의 처리능력과 대처능력과 힘... 등을 가지고 있다면(다분히 경험칙적인 범위와 영역으로 ”공간“ 에 대한 문제-인간에게 있어서, 인간 기준에서 : 앞서 통찰한 시공간의 속성 구조를 기반으로 성립)?” “시간” 이 가고 그것에 따라 오는 “미래” 라는 것을 통제하고 인간의 의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경험칙으로는 이미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했지만 개념적으로는 시간적인 것을 ?인간 기준의 경험칙적인 입장에서-공간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다루는 그런 문제이다. (제도화라는 것도 비슷한 속성이 있다.) 이로 인해 기술의 전수가 가능하고 “현재 시점” 의 시간대에 공간적 역량 축적을 기점으로 미래를 다룰 수 있게 된다.

13. 그러면 미래를 다룰 수 있게 되는가? 그리고 이것의 효과는?

 사실 “초기에 실수를 안하는 문제” 는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고질적인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안하거나 넘기거나 감정을 느끼고 애통해 하지만 사실 이건 “성서”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시기부터 시작된 문제이고, 또 신자체도 겪었던 문제이다. 예를 들어서,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에서, 하와(이브)가 당시 사전 지식이 있었고, 또 그것에 대한 징벌을 구체적으로 알고 충분한 직간접 경험을 통하여 그 심각성을 충분히 알면서 각인하고 “뱀” 이 사기꾼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쉽게 선악과를 깨물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시공간’ 자체의 오류이기도 하고, 인간의 두뇌의 오류이기도 하다. 마치 현대로 대입해 보자면 “보이스 피싱” 이라는 사기를 알고 있고, 그것에 당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그것이 뇌자극을 통해 “위험 회피” 라는 반응이 확실히 나야 그것을 피하고, 또 대처법 까지 안다면 즉각적인 신고를 통해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당시 갓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갖지 못했다. 현대에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는 말이 있다. 이것이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되는 이러한 공통적인 문제를 말해준다. 인간 역사상 아직도 해결이 안된.

14. 그러면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초기에 실수를 하는 문제” 의 실체와 그것의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또 비슷한 일로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법조인이 범죄로 기소되는 일이 적다고 하는데 그것은 법을 잘 알아 피해가는 수도 있으나, 법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사전 지식이란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또 정보처리력도 중요하고, 자신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뉴런과도 직결되는)도 중요한데 특히 자신을 조절하고 통제할 때 스스로의 구조를 잘 알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본능이라든가 이성이라든가 하는 것을 구분짓거나 그런 행위를 할 때 이어지는 징벌과 보상 등에 대해 ‘생각’을 함으로써 그렇게 회피하는 결단을 통해 “생각대로 스스로를 움직이는” 그런 능력이 상당히 중요한데, 그것을 대다수는 태어났을 때 하지 못하고,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그런 기능이 약한 사람들도 많고 하여 어릴 때 취약할 때 또래 심리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나이먹어서 까지 “계기”를 만나지 못하고 훈련이 되지 못하고 인과에 실려 자기 없이 살거나 자유의지를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알콜 등으로 그런 자유 상실이 가속화 되어 법의 처벌을 받거나 인생의 혼냄을 받는 일들이 있다.

15. 그러면 그런식으로 불공평하게 시공간 특성의 “인과” 혹은 “계기” 나 선천적 결함으로 인해 “자유의지”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의 사람들이 처벌이나 고난을 받는 것은 부당한 점이 있다.

사실 이것은 과연 사람의 자유의지는 실존하고 현재 법적 처벌이 온당한가? 하는 법철학적인 문제와도 직결이 된다. 그런데 나는 “사람의 자유의지는 실존하지만, 대다수가 자연상태에서 그것이 깨어나는 것이 미비하고, 또 그것도 민주주의나 국가 제도처럼 ‘관리’ 가 필요한 문제 중에 하나” 라고 생각한다. 법적인 처벌이 문제가 아니라, 법을 준수하라고 하기 이전에 효과적으로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와 뇌의 구조, 인간의 시공간속 현주소를 충분히 깊숙이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한 교육적 속성의 제도 부분이 완전히 뻥 뚫려 구멍이 나있다는 판단이다. 사실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책임을 묻는 두뇌 작용 자체가 틀린 작동이다. 단지 지금까지 “계기” 가 없었던 것이고 “몰라서 저지른 일” 이다. 법은 그런 것을 “죄” 라 할 수 있지만, 사실 “죄” 이든 아니든 질서유지적인 측면에서 처벌을 하고 있을 뿐, 철학적으로 따지면 자연의 죄이고 설계의 오류이지 자연 상태의 사람이 무슨 죄이겠는가. 단지 그것을 깨닫고 알면 그때부터 노력을 하고 제도를 정비하고 자신을 다스리고 전체를 관리하는 노력과 정립이 필요한 것이지 그 후에 죄를 물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유 행위” 란건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그런 정신은 민법 제 104 조 (불공정한 법률 행위)의 “당사자의 궁박,경솔,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라는 조항에도 잘반영이 되어있다. 아울러 민법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의 ”제1항 의사표시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 제2항 전항의 의사표시의 취소는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한다.“ 그리고 민법 제110조 (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서 ”제1항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퓌소할 수 있다. 제2항 상대방 있는 의사표시에 관하여 제3자가 사기나 강박을 행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제3항 전항의 의사표시의 취소는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한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인간 자체는 모두 그런 정보 취약 상태이다.
 민법 상으로는 “경솔, 무경험으로 인하여 체결한 계약은 무효“ 다. 그러면 경솔이나 무경험으로 인하여 저지른 살인이나 절도죄도 무효인가? 이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시공간과 물질인 인간의 특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면 질서유지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단지 그렇게 시공간이 생겨나고 인간이 생겨나 그걸 익숙하게 느끼게 적응을 한 것이든, 계획적으로 그것이 익숙하게 느끼도록 한 것이든 어쨌든 그런 모양새로 시공간이 존재하고 물질로 구성된걸 바꿀 수가 없으므로 그것을 영혼만 처벌 한다거나 할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바꾸지 못하는 현재 조성 상태에 맞게 관리를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존하여야 하기 때문에. 왜 생존을 하여야 하느냐? 멸망하면 안되느냐? 그것은 이런 질문과 비슷하다. 한 개인에게 왜 자살하지 말아야 하느냐? 그것은 증명이든 과정 설명이 어떻든 결론은 그렇다. ”자살하지 말고 행복해야 한다.“ 그것이 철학적으로 아무리 ”인간은 현재 단지 인식만 하고 자유는 없다.“ 고 주장한들 심지어 ”인간이 인식하는 것은 모두 가짜고 본질적으로 실존하고 있지 않다.“ 고 주장을 하든지 ”인간은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는 불가지론을 주장하든지 어쨌든 인간기준에선 인간은 존재하고 살아있고 생각하고 활동하고 자유를 쓴다. 그것으로 실존 문제는 충분한 것이다. 이것이 ”기준“ 이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는 명제를 부정한다면 현재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 되는데 그게 인간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써먹을게 있겠는가? 인간이 생각하고 있기에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어쨌건 현재의 시공간내의 인간으로서는 이런 관점이 유용하고 기준이 되는 편이 살아있는 동안의 한평생에 유리하고 이런 기반과 암묵적 전제하에서 인간은 발전해왔고, 기술 성립도 가능하다.

16. 그럼 성서의 사례는.

 민법 의 관점을 확장한다면 그러면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속여 넘어가서 결국 하나님의 처벌을 받게 된 사건도 무효인가? 그건 하나님께 물어봐야겠지만 아담과 하와 때부터 그런 인간의 취약성이 있었고, 하와가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하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나 아담이 하와가 권해서 함께 먹은 그런 행위도 모두 경솔과 무경험으로 발생한 일이다. 민법 상으로 볼 때는 신은 인류의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대속하게 하여 메시야를 보내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한계점이 있다. 과연 순수하게 인간이 죄를 진 것인지 아니면 시공간과 인과가 그것에 확률상 그럴 수 밖에 없게끔 했는지는 일단 사람의 법은 차치하고 근본적으로 철학적인 문제로서는 신이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더구나 일방적인 하나님의 주장은 무효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하게 부당하고, 단지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만으로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서 수많은 인류가-하나님께는 별게 아니지만 인간들 스스로에겐 너무나 가혹한 역사다. 수많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범죄들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현대의 기준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선악을 아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에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였고, 생명나무 과실 마저 따먹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는가? 그럴 수 있다. 하나님에게는. 그러나 인간도 그렇게 확률상으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인간을 창조한 신이 그것을 예측을 못하였는가? 예측을 하고 있었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장난이 되고-왜 괜히 인간을 만들어서, 또 그렇게 만들어서, 그런 선택이 뻔한데 그것을 하게 만들었는가- 예측을 못했어도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인간이 RPG 게임을 만들었다고 할 때 개발자가 유저로써 플레이 하여 끝 판까지 클리어를 못할 수 있고 내부 등장 인물들을 이기지 못할 수 있다. 그건 (어떤 필요성이든)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인데, 하나님도 그렇게 만들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내부적 문제건 아니면 외적 요인이건.
 그런데 이 상황을 볼 때, -인간이 태어난 후에 선,후천적으로 인식하였던 방식으로 혹은 배웠던 익숙한 방식으로 개념화하여 해석하긴 하나 성경도 이런 관점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이런 관점을 채택하기로 한다. 인간이 개념화한 방식이 틀렸다고 한다면 성경의 설명도 틀린 것이므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작동하는 본질적 원리가 어떻든 간에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 자신이 예측을 할 수 있었다면 정보가 있음에도 인간을 그런 취약 구조로 만들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고, 혹은 마치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마시멜로 실험을 하듯이 그중에 마시멜로를 안먹고 꾹 참고 기다리는 아이를 고르려고 했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시도는 틀렸다. 왜냐하면 그건 보통 유전이나 후천적 교육에 의한 당시 뇌형성 및 작동으로 결정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시멜로를 먹어 버리는 아이들 중에서 ‘기적’을 기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변수에 결정되는 부분이므로 이 부분도 약하다. 그럼 거의 마시멜로를 먹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을 먹지 않는 선택을 하길 원했을까? 이 부분도 틀리다. 그러면 마시멜로를 먹을 가능성이 반반인데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는 아이의 행동을 원한 것일까? 그건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가 되어 버리고, 실제로 하나님이 그런 반반의 확률을 가지도록 한 상황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인간 자유의 작동”을 실험하기에 좋을 수 있으나 변수의 개입으로 완전히 판단이 무너져 내리기 좋은 상황이라는 것을 볼 때 이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결과적으로 창조주 하나님부터 기본적으로 정보도 알려주지 않고 이 말 저말에 취약하여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 뇌’ 의 취약 점을 고려하지 않고 배려 없이 그런 게임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인간의 원죄란 단지 바카라나 블랙잭에서 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정보를 모르고 두뇌 사용법 조차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뱀의 사기에 말려서(그러나 결과적으로 뱀의 말은 진실이 되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이 겠지만.) 그런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질서유지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죄를 묻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 사건 후 남자는 밭을 갈며 고생을 하게 되었고,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가지게 되었다. 이건 곧 인생의 고난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후의 모든 악행이 다 인간의 잘못일까? 인간이 선택을 하여 그렇게 진화하고 벌어진 일일까? 그보다는 악행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상과 불이익의 회로에 따라 그렇게 발달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악행을 하지 않고 선을 행하기를 기대했다는 것인데 그러기에 마치 부나 신체의 불공평처럼 모든 인간은 정신의 불공평과 함께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불공평도 가지고 태어난다. 말하자면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기에 필요한 것을 기본적인 것 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고 역시 동일한 출발선 상에 서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듯이 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그 전에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스스로를 조절하는 유전적인 소양에 대한 부분이고, 또 그러기 위해 후천적으로 전수받고 습득하는 지식과 교육이나 자기몸사용법에 대한 부분이고, 또 그런 부분에 대해 누구나 공평하게 자연적인 불공평을 극복하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누구나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적인 문제인데, 이 제도라는 것도 사실 그러한 선천적인 뇌에 맞는 훈련과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과 방법들이 필요하다. 만약 이런 효과적이고 이상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면, 당장 모든 사람이 학업을 만점 맞을 것이다. 그런 제도화로 모든 자를 바꾼 다는 것은 이상론에 가깝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현재로써는 무슨 문제가 있냐면, 그렇게 교육을 하여도 인간 자체의 뇌의 구조 및 특성적 문제와 개인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뇌의 특성들이 그것을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거나, 그것을 간직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또래나 다른 정보에 휘둘리거나 한다는 것인데 시공간과 인과의 특성상 이것을 통제, 조절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TV 가 없어도, 전체적인 세뇌가 잘 이루어져도 많이 나아지긴 하겠으나 역시 마찬가지 일텐데 그래도 최대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전체 세상에 대한 관리율을 높여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발달로 인해서 살인이나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인류 역사적으로 많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이 있음에도 하나님은 역시 “노아의 방주” 사건에 나온 인간 전체에 대한 대홍수로 단지 처벌에만 급급하셨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잘못을 모두 말하고 전 인류가 공감한다 한들, 창조주는 역시 세상을 다룰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래서 인간을 물질의 한계에 갇히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의 창조를 믿고 그 아들을 믿는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았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지혜로. 이 일을 어찌할꼬.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는 말이지만 “하나님의 역사” 가 이루어진 것은 스스로나 대다수의 일에서나 거의 없다고 본다. “이 세상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실존을 증명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셔도 이 세상 존재 자체가 증명하고 있진 않다. 그건 어쩌면 잘못된 오류에 빠진 판단이다. 인간은 오류도 빠지고 그렇게도 행동할 수 있는 “자유” 가 있으니.

17. 이런 작동적인 측면 말고 인문적인 관점에서 해석을 하면 어떤가.

 그리고 인간에겐 “진심” 이란 부분이 있다. 역시 과학으로 다룰 수 있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반응” 같은 그런 심리적 부분과 함께 생겨난 실존 요소 시스템 중의 하나인데, 그런 “진심” 과 인간적인 부분도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 일부 선생님들의 훈육이 그렇게 애정없이 자신의 목적을 방해한다고 하여 관리상 편의 만을 위해 체벌하고 다른 학생에 대해선 편애하고 이러한 것들을 볼 때 진심도 받는 사람이 받는 것이 겠지만, 그렇게 “진심” 으로 애정을 가지고 한다면 될 수 있는 일도 그르치는 것을 보았다. 그 전에 그런"진심“을 알 수 있고 받아들 일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고질병인 ”조건반응“ - 진화적인 생존과 유리를 위해 상대의 외모라든지 느낌이라든지 다양한 조건들에 의해 반응하고 유전적인 냄새를 맡고, 파악하고 신뢰하고 동료가 되든지 아니면 혐오나 적이되든지 하는 부분(왕따란 이런 부분들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발생한다) - 이 강한 인간의 역사나 그런 부분을 극대화하고 소비하고 권장하는 현대 자유주의, 자본주의 환경에서 당연히 그런 ”진심“ 이라든가 인간적인 부분이 축소되거나 아예 발달하지 못하거나 폐기 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이런 부분은 개선이 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심“ 과 ”인간적인 것“을 할 수 있기에 그것이 실존하게 되고, 그럼으로 ”인간“ 이란 것이 실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재 소비되는 그런 비인간적인 부분들을 극대화하면 그것이 실존하게 되고 역시 인간은 비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현재 그런 흐름을 조절하기 힘든 구조적 한계성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조절이 가능하도록 개선해야할 부분들이 있다.

18. 지금까지 했던 것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간략하게 정리를 해본다면.

정리를 해본다. 그러면 “인간이 미래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인간이 그간 최선으로 살아왔던 경험을 관조하는 것에 해답이 있다. 분명히 인과도 작용하고 “계기” 도 필요하고, 인간의 출발선은 각기 다르고 “아직까진“ 모두가 자유를 제대로 발휘하고 살지 못하고, 매번 그러지도 못하고, 어쩌면 평생 그럴 수도 있는 취약한 상황이다. 거기엔 유전적인 차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심지어 선천적인 ”운“ 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최대한 이런 방법을 접하여, 인간은 일단 미래를 다루고 인생을 헤쳐가는 자신을 조절하고 다루고 의지를 관철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현재 구조로서는. 그러나 그럼에도 최대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정보처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응시나리오가 있거나 나오고 창출될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 따른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운” 부분도 통제가 가능하여야 한다. (“운”을 통제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아마도 일기 예보를 다루는 부분이다. 태풍을 예상함으로써 태풍의 피해를 최소화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계기” 에 의했지만 지혜로써 노하우를 만든 것이고, 인간의 자유나 행동패턴도 개입한다. 전적으로 “인과” 만의 단독문제는 아니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부분 “힘” 에 의존하고 이것은 과학과도 직결된 부분이 있다. 이런 “힘” 이 그렇게 선천적인 “운” 으로 생각했던 그런 부분들도 많이 개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엔 태풍이 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이젠 많은 부분 “인재” 가 된다. 사람이 많이 대비하고 막을 수 있다.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에 대해.......

19. 마무리 하며 ? 이건 국가 차원의 일

 그리고 이것들을 국가 차원에서 모든 아기들의 가정을 관리하고 양육 취약에서 자신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건 아직은 너무 많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 미래에는 가능할 지도 모른다.

20. 끝맺음

이 글 또한 역시 “인과” 의 영향을 받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고, 일단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제도화가 되고 그것이 민주주의처럼 굳건히 인류의 전통이 된다면, 그 후로 자손대대로 더 이상 모든 인간들이 겪는 “첫번째 실수”를 안하게 되고 그에 따른 불이익을 겪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안받고 애달파 하지 않겠지. 그런 바램으로 이 글을 써본다.




죽는다고 생각해 보았다. 지금 느끼는 것을 못느끼는....
그럼 추구해야 할게 무엇일까? 그건 '나' 이다.......

무의미하게 스치는 것들까지 잃게 된다면... 이런 생각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은, 중요한건 지금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지금을 잡게 해주고 현재를 잘살게 해준다. 현재에 민감해진다...... 미래가 생생히 보이고, 과거를 생각한다......

쓸데없는 생각만은 아닌 것이다. 가야할 길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자까지 보여주게 된다...... 현재시점에서 점검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삶의 길을 알려준다...

나이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금' 을 많은 분들이 흙탕물 앞에 시야가 가리듯 가리워져 사시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그것을 해결해 드리고 싶다.

눈이 번쩍 뜨이고 서로 어울어지는 것이 최고의 행복과 가치라는 것을, 그것만이 삶에서 추구할 유일한 것이라는 것을 집중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깨달은 모든 것을 나누고 싶다....

죽기전에 후회할게 무얼까? 범죄를 못저지른것? 아니다... 지금느끼는 행복의 상실이다... 현재 삶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마음과 행복이다....

삶에 있어서 사람사이의 공감, 그리고 친구와 사랑, 애인과 낭만.... 모두 중요한 부분이고 그런건 민주주의가 받쳐준다... 아직 불완전하지만 사람으로서 누려야할 깊은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계기를 만나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그런 계기에 의존한다... 이글이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가지더, 대리만족이 아니라 스스로 '내' 가 되어서 누리고 느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의 첫걸음이다. 자기 수양이나 활동도 그것을 위한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푸른 하늘을 보고 공기를 마시며 바닷가에서 자연과 함께 사람과 호흡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많은 것을 놓치고 늙어서 죽어가고 있다... 이유도 모르고 사람은 흙탕물 속에 뒹굴다가... 그 이유가 자본주의 일까? 아니면 원인과 결과에 떠밀려서 시간과 함께 휩쓸리는 인간의 숙명 때문일까.

인간은 왜 싸울까. 그건 수많은 유구한 진화의 역사에 의해 생긴 뇌라는 사람의 마음과 시공간이라는 허약한 구조 때문이거나, 또는 그런걸 디자인하고 만들고 땅위에 펼쳤다는 신의 뜻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신의 자기충족을 위해서였건, 신의 모자람이었건, 신의 가학성 때문이건, 인간의 왜곡이 들어간 것을 막지 못한 신의 부족함이든 어쨌든 현실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만족하는 문제와는 또 다르다...

모든것을 감사함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런상황을 만들기전의 신의 뜻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삶이란 것에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나만 해도, 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까지도, 좀전까지도 인과의 파도에 시달리며 결코 초월하지 못하고 운명을 생각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끈임없이 가는 시간동안 그것에 이미 적응해버린 상황과 사람의 몸을 가지고, 끈임없이 탐구하고 생각하고, 또는 생각없이 흘러내려가며 때론 운에 맡기고, 때론 자유를 믿고 적극적으로 개선하며 살아간다. 이책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을 지금 시점에 적는다... 이것이 옳은 지는 모르겠으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먼 미래에도, 누군가에게. (심지어 외계인에게도 조차.)

사람은 추억을 소중히 하여야 한다.
사실 그게 살아가는 이유일런지 모른다. 사람사이의 것이라지만, 혼자여도, 그것이 제일 생전에 중요한 것이다... 아직 모른다면 그것을 중심으로 사는게 나이가 들고 후회하지 않는다. 마음이 달라져도......

세상에 상처받고 마음이 나이가 들고 해서 느끼지 못하거나 감퇴가 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행복의 기반은 사람이고, 추억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도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신도 그렇게 만들었다. 사람을.

행복은 나이먹기 전에 유일하게 집착할 만한 것이다. 행복할 기대가 없기에 행복할 수 있다지만, 사실 사람은 사람이길 포기하기 힘들어서 사람일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다른 것에 한눈팔지 말고 사실 생각할 것은 그것이다. 주지할 사실은 그러고 있는 중에도 시간이 계속 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되는 부분은 신에게 맡겨두자. 사실은 신의 책임이 크다. 이 세상엔 시간과 공간처럼, 또는 인과처럼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과 굴레, 사람들이 많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대다수가 이유를 모르는 것들도... 그것은 전적으로 세상을 펼쳐놓은 존재의 책임이고, 세상을 만들었다 하는 신의 책임이다. 신을 믿는다. 그러나 책임은 전적으로 신의 것이다... 신의 영역으로 남겨놓고 훌훌 털어버리자. 사실 그것이 인간의 바른 길이다.

외모, 학벌, 인맥, 성공, 직업, ... 그런 수많은 것들에 사람은 매이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당연시 하든, 불합리하다고 하거나 어쨌든 진화과정에서 그렇게 되었고 신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인간을... 현대 사회의 부당함 조차 전부다 인간의 의지로 된 것일까? 그러면 인간은 정말 대단한 존재지만 인간이 그런 대단한 존재였다면 세상을 전부 자기가 그리는 방향으로 만들었을 것이지 많은 실패와 오류를 안고 시간이 흘러가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인식하는 사실들이 옳게 인식되고 있다면, 실패는 분명히 신의 책임이다.

사람은 원하지 않게 태어나, 누군가의 의지혹은 떠밀림으로, 편하거나, 힘겨운 세상을 살아나간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람기준에선 분명히 부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해 일말의 '자유' 를 발휘해온 역사가 인간의 역사이기에 그나마 오늘도 산다.

사람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자.
나머지는 신의 영역이고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나든 시간은 간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사람에게는.

아울러 맺힌 것도 풀자... 예수님은 그러셨다. 심판이 있다고...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해결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해결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있다. 어쩌다보니까, 그런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예수님도 늘 그렇게 심판을 말해오셨다. (물론 이런건 상대적이라서, 누군가의 충족이 누군가에겐 불행인 상황도 있겠다. 이런 문제는 논외로 하기로 하자.)

세상은 운적인 요소도 상당히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자기가 다 알아서 해야한다는 마음의 부담은 잠시 내려두는게 좋다.
그러나 자기가 하는게 확실한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체 세상과 돌아가는 아귀가 맞지 않아, 오히려 나중에 더 원하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고, 아직 거기까지 대다수가 예지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가지만 집착하는 것도 그렇게 살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와중에도 목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행복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든 것이다....

죽기전에 후회한다고 그때만 후회하면 되므로 젊을때는 그때 원하는대로 살아도 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때 원하는대로 사는게 행복하지 않은게 더 문제인 것이다. 마음적으로 그때도 후회를 하게 된다.

나도 지금 모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금 얻지 못해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추구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나는 어쩌다 그냥 얻어 걸린적이 있다. 그것도 두번이나... 인생에서 개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게. 그러나 나머지 얻지 못한 98개를 한탄했다. 그것도 반성해야 할 수도 있지만, 글쎄 사람이 원래 대부분 그렇다. 나도 사람이고 특별한 외계 생명체가 아니다. 그것을 벗어나야 진정한 해탈인 것을.......

행복만 바라보고 살아도 지금 누리다 보면-지금까지 못누려도 '지금부터' 누려야 한다. 죽기전 늙은 상태라도, 그 상태에 적응해서라도 누리는게 그나마 낫다. 누리다가 보면 금방이다... 그렇게 사람의 삶은 짧을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얻지 못할 수 있다. 분명히. 나도 그런건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어릴때 미숙한게 본인 책임이겠는가? 그건 그냥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오류다. 역시 신이 해결할 문제인 것이다.

신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면 신은 그냥 가학자밖에 안되는 상황이 많다. 그러므로 신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 아니다. 다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완성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도 있다. 죽도 밥도 아닌 일도 많다. 그것이 단지 인간이 시험을 못이겼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그냥 불완전한 것이다. 마치 성경속에서 망대가 무너져 어린아이들이 죽은게 신의 경고도 아니고 뭐도 아닌 것처럼.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 강해진다.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
어른 들과 기성세대도 그것을 도울 것이다.
그것을 방해한다면 옳은 일이 아니다. 공부하지 않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똑같이 태어나지 않았고, 환경과 인과로 다 수재가 될 수 없는데-그것을 한가지 기준으로 세워서 차별을 하여 재화를 나눈다면 옳지 못하다. 사람은 안그래도 선천적으로 부당한 지구위에서 최대한 공평하게 하여야 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자유를 써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더 부당하게 만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성적으로 서열을 세우는 것과 어떤 기준으로도 서열을 만들어서 재화를 분배하는 방식은 그 방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제로섬게임이라서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지 못하는 시스템은 인류가 지양하여 없애고 채택하지 말아야할 시스템이다.
결국 한명, 상위권의 승자들을 위해 나머지가 희생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부당하다... 안그래도 선천적으로 부당한데 후천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써서-인간은 자유를 써서 선천적 부당함을 해결해야 할 존재인데 거꾸로 행동하여(소수의 욕심때문에) 잘못된 방식으로 인간 사회를 퇴보시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더구나 특정한 편협한 기준으로... 승자독식은 사라져야 한다. 모두가 공정하게 나누는 시스템만이 선이다. 세상을 관리할 사람은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 신도 그래야 한다. 신이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면 앞으로 그래야 할 것이다. 신도 달라져야 한다. 우주의 구조와 지금까지가 부당했다면, 앞으로 바뀌어야 한다.인간의 자유가 도달하지 못해도 혹시 사람이 알지 못하는 (신지학에서 말하는) 아카샤의 기록이라든가 염체라든가 하는 구조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가능성은 일단 열어두고 생각하자. 단지 현재 시점에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원랜 있던 것일 수도 있다. 마법이나 유니콘이나 산타클로스처럼 허구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과거에 없는거지 현재나 미래에 없다는 뜻은 아닌 것과 비슷하다.

공부만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또 행복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재의 공부가. 공부보단 사람사이 사는걸 가르쳐야 한다. 이젠 정을 가르쳐야 할 시대, 사람사이의 도리를 위주로 가르쳐야할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그런 공동체에서 경쟁력이 생긴다. 아인슈타인이 나온다.....

인간은 분명히 현재는 부당한게 있다. 그러나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의 부당한 과거를 개선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습관이 되면 인간 세상은 달라진다. 분명히 좋아질 것이다. 그러다 파괴되면 헛수고라지만 사람은 그러지 않을 수 있다. 개인이 되면 개인이 모인 인간 세상 자체도 되는 것이다. (부분의 총합은 전체가 아니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분명히......
한명한명이 마음을 다스리면 공동체가 달라진다......자유를 되찾자. 그것이 후에 인과를 다르게 하고 파급력과 영향과 소통이 달라진다..... 마음의 힘을 무시하면 안된다. 사람의 모든 행동과 세상모습은 마음이 만들고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누군가의 생각이나 계획이나 행동, 마음의 투영이다. 빌딩이나 방송마저도.....-광범위한 영향력이나 전쟁이나 모든 것도,

그러나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으니 딱 10년만 참자. 그정도까지는 봐주자. 서로서로......

내가 쓰는 글이 미숙하다. 분명히..... 사람 마음으로 볼때 또 원시적 본능으로 볼때 부정적인 감정도 날 수 있지만 나도 최선이다. 전보단 나아졌다..... 그러므로 용서해주자.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 이유없이 사랑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이다. 사람은 의지로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이 모든 사랑중의 최고이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도 그렇고 그걸 알아도 자기조절이 원만치 않다. 아까도 잠을 못자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하다가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그것이 사람의 약점이다.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하나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사람은 모순적이고 그런 해결을 신이 사실은 책임을 지고 하여야 한다. 사람에겐 분명히 의지만으로 개선하기 힘든 한계점이 존재한다. 초인이라도 인간이다.

대다수는 '꼴리는 대로' 살면서 남을 피해주기도 하고 잘살아간다. 아쉽게도 인과응보는 잘없다. 그러나 그걸 앞으로 인간이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최대한....... -신은 손을 놓고 있기에, 무슨 뜻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전엔 모두 인간이 최선을 다해 바꾸어야 한다.

이런 것도 계기나 깨달음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남들은 쉽게 했거나 이미 나와 있는 것도 나와 있는지도 모르고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하다가 아주 힘들게 돌아온적이 많다. 이렇게 내사정을 설명하여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까지도 힘든 점이 많았다.... 잘못하면 나의 글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뻔 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이 것이 계기나 표지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는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오래전 사람 세상에 많이 실망해서 그닥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 거의... 아예...... 그런데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었다. 다만....... 외계인에게라도. 그냥 사라지면 휴지조각이고 아무것도 아닌, 허무하니까 말이다.

그러길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난 남들이 다 하는 것도 잘하지 못했다. 가진 것도 그렇고, 가지지 못한 것이 더 많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쓰고, 그래서 결국 더 나아질 미래를 기대해 본다.

사람은 자기가 제일 중요하다. 사실은..... 굳이 사람이 이기적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을 떠나서, 사실 솔직하게 모든 사람이 다 자기자신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살고, 자기보호에 따라서 심리가 생기고 남을 평가하고 한다... 그래서 진정한 자신이 되기도, 또는 남이 되기도 하는데 어쨌든 다 이해한다. 사람은 자기가 중요하니까....

다만 앞으로 자기의 부당함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이겠지. 나 스스로도 말이다.

사실 세상 만물은 돼지도 느낀다고 본다. 경치도 보고 감정이 날 수도 있겠다... 사람도 그렇고...

그러나 사람은 그거 이상에 행복이 있고 봄날의 추억이 있다... 버려도 될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집착하기도 한다.... 그냥 사라져 버려도 돼지의 인생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이기에, 살아있기에. 아깝다.

아까운거 하나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을 수도 있다. 그건 자기가 결정해야 한다. 그런 문제 같다..... 상황마다 디테일이 틀리다.

분명한건 죽으면 봄날을 누리지 못한다. 누구나........
그리고 사실 죽기전에 가야할 곳을 가지못하면? 그만일 수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역시 "사라진다." 는 것이다. 그냥 그러고 - 의식도

그게 누군가에겐 편할 수도, 그걸 원할 수도 있으나, 병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그걸 원할까? 분명히 가지고 마음편안히 끝내는 것이 사실은 누구나 원하는 기본인 것이다.

그걸 보장해주는게 민주주의이고.
그런데 거기에 딸려나오는 자본주의가 옳지는 않다. 왜냐하면 돈많은 사람은 왕처럼, 아닌 사람은 노예처럼 사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을 개선할 것이 인간의 과제이다.

그리고 한가지,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그런 흙탕물에 가리워져 사람다운 행복이 아닌 것을 집착하며 사는 방식의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틀렸다고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아노미-가치전도 현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치 암세포가 정상세포를 잠식하듯 비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그런 일이 너무도 많다. 한때의 일이고 어쩌다가 그렇게 되거나, 자기도 스스로 극복못할 수 있는, 또 그럴 의지나 신호도, 자각조차 없을 수도 있으나 어떻게든 개선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구에도 자전축이 있고 시간과 우주에도 근본 원리가 있듯 그런건 존재한다.... 무작정 상대주의가 온세상을 만들고 지탱하는건 아닌 것이다.

사람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도 분명히 해결할 문제이다. 사람을 상품으로 만들고, 공격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멸망을 앞당기는 일인 것이다. 사람답지도 못하고..... 그것의 피해자들이 계속 양산되고, 거기에 대한 댓가가 있든지 없든 해결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이다.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은 현재까지 그럴 가치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론 그럴 가치가 있다. 그건 존재 자체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명제는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

"화양연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가질 수 없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타의에 의해 가지지 못한다. 한가지 관점으로 들여다 볼때,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면 가해자는 인생에 절정이 있는데 피해자는 내리막길 밖에 없는 경우도 상당수다. 물론 종합적인 관점으로 볼때 좋은 부분도 있겠지만, 모든게 다 안좋은 일도 있다...

그래서 부당함에 항거하기 위해서, 또는 그냥 놔버리거나 복수심을 가지거나 할수도 있지만 그것도 한때의 인과이고 이 세상이 감수해야할 부당함이라고 본다. 현재까지는. 개선하지 못하였기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 이를테면 묻지마 범죄나
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그게 다 인간의 책임은 아니지만 개선의 책임은 지금 이순간부터라도 깨달아야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어도 해야하는 것이 인간의 책무다.

좋든 싫든 감정이 어떻든. 칸트의 정언명령과 비슷하다.

내가 대학이나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이것도 내 의지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안간힘을 썼어도 사실은 상당히 부당한 일들에 떠밀려 거의 초죽음으로 그랬다. 당시에는...... 뭐 제도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이 있고, 근거도 있겠지만 과거를 비판하지 않는 것이 현재로썬 합리적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 그것이 인류문명 개선과 변혁의 시작이다.

무조건 독해져야 한다-가 해결책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소수만 역시 경쟁에서 승리하다가 보면 다시 계속 피해자가 양산되고 결국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은 혜택이 영원히 없다. 인간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승자와 패자가 생기고, 낙오자가 발생하고, 가해자와 먹잇감이 나뉘는 부당한 일이 생긴다. 돈을 많이 가져야만 행복한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 적어도 돈이라도 전국민이 공평해야 한다. 당연히 지구에서 난 것은 운이므로 그것은 공평하지 않은 자연상태라, 당연히 공평하게 나누어야 하는것은 아닌가. 그러나 누군가의 욕심으로 불공평해진다면 불공평한 선천적인 능력을 두둔하는 것이되고, 사람이 할짓이 못된다.
그런 불공정, 불공평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 또 바뀌고 있는 상태 그런 제도와 정책이 현실화되는 사례도 있다. 그나마 바뀐 형태가 복지국가이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건 중요치 않다. 먹고사는 문제이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건 새시대의 생각이다.
그것이 사실은 나라, 국가가 지향하고 꿈꾸고 변해야할 목표가 되어야 한다.
더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못가진 사람과 나누고. 그것이 평등이다... 욕심없이 사는 무소유, 나누는 것의 행복을 알아가자..... 사람은 그렇게 진화하여야 하고, 그것이 신이 사람에게 준 숙제이다.

부당함을 안고 개선하자. 현시점에서 인간으로서 최선의 행동이다. 다른 길은 없다.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행복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개개인이 모두 행복해질 수 없다. 인간 세상은 불공평하다. 불공평한 세상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일단 그것을 해결하자. 죽기전에.... 개개인의 행복이 전체 공동체의 부당함때문에 눌러지고 침해받고 마음껏 펼쳐질 수 없다면 그것은 인간이 멸망할때까지 해결해야할 짐이자 숙제이다. 제일 먼저 갚아야할 빚이다.

생물학적인 문제나 뇌의 행복충족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일단 종교라든가 세뇌같은 문제는 그다음으로 미루어 두자... 먹고 살게 해결되야 다른걸 생각하듯 일단 인간 자체의 생존이후에 종교도 존재하는 것이다. 종교를 위해 인간이 굶어야 하는건 아니지 않은가.

만약에 인간이 미친다면? 미쳐서 신을 믿거나 거부한다면? 그런 신앙이 신에게 의미가 있다? 그러면 그건 신이 틀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의 신앙을 합리화 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불교국가에서 신을 믿지 않는다고 신이 만약 화내고 지옥에 보낸다면 신이 틀린 것이므로, 그런 걱정은 하지 말자. 그건 신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예를 들면 사장이 미치광이라서 불이익을 줬다고 불이익을 안당한것은 아니듯이 분명 지옥은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든 신이 달라져야 한다. 지구가 달라지고 인간이 달라지는데 신이 그대로이고 성경도 거기서 발전이 없다면, 만약 구약의 신처럼 미비한 신이 세상을 심판한다면 그것만큼 불합리한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태어날때, 어릴때 사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알려주지 않고 책임을 지우는 것은 사실 부당하나, 그것이 법이 보완해야할 부분이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걸 그냥 흐지부지하게 은근슬쩍 넘기나 사실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알려주고 주지시킨 후에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모든 부당함을 해결한 것을 확인한 후에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고, 그래도 부당함이 남는데 아예 알려주고 합당한 방법으로 부당함을 바꾸지 않고서 처벌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해결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제거하는게 능사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원숭이였다고 원숭이로 살아야 하는가? 사람이 되서 살수도 있다. 이것도 존재자체의 문제이다.
개인의 책임으로 지우고 등돌리고 나몰라라... 그건 그냥 또다른 가해자. 지도자 자격이 자동상실. 없음.

나도 여행을 떠나려했거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이 공격받고 무시당하고 묵살당하고 온갖 피해가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해결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서. 사람에겐 사람답게 사는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사실은 말이다. 외모나 학벌이나 돈 등으로 사람성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개선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것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는 햇빛조차 못쐬는 사례는 상당히 많다. 그것은 어린아기조차 느끼는 사람의 감정이란건데 그걸 부당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외면하는 일인 것이다.

그게 개인만 극복하긴 상당히 힘이든다. 사람은 연결속에 존재하므로... 사람은 전체의 일부인 유기체다. 좋든 싫든 사람으로 태어났듯, 현재로썬 부정할 수 없으므로 갑자기 인간이 신이 되고 초월할 수 없고 또는 퇴보하여 돌이 될 수도 없듯이 그럴 계기도 필요없고 그럴 의지도 의지대로만 안되듯이, 당연히 그것은 객차를 끌어주는 기관차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의 뜻이 모인 국가의 정부가 그역할을 담당하고, 그것의 최적임자가 정부구조를 맡아야 한다. 현재 민주주의는 최대한 발달된 형태이므로 사람마음의 오류와 부당함만 개선한다면 충분히 인간 세상은 좋아질 수 있다.

사람마음이 지도자를 뽑을 때 오작동하는 것은 심리의 오류와 일맥상통한다. 아직까진 진실만을 보는 눈을 모두가 갖지 못하여서 그렇다. 그런데 진실만을 본다고 한들 완전한 사람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최대한 정부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기계처럼 작동하여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요구를 공정하게 나누는.-사실은 신도 그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마치 한비자에서 언급한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처럼 그렇다.

원래는 그냥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안읽는걸 다른사람이 읽을까? 그렇지만 원래대로 해본다..... 도움이 될사람도, 이해해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고, 믿는다..... 건방져보일수도 있지만 이해해주길 바라고 원한다. 인간의 부족함인 것을... 현재까지의. 나도 사람일때와 짐승일때가 있으니.

어느날의 단상을 적어본다.

등산은 아니었다. 그냥 산위에 올라가 보았다.

한참 올라가 정상. 별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느껴진 그런 확열리는 도랄까..

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 보였다.

그러면서 그런 먼지처럼 작은 인간들과 콘크리트 덩어리들

저만한 저 조그만한 육지위에 그렇게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생겼구나.

방송도나오고 연예인도되고 재벌총수도 있고 대통령도 있고 경찰이 단속하고 법이니 민주주의니 주장하고 돈벌려고 그 작은 임장들앞에 사로 잡혀서 사는 구나.

유흥도 하고 클럽도 가고 여자와 성관계했다고 자랑도 하고. 과시도 하고.
살인도 하고 도축도 하고. 거지도 되고 평탄하게도 살고..... 그러나 자기입장에서.

모두 그런 미물들의 개미들이 조건반응식으로 동물짓하는거 같은데 사람들의 행렬이, 차의 행렬이 개미의 행렬과도 같은데.

지난번 보다 더열리는 이유는 한참 고민하고 있었다가 그런 각성탓도 있겠으나
그런게 잠잠히 확열렸다. 그렇게.........

인간이 그속에서 임장으로 살기에 그게 전부이고 거기만 집중해서 그게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는거지

인간이기에 인간구조로서

사실 집중할건 "이게 전부구나... 잘살아야겠다." 생각하던건 가난한 시절에

야경보고 그런 추잡한 언뜻 그래보이는 초라한 추억들일 뿐이었다......

그게 전부라고...정말 잘살아야 한다고 우리끼리.......

그런 와중에서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논다그러고 온갖 꼬인 동물반응과

어떤 한 사람을 놓고 동물반응이 나오기도 하고 인도주의를 찾기도 하는 등 하는 일이,

그 자체가 참어이없는 짓이라고...

그러나 인간 마을 속에서 살기에 그게 초집중되고 그런 지엽적인 것만 집중되어 "인간" 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은데 그런 동물, 벌레들에서 작동도 나오고 영향력끼치고 동물짓으로 많이 해침도 당하고 인도주의나 법(인간끼리의 문서적 약속에 불과하나 현재까진 내가 끄적거리듯이 그나마 최선의 방법인...)따위에 고립 건물에 강제적으로 벌레들이 묶어서 놓기도 하고 그러므로 그런게 중요할 수 밖에 없겠으나 조폭도 군인도 산위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나, 그 속, 그 안의 마을의 도로에서 보면 "나" 가 인간 몸뚱아리이기에 그런식의 영향력과 침해력을 가지게 된다.

만약에 코끼리가 개미를 밟듯이 인간을 밟고 가는 그런 존재였다면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게 아니니까 중학교 시절 보통 일진들이 완전한 무법상태 법도없이 그런 상황에서 마구 애들을 패고다니다가 법제화 사회화 거치고 되면서 그런 교묘한 임장세뇌 경찰서 끌려가고 그런 경험처럼.

괴로움 인식-잃을게 상당히 많다는 그런 상황 행복을 누려야 하는데 그러므로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자기정신" 거기에 모든 인생의 답답함과 안풀림과 행복을 찾으나 행복을 찾지 못하는 모든 문제의 열쇠해답이 있다.
모든 문제는 "자기자신" 그리고 그 "자기자신" 들이 소통하는 많이 지구위에 번식한 기생충들, 학문적으로 정리한 학명으로는 "인간" 그 자체에 문제 해결열쇠 해답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인식구조가 발달한 이유는 "인간공동체" 보통 그안에서 생존을 잘하도록 생존회로 본능회로 뇌구성체 전쟁식으로 구성하는 구성전력체도 발달 구성이 되었고 행복과 보상을 느끼는 오르가즘의 그런 것도 모두 다 발달을 하였는데 그런 인간인식구조체를 서로 상호소통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정리하기 위해 "도덕관념"이 제일 나중에 생겨나게 되었고 그걸 정리하면서 인간입장에선 전적으로 휘감는 도덕의식이나 "사람다운 감정 도덕성 감정" 그런게 생겨나게 되고, 그 안에서 실제로 인간이 느끼기엔 그 마을안에서 빌딩을 올려다 보는 입장에서 그렇게 사람다운 도덕감정 '왠지 그러면 안되겠다...' 식의 사람다운 도덕감정을 느끼고 사랑하고 그런 인간미 사회적 세뇌-통제위해 발달된-그속에서 "사람다움" 을 느끼고 행복, 자기것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개개인에게 "성공" 이란 것도 그다지 의미가 없다. 자기 의미일 뿐이다.
저 변두리에 있다가 저 중심 빌딩으로 옮기면 성공인가? 그런 화려한 불빛과 지지속에?
인간이 작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고 진화적 구조가 뇌형성이 그렇게 되어 "자기입장" 에서 인정해주고 떠받들여 주면 성공기분 날아가는 황홀감을 느껴서 그게 그렇게 단지 느껴질 뿐이다. 나는것 보다 더더욱. 그런 걸 알게 되면, 아무리 이성대로 몸이 반응을 안한다지만 더이상 행복이 잘 안느껴질 수도 있다. 생각이 영향을 줘서.
그러나 사실 인간은 산위에서 평생 내려다보기만 한다고 일시적인 진화심리적 환상 감동 네버랜드 같은 느낌은 느낄 지 모르나 그게 계속 그런다고만 행복하게 두뇌 구조가 형성되고 진화한건 아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작아보이지만 그런 성적인 자극 사람 촉수가 많은 사람은 그런 사람적인 교류, 제도 의식적인 그런 분위기도 받쳐주길 원하거나, 혹은 제일 잘나가고, 제일 좋은 번쩍이는 대리석에서 번쩍이는 차로 드라이브를 해야 그게 행복감 성취기분을 느끼도록 그렇게 형성된 뇌가 대부분이거나 사실은 "인간마을" 도로를 걸어야 행복하고 "여자" 라 하는 것이나 "가족" (약속된 유전자의 집단)이라는 것을 가져야 행복하기 때문에 그리고 소통을 하고 "바람" 도쐬고-지구입장에선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심지어 "파괴"를 하고 "전쟁 수련"을 해야 행복해지는 "복수" 와 "정복 파괴 적의 멸망" 등도 마찬가지인
그런 인간의 두뇌구조를 가졌으므로 인간이 영토를 가져봤자 전국일 텐데-중국이라면 좀 스케일이 크겠지만 한국에서는-
내가 그때 드라이브를 하며 전국 외곽을 돌며 느꼈던 그런 길에서 세상을 총체화 해보았던 그런 비슷한걸 산위에가서 체계화하고 정립하게 되었다.

그래서 행복은 이것이다. 진화적으로 형성 구성된 그런 두뇌를 충족시켜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당연히 한인간이 본성이 나오는지 불합리한지 짐승성이 나오는지 인도성이 나오는지 하는건 "어떤 구조의 인간" "특정 특성 구조적 조합의 인간" 그런 임장현실에선 상당히 중요한 면이다 그래서 행복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점에서 말하자면

"각자의 행복을 찾아라." 하는 것이다. 물론 인류 공통이 일반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그런 노력이 있긴 하나

이를테면 일단 서로 부당하게 침해 안하는게 행복하다.(물론 부당한 침해에 보상을 느끼고 빼앗은 것이 더 맛있어 하는 그런 회로도 본성에 있으나 자기가 그럴때 입장이고, 상대가 그럴땐 불행이고 그 상대가 자기가 되도 마찬가지이기에 그런 특이한 인간 개별 구조가 모인 것에서 비롯된 특이한 심리가 있으므로 그걸 "서로 하지 않는" 협력-협력 전략으로 합의보자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내부 교란 없이 전체가 다 발달하고 공생 win-win 하자는 협력전략 사회적 합의 소외자도 있으면 안되고 등 포함하여 항상 "자기가 될 수 있단 전제" 를 바탕에 깔고 이끌어낸 합의이나, 실제로는 그런일을 당하는 생김새나 이미지는 정해져 있다. 과학적인 검증은 힘들지만... 그러나 아직까진 기득권이 그런 전략자들이므로 그런자들을 대변하는 사상이 인간사회를 옥죌 수 밖에 없다.  나는 적어도 군인들이나 무력행사자들이 정권을 잡는 것보다 거짓된 것만 아니라면 평화주의자들이 권력을 잡는게 그나마 낫다고 본다. 학살극이나 무식부당이 좀 덜흐르나 아직도 부족함 인도주의와 도덕주의가 잡아야 하는데 우주원리상 힘이 지배하는 지구상인데 그게 참 근본적으로는 요원한 힘든일. 이것도 감지덕지하고 적응해서 사는 수 밖에 없다.)
각자의 심리에 사로 잡혀 있는 "미친상태"라는 측면이 상당히 중요한데 모두가 산위의 깨달음을 갖고 사는게 아니므로 갈피를 못잡고 떠오르는 생각대로 자기 꼴리고 추구하고 본능 나오고 인간구성 뇌구조 생각나는대로 그러는게 사회혼란성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제각각 다른 생김새들처럼 망가진 오류나 짐승이 인간 DNA 구성갖고 태어난 짐승성 짙은 인간 종도 많고... 이걸알면 신이 있다고는 말을 못하는데,
진화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만약 모든 인간이 합리적인 똑같은 생김새에 뇌구조를 가졌으면 그나마 세상이 합리적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는데-적어도 불합리보단 재미없다 하나 그런 조합에서도 다른 재미들을 찾아서 뇌구조 진화하여 촉수대로 누릴 것이다... 그렇게 진화구조가 된다면 적어도 외모에선 불평등이 없으니 불합리한 보상체계 행동없이 강간등 폭력성 제로로-그러나 진화의 한계로 그렇게 되지 못했을 뿐인데 "신이 창조한건 적어도 아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인간의 사상보다 못한 신의 섭리가 있을 수 있는가. 없다고 본다. 이게 현실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왜 누구는 불행하고 누구는 행복한가?" 하는 물음도 그런 인간세계 미친상태 인간 마을 도로에서 생각하듯 그런 그안에 조그마낳게 침잠하여 생각하는 그런 상태이다 만약 생각을 여행한다면 그게 아니라 그런 진화심리
뇌반응이라는걸 알텐데 사회구조 사회구조 하나 그런 사회적 합의나 약속이나 패러다임 변화 근본적인 뇌구조의 저항이 있긴 하나 그런 뿌리적인 폭력성 같은것도 이기고 인도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법을 고착시키고, 그런 새로운 유전자조합들이 역사적으로 나타났듯이 짐승 원숭이를 넘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사실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이 바뀌면 뇌구조자체가 바뀌면 "모두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다. 이런 사회그대로라도 그런 "인간공동체내의 조작" 이므로 그러나 항상 문제는 저항은,
"내가 인간이고 이렇게 작은데" 하나 물리적으론 작을지 몰라도 입지가 좁고 그것이 정신은 그렇지 않기에 인간 모임도 되고, 천하통일도 가능한 것이다.
물론 태생적이고 선천적인 심리적인 인간으로서의 생김새 한계 등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가 하려는 분야나 실천은 지장없는 방해없는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회 변혁적으로 참으로 좋은 환경 정보화 사회의 볕과 그늘의 시대의 초입기이고... 사회가 굳이 변화해야 하는가? 한다면 그 안에 인간으로선 "그렇다." 이다.
그러나 사실은 꼭 변화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안변하고 도 잘사는 인간들을 볼때. 그럼 내가 변화해야하는가? 그건 당연한 기본 전제로 깔고 살아야 한다. 모두가.
그럼 모두가 변하면 어떻게 될까? 사회가 변하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그런 존재이므로 제각각을 변화시키면 모두가 변하게 되고 그건 결국 힘이고 현재까지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나중에는 전략과 힘이 모두 필요없고 인도주의와 평화만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기 원한다. 말하자면 현재까지의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한 것은 마치 궤도에 오르기전 인공위성을 실은 로켓의 추진체와 같다.
 그간 접점들과 길을 알았다. 그럼 어떻게 ? 그건 이런 도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획책하고 계획하고 안변해도 내가 달라져서 잘살아갈지어다. 아무리 모순이라도 거기에 맞는자들은 생존하나 문제는 요즘은 사실 자본주의, 매력 소비성에 맞는자들만 비인간적으로 살아남는 변태사회가 되었는데,
비인간적인 성욕을 품는 사람들-다 그런건 아니나-그런 자들도 다른 사람들이 모르니까 괜찮은 모습을 중심으로 이미지 관리하며 떳떳이 자기 이름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자본주의 민주사회 그런 환경 자체를- 아무리 인간 정신이 강해도 환경자체의 스트레스와 공격도 상당히 저항이 세다. 그러므로 그걸 견뎌내는 개인의 에너지와 리소스낭비 역량 수준이 약한 한사람 정도인걸 볼때 환경자체도 변해야 하는건 맞고 그건 결국 "타인변화" 제각각의 변화와 그 부분의 합들, 소통방식이나 군중심리의 변화가 근본적으로 일어나야 하는건 맞는데 그건 근본적으로 뇌구조와 DNA 의 변화와 직결되고-유전공학의 발달의 필요성-인테리어 영향 기심리학이라 하는게 사이비가 아닌 무의식에 영향미치는 푸른가로등의 효과처럼 그렇게 사람 마음을 바꾸는 건축적인 측면과 사회적 세뇌 밈, 오피니언 리더들의 역할 등의
모든 사회분위기 제도화, 사회화 안그런 자들은 철저히
다시 -무조건 도태시키지 말고- 교화하여 올리는 그런 사회적 책임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교육은 뱃속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집단교육이나 사람이 못하면 로봇이 교육시켜서라도 그걸 만들어 내야만 한다. 현재까지의 상태를 최대한 활용하여...
안그럼 피해자 속출하고 행복할 수 있는걸 행복못하게 하고,
사람들 내부의 못된 심리불씨를 못나오게,
말하자면 잘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양아치가 시비를 걸어서
개꼴당하는 일만큼은 만들지 말아야 할 것아닌가?
평범하고 착한 가족들이 외식하러 번화가 가는데 만만하고 허술하게 보여서 그랬는지-그러나 사실 이런게 이유가 되어서도 안되고 원인 제공을 한것도 아니나 현대 사회는 우습게 보이는 것이 죄라는 원시 약육강식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좋은 환경이다.-양아치들 시비의 타겟이 되어 시비가 붙거나 그런 일도 접했다. 또한 다른 사례에선 양아치들이 지하철에서 줄서있는 한가족을 밀치고 앞줄에 서버렸는데도 뒤의 가족들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그걸 당시 거기서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학생 애들로 봐선 그걸 즐기고 일부러 그런일을 만들고 그랬겠으나. 그게 개인이 아무리 잘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분명히 인간 본능의 파괴쾌락심리가 극대화되는 번화가라든가 인간 부당한 뇌구조와 반응 신체 등 그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힘들것이다. 분명히 사회, 문화, 생물학적 상황은 따라주어야 이루어지는 현상들이고, 인간은 단지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한다.
 그게 개인 행복에도 상당히 중요한 점을 넘어서 한사람이
하는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래야 하는 국가 정책적으로 반영하고 힘을 모아 해야할 그런 과제이고 이에 시비방지법이나 차별금지법, 사람답게 살기 법을 강제적으로라도 만들면 그에 합당한 유전자가 적자생존 되고 의식들이 강제로라도 되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자유보장 자유보장 하다가 마치 자유로 풀어줬더니 갈피못잡고 교장 바뀔때 까지 그러던 갈때까지 가던 교실처럼 그렇게 된다. 그게 사람마음이다. "본능만 쓰라" 는건 어리석은 일이고, 어린애들은 가르쳐주고 형성이 되어야 사람이 되는 미숙한 존재이므로 반드시 사람을 만들어야 되고 아직 진화적으로 부족한 동물에 가까운,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지구적 한계를 가지고 생성되어 살아가는 인간 존재이니 교육과 잘따라오는 자가 있고 아닌자가 있으므로 범죄가 인류 발달과 법때문에 적어졌듯이-원시시대에는 엄청난 범죄들이 있었다. 인간 대다수가 살인자였다.-강제적으로라도 사람을 만들어야할 필요성이 있고 이에 법제화로라도 제정하여 만들어서 도덕의 법제화, 사람만들기의 법제화를 몇세대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래야 개인의 행복도 보장되고 마치 중세시대라면 번화가에서 찢겨졌을 사람도 지금은 비교적 더 안전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듯이 그런 발전은 인간사회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완성시키는 국가적 기획 의지와 노력, 실천은 참으로 중요하다. 민주주의 다수결또한 능사만은 아니다. 잘못된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바로 잡아야 도덕적으로 사람이 되어야만 후세가 편안하고 인류가 존속하여 번영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죽는거 아니라고 나몰라라 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왜 사람이 상품적으로 느껴지고 가학을 코미디로 만든 것도
다같이 즐기면 안되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그건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모든 사람이 강하지 못하고" 여자와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그런 맥락인데 그 이전에 사람성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내가 당하면 안되나 남이 당한거는 즐기는" 그런걸 없애자는 사회적인 합의를 불러 일으켜서
인권 의식과 차별금지법이 따라온다. 대중들은 통계조사상 인권을 상당히 많이 반대한다. 그런 인권 보호가 자기들의
생활 영역을 많이 제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범죄자에게 인권을 주는데 상당히 불만이 많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한다. 부당함을 분리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민주주의로 사람을 뽑고 법을 만드는 체계 자체가 많이 오류가 있지만 현행상 그것외엔 그다지 방법이 없으므로 그것만으로 끝까지 해야 살아남는 그런 형국이 아닐런지 싶다 사회운동 자유발언이 가능한 이유도 법이 있고 군국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나 사회사상이 민감한 것은 그게 군인을 모으고-현대같은 게임과 쾌락에 찌든 소비성 사회에선 상당히 힘들겠으나 과거라면- 국가를 바꾸어 공산국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런게 가능했던 상태이므로 "제각각의 인간은 그다지 가치가 없다." 고, 이미 쓰레기인 진화생리적 뇌구조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거기서 짐승성을 다루고 짐승성을 억제한다? 그런 상황에선 쉬운 일이다. 그냥 감방에 집어 쳐넣거나 제거하는걸로 족하다고 본다.
다만 의미있는건 "사람구성" 인 마음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복"인데 그것만은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여기에 짐승성 제거와 그런 방해꾼들의 제거의 사명이 있고 분명아름답진 못하고 파괴하고 육욕적인건 맞으니-사실 상대주의에선 그런 파괴성도 쾌락이니 인정하고 어차피 인간이 미생물인데 뭐 어떠냐" 식으로 주장하나 그러지 말아야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사람성"이 나타나면 그건 어느정도 아무리 상대적인 우주라도 절대적인 의미가 부여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이유로 마치 이 세계가 파동인데 입자로 보이듯이 그런 구조성의 미지세계같은 그런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쩌면 이자체가 모두 기록될 수도 있겠다. 석학들의 해석처럼 시공간 자체에서 필름처럼 시공간이 넘어가듯이(아원자들의 운동을 볼때) 그러므로 "사람성" 이 나타난 우주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단지 질서유지 의 기능의 연장이 아닌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그것도 인간사이해의 연장이 아닌 어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없으면 말고...
그래서 사람성을 지키고 사람적인 세뇌를 하는게 맞다고 보는데 공의를 찾고 정의를 찾고 경험론적으로 인간입장에서도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다.
복잡한 상황은 있을지 몰라도... 그리고 인간은 인간이고 짐승은 짐승이고 삶은 삶이고 우리는 우리이고 행복은 행복이다.
다만 이 행복을 놓치지 말고 평생을 이어갈지어다. 한번뿐인 인생, 최대한 자유를 발휘하여 소중히 살찌어다. 내가 아니면 인생과 이 도시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으로 보면 불쌍하고 짐승이 되면 알바없다.
그리고 야누스도 존재하고 애초에 사람성 짐승성이 극대화 되어 태어난자도 존재하나 인간으로도 짐승으로도 길러지고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의 숙명이고 뭐가 맞는 지는 정해져 있지 않으나 나아갈 길은 사람성이라고 명확하다. 누구에게나 전인류적으로 볼때 인간이 사람이란 명칭을 붙이고 싶다면 말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그다지 인도주의가 필요없는 세상같다. 길거리 일어나는 행태를 보면 아줌마부터 이미 자기들은 힘이 있다 생각하는지 인도주의가 오히려 갈구치고 거치적 거리는 아주 극소수 일부 힘없는 가난한 가정만 필요한 것일지도 이래서야 혁명이 되겠는가.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시비가 상당히 많았다. 사람들끼리 싸움도 종종 일어났다.

그런식으로 오히려 세상이 이미지 감각화 지나치게 조건주의화 되는게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이전엔 맞다고 주장하나 보기엔 불편한 그런일들이 많았는데 이전엔 넘어갔다면 지금은 넘어가지 않는다 많이들.
흔히 처음본 자들은 외모와 이미지화된 회로로 처리한다. 그리고 인간뇌로 반응한다. 그런 인간의 일부 부당한 것을 현대 사회는 이미지를 가공하여 판매하면서 강화 한다. 사실 이런 상황은 바꾸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런 상황에선 인도주의가 인간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고, 쓸모가 없다.
바람직하지만 지키기는 싫다고, 몰라서 그러냐고, 나와 뭔 상관이냐 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까고 말하면 결국 바꿔야 하는건 문제있는 인간 뇌구조인데 오히려 유전공학적 접근이 더 적합할 지도 모른다. 최면보단 인간 디엔에이 개선 바이러스에 감염되는게 인간을 더 쉽게 바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간 행동은 사회적인 개선의 한계를 늘 안고 있고, 그것을 이미 뛰어넘어 있는 진화와 유전자를 무시하지 못한다. 법과 감정은 분리되어야 한다지만 사실 법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이므로... 법도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건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건 절대로 아니다. 다수의 행복이 틀렸다면 다수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바뀔 수 없다면? 그렇다고 법이 바뀌어선 안된다. 병적인 상태에 맞춰주는건 틀린 것이다.
모두가 강간이 맞다고 하면 강간해야 하는가? 그건 철학에서 오래전 토론이 있었던 문제다. 당연히 결론은 "아니다."
좀더 가벼운 현실로 돌아와서-사람들은 쉽게 등돌리고, 쉽게 배신하고 쉽게 기대를 저버린다.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나 대다수가 그렇게 행동하고 법에도 저촉받지 않는다. 또 그런게 현재 법감정에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만약 지금 댓글을 달고 있는 수많은 악플러중에 몇사람이 배심원이 된다면? 생각만해도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한 상황이 예견된다. 배심원제란 사려깊지 못한 제도이다.

진심으로 하는데 정작 결과가 좋지 못한 거짓이 오히려 효과가 좋은 그런 딜레마 상황이 있다. 사실은 시간과 공간에 사람이 생겨나 적응하면서 생긴 오류 인데 그것도 인간이 해결해 나갈 과제이다. 사실 근본문제는 진화적인 열등한 뇌에 매여 이해심이 결여된 사람마음이 덜 발달한 문제 아닐까. 모두가 반대해도 어떤 사람은 이해하는 것 같이 굳이 본능을 통하지 않아도 순수 자유의지로도 가능하다-다만 계기나 인과가 필요할 뿐이다. 형성된 마음의 조건-마음을 그렇게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예수님은 처형당했지만 현대에 그러는 일은 막아야 할텐데 벌써 2000 년이나 지났지만 개선된건 아예 없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활하여 구원을 약속하였음에도... 신은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볼 문제이다.

"예절을 지켜야 한다." "왜?"
이것도 딜레마 상황... 사실은 그냥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이란게 생겨난데서 발생한 문제이나 지난 걸 돌릴 수 없는 인간 자체의 한계성에서 발생하는 정언명령이다.

기수열외를 예로들면 이유 불문하고 인권은 존재해야 한다. 공평해야 하고. 그것은 사람이 왜 생겼나? 사람을 없앨 수 없기에 존재하는 절대도덕이다.

누구나 불이익을 받고 싶어 받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인과의 원리는 있다. 그걸 알건 모르건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많다. 그러므로 존중해야 한다. 이유는 단지 그것 뿐이다. 모든 사람이 가져야할 사회적 합의이고 강제로라도 지키고 법제화할 이유인 것이다.

차별금지법도 이에 속한다.

그걸 개개인에게 맡기면 참극이 많이 일어나고 단편적인 해결이라 국가가 반드시 나서야 하는 부분이다. 그게 법의 시작이고

문제는 일단 1.본능이 저절로 그렇게 나오는것 2.강화되는 것 3.그걸 막을 브레이크가 없는 것(특히 대부분 인간은 브레이크가 없을때 계속 폭증된다) 4. 그걸 막을 최후의 브레이크인 가족과 종교 따위가 붕괴되어 가는 것 전체사회적으로 가르쳐야할 사회 주도층까지도 누구하나 도덕을 책임지고 통제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 그런 기관[체계시스템]이나 제도체계가 법은 미약하고 구석구석 닿지 않고-그런 자들 조차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에 자멸 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로 인간은 짐승과 신이 한몸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모순성을 가지고 프로테우스처럼 인생을 허투루 살며 자멸할 운명을 타고 났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아무리 착하게 자라도 인간은 인간이더라. 그래서 법이 있는 것이다.

운은 있다. 그러나 자유도 있다. 지금까진 부당하다. 그러나 바꿀 수 있다. 자유도 카오스 원리의 일부이다? 자유도 운의 일부이다? 인과의 노예다? 사실은 이런게 억측이다. 자유도 있을 수 있는 또다른 구조일 수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했다. 모든걸 다 부정해도 자기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현재 시점의 진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내가 행하는거 인식하는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물질구조에 영향을 받고 자각이란 과정도 필요하고 인과나 운이나 여러가지 복잡한 조건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자체가 착각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게 망상일 수 있듯이 일단 자유가 있다고 해본다. 그럼 얘기가 안되니까... 다른게 의미가 없고.

덧붙여 분석하기만 하는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정보가 과다일때 그냥 직관이 느껴지고 펼쳐지고 보이는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냥 보도블럭만 걷는데 신이 만든거라고 느끼듯이 그런게 있다. 그런걸 잘 활용...

시간이 어쩔 수 없이 계속가고 되돌리기 힘들지만 단지 그것이 부당할 뿐 시간에 의지하여 많은 부당함을 개선하여 왔다. 진화도 되어왔고...-시간이 계속가고 되돌릴 수 없다는 부당한 상황이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풀려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자연은 부당한 단면을 화석의 단층처럼 보여주고 있는건 아닌지-인간은 다른 관점에서 또다른 합리를 볼 수 있을런지. 설령 합리가 아니라도 현재 합리를 완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나마 불합리한 시간의 흐름과 공간, 지구라는 장소위에서 현재 시점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런지.

'조금만 더 일찍했더라면...' 식의 후회는 이런 불합리함 속에서 성립이 안된다. 시간은 지난건 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부당함이 오히려 어쩌지 못하니 그나마 여기다가 희망을 거는 것이고, 신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니 그의 뜻이겠지.

우주에는 프랙탈 구조라는게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부분은 전체를 반복한다는 구조인데, 상위적인 어떤 뜻이 있을 수도 있다. 부분이 불량같아도 전체적으론 합당할 수도 있고, 또는 부분이 불량이고 상위도 불량일 수 있다. 인간에게 인과가 있듯이 신에게도 있고, 인간에게 종교성이 있듯이 우주에게도 종교성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우주에게 종교성이 원래 있어서 인간에게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구상에서 종교를 가지는 인간의 비율은 역사상 비슷하게 유지가 된다고 한다. 아마 유전자 탓일 것이다.... 우주도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우주는 단일 우주가 아니라 사람처럼 여럿이 모이고 상호작용한 결과물일 수 있다...)
현재 인간 뇌의 모양이 이런 것이고, 지구위에서 대칭성이 나타나고 현재같이 시간이 가고 있는 중에 활동하는 식으로 나타나고-시간성 자체도 왜 생기었나? 하는 시간의 방향성은 초기의 사소한 실수일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이유에서 비롯될 수 있고, 인간에게 있어 프랙탈로 인해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인간 생체, 정서적 기능의 이상이나 무너짐 같은 것인지. 그 후 병적인 상태가 나타나는.....

프랙탈 구조로 볼 때 우주도 인간처럼 살기위해서 존재한다. 본능도 있고, 어쩌면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또는 그걸 알기 위해 인간이란 부속품을 발생시켜 생각하게 하고 관찰하였는지도 모르고..... 마치 신이 인간 세상을 관찰하고 발전해갔듯이... 성경상으론 신은 심심하고 외로워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마치 인간이 TV를 보고 대리만족과 즐거움을 느끼듯이 신도 인간을 그렇게..... 다큐멘터리 또는 영화, 드라마 보듯이 신의 TV... 지구...... 홀로그램 우주도 신이 쏘는 전파...... 그 안에서 배역을 맡고 연기하는 인간.... 액자식 구성인 영화, 드라마.....

우주의 구조를 논리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대략 인과가 지배하는데 만약에 신이 인간이 햄스터의 행동양식을 전부알고 예측이 되어도 햄스터의 다양한 반응을 보고 기뻐하는 것처럼 그런 인간과 흡사한 구조를 가졌다면, 그런 논리적인 관점을 탈피해서 감성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렇게 운이 지배하는 거의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카오스로 존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인간세계는 신의 여흥을 즐기기위한 놀이터인 것이다.
인간이 햄스터를 보듯이 신도 그럴 것이다..... 설령 예측가능하고 통제가능하고 그래도 부분적인 햄스터의 반응에 즐겁듯이. 그런식으로 반응.

조건이나 동물 심리에 따라 움직이고 언뜻 복잡해 보이나 원리가 지배하고... 해도...

사랑을 알고 해도 사랑이듯이. 그것은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하고 알고 있어도 실제로 가서 느끼면 풍광이나 기온등 다른게 느껴지듯이 마치 그런

인간에게 두뇌가 있듯이 우주에도 두뇌가 있고 아카샤의 기록이라는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인간들의 기억들이 한평생 지나면 역사로 남듯이... 우주도 기억하고, 무언가를 내기 위해 발전하고... 스스로 한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시간이 내는 것
그런데 우주가 그런 끝에 남는건 뭘까? 인간의 죽음과 비슷한 것일까? 우주는 스스로 자기 존재의 방향과 열쇠를 찾고 있는 것인가...

마치 서버의 관리 권한을 획득하듯 우주의 관리 권한을 획득할 수 있다면... 사실 신이나 신의 아들도 개선이 필요하다. 다만 할 수 있는 힘(에너지)이 없을 뿐이다. 그런 간단한 방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프랙탈 구조로 추측해 보면 우주도 인간처럼 세포자살사나 자신 자체가 자살하는 시스템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개미가 생각을 해도 우리에게 전달하기 힘들듯 단지 우주의 뇌에 전달하기 힘든 것일 수도.

(인간이 단지 잘못생겨난 우주입장의 암세포라고 할 수 있어도 어쨌건 생겨난 과정의 원리는 존재한다.)

인간세계가 다원화되고 경쟁하며 공존하듯이 우주도 그럴 수 있고, 인간이 타의에 의해 생겼듯이 우주도 그럴 수 있다......

우주를 낳은 거대한 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 그 시스템을 또 낳은 거대한 시스템이 있을 수가 있다..... 그것이 사람에겐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불과 백년을 살아가는 사람에겐 자신의 충족이 중요한 것이니

그러나 근본적인 우주의 구조를 알아내면 인간에게 유리한 어떤걸 얻어낼 수도 있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얻어내는 것보다 어떨지......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있듯이 우주도 그럴 수 있다... 마치 별의 생애처럼...... 인간의 정서가 단지 죽으면 끝인 허무한 것일까? 마치 물을 못찾아 슬퍼하며 죽는 코끼리처럼..... 아니면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도살당하는 동물들처럼..... 만약 절대적인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 하나하나의 억울함을 들어주기 위한 우주의 기억장치나..... 그런게 없다면 불합리하지만 역시 인간 사회처럼 없을 가능성이 높고, 인간처럼 죽으면 끝일 가능성이 높다. 사후세계란건 인간의 바람일지 마치 헤어진 연인이 돌아오길 바라듯 인간 중심의 생각일까 그럼에도 믿어준다....... 사실 귀신같은거도, 인간의 의식작용도 진화와 뇌의 결과물이라는게 정확하나 신이 그렇다고 주장하니까. 믿어준다...... 왜냐하면 그런 물질이나 구조 자체도 신의 방식이니까 신이 그런거까지 통틀어 전환이나 신호로 영체를 만들수도 있다고 보니까..... 다른 방식으로-우주와 물질을 만들고 구성했듯. 신은 인문학이나 세상살이나 자기 창조물인 인간마음에 대한 이해는 미숙하나 과학에는 빠삭하고(이것도 성경상으론 과학마저 엉터리지만 현실 생물을 봤을때) 믿어본다. 마지막 믿음을 저버리지 않길........

그냥 만들고 적당히 장단점을 붙이는 식일까. 갈치가 몸이 길고 운동을 더 정교하게 하기 위해서 가시가 많다고 하는데 인간이 먹을때 불편하게 하는 것도 있다...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을 수 있는데 마치 의도한 것 처럼 얻어걸리는 식의 해석...

마치 생물이 진화하기만 했다... 하지만 사실은 퇴화도 일어날 수 있고 그런 증거가 많이 있다. 그냥 변화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발전한건 문명인거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단지 적응한 것에 불과하고.....

뇌기능을 볼때도 원시에 시력이 더 좋았다고 한다. 추상적 사고력이 발달했다고 해서 꼭 진화한 것만은 아니다.

암석도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 그런데 꼭 생물체들만 진화를 해야 하는가? 인간 관점을 벗어난다면 단지 DNA 가 변화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본질이다. 세상의 존재엔 상대적인 게 있다. 우주자체도 퇴화했을 수도 있고.......

잉카문명도 단지 전달을 못해서 그 후에 전수되지 못했다. 인간 입장에선 뛰어난 것인데... 시간에 방향성이 있지만 그것이 꼭 진보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냥 적응한거 아닐까. 그 시대에....

그리고 생물체의 생식... 그런게 생겨난 이유... 대칭성이 생긴 이유와 맥락을 같이 할 것...

날카로운걸 날카롭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입장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물질의 역학관계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런데 단지 자기보호나 생물개체 입장에서 자기 관점에서 느끼는 것 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의 속성도 동시에 느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이면서도, 자기관점에서 느끼면서 진실을 인식한다-마치 진화적으로 생존시에 영양가가 되는 것을 '맛있다' 고 인식하고 사과 빛깔처럼 탐스럽게 느끼도록 진화했듯이-근데 그게 우연인지 뭔지 정확하게 본래 본질과 맞아떨어져 결국 인간이 인식하는게 진리이도록... 설계되었거나 발생되거나 프랙탈로 이입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카오스 인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감성도 그런 것일까...

또 우주의 아름다움이나 음악의 아름다움도.....

적자생존도-그러나 마치 인간 DNA 조합에도 오류가 발생하듯이 여기도 오류가 발생하여 타 개체에 해만끼치는 불합리하게 파괴하는 성질이나 무의미한 것도 적자생존이 발생.....

있는 그대로를 볼때 주역... 프랙탈, 카오스 원리와 결합하면.... 뭔가 느껴지긴 하는데 결국 보여지는 현실 상태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그게 현재니까-인간이 그걸 제대로 관하고 있다면.

인간의 발달... 인간 세상에 유익한건 진화상 쾌로 발전... 반대는 불쾌... 그러나 그게 왜곡 되었고 마치 엔트로피 증가처럼... 인도주의나 자기 인식, 추상적인 여러 발전은 비교적 최근의 일들....

만약 인간이 아니었다면 무의미하고 그냥 약육강식에서 만족했겠지만 어쨌든 그런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어떤 이유에서건... 앞으로 인간이 아닐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사람은 필요에 의해 상황적인 필요를 인식하고(마치 생물체가 빛을 인식하고 거기에 대한 DNA 가 스위치가 켜져서 활성되듯이) 진화되거나 결정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도.

인간은 우주의 도구나 부분이면서 주체이기도 하다-마치 아원자처럼...

이런건 써서 무엇할까..... 행복하지 못했는데. 사람으로써 행복하지 못했고......

정작 사람으로써 중요한건 백년안의 인생일텐데. 모두가... 당대에.

어차피 사람들은 조건에 따라 반응할 텐데. 인간임을 넘어서지 못하고.......

'진심' 이 사라졌다고 하나 그 사람마음의 진심이란 것도 불합리한 진화심리의 얽힘에 불과한 일도 많다...

사실 부정적인 것들에 가려져 긍정적인게 발견이 안될 뿐 사실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 수 있는데, 그것마저 못누리게 오염시키고 해끼치고 파괴시키는거 역시 부정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은 다소 선천적이다-무지에서 비롯되는 악행도 많고 이건 구조상 인간책임은 아니다 도대체 누가 알려줬다고? 양심이란게 약한 자도 많고 성장과정이나 본능적 질투가 강할수도 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다. 나치든 세계 적으로도.... 그러나 현재 시점에도 해결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이 너무 많다-근본 원인이 해결이 안되 여전히 미래에 그럴 소지가 많다. 그러나 나에겐 권한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당장 법을 바꿀 힘도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걸 얻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어떤 시민이라도 합리적으로 입법하고 찬성하여 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으면 한다.

언젠가 적은 글이다.


나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인간들이 나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받고

짓이겨지고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다 보았다.

작은 행복마저 짓밟고 무시하고 조롱했으므로

나는 내게 가혹하게 대했던 인간들을 올바른

세상을 위해서 응징하였다.

그리고 착하고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푸른 하늘을 보며 맑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법이 해줄 수 없고 오히려 정치가들은 더

악하므로 나는 스스로 세상을 멸망시키는

악마를 대신하여 복수를 하였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만약 착한 사람들이 당하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고 집앞 개천에서 가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다른 사람을 응징한다는

생각은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우리에게 가래침을

뱉고 경멸하며 나이트와 클럽을 가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벌을 준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얼굴이 못생기고 돈이 없다고 무시하는

얼굴과 막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착하고 선량한 인간이 가난한 행복을 누리며 살수 있는

세상이 정상인데

악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려는 사람들만이 거리에 마음껏

돌아다니고 해를 끼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세상을 깨끗하게 뒤바꾸기 위해 깃발을 꽂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모두 없애고 예의와 도덕이 살아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심판의 악마로 대신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질 지라도 그러고 싶었다. 나는 행복을

놓쳤지만 나를 닮은 힘없는 사람들이 행복을 마음껏 나눌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사실 안에서는 그것이 방해되고 당시에는 정보도 없어 해결하지 못한다. 나도 해결까지 십년이 넘었다. 인간은 어쩔 수 없다. 기득권의 방식을 강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계기로 시작되고 인과로 퍼진다. 그걸 알지만 효과적이진 않아 최대로 노력할 뿐이다. 사람으로써......

사실 가족도 질투와 애정과 증오가 섞여 있다. 남보다 더할 수도 있다. 그것도 인과나 사회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다만 어릴때나 정보나 심리나 여러 가지 영향으로 오만 풍파 잔혹사가 있을 뿐....... 정이 안드는 가족조차 있는건 사실이다. 또는 정이 떨어지거나..... 그럼에도 그 모든걸 이기는 것은 사랑이다.

가족과 마지막 소풍을 갈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사실은 행운아다.

피해자가 문제겠는가. 문제의 시작은 지구인 것이고 당대의 사람의 마음 인 것을.......

인간이 원숭이가 스트레스 받아 변화했다듯이 그 변화의 시작이 될만한 도화선. 그것이 필요하다.

그냥 죽어가건 일을 하건 인간에게 유의미한것이겠지만 인간을 벗어나선 무의미하고 그것이 인간의 최선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힘없는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틀린 세상이라는 것을 신이 보고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주어진 행복이 틀리다." "잘난 사람이 대접받는다." 당연시 여겨지는 이런 부당함이 사라지는 곳이 천국이다. 서로가 이유없이 사랑하는 곳이 천국이다. 고민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는 곳. 조건없는 사랑... 그것이 없다면 불완전한 세상. 여전히 치사함과 비열함이 남아있는 사람사는게아닌 세상. 진정한 사랑이 있는 곳이 천국.

사람을 미워하는건 사실은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 그것도 이유없이. 그러나 사실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건 이상주의이지 현실이 아니다. 당장 현실에서 필요한건 이런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도 너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통찰력없는 자신의 편의대로 관리하고나서는 버려버린다. 혹은 아무 능력없이 어중이떠중이 자기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변화시키길 원한다.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윗사람들은 자기가 관리하기 편하게 어중이떠중이 쇄뇌받은 가치관을 주입시키는데 이게 행복을 결코 보장해주지 못한다. 사실은 속고 사기당하는 것이다.
약자는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
자기능력이 없는 자는 반드시 나중에 망하게 되어있다. 사람마음은 믿을 수 없는 것이기때문에 내 처지가 바뀐다면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능력대로 자기가 행복한 것을 해야한다. 그래야 행복한 인생이 된다. 어차피 늙어서죽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아직 까진 이런 것이 유효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끝은 사랑이다.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건 역시 사랑이다.......

나도 신경쇠약으로 제대로 못산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걸 회복해서 다행이다. 십년이상 걸렸다........ 그래서 찾은게 사랑이다.

이 세상이 그냥 유전자 공장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거기서 우수한 애들에게만 먹이를 준다. 지금까지의 시스템은.... 그렇게 비인간적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라면 너무나 건조할 것이다...... 바꾸어야 한다. 사람은 사람같은게 있기에 따스해진다. 없어도 만들어야 할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래야 사람이니까. 아니면 원숭이다. 사람이 아니다....

사실 행복은 어느시대나 누구나 마찬가지다. 다만 흐려질 뿐이다. 말초만 집중하지 말고 말초도 끌어안자. 행복의 중심이 다른데 꽂혀있다... 행복의 기본은 사람이고 사랑이다.

과거는 그사람을 증명하지 않는다. 사람은 거기서 거기이다. 다 똑같다. 깨닫고 미래가 그 사람들을 증명한다.

지금부터 자각한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그간의 선택은 현재를 결정하지 않았다. 무지한 선택이었기 때문.

잊어도 좋다.

그것이 구원의 원리.

사실 누가 누구한테 사과하라 하고 다 똑같이 더러운 사람끼리 뭔 사과냐?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랑을 만든다면 필요한 것이다. 연쇄살인자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생겨난다. 종자(유전자)는 사실은 다를게 없다. 똑같이 원숭이과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이 생겨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더러운 것에 역시 사람의 마음이 반응하여 생긴 결과물이다. 그냥 화학 반응의 결과물이지 사실 일반인의 더러운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연쇄살인자도 일반인의 마음 속에서 태어난다. 오죽하면 진화생물학에서 진화된 형태를 싸이코패스라 하겠는가. 그게 옳다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적응된 한 형태라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방향이지만 현대 사회가 낳은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 아버지는? 당연히 사회이다.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일반인들이 알게 모르게 수없이 저지르고 할퀴고 상처주는 악행들.... 그런 것들이 누군가의 토양에 뿌려져 범죄로 나타나게 된다.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DNA 는 언제나 사회환경과 맞박수를 친다. 부정적 본능을 원시 사회보다 더 자극하고 극대화시키는 사회환경에서(물론 억제법도 극대화 되었으나) 그 부정적 본능의 화신인 범죄가 활성이 안되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정보는 겪어볼 수록 사정을 잘알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겪으면 통찰력이 생긴다. 직간접으로... 편협하지 않게 전체정보를.... 많이 겪으면 빨라지고 대사가 좋아진다.
쓸데없는 말을 반복하는건 아니다. "메틸화" 라는 무기가 있다-반복은 메틸화를 도운다.

한가지 안타까운건 내가 정보를 겪기전 수많은 오판들, 그리고 손해본 것들.... 너무 아깝다. 나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그런 것 같아. 글로 정리하고 이렇게 주춧돌아닌 주춧돌을 남겨본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건 어쩔 수 없다 그간 진화의 역사가 글몇자와 말몇마디로 바뀔까. 바뀔 수도 있지만 그럼 지구가 이러지 않았을 것 핵무기가 있어도 안되는게.-물론 이런 것도 마음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부당한 본능과 이런 오류 투성이 세상 진행-신의 한계일까, 아니면 신의 시험인가 또다른 무언가인가.

답을 알려주는 자가 없다.

근데 앞서 무조건 적인 사랑에 대해 말했는데, 사실은 이런 오류투성이 세상이나 인과나 조건반응에 의해서도 진실한 사랑이 있다. 진짜 만나기 힘든 우연이 겹쳤을 때 진실된 사랑이 나타나는데 마치 자연적으로 핵폭발이 일어나는 것 같은 것이라 희귀하면서 불멸의 영원한 사랑일 수 있다. 그때만 일 수도 있으나 그게 죽기전까지라는 전에 끝나지 않는다는 불이라서 그렇다...

근데 사실은 이런 것도 그 개인들이 그런 구조라서 상대적으로 그런 것이지, 만약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자가 여럿이었다면? -유전자끼리의 반응부터...- (진실된 사랑은 특정한 유전자 조합들만 하라는 원리가 있어도 그런게 유형이 다양하고 여러이유로 많이 번식되었었다면?) 그러면 사뭇 달라졌을 것. 양상이...... 그런 상대적인 문제가 있지만, 어쨌건 아니니 그건 우주 자체의 인과진행의 절대성도 고려해야 할듯.

그럼 이런 오류투성이인 인과속에서 귀신이나 영혼이나 사후세계도 자연적으로 있을 수 있잖아? 마치 지구나 인간처럼... 그런 발상을 하게 되었다.

영혼이란 무엇일까, 우주의 밖엔 무엇이 있을까, 사후세계란 존재하는가


1)우주의 밖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세계를 벗어나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가면

드넓은 우주 공간이 존재한다. 그 우주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나-일상공간-하늘-지구-태양계-은하계-전체우주로 이어지는

속에서 나란 존재는 어떤 위치일까?


우주의 밖을 명상해보자. 그리고 그곳을 알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보자.

우주의 밖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주밖 존재로부터의 계시에 의한 것이고, 하나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먼저 사람의 노력으로 알아보자.

과학에서 밝혔듯이 우주의 근본은 파동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파동은 마치 생명력을 가진 사람처럼 비선형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단순한 무생물인줄로만 알았던 흙덩이도 사실은 생명력이 가득한 생명의 기운으로

시작이되고, 구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만들어 낸 원리는 사람의 것처럼 합리적이다.

지적인 어떤 존재의 원리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현대 과학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이다. 의견이 많을뿐 해답에 도달하지 못한다.



깨달은 승려들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우주밖에 갈 수 없다.

여기서 행운적인 사실이 있다.


지적인 원리처럼 인격적인 우주를 품고 있는 존재가 우주구석구석에

그의 존재를 알려주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신의 계시이다.


2)사후세계


사람은 죽은 후에 어떻게 될까? 오래된 미스터리이다.

그냥 죽은후에 육체가 이 땅위에서 사라져버릴까?

그러면 이런 복잡한 정신과 화면은 왜 있는것일까? 여러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받았다. 바로 그토록 기도하던 신으로부터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원리에 따라 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도가에서는 이를 선지라고 한다.

태어나기전부터 알고있었던 지식이다. 원시시대와 고대시대때부터 인식했던 것이다.)


'무언가 완전한 존재가 우주를 지탱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는 시작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을 한다. 사람이 이런 원리에 의하는 것은

신이 그런 인식이 나타나도록 설계를 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오류가나면 마음의 눈이 흐려져 신과 사후세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우주를 시작한 신에 의한 계시로 그 해답을 얻는다.


그것은 바로 수천년동안 이어져내려온 전세계적인 종교에 대한 계시이다.


우주를 주관하는 신이 직접 개입한 종교는 기독교외에는 없다.



(불교는 사람이 시작한 종교이고 도교,태극도 따위도 마찬가지이다.

무속신앙도 잡신으로부터 시작된 종교이다.)




3)영혼



영혼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 개인의 운명을 흘러가게 하고,

두뇌를 움직이게 하고, 신체대사를 조절하게 하는 작용에 관여하는 최초의 운명에너지이다.


그 영혼은 우주가 시작할때부터 원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눈에 보이지않는 전파나 '원리'처럼 우주에 흘러 현재까지 도달했다.


사람마다 고유의 '운명'이 있다.

이것의 원리가 바로 '도'이고, 그 '도'에너지가 바로 '영혼'이다.

생각을 시작하게 하고, 인간 주체로 서게하고, 모든 생명활동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는

인격적인 에너지이다.


말하자면 물질인 두뇌와 함께 움직이고 세포내 물질들과 함께 움직이는 우주의 흔적이고 원리이다.

이것은 부모로부터 사람의 영혼으로 계속되었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시점에도 지속이 되었고, 그 수정란에도 관여하여 따라다니고,

아기가 되어가는 그 순간순간마다 함께 성장해온 '영혼'이고 도이고 운명의 원리이다.

따라서 각 개인마다 하나의 운명을 가지고 하나의 영혼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출생'이란 중대사로 현세에 '영혼'도 따라서 빛을 보게 되고

살아있는 동안 두뇌와 육체 물질과 함께 인격적인 에너지로써 그림자처럼

활동하다가(자식출생시에 그 영혼이 다른 영혼을 만들어낸다. 영혼 또한 '낳는다.'

-살아있을때 영혼이란 존재는 두뇌,육체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인격적인 에너지이다.)


'죽음'이란 중대사를 거쳐 비로소 육체와 분리되어 다른 순환을 겪는다.

그것이 바로 사후세계로의 진입이다.



4) '운명'의 다음


죽음과 동시에 육체와 두뇌에서 붙어 활동하던

-원리나 전파와 같은 형태의-인격적인 에너지 '영혼'은

죽는 순간 육체로부터 분리가 되어 육체 밖으로 뜨게 된다.

이때 영혼의 상태는 3자가 보기에 '운명'이나

'우주의 진행원리'와 같은 보이지않는 실체와 같이 느껴지고

(혹은 새로운 형태의 파동이나 물질이 아닌 전파),

영혼 주체 입장에서는 자신의 두뇌 활동이 정지되고 육체가 사라진

사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낯선 존재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현세 삶이 이어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른점이 있다면, 바람에 낙엽이 흘러가듯 시냇물이 흘러 바다로 나아가

듯이, 시공간흐름의 원리에 따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는 깊은 기도와 명상으로 자신의 몸속에서 활동하는 존재를 느낄 수 있다.>




5) 영혼이 이동하는 곳



영혼이 이동하는 궁극적인 장소는 다른 차원의 우주이다.

영혼이 되면 육체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영혼의 생명력있는 제한적인 활동과

(이를테면 공간에 붙어 흘러가는 것) 현세 시공간의 원리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하는 것 정도를 할 수 있다.


간혹 이것을 벗어나서 지상에 남아있거나 사후공간으로 가지 않는

영혼이 있는데, 이런 존재는 생전의 기가 너무 강하여서 시공간의

원리도 어쩌지 못하거나 지상에 집착이 너무 강해서 머무르려는

기운이 있어서 그렇다.


이런 것이 귀신이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것과는 달리, 살아있는 사람은 우주의 구조상

귀신과 접촉할 수 없다.




6) 영혼이 이동하는 곳의 모습



이곳은 천기에 해당되고 우주의 비밀이므로 다만 상징적으로만 알 수 있다.

계시로 숱하게 받아왔던 천국과 지옥이 그 상징의 대표이다.

또한 불구덩의 고통, 찢기는 고통 따위도 실제로 불과 기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차원만의 특징이다.



7) 계시


영혼이 이동하는 곳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바로 그 이동하는 법칙을 만든 우주밖 존재에 의해 결정이 된다.

그것은 바로 신에 의한 결정이다.

그 신의 말씀이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이 우주를 만든 주관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의 원리에 따르지 않으면 틀림없이 그 결정이

나타난다.


계시에 따르면 생전의 삶은 신의 시험대이다. 성경을 믿고 안믿고

조차 신의 시험이다. 살면서 수많은 테스트가 존재한다.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사후에 상위차원의 공간, '천국'이라 상정되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이라 상정되는 최하위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곳은 영혼의 소각장이다.


우주의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간의 일상을 벗어나 공중으로 올라가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공간으로 가서

달을 지나고 태양계를 벗어나고 은하계를 벗어나고 그 무한의 공간을 지나

더욱더 위로 위로 올라가게 되면 우주의 가장자리를 벗어나게 되면 무엇이 있을까......


자신만의 다른 세계.

사람마다 고유의 파동이 있다. 유전자같은 허술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사람이 태어나서 현재까지 흘러오게한 운명의 원리와도

같은 카오스적인 우주의 대원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영혼의 생성과 존재까지도 가능하다.

그 신의 원리에 의해 그 사람에게

나타나는 그 사람만의 환상이 있다.

그것이 현재 물질계에서 느끼는 그 사람만의 명상속의 상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물질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사람만의 것이지만 우주의 정신-우주도 프랙탈 구조로 인해서

인간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에 그것이 그대로 존재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신이 보신다.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 다르고 자신이 상상한거라 느끼지만

그것이 사실은 각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우주의 정신계에 존재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동화속의 왕자님과 공주님처럼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 좋겠는데..

현실에선 그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엔 이미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 다만 현실을 넘어서 마음의 상태를 바꾸어 다른 주파수의 세계들과 진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념계인데 그곳에서 현실에서 처럼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의 주파수를 바꾸는 것이다.

사람의 살이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고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빛으로 부터 시작된 진동이 원자를 만들고 그것들이 모여 세포를 만든 것이다.

두뇌작용도 아주 세밀하게 살펴보면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눕는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이제 내 방법대로 두뇌의 주파수를 조절한다...

그리고 가장 깊은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꿈의 세계를 넘어서 또렷이 체험을 할 수 있는 주파수대에서

원하는 꿈을 체험한다.

이것은 현실보다 강렬하다.

이 과정까지 갈 수 있는 것이 비결이다.


이세상의 상태는

우주의 시스템 전체로 볼때

물질만능주의,외모지상주의,쾌락주의 등 지엽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및 과다한 추구로인해 불필요한 경쟁이심화되어 병폐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상품화와 인간성을 무시하고....

이것은 우주의 보전으로 볼때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거해야 할때가 왔다.


그역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뜻을 가진 인류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으므로 내가 먼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족들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세상을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낙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병폐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임무이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을 무시하고 짓밟으려하는 잘못된행태를 바로잡고

우주의 질서를 바로 세운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지엽적인 쾌락의 사소한 것이 아닌,

사람과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 내면의 행복과 (인간성의 회복) 진리의 추구와 깨달음,

그리고 인간 모두가 다 잘살 수 있는 지상낙원의 건설임을 일깨우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구체적인 행동들의 합력으로 이룰 수 있다.

자기 DNA 의 지배자도 될 수 있다.

한계는 있겠지만

Q. 얼굴만보고 욕을 하는 것, 이것이 올바른 것인가.
돈때문에 생명을 죽인다. 이것이 올바른 것인가.
인간은 왜 이렇게 태어나는 것인가?

우주는 카오스에 의해서 돌아간다. 그런데 과거,현재,미래라는 것이

우주의 특정부분에선 모두 한곳에 공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그것이 바로 블랙홀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힘에의해 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세계가 시간이란 것에 의해 흘러가지만 사실은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단지 엿가락을늘이듯이

물질적으로 풀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실 인간들의 과거,현재,미래 태어날때 사주의 조합들은

이미 우주의 어떤 수학적인 법칙에 의해서 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빅뱅의 시점부터.

아니 빅뱅의 장소부터.(시간과 공간은 치환이 가능하니까)

-플라톤이 말한 모나드와 비슷한 개념이다. 여기서 카오스법칙에

의해 이미 카오스원리의 흐름과 인간속에 -운명을 결정하며- 흐르는 도와

전체세계흐름과 영혼이란 것과 변화들 등은 이미 결정이 되어있는

것이나 같다. 그것을 플라톤적으로 말하면 원형에 빛을 투사하여

형들을 만드는 것과 같다. 시공간은 치환될 수 있고 과거미래가

한장소에 있을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란 단지 장소의 이동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좌표계가 하나더있다면 우주의 좌표에서 보았을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내용)

만약 절대적인것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절대적인 형태라는 것이 존재

하면 시공간은 어떤 비율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의 인간의 인식이란

한계조차 어떤 성질의 것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든태어났는데 시공간은 차원이 4차원이 끝이아니므로 자유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틈이 있는 것이고 이 틈자체도 원리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것에 의해 업이 발생하게 되고 흐름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프랙탈구조로 인해서 우주의 뇌부분-이카식레코드에 기록이 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의 증가로 우주의 엔트로피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임계치 포화상태에 이르면 우주의 종말이 오게 된다.

이때 우주의 뇌에서 '심판'에해당하는-마치 인간유전자 스위치가

켜지듯이-신호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때 이카식레코드에 기록된

사망한 인간들과 우주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에 대한 심판이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영혼'이란 것은 앞서 서술한대로 존재하게 되므로

심판시 환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업 해결하는 문제가 중요한데

그것이 바로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진리는 유일하다.

초인간적인 기운을 가진 존재에게 의탁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스스로 초인간이 되어해결하고자하는 것이 불교인데
모두 틀린방법이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정확한 과학과 철학과 실재를 기반으로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인간의 업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우주의 신경망을 통해 우주의 센터에 신호를 보내어 업을

해결하는 것이고 이것은 훈련으로 가능하다.

우주의 유전자에 셋팅이 된 심판기준을 말하자면 벌점을 줄이고

칭찬점을 늘려서 심판날에 살아남는 것이다.->계율. 수행하면

우주의 유전자를 자극해서 벌점이 줄어든다.


빅뱅후 사주팔자처럼 사람에게 원리가 있다.

(뇌와 생각자체를 있게 만드는)

이원리를 도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계속 우주의 뇌에 기록이 되고있다.)

그런데 사람의 육체는 죽어도 이것은 계속

이어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죽어서도

약하게-약간의 의식이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우주의 구조에 의해서 나쁜 곳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구원해야 된다.


인간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인간의 물질성과 추상성은 일체이다...-형이하학성과 형이상학성은 동전의 앞뒷면 갚은 것-다만 익숙하지 않은 것일뿐 마치 기계가 TV화면을 구성하듯 비슷한 것.

그럼 전파를 만들어 쏘는 주체도 있고 그건 생명력이 있다? 그럴 수 있다... 인과에 의한 것이고 그것조차 물질이라도 그런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단지 TV수상기이고-케이블이나 안테나, 전파를 받아 재생하는-그런 이론이 지지받기도 한다. 홀로그램 이론... 최신 물리학 이론.



나는 돈이 필요없다

사람도필요없었다

인간이란게 어떤건지 알았기때문에

노숙자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돈에 집착했던 이유는

정든 사람을 오래살게 하고 싶었다

천년을 살게하는 것이다

다시 젊게 만드는 것인데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던것인데

만약 이걸못한다면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달았다

우주는 별이 성장해서 소멸되듯이

인류 문명이 포화상태 직전이다.

멸망시키는데는 돈이별로 안든다.

그래서 몇년후에 하나님의뜻대로 멸망을 시켜야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


날 왜있게했어.

날 왜이따구로흘러오게했어.


서로 누가그렇게 하래 했다가 결국은 승자법을 따른다.


인간은 왜있고세상은왜있는거야.

그리고 날왜짓이겼어.

왜 날 짓밟았어.

난왜변하지못하고이렇게흘러왔을까미친신아


인간이 나쁜점개선하고 발전해도 결국은 자멸할운명뿐인것이다.


반드시 자멸하게


애초에 생길때 그렇게 생겨난 것이니까.


치밀하게 구성되지 못한 인간.


정박아 우주로부터


정해진것이다.

누가 이 우주를 끝낼까. 누가 스위치를 알까. 누가 바통을 이어받을까.

인간만의 입장일 수 있으나 전체 우주 유기체 속에서 인간은 바이러스 일 수도.

애초에 우주시스템같은건 없었다? 불합리한 감정시스템으로 뒤엉킨 인간이란 돌연변이 괴물생명체만 존재한다?

어차피 해봤자 불과 2만일 사는 인생에서 뭐 그렇게 폭풍우가 내려치는지. 매일 한번씩 해도 2만번도 못한다.
어릴땐 집착했는데 뭐 생전에 집착하고 그게 큰 의미일 수도 있는데 지금은 좀 놓아버림...

인간은 그 와중에 좋은 면을 가지고 추억을 쌓는다. 그리고 사실 그게 전부일 수 있다... 그나마 인간이 할 수 있는 쓰레기통에서 피우는 꽃. 그게 전부일 수 있다. 그래서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다만 아직도 해결안되는건 자유가 없다고 믿고 막했을때, 또는 자유논쟁에 안휘말렸다면... 하는 그런 오류성 신이 만약 의식이 있다면 감안을 하고 해결했을 텐데. 마치 법의 한계처럼 그런 한계를 해결못하니- 신도 어쩌면 인과성에 메이고 진정한 해탈을 이루지 못한, 또는 거기에 뜻이 없거나 그게 자기가 원하는 진정한 목적이 아니라는 그런 식의 태도-적어도 성경에선- 신은 어쩌면 인간만큼 유치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석가나 인간보다 못한. 그러나 믿어야 되는 창조주. 어쨌건 만들긴 만들었으나 과학에는 뛰어나나 인문학에는 유치한. 여호와... 그러나 믿는. 믿어서 구원받는. 그쪽으로 발전이 좀 더 필요한. 유치한 신.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도도 부족하여 욥을 걸고 사탄과 내기를 할 정도인...

당시에도 어쩔 수 없이 인과율에 얽매여 어쩌지 못한 신의 초라한 모습이란.....

신도 결국 해탈하지 못한, 그 안에서 인간을 만들어낸 창조주였단 거지.......

잡초로 태어나지 못해 약했거나, 또는 꽃으로 태어나지 못해아름답지 못했거나...
엎친데 덥친격으로 원숭이라서 골육상잔의 비극
사랑이 진심이었다 한들 미움도 진심인 것을,
그리고 깨달은 후엔 이미 시간이 지나버린.
감정의 에너지가 의지가 되고 행동이 되는 것도 사람의 일...... 그러나 큰 의미인.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인류가나아갈방향은무엇인가?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우주의 근본 시스템은 잘못되었다. 인간에게 이입된
프랙탈 물형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본능의 온갖 잔인함과 피해줌, 선천적인 능력의 불평등과 운명의 흐름을 제대로 돌려놓지 못하는 것들과  노력의 한계와 부의 불평등과 쾌락물질주의 가치관과
휴머니즘도덕 가치관들이 무너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실체는 바로 우주의 성향이고 원리고 카오스적인 법칙이다.

그것에 의해 (인간이 생겨나고)인류가 발전되어왔는데

그것의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그것은 바로 쾌락주의와 물질주의이다.

사람을 상품화하고 즐기고 소비하는데만 온 정신을 쏟는것이다. 인생의전부가된다.

올바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파괴하게된다.

인간성은 없고 동물성기준에의한 불평등과 소외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널리퍼지면 인류전체가 동물성으로 퇴보하게된다.

무엇보다도 기준이 동물성이라는데에 있다.

그리고 휴머니즘이 무너지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결함이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공산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닌 변증법적 결론으로

다른 생각을 찾았다.


말하자면 과학의 강력한 백신과 같은 효과이다.


이세상을 근본적으로 유토피아로 변모시킨다.

이상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 이상에 가까워져야만한다. 진화해야만한다.

그러므로 인류의 병든세포들을제거하고, 새로운 사상으로

유전적인 진화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휴머니즘의 교육. 그리고 젖어듬과 함께...

그러면 인류는 유전적으로 진화할수있다.

모든것은 유전자의 촉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연선택의과정을 거칠수록 더 세상이 올바르게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자연선택의원리대로 물질쾌락주의적인 유전자들이 모두 제거가 되면, 인도주의적이고

인류전체를 생각하고 배려하고 감상적이고 철학적이고 대항 능력도있는

휴머니즘유전자들이

후대로물려질가능성이높아지기때문이다.

휴머니즘 유전자가 오래살면서 자손을 계속 번성시키고,

물질,쾌락적인 병폐들은 도태되어 인류상에서 사라져야만 한다.

우주의 최상위시스템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이 제기능을 못할경우에는

우주에서 스스로 그것을 복구시켜야만한다.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상위시스템을 장악하고 -누가장악하든지 그시스템은 생성될수밖에없는

구조이다.잘못된것을바로잡아서조절과질서를유지해야하기때문이다.-


이것은 인류의한단계도약이다.

그리고 자연선택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우주의자연도태시스템은근본적으로결함이있다.

근본적으로작동하는인류에이입된본능과감정시스템은

권장되는것들을 추켜세우고 권장안되는것들을 도태시키는데,

속기도하고 잘못가기도하고 그기준이이상하게형성되기도하고

(세계전체가)어느곳에서는 최상으로 살아남은 것이 어느곳에서는

도태되는 등

이런 유전자와 환경과 운명의 흐름과 경쟁과 행위들의 태.도태가

모순투성이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바로잡기위한 이성의 영역이 발달이 되었는데,

그 이성의 영역이 명령하길 이런 잘못된 기준의 근본시스템을 완전히 변모시키겠다.


인생은 화투장같은것이다.끝발좋으면 행복한거고

똥잡으면 재수없는 경우가 많다.


불행히도 나쁜것잡는인간들이많다.


만약에 이 모든게 절대적인인식이라면 쭐은시간으로 계산할 수 있게되는것이다.

이건 1250일이고

불과 3년 반도 안되는 시간에 전인류의 의미있는 2차원평면화된 핵심데이터를

모두 검색할 수 있다.

이런 논리로 중세가 제3자에겐 초월한 신의정신으로는 엊그제같고

사후세계인간심판이 우주데이터에 기록만 되어있다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기록이 모두 되는 구조라면 말이다.


구조상으로 그런구조만잘된다면 천년이 하루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인간이 그속에서 인간시야 정신영역의 입장에서 살기에

나의 정신과 신체와 모든 것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인간이 무지하게 많고 내가 모든 인간을 대적할 수 없고

세계가 무지하게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미가 집한채안을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에 정신만 탈피해도 그런걸 감소시킬 수 있다.

인도에 요가수행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인간이 정신을 탈피해서

모든 인간을 개미처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게 뛰어난 요가행자들은 가능하다고 말이다.

인간이 개미의 행태를 내려다보고 연구하듯이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적으로 6차원시공간을 부딪히며 인식하는

그런 마약이나 느낌이나 주관적 행복 체험들은 옅어질것이다.

그리고 그걸객관화시켜도 다른 좌표계에서 여전히 의미있는데이터가 된다.--


마치 영화를 도덕적으로 분석한 리포트처럼ㅡ---


그런상황이된다.----


감각이나 체험이나 주관적정서가 결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교과서가 된다.

그건 맥락과 심리와 감성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ㅡ--황금률처럼.(그러므로 그런 시스템은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인류와 인류의정신 영역과 지구를 초월해서 보면

모든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 역사라는게 길고 인류라는것이나 지구규모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게바로 성냥갑같은 인구 상황이다.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심리구조는 시공을 초월하여 똑같다.-

그리고 움직이는 룰도 동일하고

단지 조금씩 물결처럼 변화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ㅡ--


ㅡ------그리고 인간이나 생물자체가 잘못만들어진건 사실이다.-----


이게 시험이라면 카오스원리는 필요없을 것이다.


여기서조종도시작되고

멸망도시작되고 관리및 기타와 의ㅡ---

심판도이루어진다.


왜 오지에서 태어난 사람의 심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이것도 구조적으로 무언가 있는 것인가?


.....그런구조가 있다면 아마도 현대의 한 찰나와 동일하다.....

인간심리의 룰인데


신이있다면이런인간심리의룰로성냥갑속의인류를 장난치고 있는것이다.


그런자유의식도없는인간도많기때문이다.


그리고자유의식이있는인간도어릴땐자유의식없이떠돌아서인생에떠밀려오기때문이다.-


아무리강한인간도유전자셋팅에좌지우지되는확률이높다.-다그런건아니지만

그리고 이걸 테스트하는 철학적인 어떤 구조가 있을지도모르지만ㅡ------


현재상황으로볼때 이런구조는 실패작이다.


왜냐하면 극복하는 인간은 1%도 되지않기때문이다.-


그것도 카오스에 영향이 있는데


그런결정에 필요한 모든정보가 있다고 가정해도

중세에 마녀사냥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지구멸망까지 이런 상황을 모두 예측했다면 모르지만


인간의 기준에선 불공평하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60년대 태어난사람과 90년대 태어난 사람의 차이동안 인간입장에선 공정하지못하고

갭과 그차이가 너무나 큰것이다.


다만 나는 최대한의 자유를 발휘해서 해나갈 뿐이다.

그리고 인류의 심판자가 되고

무엇보다도 우주최고의 꼭지점센터에서 모든것을 이룰것이다.ㅡ-----


그게 나의 목표이고

현재우주로선가능하고,ㅡ-----


어차피 내가 태어난 것도 카오스중에서 이미 정해진 것일텐데

이런 생각 적는 것 자체도 정보처리의 일종으로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우수유전자를 내기 위해 인류가 존재한다는 발상자체가 잘못된 것 아닐까?


오히려 물질이 진행되다가 식물이란 잘못된 형태로 발달이 되었고

그게 동물이 되어 좀더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해서 복잡해지다가

자기가 착각하여 나라는 의식을 가지고 감정을 가지고 희생만당하는-막상

주체적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없는데;철저하게 틀이 주어지고 그안에서

발악을 하고 경험쌓아도 그영역에서 깔짝거리는 수준:이조차도

인류공동체 전체 정보처리(권력)를 위해서 발달된 특정정보처리영역에

지나지않는다.-이런 구조로 진화해서 고통만 당하는 건 아닐까


많은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는 없다.생긴대로논다.결국은정보처리영역에지나지않는다.

말하자면 인류자체가 돌연변이 기형아이다.

물질에서 머물렀어야 했는데

그게 동물이 된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러므로 사자로 바뀌어 약육강식의 질서가 형성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식물에서 머물렀어야했고

토끼에서 끝났어야 했다.


이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최고의 정보처리 센터가 필요하다.


수천년간반복된다.

지구가사라질때까지


인간은 물질중에 가장불행한 존재이고 숙명이다. 내가있다고 착각하기때문이다.


잘못발달된구조이다.차라리짐승이편할텐데. 흙이편할텐데.


그러므로 거의 결정된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을 초월하는 것은 이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론으로 알아도

경험을 넘는 이론은 없다.


그러므로 착각이라도 현실이 익숙하고 이게 진실이고 끝이고 최종이고 모든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인간으로서는 인생을 더 잘살 수 있게 된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다른것은 현실도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어나는 날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는 없다.

아무리 정사를 10달전 맞추어놓고 해도 애기가 언제 태어날지 잘알 수 없는 것이다.

태어나는 년이나 달까지는 조절할 수 있어도 자유의지로 그런데 태어나는 날이나

시간은 카오스인 것이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인간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만약에 아주 정확한 과학이 발달하여

태어나는 시간까지 조절 할 수 있다면 원하는 사주팔자 운명의 아이를 태어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이것을 조절할 수없고 태어나게만 한다면 사주는 이미 고정되어 있는

것이고 이 세계그자체가 고정된 카오스진행의 세계라고 볼수있다.

사주팔자는 해와달의 법칙같은 부분법칙일 뿐이고


전체는 이미 사주팔자와 연관되어 고정되어 진행되는 카오스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과학으로 조절하는 것 자체도 이미 정해진 카오스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최소한의 자유를 행하는 것이다.


사주도 그렇다면 별의미가 없는것이다-정해져서 나오는 드라마와 똑같으므로


그런데 매일 태어나는 아기들을 보면 날짜와 시간대 별로 사주가 모두다 똑같다.

한마디로 그날 그날 달력으로 같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들의 통계를

1차원 적으로 표시하고 그릴 수가 있는 것이다.


사주별로 인원수를 정리할 수가 있고

인원별로 태어난 날짜를 정리할 수도 있다.

이것을 1차원적으로 정리를 하다가 보면


카오스 원리를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게 법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전국 출생통계에 대한 대작업이 될 것 같다.


확실히 진화를 하면할수록 긍정적인 형질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죽은 감정들이다.


반드시 진화를 못하게 하겠다.

내가 피해받은 것 때문이라도


인간심리는 심리일뿐 필요없다.


그리고 문제는 긍정적인 형질일 뿐 더 쾌락적으로 퇴화한다는 것이다.


인간 그자체가 짐승이기 때문이고

바퀴벌레이기 때문이고


본능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못생기거나 평범한 인간을 억누르는건 진화의 심리이다.


그렇게 해야 박차고 스트레스받아 도태되거나 진화하기 때문이다.


감정시스템자체가잘못되었기때문에.



40,50대


80대가 되면


지금의 모든게 우스울것이고 후회될 것이다


강하게만 살려고 했던 내자신


그리고 가지지 못했던


열심히 일해서 번돈으로 누리려고 했던 작은 행복

가지지못했던 이루지못하고 지나간 관계


아무것도아니고저차원적인건데못했던것들


모두다 지나가면 후회가 될것이다


되던안되던최고로최선으로


모두후회할것들-


완전히달라진인생을살자 -인생은한번뿐이다.


행복은물질에서오는것이아니다.-쓸데없는말안하고

하고싶은것없애는달라진자세의교감에서나온다.

이게행복이다


한이될거다.



모든 호불호는 쾌락과정서나경험적(기독교는독이다따위)의호불호에 따라달라진다

결국우주시스템에따른다는것인데,ㅡ

이것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영화 가브리엘에서,

빛이 천사를 이땅에 보내서 타락한 천사를

없애라는 명령을 한다


그런데 빛을 위해서 만들어진 꼭두각시인 천사는

타락한 천사와의 싸움에서 이긴후에

(가브리엘의 형제 미카엘이었다.)


신을 거역하여 최초로 자살을 한다.


인간이 느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타락천사들이 타락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간의 몸을 가지고 쾌락의 달콤함과 본능에 이끌리게 되고,

인간들의 문화대로 살았으므로-인간의 몸을 가진이상 이로귀결되는건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가진이상 타락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만들어진 본능대로 즐기고 있는데 그걸 잘못했다고 하는 빛의 모순,


빛은 가브리엘이 사라진 후에 다른 천사들을 만들어 그런 드라마를 또 재생시킬수는

있지만 그동안 형제와 있었던 그 아픔들이나 상처,마지막에 자기를 치유해준것까지

그 온갖일들을 잊을 수가 없겠다고하고 신의 의지와 세상의 운명을 거부하여

자살을 택하는 마지막대사


마지막으로 자기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최초의 자유의지의 발현,

그리고 모든 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신에게 받아달라고 하는 마지막 기원


그리고 자살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목소리를 내보았다고 신을거역해서


미카엘이 그랬듯이 자기도 이런 모순을 느끼고 악마가 되진 않고 자살을 해버리겠

다는 것.


이건 모든 인간들의 숙명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인간들이 이런 철학적이고

고차원적인걸 느끼진 않지만 처해진 상황이 똑같은 상황이다.


자기의 목적대로 만들어 운명과 선택의 카르마와 일말의 자유를 뒤섞어

지구에 뿌려놓은 신, 그리고 그속에서 신이 만든본능대로

즐기고 행복한 인간, 그런데 그게 신의 뜻이아니라고 제거하겠다는 신,

그리고 신의 꼭두각시로 일하는 사람들과 그 모순속의 배신감을 느껴

더욱더 타락하게 된 천사(애초에 천사), 자유의지와 신의의지-룰의 충돌,

그러면서 자유는 있지만 선택을 해야하고 또한 그속에서 상처받는 감정들과

무엇보다도 자기의지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과 운명들 신이 만든 모든

모순적인 상황들, 그리고 직접 그 속의 모순을 체험하고 경험하고

느껴 신의 뜻을 거역하고 자살을 택하는 가브리엘

자기를 드라마의 꼭두각시로 활용한 신에대한 차가운비열함에 대한 원망까지


결국은 천사로 악을제거하겠다고 왔어도 이세상의 모순을 깊이 느끼게 되면

악마가 되거나 자살을 할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자유의지를 세상의 파도와 신이만든 내재적인 룰이 이겨버리게 되므로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으므로

아주 단순한 물리학 파동이나 힘의역학 +,-로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신이있다면 콘트롤할 능력이 아주 없는 독신 오타쿠 생명공학 프로그래머일 것이다.


그게 바로 이세상 자체의 모순이 아닐까.


그속의 대사처럼 도시 전체가,- 도시그자체가 방어막을 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운명이다.


그렇게 만들어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성의 진화는 없다. 이성적인 인간만 넘쳐나면 이세상에 생식이 사라질 것이다.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세상이므로 다시사라지는 것이 옳다.


그리고 사라지는 것도 정해진 일일 것이다.


일말의 자유-자유의 영역을 넓히는게 모든 인간들의 과제일까-인류권력사처럼


생로병사처럼


별의 운명처럼


이세상도 그렇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자유의지란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술을 아주많이 마시거나 혹은 대뇌적 사고가 별로 발달을 안하거나

본능에 의해 사는 인간들은 본능이 아주 강하거나 관상이 부조화이거나

하면

스스로 자유라는 것을 잘 인식을 못한다. 단지 자유롭다거나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는 것이지 그런 선택이란 개념이 희미하다.

자기자체를 주체를 못해도 다른 각도에서 마찬가지이다.

정신지체들은 자유선택이란게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뇌의 작용이다.

그걸 뛰어넘는 시도를 하는 진화 시작이 전전두엽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통한다.

8차원이든 우주이든 이 카오스구조내에선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중간메커니즘은

잘모르겠지만 어떻든 경험적으로 이렇게하면 자유가 있더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긍정적인 사고와 긍정의 인생으로 행복감과 인생의 질을높이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렇게만 선택한 사람들은 자유가 있다.

그래서 단지 현실에서 통하는 이런 사실을 인식하거나

책으로 알거나 깨닫게 되거나 생각할 수 있

는 변수가 있어야 겠지만 경험적 자유를 가질 수는 있다.

자기가 선택한게 자유라고 생각해도 사실 상황적 압력 조건상황들과

자기 관상대로 선택한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렇게 생긴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하게 행동하고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영역에 대한 통찰이 되어도 최소한 태양계내에선 자유가 있다.

그렇게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지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류를 통제를 위해 그런 인간은 권력자나 센터가 되는 구조이다.


어쨌든 경험적으로 모택동같이 살면 군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포기해야 할 것도 많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경험하고 느끼는건 대부분 맞는 것이다.

사기도 그렇게 판별하고

생존력도 그렇게 가진다.


이것을 뛰어넘는 사람은 0.000001%도 되지 않는다. 지한테 꼴리는 게 행복이다.


적어도 세상과 인간은 그렇다.


어떻게 되건 별로 상관은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상황의 행복이 중요하다.이게

모든것이다.


정보가 부족한 시골에서 교육받고 세뇌당해자라거나 세상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거나 처해진 상황이나 시대,경험 스키마 들에 따라서

선택할 폭자체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한것이 이렇게 운명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선 진정한 자유란것은

없다.


그런데 아주 소수 일부인간들은 이런 변수들을 통제할 수 있고

심지어는 비가역적 변수까지도 통제할 수가 있다. 전전두엽이 아주 발달한

인간들인데 세상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 모든 것을 이끌어간다.


이런인간에겐 일말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아마 인류가 진정한 자유를 가지려면 이런 식으로 계속 발달해야 할텐데

현재는 오히려 퇴화를 조장하는 사회분위기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를 가진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각조차 하지못하고


자유를 행하지도 못한다. 생긴대로 인식하고 노는 경우도 많다.

철학자같은 인간이나 자유가 없다고 인식하고 그사실에 비관하고 흔들린다.

때론 자기자체를 주체를 못해도 자유가 없다.


그러므로 아주 극소수의 인간만이 자유를 구현할 수 있다.


(이조차도 환경이 곁들여지면 많이 제약받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아주

폭이 좁다.

그래도 그거라도 행하는 것이다.

진화의 라스트 한발짝첫걸음이므로)



자유없이 사는 것보다

자유가 그나마 있는게 더 성공적인 인생이 되므로 자유의지를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발달하는게 맞는 것이고,정치가나

역사상 대성공한 인물들은 다 이렇게 살았다.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래서 매커니즘이 어떻든 상관없이 현실에서 바로눈앞에서 이렇게 진화해야 한다.

이게 맞는 것이다.

이것만 훈련하는 것이 철학적 사고를 반복하는 것보다 현실에서 더 잘살수있다.


그러므로 차라리 현실의 자유선택을 더 강화해라.


환경과 유전자에 의해서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속에서

주체라는게 있어서 자유선택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말의 자유마저 쓰는 사람은 0.1%도 안된다.


자유의지와 환경과 관상의 관계


관상이나 유전자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그곳에서 자유를 인식하며

발휘하는 경우는 희박하다.

그리고 자기가 주체로 인식하는 구조이므로 자유선택을했다고 하는데

그게 통계적으로 예측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주체로써의 자유가 없다는건 아닌데 선택시의 자유는

있지만 주체입장에서 자유이고 막상 객관적으로 4차원적으로 보면

그게 이미 통계적으로 정해진것이 나 마찬가지인 높은 확률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주체로써의 자유선택도 있고 관상 환경에 따른 확률도 있고

이게 갖고노는 드라마인 것이다.

(유전자나 관상에 따라서 그렇게 선택하는게 더 행복하므로

그렇게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런 순수자유선택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이것만이 길이다.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꼴리는대로 선택했다고 더 행복해지는 보장은 없으므로

객관적 선택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종합적최종적으로 행복해져야 한다.)


현실이말해줄일이다.



어떤 새끼가 어떤 행위를 했다고 할때 그것이 환경에 따른

관상이나 유전자로 어떤 행위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제3자가 보기엔 그게 통계적으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그 본인이 느끼기엔 주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게

자유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책임지려 하게 된다.(그게 인류공동체

유지에 좋은 시스템이니까 이런 감정구조로 진화함)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그런 관상 때문에 그런 선택이

더 자연스럽고 행복해지기 때문인데

뇌의 도파민이 종류나 양이 더 많이 나오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보처리에 불과할지 진짜 자유인지 이런 가능성을 뛰어넘어

초월한 선택을 해야만 진정한 자유의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은 행복해지는 더 진정한 자유를 발현하는게 맞다.

물론 세상 통찰도 영향이 있다.


인간은 상상도 못할 황홀함을 체험할 수가 있다.

그건 수십년동안 한번도 못느꼈던 일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어릴때깨닫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개미나 똑같다.

그러나 단지 자유라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대뇌형식으로 잘못발달되었을뿐이다.

한가지확실한건 자유라고 부르는 영역을 넓히려고 이런쪽으로 발달하는 건 맞는것이라는것이다.

적어도 하나년이 만든 관상용 물고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꼴리는대로 사는 인간들이 세상을지배하고 맞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냥 우연으로.

무의식행동을 하는 비율이 89% 정도였다면 이런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60%까지 축소시킬 수가 있다.

그리고 기존에는 유전자,관상,조건들에 따라서 무의식적인

선택을 하던 것들을 자유를 발휘함으로써 인해서 그것을

상황에 가장최적인 선택으로 바꿀 수가 있다.


이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예전엔 100-100 그런 선택을

할걸 예측할 수 있었다면 시도를 하는 사람은 이런 계기

1개로 인해서 선택의 폭이 무한한 경우가 생긴다.


이것이 자유발현의 시작인 것이다.


이자체가 전체적으로 2차원화시키면 카오스로 들어가더라도

이 계기 1장치가 수만가지의 경우의 수를 늘리게 되므로

보통사람보다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묻지마 일도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더 행복에 가까워지고

인생을 높이는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를 가져야 한다.이것이 길이다.


물론 애초에 이런 자유를 많이 발휘하고 지배력이 높게 태어난

강한유전자,신강 같은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팔자조합이

비조화이고 약한 신약같은 사람들은 끌려가게 자유발휘를

잘안되도록 하고 해도 인생이 안풀리게 만든 자연의 섭리도 있다.


그런데 삼성 이병철회장을 보면 그런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주를 이기고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한가지이다.그냥가는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사경을 헤맨다면 그 사람의 가족들은 비록 음주운전을

했지만 그 아끼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해서 슬퍼하고

잘잘못을 차갑게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이모습을 본다면 동정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꼬시다고 하거나

음주운전을 질타한다. 잘잘못을 차갑게 따지게 된다.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었다면 말할 것도 없이 무한대로

증폭하고 살인을 넘어선 분노로 도배가 될 것이다.

만약에 그 사람이 사람들로 인하여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질감혹은 감정이입을 불러 일으킬 만한 관상좋은 인간

이라면 인간들의 여론은 동정론으로 바뀌어 갈것이다.

철저하게 심리에 따라 살기 때문이다.

정이 라는 것이 우호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국민이다.


어떤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경을 헤매고 있어도 차갑게

대하는 인간들때문에 아끼는 가족들을 피해를 준 꼴이다.



진짜 이세상이 왜이렇게존재하는지모르겠다


그속에서찔리는건감정뿐이다


이고리를끝내기위해만든 신을 찾다.



그렇게태어나고흘러간새끼는잘살고

가만이보면 이건단지인과연결카오스이다 내의지가아니다


그리고 그속에서희희덕거리는건이걸만든새끼이다누굴위해서이렇게살아야하는지도모르겠고

다그잘나게흘러가는쌍판에들어간다


사실 지금까진 스스로구할사람은 자기밖에없다.


만약에 성경이 오류나 그밖의 기타 모든 것들이 그자체로 하나님이 인간을 솎아내기위한

필터일 수도 있고,

카오스나 이런 것들이 모두다 선택자 불택자를 정하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는데

여기에 자유가 없다.

그리고 인간들이 모르고 희생이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렇다면 정말 무개념이다.


진심으로 믿어도 안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정해놓은 인간만 구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식을 낳고 마을이 커지면 새로운 천국이 될 것이다.

이곳만은 세상의 더러운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킬 것이다.

해봤자 안에서 살인자가 나온다. 그게 신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돌이 아니라 사람으로.

같은 시공간 속에.

말하자면 인간이 죄때문에 그렇게 변한게 아니라 성경보면 그렇게 만들었다. 아담부터-선악과를 먹고 깨어났다는건 원래 있었다는거고 신은 시험을 하려고 했던 의도는 맞다.
근데 왜? 이유가 중요할 거같다. 심심해서?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 처럼 세상을 구경하려고

유치하고 저열한 제작자도 얼마든지 게임을 만들 수 있듯이.

이런 부당한 지구에 적응한 인간이야 말로 놀랍다.

항상 중심포인트를 잊지 말자. 왜 사랑을 못하냐고? 자꾸 쳇바퀴처럼 반복말자... 순진한 생각이 나올 수도 있으나 언제나 걸림돌은 인간본성이 아닐까-그때까지 만들어진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다 선하게 구성되어 상태로 머무르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모두가 다 그렇게 된다면 진짜 천국이지 태어나기 전부터.....


4복음서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닭이 세번 운다음에 부인한다고 그랬다.


그런데 베드로는 조건에 의해서 그렇게 반응을 했고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카오스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게 스스로 했다고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강제와 비슷하게 시켜놓고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모순이다.


인간이란 고도의 생명체가 있는것자체가,

삼라만상이이런형태로있는것자체가

신이계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이다.


결국 신이 있다면 신은 미치광이이다.


어쩌면 내가 하는 짓은 마치 개미가 평생 집지은 곳이 두꺼비 배설물이었다는 그런 짓 아닐까.

행복이란 문자가 아니라 숨쉬는 공기이다.
행복이란건 말로 씨부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느끼고 있는 것들이다.

사람은 우습게 보이는 것 때문에 행복이란 공간이 침해받는다. 그리고 그 구성원도 그런 못된 본성이 여전히 죽을때까지 남아 왠만한 정이 아니고서는 그런게 나와 서로를 배척하고 특히 무개념 어릴 때 취약할때 많이들 그런다. 가족파탄의 이유-때론 늙어도 그래서 집안을 지옥으로 만든다.

모기의 공격-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구조기반한-자연진행속의 자기 주체적인 시스템 성격도 일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을 떠나고 싶은데 어릴 때는 선택권이 없듯 어릴때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거나, 또는 성격적 방해 그런게 '운'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라는게 착각일 수 있듯이-3자의 입장에서 그자리에 누구를 갔다놔도 그사람 특성으로 행동하거나 그런 면이 있고 인간은 단지 근시안적으로 지엽적으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처벌 위주의 법운용을 하고 있다.

어쩌다 정으로 울고 현실인식하고 하지만 사실은 진화의 산물이고 생각하면 그다지 마음이 안움직인다.
인간이 뭐 그런 감정이 절대적이라고 느끼도록 신이 만들었다지만 상당히 불합리하고 결국 뇌반응일 뿐인데 그런 불합리들-모성애와 부당한 부모의 제압의 감정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을 절대적인 행복이나 감정으로 느끼고 사는 인간 자체의 한계성-신은 인간을 엉터리로 만들었다. 세상뿐만 아니라
감정을 못느낀다 한들 그게 그 사람 잘못일까? 그냥 운인 것이다... 그걸 개인의 책임으로 합리화 시키고, 신도 그정도 유치한 수준일 뿐.

중세 시대에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악령의 소행이라고 오해를 했듯이 그런 정보를 깨닫기 전에, 또 그 정보가 퍼지기 전에 인간 DNA 가 구성한 뇌의 입장에서 전체가 틀릴 수도 있는 그런 오류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여전히 '운' 이 막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결국엔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그것도 묻혀버리고 '그래서 어쩌라고...' 해버리고 아무도 상기 안한다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이것조차 인과로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고 들추고 퍼뜨려야 의미가 있다.

운이 지배한다고 해도 인간은 느낄 수 있다-그냥 불합리하게 생기거나 근시로 생기거나 또는 생존 목적 등 다른 이유로 생겼다가 불필요한 감정작용까지 사용되는 것이든... 어쨌든 '불행' 을 느끼는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므로 마치 원치 않는 상품을 묶어팔듯이 불행한 감정까지 묶여져 느낀다.... 그리고 한평생이 지나 죽음....

다른 분자와 화학반응하듯 개체단위에서도 소통이 필요해서 이런 구조가 발달한 것인지, TV수상기처럼 신호를 받기 위함인지 그냥 무의미한 건지

카오스 원리 안에도 자유의지가 개입한다지만 그건 시간의 방향성-일방성때문에 사실 착각하여 자유가 없다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 자유는 있다.

그런데 신은 그것이 중요하다고... 중세 인간의 인식처럼... 그것이 과연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있는것인지... 신처럼 그런걸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건지... 인간의 입장에선 인간 행복의 전부이기도 하나 때론 그런 타인의 감정이 패턴적이고, 조건반응이고 불합리해서 그냥 흘려버려야 생존에 유리한 애물단지인데 그것마저 절대적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생존이 불리해지고 오를 범하는 것인데 신의 관점은 참으로 아리송하고 불합리하고 구조적 딜레마를 껴안고 있는 모양새이다...

홀로그램 이론이 맞다면, 우주 끝에서 오는 정보를 엉터리로 구성하는 경우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정보가 데이터처럼 직접적으로 올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인간자체도-정보 그자체가 되어- 그걸 일부로서 재현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냥 밖에서 안으로 밀려들어 지구를 거쳐가는 파도물줄기처럼

사실 모든게 다 불합리하고 부당하고 그냥 운으로 인간이 인간 구조대로 충족하고 자유라 믿고 정보대사만 처리한다면 이 지겹고 짜증나는 감정유발-역시 이것도 그냥 흘러가는 대사이고 이런 깨달음조차 그러겠지만- 없어지게 잘못 착각으로 발달한 인간 개체란게 조용히 사라져 주는게 오히려 합리적인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생각은 그러나 여전히 '마음' 은 행복을 느끼고 싶은게 인간의 현실......

이런 불합리하고 부당한 인간구조로 발생한 모순적인 세상은 조용히 멸망하라고 해주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이다. 아무리 해도 개선을 할 수 없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걸 누구나 공평하게 가지지 못하고, 여러 차별 조건에 의해서 기회가 박탈되고 소외, 고립된다.

그리고 일반적인 재미없는 '상식' 선의 인식에서 볼때와 달리 인간은 DNA 별로 행복을 느끼는게 차이가 있다. 그 '차이' 를 허용하지 않는 전통과 가치관, 그런 사회..... 그래서 불행이 발생하기도 하고, 또 DNA 별로 추구하는 행복을 모두 허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기에 딜레마가 있다.

거기는 아마 모든 걸 다망쳐도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인간 본능을 가진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
인간 입장에선 이기적인 존재지만, 창조관점에선 엉터리 생물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의 도움따위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것이 신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신의 도움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 기준의 우연이다.

다만 그런걸 믿는 사람들끼리의 심리적인 작용에 따른 행동의 결과물들 아닐까. '기적' 이란건.

학교폭력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사실 학교폭력은 본능에서 발생하고 본능이 현대화된 환경을 만나면서 발생한다. 불합리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환경도 한몫하고..... 현재로썬 그런 본능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끌어내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런 일을 할만한 어른이 이 사회에 있을까.
마음이 사라진 시대에 단지 남는건 당연히 약육강식의 조건에 따라 단지 반응하는 짐승이 된 인간들의 반응일 따름인데.....
짐승들이 흔히들 이기고, 그렇게 이긴다고 축생을 풍요롭게 할 뿐, 짐승들이 이겨봤자 짐승들이 승리한 것 뿐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있는가? 없다고 본다... 사람은 짐승을 잘 넘지 못한다 누구나.
누군가에게 권력을 주면 안된다는 딜레마도 있다.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99%의 인간들이 힘을 가지게 되면 불합리한 일을 상당히 많이 하게 된다... 그게 인간이란 것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힘을 가진 사람을 꺼려하는건 당연한 일이다-사실 모든 사람이 힘이 없다면? 그럼 전쟁이나도 피해가 줄어들 것이다... 힘은 그렇게 불합리한 현실의 창구가 되고 있다. 양아치, 모범생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힘을 가지면 불합리해진다. 힘이란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힘이나 에너지가 존재하게 된 세계, 우주가 불합리하다. 성경속의 창조주 여호와도 힘을 가지니 온갖 부당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사람보다 못하다.

신이란 존재도 일차원적인 수준의 운과 인과에 묶이고 매여 해탈하지 못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미숙하고 발달안된 시기에 헛된 짓을 저지르고, 이미 시간이 지나버린 후에 그걸 씨부린 말 줏어 담지 못하듯 인간과 같은, 또는 인간보다 못한 실수를 저지른 상황이다... 신도 발전해야 한다. 제발 그 덜 떨어진 성경말씀이 세계 멸망할 때까지 존재한다는 개소리가 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현대 철학은 인간은 자유가 있고 현재 시점에 가능성으로 존재한다고 하고 있는데 신의 행동은 그냥 운, 상황에 따른 심리에 따른 반응이고 그거도 안된 것이다. 자기가 만들고, 인간 속도 모르고 인간 세상이 부정적인 본능을 따라간다고 그걸 다시 멸망시키려 하다니... 그전에 도덕교육이 있었던가? 원시의 인간들과 비슷한 의식을 가진 신.... 인간보다 못한 신. 마치 원시의 인간들이 인간에 대한 아무런 지식과 정보가 없이 그대로 인식하듯 그런 식으로 인간을 인식하고 있다-구약 신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그럼에도 믿어주겠다는 것이다. 불합리 투성이 임에도 "믿어야 구원받는다." 는 여전히 갑질의 윽박을 지르고 있음에......

자기 혼자 인간에게 죄를 부여하고, 그걸 안지켰다고 지옥을 보낸다고 북치고 장구치고, 자기 아들을 하나 죽여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한다는 일방적인 입장의 주장-그 사이 소통이 있었나? 마치 한쪽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해대는 소통 불능의 사람처럼 신이란 갑질......

당장 부모가 그래도 미쳐 죽을 판에 신이란게 그런다면 자기가 만든 창조물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건 아닌지.

그리고 구원자로 왔다는 예수도 분명히 미숙함이 있었고, 시간이 일방적으로 흐르는 속에 지나면 다시 주워담기 힘든 자기 실수의 인과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에 바리새인이 자기를 일방적으로 핍박했던건 세뇌의 결과물이고, 바리새인 자기들의 자기보호심리이고, 예수가 반항자 같아 거슬렸을 뿐인데-그간 통념상 구원자 같지 않고- 그런 인간의 취약한 심리를 이해를 했든 안했든 화만내고 욕하고 반응한건 예수의 자기보호 심리이겠지만 사람의 속을 모두 이해한 신의 감정반응이나 행동답지 않다. 물론 나중에 자길 죽이는 사람들에게 "저들이 하는 행동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 고 하면서 이해하려 했지만 말이다... 인간과 신이 시소처럼 나타났던 예수... 좀더 구원자임을 왜 입증시키지 못했을까? 단지 쇼킹한 마술에 의지를 하면서... 당시에 통한다 해도 현대에 믿게 만들 예측까지- 예수의 한계...... 그런 어설픈 인과와 자연의 미숙함이 신의 방식인가. 마치 오류 투성이의 인간처럼... 인간이 그걸 합리화 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은? 성경이나 역사상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었던 신을 볼때 여기에 대한 답변도 무색하겠지만 말이다. 불합리한 중세 왕들과 다를게 무엇인가-현대에 믿지 않는건 너무 당연한 수순인데, 거기에 대한 대비책으로 성경을 업그레이드도 시키지 못한다면 그게 인간전체와 과거, 현대와 미래를 아우를 신인가.

사람이 잘못판단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말하자면 개가 있다. 근데 개는 동물심리학대로 조련을 해야 잘 훈련받은 개가 된다. 그런데 그런걸 모를때 사람말을 안듣는 개가 된다. 그런데 거기다가 회초리 질만 하면 나중에 주인을 문다. 그런 것도 모르고 신은 인간에게 회초리 질만 해대었다. 인간 역사 내내... 그리고 어설픈 당근과 세뇌질..... 그 결과가 불신과 거부라는 사실을 신은 알고 있을까? 신도 "나도 몰랐다. 사람 심리를...." 그런다면 그런 코미디가 또 있을까.

이미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또 그런 정보의 미숙이나 기회의 불균등으로 구원을 못받았다면? 현실에도 "자기 노력" 이라는 합리화로 인해서 그런 기회나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낙오되고 원하는 것에서 밀려나고 원치 않게 되는 일들이 많은데 그러한 메커니즘과 똑같고, 사람을 만들고 공평하신 하나님이란 자가 마치 그런 불합리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그리고 현대에는 기회의 불평등, 출발선이 틀린 불평등 마저 바로잡으려 합리주의로 가고 있다. 그런데 신이 그런 기회의 불평등... 말하자면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사람과 신앙적인 체험으로 세뇌가 잘된 사람의 신앙이 틀릴 것인데 그런 불평등을 합리화 시키면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신은 사람보다도 못한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신이 있다면 의식이 좀 진화하길 바란다.

그게 개체를 두고 말하기에 가능한 말이지 만약 과거의 신이 현재의 신이 아니거나 그땐 내가 아니었다 처럼 이 우주 자체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면 역시 사람을 벗어나서 다 무의미한 일.

마음이 중요하다.-마음이 좆같으면 되던 일도 안된다.
근데 이런 것도 절대적이지만은 않다. 아주 마음이 좆같아도, 그냥 될대로 되라라고 해버렸는데 풀렸던 일이 있다..... 그것도 더 그 이유가 뭐냐면 그때 상황조건에 맞는 것이 저절로 나왔고, 새로운 방식을 찾았고 힘등 조건이 맞았던 것이지 사실 도덕이라든가 기본자세나 그런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그런걸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인간이 경험적 방법으로 뇌운용술로 마음을 다스리고 관리할 뿐이지 다스리지 않아도 중독에 의해, 타성에 의해서도 잘만 작동하면 잘되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을 다스릴때 보다도 더 잘...... 사람은 그런 면이 있다. 인간 세상은. 그것이 나보다도 더 좆같이 살던 애들도 잘되는 이유이다-굳이 '운' 때문만이 아니라... 특히 사람은 더 유동적인 측면이 있어 끼리끼리 맞으면 자기들끼리 다해먹는다. 한 예로 직장생활을 아주 착실히 했는데 그냥 마음에 안들어서 한직으로 밀려날 수가 있다. 반면에 좆같이 했는데 친해서 자리가 올라갈 수 있다. 인사고과같은 공평한 제도나 도덕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하는건 망상이고 착각이다. 대부분이 불합리하다. 현실은 사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불합리하다-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한. 로봇이 결정하는게 공평할 수 있겠다.

물론 평소 쌓은 저력이라든가 실력이 그런 자기를 제한시킨상황이 풀려서 나와버려서 잘되는 일도 있는데 꼭 그런게 없더라도 되는 경우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 자체가 상대적이다. 존재자체가. 꼭 성공에 1만시간이 필요한 것 만은 아니더라.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가 그 자리에 왜 가있는지 잘 모른다... 다만 누군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누가 있어도 사실 상관이 없는데 다만 자기들이 있을 뿐인 일이 많다. 사실 이런 구조 자체가 특정 사람만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나누어야 하는 이유도 된다. 누가해도 그것을 얻는것이고, 단지 먼저 그것을 손에 넣은 것이라면 당연히 나누어야 한다. 그자리에 누가 가있어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단지 그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리를 차지하기 전이나 후에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고 합리화하여 설득시킬 뿐이다. 유전자나 학력, 자격 등 사람의 당시 뇌가 이해할 수 있는 갖은 이유를 들어...... 그래서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 지라도 배척된다. 그건 기득권의 횡포이다.

말하자면 땅값이 뜨는데 누가 그 곳에 집을 사도 부자가 된다. 그걸 미리 알고 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모르고 산다. 또는 알고 산다 한들 그것 하나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돈이 기반이고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권력을 휘두른다. 당연히 피해자가 생긴다. 사실은 당하는 사람보다 더 비도덕적이고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칼을 가져가는 사람이 벨 수 있다면, 당연히 악플을 달던 사람이  선플을 달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물론 사람은 악플도 달다가 선플도 달 수 있지만.

어릴 적엔 동네에서 양아치 애들이 여자 애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있었다. 거의 영웅 수준으로 떠받들던 분위기 였는데 동성이고 이성이고
사실 그것이 사람의 본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것이 비효과적인 교육이 그런 사람의 오랜 진화 역사의 본능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마치 국민에게 자유를 부여하자 쾌락주의 판으로 흘렀고, 그것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듯이

마치 교회에 미쳐서 윽박 지르며 집안을 개판으로 버려놓아 형제끼리 싸우고 파탄난 집안 꼬라지 처럼.....
알다시피 신은 역사상 어떤 경우에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런데 신도들은 도와주는줄 알지
목사는 그렇게 세뇌를 해야 돈이 들어오니까 자기도 세뇌를 당했을지도 모르고

사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철학적인 관점에서 자유가 없어서 자기뜻대로 못할까? 그보단 현실적인 제한이나 무지나 현실적인 능력부족인 이유가 클 것이다... 당장 유전적이나 동물적으로 취약할때 부모와 국가의 제약을 받지 않는가. 말하자면 후천적인 것 때문에 사람들의 자유가 억압받아 길러진다.
또는 인간의 동물, 유전적 취약성과 결합한 여러 타인의 시도들-공격이나 불합리한 여러 행위들, 시도들.

현실적인 통찰도 정보처리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시간속에 지구라는 공간에서 사는 땅위에 살고 있는 인간의 관점에선 인간의 뇌에 행복을 가져다 주니까, 그게 사실은 맞다.

시간과 공간... 차원이라는 것은 사실은 사람의 방식으로 나눈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1차원은 점, 2차원은 선이 아니라 물결의 모양대로 1차원, 2차원, n차원, ... 을 붙인다면 그렇게 나눌 수 있지만 문제는 거기에 원리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수학은 과연 절대적으로 실존하는가 하는 논란도 있다. 그런데 당연히 기호들은 아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다. 원리는 실존할 수 있지만

뒤집어서 말하자면 11차원의 공간도 3개로 압축할 수 있다.
설명하기 나름이고, 지금까지의 수학, 과학적인 언어도 스티븐 호킹이 그랬듯이 어항속의 물고기가 인식한 방식의 언어일 수 있다.

그래서 서양방식이 아닌 동양방식의 것으로 한번 설명을 해볼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끼워맞추기가 아닌 60갑자에 의한, 만세력을 보고 맞춘 사주와 인간 유전자 조합이 일치점이 많다는 단서를 발견하고 많이 확인했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난 시점과 유전자 조합간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물리학적 관점과 유전공학적인 관점의 접합점이자 융합이 될 것이다...... 그런 원리가 존재한다고 본다. 그 연결고리는 사주역학이다.
(아직은 모르니까 지엽적으로 살피긴 하나)

인간의 죽음에 관한 것인데 인간의 죽음이란 어쩌면 시간의 산물... 또는 시간이나 공간 안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그것 때문이라는 착각일 수 있지만 개체별로 일어날 때 심장의 신호가 보통 멈추고 힘을 다해서(그 안에 뭐 물질로 발달할 수도 물리 원리로 또는 먹는 밥이 힘을 내고 할 수 있으나 그게 인간에겐 익숙하나 우주적으로 보면 '신호' 일 수도 있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죽음이 일어나는데 사실 그 기원과 태생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발생하고 그 정자와 난자가 만나게 되기까지 그게 인간의 어떤 시각으로 저속하든 저열하든 가치를 부여하든 가치가 있다고 느끼든 받아들이고 생각하든지 간에, 어쨌건 시간이 작용하고 시간과 인과가 작용하여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그 태생의 신호를 발생하고 연결하는 고리는 역시 "끈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이고 여기서 사주가 시간속에서 성립하는 단서를 발견해본다. 유전자와 연결고리가 되는 접합점이 발생한다. -그리고 덧붙여 접점이 있다고 해서 예정되어 있는건 물론 아니다. 일어난 후에 기록하듯 그런 형식일 수 있다.-

그 안에서 전기 신호를 주면 다시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하고 그런 사례가 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런거로 보면 물론 유치해보이긴 하나 일반 '전기' 로 화한 별거 아닌 일일 수 있으나 그것도 '인과' 의 연장과 시간이란 측면에서 볼때 "인과이긴 하나 가치없는 인과" 라고 할 수도 있음..... 말하자면 TV수상기로 들어오는 전기와 별다를거 없는 심장신호-다만 인간의 죽음의 의미를 찾는건 마치 사람의 마음에 남는 의미처럼 우주의 마음에 물어봐야지. 그런 식의 관점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줄기세포등으로 모든 기관을 새로 바꾸고 전기 신호를 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그러나 술로 녹아버리거나 물질이 바뀌거나 하여 자기가 아닌 상태로-시간에 따른 인과처럼- 그렇게 인식하는 "자기" 란 어디까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마치 복제나 환생한 "자기" 가 다른 개체로써 무의미하듯, 설령 본인인 같은 개체도 유의미하단 법 없는데...... 그런식.

이런 전기자극으로 만약에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게 된다면 다시 '자유의지' 를 가지고 살아나갈 텐데 역시 시간의 마법인걸까?

먼저 생기고 나서 인간이 의미부여를 하는 것일까? 마치 종교처럼 정보를 빼먹고 해석한 잘못된 의미부여가 판치듯이

신이 없다고 부정하진 않겠지만 역사상 신의 역사란 한번도 없었을 수 있다.

실제로 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인간의 감정과 마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배반적으로 심리에 따라 돌아가고 얄팍한 일이 많다. 그럼에도 진심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대다수가 썩은 고기라고 신선한 고기가 없는건 아니다.

근데 한번 까먹고 나서 한 십년후에 다시 기억날 동안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서 그냥 손해보면 "언젠가 다시 생각날 가능성" 이란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구조와 인과의 아이러니이다... 이런걸 말하는 자체도 생각이 나야 할 것 아닌가.
정보가 물론 전달되어야 하고 확인되어야 하고.
자기가 특정시기에 맞다고 주장하고 밀고나가는걸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하고 발전하고 하는 문제들도....

마릴린 먼로가 자살했다는 정보를 공유하고 전달하고 상기하는 사람들에겐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마릴린 먼로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상기되기 전까지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데 그것이 "언젠가 알 수 있는 가능성" 이라는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 역사상이나 현대나 여전히 그런게 반복되고,

영감을 깨닫기 전에도 그렇게 되고, 영감이든 논리든 그런 인과를 언젠가 거치게 될 "가능성" 이 있다고 한들 현재나 과거에 몰라서 그랬거나 인간기준에서 손해를 봤다면 역시 같은 문제...

왜 하필이면 지금그럴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운' 이라고 경험적으로 설명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 자유마저도 영향받고 그렇게 끼워져 인간 사회를 이어왔던.
왜 그땐 그랬고 지금은 그럴까? 그걸 한치의 오차도 없이 힘이나 인식으로 100% 재현한다고 해도 그조차도 인과나 시간의 연결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공간도 마찬가지고...
우린 왜 지금 이러고 있는가? 왜 이글을 읽고 있는가? 나는 이걸 왜 적었는가 어떻게....
단지 시공간 적으로 인식만 하는 것일까 다른 어떤 융합도 주관하고 관련있는건가 왜 하필나에게...

왜 그때까진 그랬고 지금은 그런가? 그런 것. 또는 왜 그러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것... 이런 의문 자체를 가지면 안되는가? 하는 문제도. 의식의 발현과 존립 자체가 상대적이라면 사실 근본적으로 모르는 것이 가능해도 무방한 문제이다.

단지 과거엔 참어렸고...모르고...충격도 받고...... 아마 그런 미숙한 문제의 해결점을 이런 관점에서 이런 각도로 찾기를 시도해서 그럴듯. 그런 방향으로 추구-다른 식이 아니라 어쩌면 다른 식 해결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는데.

문제는 동시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 만약 시점이 다르고 차이가 줄어들 수도 있고- 어쩌면 시간과 공간의 장난이 아닐런지 그런 인간의 능력, 역량, 인식과 자유의지 등 현재 한계에서 최대로 구사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식의 손이 닿지 않는 것들의 말하자면 '운' 이라고 인식하는 그런 영역들에 대한 구사력의 한계를 인식하는 그런 문제에 지나지 않는건 아닌지...-그냥 놓아버리고 사람으로서 최대한 경험칙으로 사는게 사람다운 것인지
그러면 개선의 한계에 부닥치는데 마치 인간이 모든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망상처럼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것일까.

그러나 이런 추구가 완전 무의미하진 않는 것이 경험적으로 이런식의 관점에서 제일 끝점에 있는 자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그것이 현대의 구조다.
적어도 헛된 일을 계속 했던 과거의 나자신을 자각하고 앞으로 그런걸 줄이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마치 인간의 고질병 같은 헛된 반복을 줄이는데 일조할 수 있어서 좋다. 또 인간의 부주의, 정보 미숙, 기능적인 자유 발휘성, ... 등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 전반적인 사고가능성을 줄일 수 있어서 좋다.

또 이런식으로 관점이나 이슈를 놓치지 않는건 다른데 속아서 마치 중요한걸 빼먹고 그때 시간이 가서 손해를 보는 마치 야바위에 당하는거 같은 삶을 안살아서 좋다.

그간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계적으로 해결하지 못함 자신의 삶조차

물론 이것도 '인간에 대한 것' 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인간이 아니라면 그냥 돌이였거나, 또는 인간이 티타늄이었다면 달라질 문제들이다. 상대적인 것이긴 하나 인간에겐 절대적이기에 중요하게 생전에 다룰, 생전에 유효하거나 또는 절대적인 원리들이다.

인간이 돌을 먹고 사는 생물체나 그전에 비대칭으로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어쨌건 그러지 않았고, 지구 밖의 행성에 생명체가 있을 수 있었지만 어쨌건 '과거' (과거 시점)엔 만나지 못했고, 또는 인간의 인식한계로 몰랐을 수 있다. 어쨌건 그것이 현재로써 인식하는 진리

그럼 인과율이나 시공간도 무의미했을 수도 있다. 그런게 이런 성질이 아니었거나 없었을 수도 있으니 그런데 어쨌건 "있고" 그것이 마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을 서로 치환할 수 있듯이 다른 식으로 표현이 가능할 수 있어도 현재 시간과 공간이 분배된 상태는 변하지 않듯이-따라서 허상도 아니다- 그런 식의 문제와 상태라고 해석한다. 머릿속에선 치환하고 다 시간적 노화마저도 공간적 문제로 만들 수 있을 지언정 어쨌든 현 상태는 아니니까 말이다. 시간도 어쩌지 못하고 이 안에서... 이건 중요한 문제다.

그간 그랬던거도 어쩌지 못하고-갑자기 인간을 돌로 만들면 무의미해질까? -인간에겐 그럴지 몰라도 그럼 과거는?
단지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문제처럼 인간의 그간 인식이 틀렸다고 해버리고 풀 수는 없다. 그럼 그때까지 존재한 고양이나 인간은 뭐가 되는가? 고양이가 죽었을 수도, 안죽었을 수도 있으나 어쨌건 그때까지 지난건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쨌건 뭔가 일어났다.....

어쩌면 그런 변하지 않는 배분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 절대 진리가 될 수 있겠다.-설령 시간과 공간이 치환가능하다 한들 "현재 이후의" 나 현재의 일인 것이다. 과거 시점에선 "어쨌건 없었" 으니... 가능성의 계이고 뭐고 간에.

만들어낸 진심이 진심인가? 하는걸 생각하기 전에 인간은 진심을 내도록 되어있고 과거에 그랬다는 것-불합리해도

또 그런 정보는 퍼져야지 효력이 있다는 것-어쨌건 과거엔 그러지 못했고 불합리한 것도 반복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건 두번째 문제 이것이 창조물의 절대성이 될 수 있을까. 그러면 역사적 과오인 마녀사냥은? 역시 신이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일까. 예수님의 베드로 부인 예상처럼-나비효과적 필연

이론적으론 정보만 있으면 예측가능하다 하나 어쨌건 지난 시점엔 정보가 없었다. 그런 것이 진리의 현주소와 하위 프랙탈의 진리 현상태.... 이것자체를 발표하기 전의 상황도 마찬가지-어쨌건 시간, 공간, 시점의 제약으로 인해 못하고 있고 못했다. 사람 자유의한계-마치 통제의 한계처럼 "지금이니까 가능" 한거지. 개체별로-개체가 비슷해도 "그개체에..." 문제도.

구조도 필연이긴 하나-잊지 말아야 할걸 잊는문제나 하필이면 그때 떠올리는 문제도-구조적인 기인이 있긴하나(기억력등) 인과나 운도 작용하고 연결, 포함된 마치 시간에 공간이 작용하고 포함된것과 치환가능한 구조인 그런식 관계.

우연인줄 알았는데 필연이었다.
가정은 가정일 뿐 현실이나 과거가 아니다... 어쨌든-현재와 미래부터 영향-타임머신을 만들면 현재부터 작동하듯이 그런 것-단지 물리적인 한계일까? 인간이기 때문에? 역시 인간을 벗어날 수 없고(기술적으로), 벗어나도 무의미하듯이. 시공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원리파악등 하여

다만 미래와 현재의 개선에 유효

마치 인간 물질인거 자체를 되돌리기 힘들듯이

그런 관점이 더 중요한 부분이고 절대진리 발견에 중요한 인식.

예를 들어 분명 틀린건데도 뭔가 우겨대고 그거로 한시대가 끝나고 한 사람의 일생이 끝났다... 그러면 어쨌건 일어난 것. "어떻게 할 수도 있었다." 는건 그럴 가능성에 대해 말한거고 현시점이지 과거는 아니었고, 단지 인간능력의 현재 시점의 한계성이나 당시의 한계성을 인식하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재의 진리상태를 반영한다.....

이건 인식론 적인 측면에서 그 안의 인간이 변하면 모든 원리가 무의미하다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인간이 현재 이렇게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듯이 시공간속에 현재 존재한다는 것도 절대적인 원리의 성립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즉시색, 색즉시공도 그 하위 인간입장의 인식에서 비롯된 진리일 수 있다.

또한 인간죽음도, 태어남도 삶도 시간이 만들듯 자유발휘도 시간과 함께 일어나고 시간에 의해서 한계성이 되고 멈추기도 하나(공간도 마찬가지) 시간이 영향을 주지만 전적으로 주관하지는 않는 그런 것이다. 시간, 빛보다 빠른 입자가 존재하면 초월가능한 물리적인 문제도 될 수 있겠다.

또 그냥 본능으로 살면 인간에게 포획되는 맹수-그러나 인간이 반대로 죽을 수도 있으나 확률상- 그러나 인간이 이런 방향으로 발달했기에 맹수보다 위의 먹이사슬에 있듯 그런 상태와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들이 가능한 것이 이런 관점의 추구와 발달, 그간 노하우의 축적 때문이다.

새로운 돌파도 구조적 가능성이 있듯-

어쩌면 이런식의 인과의 한계성이 여전히 현재 시점에서 부당함이 자꾸 생겨나고 진행되고 하는걸 커버하지도 못하고 막지도 못하는게 아닐까-그런데 대한 관심부족이나 의지 결여도 원인이나. 다른 사람에게만 신경 쓸 수 없어서.
신은 보고 있을 수는 있으나 도와주진 않는다.
말하자면 누군가가 광신, 폭력 등에 빠져 잘못된걸 하고 있어도 그걸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 아동학대를 막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법제화로 줄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인과' 이후의 일이나 어쨌든 인간 자유와 인식으로 그런게 가능한 구조라는 것. 근본적으로...
왜 어느시대나, 누구나 다 알아야 하는가? 할 수도 있으나 -마치 모두가 공평하지 않듯이- 그로 인해서 인간기준에서 문제가 생겨서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왜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 다를까? 현재 상태가 다를까? 인과가 다를까?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를까? 등에 관한 문제..... 구조적으로 풀수도 있으나 그 근원에는 현재 인간이 익숙하게 인식하는 것 내부의 문제가 있을 수도.

상위적인 문제제기이면서 근본적인 물음-어쩌면 하위와도 밀접한 관련있는-추상은 현상에서 이미 내포, 반영하고 있다.

인간이 익숙하게 적응했지만 사회 현상학적으로도 불평등과 인과의 문제는 뗄레야 뗄 수가 없고 우주의 시작과도 맥을 같이한다. 신이 창조했다면 신이 불평등을 방치했다는 것인데. "공의로우신 하나님" 은 아니고 이게 신의 공의라면 도대체 무엇이 공의인가? 미래엔 공의의 완성일 수 있어도 적어도 과거는 아니었고, 현재도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서 온갖 감정이 발생하고 있다-설계든 진화든-불합리한 상황은 맞는 것 같다. 현재 인생이 본질적으로 공즉시색의 착각이라면 더더욱.

사실 어쩌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를 받은 것도 그런 불평등을 신이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구조적 불평등을 마치 인간처럼 근시안으로 개인에게 덮어씌우는 실수를 저질렀다. 신이... 그리고 이미 시간이 지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어리석은 행동은 어찌할 수 없다. 기록까지 하여 퍼지기까지 한 어리석음.
하나님이란 그런 유치한 인간의 감정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신도 어리석었을 때. 그냥 쿨하게 이해할 순 없었던 것인지

생각이란건 꼭 주류적인 인간의 표상이 아니라도 어느것이든 터치할 수 있듯이 (원리란거 자체도 상대적이긴 하나-원리라는게 존재하고 꼭 지켜야 되는 것도 있으나, 그런 원리라는거 자체가 없는게 원리인 그런 상태도 있다. 인간 기준에서 생각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간 인식에서 파악하기에 그렇다. 그 '맹점' 도 다른 주체의 각도에선 원리로 파악가능할 수도 있으나)

그런데 신이 미래를 알고 있다면 현재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서 바꾸려 하지 않겠지만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번 부인할거라는 것을 예언하며 바꾸지 못하는 행동에 대해 말씀하셨다. 인과에 대해 말한 것인지 당시 상황에 대한 구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바꾸지 못했다...

그냥 예수님의 쇼맨쉽인지 아니면 "바꾸지 못할 죄" 라는게 있는 것인지? 만약 바꾸지 못하는 죄가 있다면 신도 지옥이라는 징벌적 개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된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 현재시점에서 그개체가 공간적으로 그러고 그러한 상태인데는. 다만 대다수 사람은 그걸 진화적 감정으로 짜증내거나 판단할 뿐이다. 그렇게 된거조차 또 이유가 있는... 그리고 좀더 가지고 태어나고 자기는 그러지 않는다고 안도한다. 이게 근시안이다. 물론 대다수는 그러지 않고 확률의 혜택으로 잘 살아갈 것이다. 언제나 문제는 재수없는 경우다. 그건 그야말로 불공평의 대표적인 단면이고 운이니까.

신이 들어줄줄 알고 계속 기도만 하는 짓도 어리석음의 하나이지만. 그로인해 시간때우기라도 얻을게 있다면 인도의 요가나 다를바 없겠지

역사상 어려움은 현대에도 반복된다. 관심으로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낙원이란걸 인식하는게 인간이 이 세상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다면 그에 합당한 자극이 낙원이 되겠지만 인간뇌라는게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라 사실 오류를 내는것도 이 세상에 오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그게 니 잘못이겠냐... 인간의 문제지.

사람의 행위를 통제한다는 법이 최선은 아니다-근본적으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유전자나 환경조건, 자기보호심리 등 그런 것을 손볼 이유가 있다.

자유를 깨닫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단지 주변의 제약으로부터의 자유이전에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의지-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유를 합의하여 행동한다면 인과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러고 있는 중에도 '인과' 가 작용중이라 인과라는 개념 자체도 분리하여 해석하고 다룰 필요가 있다. 의식이 작용하는 인과는 분리하여

자유를 깨닫지 못하면 그걸 잘 행사하지 못한다. 대부분이... 또 그걸 항상 염두해 두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걸 꼭 깨닫고 행사해야 하는가? 그건 현실 탈피와 인과의 굴레를 벗어나는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인간관점의 현실개선이 아니라면 역시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유에는 정보도 사실 중요하다. 모든 정보를 다 알필요는 없지만 그 자유 행사에 필요한 정보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기본이 법에도 반영되어 무지에 의한 자유의지 발현-무지(나 강압)에 의한 계약은 효력이 없도록 되어 있다.

사실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자기가 그 행동을 왜하는지에 대해서 모르고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통제를 못한다면 앞서 말했듯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나' 에 대한 것과 같이 사실은 우주 자체의 문제이고 그걸 인식만 하고 다양한 감정에 의해, 인간 최선의 경험칙에 의해 처리하고 있을 뿐만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말하자면 죄가 아닌데 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처벌이 현재까지 인간 인식상 최선의 인식이나 근본적으론 한계성을 가진 옳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시간이 가면서-자유를 깨달아도 그런-나조차도

또 인간은 상황이 상당하게 중요하게 반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왜 그러지 말아야 하는가?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는건 때에 따라 상대적이긴 하지만.

과거는 몰랐으나 지금은 알게 되는 것-앞서 말한 그런거과도 같은 맥락 연결
이런 시스템도 꼭 필요하다면 유전자화되면 좋겠지 언제어느때고 생존가능성 높아지면-언제나 인간이 생존과 충족의 관점에서 필요를 인식하여 진화하고 DNA 가 추가되고 설령 진실과 반대되는거라도 그런식으로 반영되고 구성되었는데 이런 것이 아직 추가 안되었다는게 당연히 필요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때까지의 진화 상황은 그때까지의 한계를 반영한다.

대다수의 인간은 자기 자유의지를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쓰고 있지 못하다. 그걸 인식하는 지금도, 이걸 쓰고 있고 계속 시간은 가고 모든 사람이 알게 된 이후까지.

만약 자유를 깨달아도 자유없이 행복하다면 그게 더 낫겠으나 확률상 자유를 행사하는게 더 현재와 미래에 개선할 여지가 많기에-현재 구조상(시간과 공간상:태양계처럼 생전에 유효하니)-그러는 것

운도 행복의 한부분으로 느끼도록 바뀌긴 했으나 그런 뇌를 바꾸기 보다 상황을 바꾸는게 더 충족에 편리하고 -뇌는 물리적으로 바꾸기 힘듬 기술상 현재한계와 그걸 발달시키기 까지- 운을 그나마 최소화 시키는게 행복과 공리 모든사람이 공평하게 하는데 더 유리하다는 것을 그간 역사적, 경험적으로 깨달아서

우주의 관점이나 좌표계를 바꾸면 다른 의미를 가졌다 한들, 그게 인간의 현재 임장적인 의미에서 무의미하다면 역시 무의미한 철학이다.

마치 양자역학은 엄연히 존재하나 그런게 무색할 정도로 온전히 고전역학으로만 움직이고 양자역학적 "가능성" 이라는게 아예 작용할 수 없는 곳-기계같은-에서는 당연히 고전역학적 힘이 전부이고 유의미하다. 인간의 삶자체나 어떤 상황(전부는 아니나 어떤 자에겐 또 지배적-어쩌면 생전 전체를 지배함 또는 시대, 시기, 국가등)이 그런 면이 있음.

비슷한 것으로 복음이 들어가기 전에-설령 모든 자가 복음을 알게 된다 한들 그것이 공평할까? 인간의 기대는 공평하길 바라지만 전혀 공평한 상황이 아니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물질적 개선의 한계도 있고 우습게도 인간은 상당히 저열한 것에도 무너진다. 물질 기반으로 추상이 생긴 인간의 근본, 본원적 한계.

그런 저열한 것으로 메틸화도 진행. 피드백과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 수준의 자기이해이겠으나.

깊이 아니까 다르다. 그러나 깊이 알 수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대다수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에서 인간 역사는 반복되고 진행되고 조금씩 달라진다.

말로 하면 별거 아니나 실제로 그 안에서 겪으면 인생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은 흔히들 착각에 의한 진심도 진심이라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진화또는 설계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진화에 의한 인식 자체가 착각일 수도 있는 것을

인간의 삶자체가 우주적으로나 신에게 절대적인 의미를 가질까? 아니면 개인의 의미나 공유한 자들로서의 의미로 끝나는 것일까 이카식 레코드가 있다면 새로운 국면.

근데 진짜 이카식 레코드가 있고 사람이 죽어서 전자기파 같은 물질로 인해 "귀신" 같은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이런 복잡한 인간이나 생물이나 지구나 세계자체도 존재할 수 있는 판에 고작 귀신이 존재하지 못할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빛의 영역이 있듯 귀신도 존재할 수 있다. 외계인은 물론이고...

믿건 안믿건 존재한다.

식물인간인데 모친이 불러서 깨어났다는 사례와 마작을 하자고 하여 깨어났다는 사례- 개인에게 있어 의미란 상대적이고 어쩌면 인간이 기대하는 인간의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절대적인 가치란건 허상일 수 있다.

시간이 가고 역시 공간적 인과나 에너지가 달라지는 시시각각의 상황에서 인간이란 구성체가 구성체에게 어떤 자극을 주고 그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으나-역시 인간에겐 자유가 있을 수도 있고 신이 부여하고 구성하고 만든 그것이 반응한 그런 모양새

그것도 그 시점에 그 사람에게 그런거고 그런 상태의 공통점은 있으나-

희귀하니까 그런거지 사실 그것이 흔하면 대다수가 알게 되고 일반 상식이 되나 그것이 또 역시 인간 인식이나 공동체 삶이나 진화, 현대상황등을 기준으로 희귀하고 희소하고 일부만알고 더 이슈가 안되고 하는 식의 관심밖이라서 역시 중요하든 아니든 그런 모양새가 된다.
정보는 안퍼지면 그만이다.
시간은 지나면 그만이다. 공간의 한계로 안되면 끝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그냥 코끼리가 물없어서 죽어도 슬프듯 개인 동물의 의미일 수 있다.
더 그러면 열심히 살고 기쁘려고 하고 어쩌면 그게 맞다
인간이 깨달은 최선의 책략.....

시간은 가고 그나마 공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인간에게 부여된 일말의 자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구조와 조합의 혜택
뇌란...

시간과 공간에 놓여있지만 인간은 구조상 스스로 의지를 발생하게 만들어진 구조라서 불합리와 불공평은 있지만 순차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환경이나 상벌등 여러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지만 마치 우주의 대칭성 처럼 기본적인 구조가 있고 그것에 따라서 작동한다-힘기반
아무리 부정해도 진화심리나 그간 심리나 시간이 가고 시간이 오기전에 미비한 뇌로 했던 인상이나 임프레션 부정못함 완전 새롭게 리뉴얼 되도 과거는 지우지 못한다. 자기에선 지우고 타인에선 지워도 우주란 시간엔 남으니

기왕 한번 사는거 어리석은 방식에 빠지지 말자는

이 세상과 인간의 진실, 인류의 미래, 그리고 사후세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법, 그리고 행복.

세상과 인간의 실체와 진실을 말한다.

왜 인간은 태어나서 세상을 느낄까? 진화해서라면 왜 진화했을까?
진화론은 과정을 설명하나 최초 설계도 필요하다.
자기가 있는 자체, 실존을 의식하는 자체가 이 모든게, 계획됨이다. 짐승은 짐승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우주를 인격체로 본다면, 우주도 자기가 진화하거나 살 길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카오스가 사실 우주 유전자들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자생적이라면. 그럼 우주 밖에는? 인간의 실존은 우주 안에서도 설명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조건신호에 자극이 되고 반응을 한다. 그리고 그걸 인식하는 우리는 ‘인간성’ 이라 착각하여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도 여전히 조건반응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걸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뇌가 있고, 감정으로 처리하는 뇌가 있다. 그걸 ‘자기감정’ 으로 안다.

인간성도 과학이론과 합쳐져야 한다.
만약우리가 사슴으로 태어났다면 풀밭이 익숙하고 정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사자로 태어났다면 피냄새와 사냥감고기가 익숙할 것이다. 인간의 악이 사자의 선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악은 절대적일 수 있다.
그리고 돌로 태어났다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우리가 이렇게 생겼기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서로 인간에게 의미가 있다.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이것이 별거 아닌 사실로 치부해도 될 수도 있고, 여기서 진실을 알고 집착할 수도 있지만, 어쨌건 죽는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세상의 구성, 진행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철학적으로 ‘인과’ 와 ‘자유의지’ 의 존재로 돌아가는 세상의 본질적 실체에 관한 문제이다.

입체처럼 음양을 주어서 평면에 입체처럼 보이게 하는 그림기법이 있다. 그런 것 처럼 우주도 사실 컴퓨터 화면처럼 평면으로 풀 수 있는데 그 안에 투영된 그런 사람들의 요소들때문에 입체처럼 보이게 하는건 아닌지 암흑물질등의 특수한 구조로 인해 그런건 아닌지 잠깐 생각해봤다.

누구나 처음 겪는 세상은 생소하다.

적응하는거지


원래는 아프리카에서 인간도 원숭이나 사자나 하이에나나 사슴이나 코뿔소나 하마나 악어나그런 것들하고 비슷한 동물체였을 것이다 원숭이도 직립보행을 하기도 하니까 그러다가 인간은 인간만의 그런 수법을 개발하고 뇌의 어떤 식으로 장족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커피위에 얹은 휘핑크림처럼 그런 지혜를 가지게 되어 그런 부분으로 아프리카를 떠나 맹수를 피해
-혹은 그안에서 도구를 만들어 맹수를 대항하는 수법으로(사자도 전략을 짜서 그렇게 사냥하는 식으로 인간보다 못할게 없으므로) 덫을 개발하는 등 그런식으로 사냥을 하여서 먹고 살다가 집이나 망대나 동굴이나 집단 조직을 더 사자보다 치밀하게 운용을 하면서 살아남아서 그런 건축기술의 발달 가로등배치등 미감각을 휘핑크림 부분을 아주 발달을 시켜서 그런걸 이루었는데 그런 휘핑크림이 총이나 무기같은 집약적인 구조물까지 발달시켜 물리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남은 그런 동물적인 부분이 그런 인간의 것들을 위협하고 파괴하는데 자연을 보면 거의 물형론이다 생긴대로 되는데 그런 덩치나 이미지등 사자를 보니까 아예 그렇게 애초에 사냥하고 공격하게 짜여져 태어난 그것 그런것에서 폭력성이 나오고 비인도적인걸 하는데 그런걸 보고 사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실제로 그렇게 키울 수 있다는게 사자형제 이야기 실사례에서 증명이 되긴 했으나- 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 스럽고 우스울 정도. 그리고 그런 동물들이 진화를 원하면 진화를 하지만 사실 하이에나나 들개무리는 진화에 역행하여 진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충분하고 오히려 그편이 살아가고 영역유지하기가 쉬우므로 그래서 오히려 진화를 거슬려서 퇴보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하는 쪽은 하는 것이고 그러나 초식동물은 매일 위협하고 불리한 상황이라 진화를 간절히도 원할 것이다 독수리처럼 그래서 그런 것들의 충돌로 결국 원하는 자신들이 그렇게 되는 그런 식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전체 세상으로 보면 분명히 혼란이고 단지 그걸 자기가 맞다고 주장할 수 있는 최후의 길은 물소가 하이에나를 지배할 방법을 찾아 고안하는 것일텐데 그게 종교적세뇌도 될 수가 있으나 보통은 법이나 덫, 우리 같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미 하이에나로 태어난걸 양으로 만들기는 아주 힘드므로 -설령 인간이라도 아예 사냥을 하지 말라는 소리 초식으로 살다가 죽고 개인에겐 불행 하이에나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왜사나 싶을 것- 그리고 그런 자기들이 원하는걸 하는게 암사자의 입장에서는 숫사자가 평화롭던 자기무리를 차지하고 하는일없이 놀면서 사냥감 잡아온것 먹는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숫사자에게 밀리거나 혹은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런걸 깨고 싶은 불합리를 극복하고 싶을 것이다. 완전한 상황이 아닌데 그런 부당함을 극복하고 원하는 모습을 찾아가는게 진화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탱크는 탱크이고 상어는 상어이고 사자는 사자이다. 그런 동물에서 인간이 된 그런 포인트 그런걸 바탕으로 잘해나가는 것이 아마 인간이 발전해야할 그런 방향 - 인간의 도덕으로 볼땐 이세상이 개판이고 암울하지만 동물이었다는 그런 통찰로 볼땐 그나마 나은 초식 육식 본능의 원래 그런 그렇게 생겨서 그런 세계-인간은 휘핑크림으로 위장도 하고 자기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게 사람다움을 만든 그리고 초식동물을 보면 비인격화 오히려 감정이입이 떨어지는데 육식동물 같이 전략적 체계적 그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에너지성을 오히려 인간 진화심리 본능은 감정이입하고 더 사람성으로
생물성으로 그렇게 보는 진화심리 인식구조가 있다.
마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고 광신하다가 자기 자식을 세상을 알고
그런 축소판으로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깨닫는 그런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휘핑크림이 짐승성의 불합리함을 지양하고 그런 타 생물체 잃어버린 본능성 야생성에서 좋은걸 찾아내어 채택하여 프로그래밍하는 재구조화하는 그런 장점은 구조화 단점은 도태시키는 식으로 모든 본능과 그런 야생판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휘핑크림의 강력함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총한자루만 가지고 인간 몇명이 가서 아프리카 야생초원의 서열화를 만들 수는 없겠으나- 언어도 다르고 (인간이 추상적인 단어 휘핑크림부분으로 더 복잡한걸 축적하여 지식체계를 만들 수 있었으나:내가 발전하는 방향이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게 만든 핵융합의 원동력의 방식) 하이에나가 되서 그들의 서열 윗서열이 될 수 없듯이-아예 생긴 빠꾸가 다르므로 휘핑크림이 많은 인간끼리는 그런게 사회적 제도등의 약속으로 가능하나 본능이 여전히 밀어내나 인간은 그런 부분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서 소통할 수 있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반목 약육강식 구조가 아니라 아직도 부족하고 말이 안통하는 짐승도 반이상이 넘으나 생긴대로 다보는 그런 짐승의 짐승뇌구조 원숭이 생김새를 사자, 토끼 등으로 착각하는듯 아마 지네끼리 인간은 그래봤자 원숭이이다. 사자가 될 수 없고 원숭이사이의 조금더낫고 조금덜할뿐- 그렇게 총과 어설픈 전략으로 할 수는 없지만 만약에 탱크가 있고 치밀한 몰이 전략이 있고 덫,구덩이가 있고 사자보다 뛰어난 몇수앞을 계산하여 완벽하게 통제하는 허를 찌르는 몰이하다가 상상도 못한 구덩이에 발견못하고 빠지게 하는등-(사자의 한계를 이용해서 능력상의 한계)-그런식으로 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서열화 는 못해도 우리에 가두어 관리는 할 수 있다 범죄자들 관리하듯이
그리고 인간이 맞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인도주의를 뿌리내리고 평화시대를 만들 수는 있는데 오히려 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동등한 주민등록 인격부여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어설픈 학자들의 세상이해 때문에 그러나 그런 장점을 도외시하고 아직도 원숭이나 고릴라 차원의 그런 방식의 운용만 주장하는-불합리한 점이 많다는게 너무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소모임이나 그런데서 그런식으로 하다가 부당하거나 비인간적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그 전체를 한번에 바꿀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있듯이 아마도 인간이 사자를 가두어 관리하거나 부하로 삼는 메커니즘을 할 수 있는 휘핑크림과 원숭이 본능의 통합 융합수소 시너지 연결체계를 적극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진화발전하는 것이야 말로 최후의 세상정복의 길이다. 세상을 한번에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통찰상자를 얻었다.
인간이 자연계를 장악한 방식 거기서 인간동물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이 가능한 것이다.
일반대중에게도 짐승같은 그런뇌로 살고있는 대부분의 인간말종들에 대해서도 제도와 휘핑크림과 덫과 기술집약(권총,덫,우리제도-감금제도약속합의(교묘히 속이는 그런심리전략의 힘의 역할이 중요할 것)-등)의 힘으로 전략과 조련법 인간의 쌓아온 기술집약 사자사냥수송법 등으로 말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교묘한 사기술수와(모두 전쟁실력에 속함) 정치력 그런것만이 쓸데없는 국영수보다 중요한 진정한 사회와 세상 세계자체에 중요한 힘과 반지를 얻는 중요한 힘이라는걸 깨달았다.그것에의 무한매진 그것만이 세상을 발아래두어 재미있게 다루는 일이다.
그걸 하기위해 인간은 더더욱 중요한 사자이상으로 강해지는 강해지게 만드는 자기단련 휘핑크림의 용광로를 이미 가지고 있으나 망치지 말고 잘써서 의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필하
학자는 항상 적을걸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담을 능력이나 체화하거나 반복새기는 우물안 개구리가 될 수 없기에 현장현상을 겪어야 하는 그런 그와 동시에 굳건한 갑옷안에 있어야 하는 참 다양한 능력 요구 소구 능력개발을 필요로 하는 직업 현장이다.
나같은 타인이 아닌 제대로 된 연구하는 그런 사람들 방구석이나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사자대중조련격리법-잡히고도 뭐라고 하지 못하는 법을 이용하려해도 사형판결이면 사형이다;그러나 요즘은 그걸 감옥을 잡아뜯기엔 너무 견고하고 거대하게 굳혀져있어서 힘들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님 원숭이가 인간이 된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혹은 온 사자무리를 죽이고 아프리카의 씨를 말릴 그럴 엄청난 시너지의 인간 책략 기술집약이 있다면(실제로 씨를 말리고 고엽제, 화학약품 다루기 능력,. 전략책략 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수 있듯이)-세상장악법등

내가 관념속에서만 생각할땐 그다지 성과가 없었으나 그걸 현실 실물을 보고 완전히 뼛속깊이 우려내어 파악할때 그런 구체적인게 보여서 훨씬 잘 활용해낼 수 있었다. 체화하여 그렇듯이 그런 실물이 중요한데 우물안 학자가 안되려면 학자는 쓸데없지만 인간방식은 발전시킬만 하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걸 깨닫고 알아서 자기 생각방향까지 조절할 수 있는데 마치 그런 자연타큐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이 진행이 되듯이 그런걸 활용하여 어떤 분야에 감정동기라는게 끌림반응이라는게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으니까 그렇게 몰입하여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일 것이다 무의식이 동하는게 아주중요 나의 업적처럼 적멸비기 그대로 인간의 세뇌를 빠져나오게 생각흐름을 조절해주거나 그런 우매한 동물들의 정보를 캐내어 역습을 하여 궤멸시키는 등의 작업들이 모두 상위에서 우위를 장악할 수 있는 인간이 사자를 궤멸시킨 그런 방법들이다 체육계 새끼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 처벌 모두 다 갖고 있으면 더 좋으나 휘핑크림만 가지고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간-
본능전략이 방해될 수도 도움될 수도 있으나(최초 전쟁에의 동기등)역사적 인물을 보면
히틀러, 모택동등 인간전략만으로도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걸 보여준 사례.
특히 지금도 정치술수나 제도권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음.
오히려 마피아나 음지권력은 전통집약축적에 의지하는데 반해(그런 식의 축적을 전통으로
이어받기에 그정도 운영이라도 가능-불합리함을 이미 극복해있는 전통 이를테면 동성애를 사형에 처하는등)특정 종교단체들이나 그런것도 비슷한 진화방향
말하자면 전통물려받는게 경험성으로-잘못된 미확인도 있겠지만-마치 인류 제도권에서
핵폭탄 설계도를 이미지체계로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고 자유발휘하여 즉각써먹을 수 있게 정리해놓은 것 같은 비슷한 역할을 한다.


I. 인과에 대해서

우주의 구조를 논리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인과인데


그러면 설계가 된 것 같은데, 누가 설계했나? 신이라고 상정하면

만약에 신이

인간이 햄스터의 행동양식을 전부알고 예측이 된다고 치자. 그런데 햄스터의 다양한 반응을 보고 기뻐한다. 만약에 신도 그런 인간과 흡사한 구조를 가졌다면, 그런 논리적인 관점을 탈피해서 감성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렇게 인간세계가 예측 가능한 카오스로 존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인간세계는 신의 여흥을 즐기기위한 놀이터인 것이다. 인간이 햄스터를 보듯이 신도 그럴 것이라는 말이다.

감성만으로는 모든걸 할 수 없다. 그러나 감성이 “힘”이 된다면 무리가 된다면 아마 시민혁명이 나타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로운 법칙과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좌지우지의 “힘”. 단 여기엔 얼마간의 원리가 작용한다.


우주는 왜,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왜 철저하게 심리대로 돌아가고 운명과 유전자 확률대로 인간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일까?
동물들은 무엇을 내기 위해서 그런것일까? 아니면 신이 구경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진화해서 끝에서 남는게 뭘까? 단지 우주의 자기 해답의 열쇠를 찾는 것일까
왜 철저하게 인간의 심리대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인생을 살아갈까...무엇하러 자유는 실존하는가 제한된 영역과 사례는
그 원리라는것은 왜 생겨났는가
다른 어떤 필요가 있는것일까
하나님을 다시 믿게되는 근거가 되는 것일까
이런 과학적인 체계들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일까
성경은 왜 허술할까
진정한 신은 인간이 있는지도 모르는게 아닐까
우주내부에서 어떤 유전자를 키우는 것일까-인간내부에서 해답을 찾듯이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ㅡ인간세상에개입을안할 수도 있다.
우주가 카오스대로 단지 진행만한다면
왜 우리의 의식이 이런형태로 진화했을까
단지 외부 큰 부분과의 교신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우주의 프랙탈로 우주의 구조가 왜 이입이 되어 발현하는것일까
단지우주의카오스원리대로진행이되는것일까
안그러면 왜 이것을 다 시아는 것을 또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것일까
이 카오스가진행되고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왜 카오스가 되는 것일까
이게 궁극이고 끝일까 아니면 그이상의 어떤것이 있는 것일까
그건아마도 카오스자체가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어떤형태가 아닐까
-그이상의새로운무엇을만들어가는어떤것우주의팽창저너머
단지인간은심리에따른반응인데그이상의어떤것을만들어가고있다
이것은무엇일까
애초에 인과에 의해 생겼지만 시스템을 형성하여 상호교류하는 체계일까? 그 반대일까 그래서 공간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르고 뒤섞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과거가 미래에 영향을 주지만 역으로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줄수도 있는가.
드넓은우주와외계인따위에는관심이있다
하지만내게더중요한것은이세계에서의궁극ㄱ의행복이다
그러므로나는노력하는것이다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그렇다. ‘인과’ 라고 하는 건 존재한다. 그러나 시공간도 있다. 그런데 이 시공간은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가나 미래는 아직 백지와 같다. 다만 예측가능한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예측할 수 없는 여지’ 가 있는데 그건 자유의지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미래를 만들어 가고, 또한 “동시성” 도 있다. 그러나 그 동시성은 단지 시간은 가는데 일정한 공간 안에서 인간들이 자기 구조를 이용하여 맞닥뜨리거나 하는 일들이 단지 시간이 일정하게 간다는데서 발생하는 동시성이지 ‘동시에 하나로 묶여 진행되며 일어나는’ 동시성은 아니다.
또 시간에 대한 문제도 있는데 만약에 진공 수조안에 인간이 아니라 돌로 꽉 채워져 있고 어떠한 물질도 없다면 어떨까? 그건 돌 입장에선 시간이 안가는 것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지구라는 공간이 있고 물질 대사가 일어나 착각하는 것일 수가 있다. 시간의 존재를.

지금 내가 글을 적고 있는건 수많은 ‘인과’ 에 따른 거지만 ‘자유의지’ 에 의한 것이다. 그런 점. 아마 다른 속성들이 일차원 적인 인과구조 사슬이 아니라 입방체를 이루고 다양한 모양새를 이루어 시공간의 극한에선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자유’ 가 있고 분리된 ‘인과’ 와 함께.

‘인과’ 자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그런 기술도 존재할 수 있다. 빛의 속도를 넘어서는 것이나,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러나 그렇게 만든 것은 역시 ‘자유의지’ 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의 욕구는 인과사슬이다.

그리고 ‘자유의지’ 는 뇌로 가지고 태어나나 그것을 쓰기까지 계기가 있어야 한다거나 아니면 어릴때 억제가 된다거나 나이가 들어서야 깨이는 단점이 있다. 어릴때는 상당히 뇌자체 발달이나 주변환경, 부모의 의지에 구속되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고 그때 나오는 ‘자유의지’ 는 그냥 욕구의 표상인 경우가 많으니.

예를 들어 영웅으로 태어났다. 인과를 거쳤지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론 적으로는 중세나 과거에 권모술수로도 가능했다.

어쩌면 꼭두각시 인형처럼 현재 세계를 살면서 어쩌면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에 실이 매여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자기 작동이다. 자기를 잘작동하는게 자유이다.

모든 종의 기본 구조가 일치한다고 진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지구라는 환경 생존에 적합하게 동일하게 설계했기에 그럴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 아니다. 여러 불합리한 원리와 불합리한 구조로 인간은 진화하고 바뀌어 왔다. 짐승과 절반을 공유한 뇌로.-이것이 각자가 극복할(사람 마다 다른 시험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그게 공의이고 평등) 신의 테스트 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복잡한건 진화의 과오일 수도 있다. 이렇게도 반응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여러가지가 적자생존된. 그러나 기본구조는 설계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인간의 ‘두뇌’ 는 상당한 오류와 모순을 가진다.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게 많다. 그래서 세상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현실이. 일말의 자유의지도 포기함으로써 상황은 더 악화된다. 우주도 얼핏 아름 다워 보이나 상당히 오류 투성이로 디자인 되었고 인간도 보기 좋아 보이나 빙산 아래, 속을 들여다 보면 간신히 “사람” 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 정도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자유의지를 되찾고 목적을 되찾아 세상을 개선코자 하는게 목표이다.

인간회로중 짐승의 진화에서 비롯된 속성이 있다.
가장 문제는 얼굴만 보고 판단하는 불합리이다.

또 상황에 따라서 진심이 유발될 수도 있는데, 그건 인지의 한계에서 비롯될 수도 있으나 실제 진심과 구분하기 힘들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 ‘나오는’ 것이지 자기가 신념으로 가지겠다 해서 나오는게 아니고, 또 그렇게 나온 ‘진심’ 이 오히려 거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합리중 하나는 약자를 보고 무시하는 것, 약육강식 고질적인 문제이다.

모든 인간은 악하다. 그리고 의지로 선할 수 있다.

인간들의 대체적인 속성만 보면 그 죄값에 멸종해야 마땅한 생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의지와 신념으로 긍정을 만들어 가기에 희망이 있다. 이 모든 짐승성 조차도 극복을 하여. 항상 자기를 들여다보고

글을 보겠다.

<1>

이세상은 뼛속까지 부조리다.
자신의 의지대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렇게 태어난 외모로 멸시당하고
가난으로 멸시당하고 의지로 자라나서
성공했는데 세상물에 찌든 인간들때문에
불행한 일이생긴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못다한 꿈을
이루려는 순수한 마음은 말초쾌락에찌든
악마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유린당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느끼려는 사람은 힘이없고 돈이없다는
이유로 머리를 땅에 짓이겨지고
여자의 다리가 벌려지고 조폭들에게 돈을
뺏기고도 법적으로 구제가 안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도
인간적 매력을 보고 안도와줄수있다.
인간적 매력이나 얼굴이 안되는 사람은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거나 자기 보상을 추구하는
사람의 본성상 가래침을 뱉을뿐 우주적으로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기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인간과 우주는 프랙탈구조로 닮아있다.
우주의 본성이 그대로 프랙탈구조로 인간에게
이입이되고 그런 본성을가진 -우주의 뇌의 모형인-
인간은 또우주를닮은뇌로 사물을 평가하면서
우주의 본능대로 평가한다.
그기준은 자기보전,진화이다.

한마디로 우주는 자기몸에필요없는 세포들은 가차없이
제거하는것이다.
자신의 생존에 필요없는 인간들을.
인간이보기엔 비인간적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합리적인것이아닌
유전자적 우열,(호감과 비호감이나 쾌락,임장감 대세로 나타나는
-그때가장인기있는것이당시생존에좋다)

매력,외모,가난 등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미세한 본능적감정들이 우주의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상위의 대뇌적인 것들이있는데
이것은 우주의대뇌이다. 인간의 대뇌적인 생각들로
나타난다.

이것이 우주와 인간의 감정시스템에 대한 관계이다.
-단지 인간공동체의 유지및보전을위해서 유전자가 진화한 것일 수도
있다. 우주가 프랙탈이아니라 단지 인류라는 종족과 생물이라는 종족만
그럴수도있는것이다. 말하자면 우주의 이입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입이다.

특정것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은 80,90이상 비슷하게 나타나는경향이있다.
이것은 본능적인 감정시스템과 인간에게 이입된 유전자나 혹은 특정 환경에
의한 교육이나 기타로 형성된 두뇌의 총체속의 생각,느낌반응들의 경쟁이다.
여기서 우세가 대세로 굳어지게 된다.

(이것이지지받는것이우주에겐좋다고여겨지므로다수결을선택하게되는것이다.)
우주처럼 인류도 불특정부분 일정비율 썩은부분이있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이것이 대세가 될수가 있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소멸로치닫게되는데 인류사회도마찬가지이다.
주기가 있는것이다.

멸망으로치닫고있는
반응이엇갈리고치열한전투가이루어지는사상이나의견은우주발전과진화의과도기인것이다.
여기서승자가앞으로의우주진화와발전을담당할수있게된다.
여기에역설적으로우주에게이입되어판단되는(2가지경로와구조-총체도있음.)
인간적인매력도중요한것이변수가된다.
그리고 인간처럼 우주도 본능적 감정들이있고,
미세한 감정들이있고, 생각과 사고가 있다.
이것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이 인간과 우주의 시스템의 모든 구조이다.
이에대한 일방적 대비책으로 가난하고 불쌍한것에 대한
동정,브레이크기능등이있지만 이것은 미비하다.
우주전체나역사적으로그렇게필요성이크지는않은것이다.
좋은음악이그런느낌이오는것은조화가되고그것이우주의긍정적인법칙으로
진행이되기때문이다.슬픔,허무함,행복,은혜,사랑,감동등 이모든 것들이
우주의 긍정적인 법칙대로 진행이되고 불협화음이짜증나는것은 부정적인
법칙으로 진행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식이 그렇게 느끼는것이다.
착하고 나쁘고를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본능으로 재수없기 때문이다.(단지안어울리고매력이없고)
독을 품고 성공하지 않고 복수를 하고
악마가 되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
침뱉고 여자나 따먹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우주의 잘난기준에의해
제한되고 갇히고 사형을 당한다.
인간이 하고자해서 그런것이 아니다.
다양한 우주의 본성이 인간들에게 이입된
것이다. 그리고 개같은 환경과 엔트로피의
증가가 만들어낸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사상과 쾌락이다.
선한것에 쾌락을 느끼는 뇌도 있고
아닌것에 쾌락을 느끼는 뇌도 있다.
견제하다가 가난한 선한 인간들이 작살났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도와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부조리한 세상은 근본부터
없애야 한다.
누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아니다.
즐거움때문에 쾌락때문에 뇌의 본성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행복과 쾌락의 동기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인류를 몰살시켜야한다.
이우주자체를 없애야한다.
나에게 동참할 사람은 따라라.
이인류를 절단내겠다.
정의는승리하지못한다.
영원히 인류가 멸종할때까지.
분신자살을 하더라도 그때뿐이고 이 거대한 세상속에
미물일뿐이다.
그래서 온인류를 멸종시켜야한다.
그길은 가스폭발도 아니고 염산을 들이붓는것도아니다.
가장근본적인 살육이일어나야한다.
난악마가되어버렸다.
조심해라.
아버지에게 맞은 것도
가래침을 당한것도
휴지통처럼 스트레스풀이용당한것도
모두 부조리다.

단지 열등자의 피해의식같아 보이나 사실상 이것은 ‘신호’ 이다. 마치 신체의 자살신호 같은 신호. 공동체는 상당히 비인간적이다. 그건 인간 대다수의 불합리한 본능과 그걸 조절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기려는 ‘자유의지’, 그리고 다수의 불합리한 표출들에 의해서 발생한다.

두번째 글을 보겠다.

<2>

이세상은 원래 이유없이 나쁜 일을 겪는 세상이다.
태어나는 것도 자기생김새로 태어나지 못하고
그냥 추첨처럼 약한 상태로 태어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아무리 착하고 성실한 자세로 살아도
자기들 마음에 안들면 깐다.
생긴것때문에 노력해도 싫어한다.
그리고 어줍잔은 본능의 심리대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이유없이 당하고 착하면 당하고
약하면당하고 이용당하고 그냥당한다.
지지도 있지만 그냥 심리일뿐이고 약하다.
그래서 이딴 우주시스템은 공격해도 된다.
왜냐하면 썩었고 허술하기때문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유없이 착한 사람을 죽여도 된다.
오히려 잉여인간제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가장 사악하고 잔인한 사람이 살아남아야
우주의 진화에 도움이 된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이런식의 합리화가 이상할거 없는 불합리한 구조이다.


한사람의 고백. 편협한 것 같지만 진실을 담고 있다.

“내가 절대적 이성의 세계에 있을때는 내가 능력으로 연구해서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정신이 정말 깨끗했고 이성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살다가 인간들의 감정감각에 움직이는 세상을 보면서 얼굴과 풍채만 그럴듯하고 그럴듯하게 보여야 알아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지가 좋아야 우러나와서 알아준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연구업적만 뛰어나면 이성으론 인정할지 몰라도 감정때문에 이성도 왜곡해서 생각한다- 혐오하거나 재수없게 생각한다.
그래서 알아준다는건 별 의미 없다. 문제는 어떻게 조종하느냐이다. 그럴듯해보이고 이미지 관리를 잘하면서 처세를 하는 것이다.”

소시오패스와 싸이코패스가 양산될 수 밖에 없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이다. 사실 고속성장의 문제라기 보단 인간 본능의 문제도 포함.

원래 악인 구십이 선인 열을 탄압한다.


인간의 추잡한 행태들.



이세상은 절대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복을 받는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복이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쁜일이
더 일어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보증을 섰다가 온 재산을 날려먹고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어떻게든 남을 해코지해보려고
스트레스 풀어보고 자기 실현해보려고 장악한 세상에서
사회적인 지위도 지지받는 입장도 못되고 권력도 있지 않다.
그렇다고 남을 제압하고 압제하면서 권력을 만들지도 못하고 사회의
하층민이 되어간다.
(역사상으로 볼때도 가장 잔혹한 살인마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형벌조차도 그 왕들의 특성을 살린 잔혹한 것들 뿐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반란을 두려워하여 국민들의 공격성을 꺾고 착하고 선량하게
살라고 하였다. 그것이 권력유지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인간관계에서조차 자신을 지킬 힘을 구축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살게된다. 종교의 세뇌를 받게 되면더하다. 이세상은 종교가
지도를 할수도 없고 또한 종교대로 돌아가는 세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런 혜택도 받지못한채 무시당하고 흠흠거리고 까려고 하고
제압하고 가래침뱉기고 그런 신세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제대로된 행복도 가지지못하고 사소한 가족간의 행복조차 위협받게 된다.
그리고 특히 좆도아닌 개쓰레기 인간들이 길가에서 죽치고 위협하거나 자기 자지
쾌락풀려고 서있는꼬라지에 제압도 못하고 위협당하게 된다.
특히 권력자도 아니고 사자나 맹수도 아니기에 더더욱그렇다.
가족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쓰레기 아버지를 재수없게 만나서
분란만 일어나거나. 대다수를 아무런 힘도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

할머니랑 둘이 산다는 것 도와준다며 접근해 동네 아픈 초등학생 성추행하고 약점 이용해 가지고 논 사건.



인기는 이미지로 결정이되고 사랑은 단지 이미지에 대한 반응일뿐이다.
이미지와 상황으로유발되는여러심리적반응이사랑을만드는것이다
-예를들어돈이많고씀씀이가화려한사람이멋있다고느껴지는것은
그런행위가외적인이미지와함께멋있게느껴지기때문이고
어떤부족한인간에게사랑을느낄때자기와동일하다느끼고도와주고싶고
연민등여러심리가유발되기때문이고
비호감얼굴의부자가짜증나고위협적인것은 단지 느낌이그렇기때문이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의 부정적인 측면의 존재 목적이 있다.
첫번째는 보수기득권층의 권력유지와 자기들 세상의(에너지원,연료) 유지에
필요한 말잘듣는 부속품들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국가의 기존 권력에 쇄뇌를 시켜서 어릴때부터 교육이란 쇄뇌를
통해 기존 권력에 복종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산업혁명후 마을의 큰장로들도 모두 학교에 동의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도 전수할겸 자신의 기업에 필요한 일꾼을 필요로하고
기존 권력의 따까리들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을때 통치하기가 더 편리했던
중세시대때에는 서민들에게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으로 지식을 가르치고 쇄뇌를 시켜야만
통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위협이되는 모든 것들은 나이 30이 넘고 40이 되어서야
겨우 깨닫게 만든다.
예를 들어 정치학이나 권모술수 심리학을 20살에 가르치진 않는다.

III. 그럼 세부적으로 소통하는 것에 대해서 ‘진심’ 에 대해서.

만약에 진심이 아주 소중하고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면 왜 인간들은 어떤 인간에게는 마음을 다주고 진심이통하고 호감을 느끼고 어떤 인간에게는 그렇지 못하고 혐오가 쌓여서
(설령진심이라고하더라도) 나중엔 별로 한 것도 없이 증오까지 하게 되는가.

그리고 왜 이것이 유전적인 촉수와 정신형성에 따라 사람마다 운명마다 상황마다 기타 모든것마다 달라지게 되는가.
(인간촉수대로)

아무리 진심을 내어도 외적인 것과 다른 자극과 반응에 따라서 걸러지고 통하지 않고 왜 그 사람은 그런 이미지로 각인이 되는가.

철학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왜 생기는가.
(사람꼴에따라)

그리고 철학이 통하더라도 왜 무의식의 본능대로 그사람의 호불호가 갈리는가.

인간은 단지 물질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증거이다. 제3의시각으로
보았을때

그리고 구성된 상태의 그영역도 있는 그대로의 상황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단지 미토콘드리아가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과학을 배우지못하고 영혼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진심이란것의 실체는 착각이다.

그리고 나중에 우주적으로 권장되는 착하거나 선행을 하면
불쌍해지는 감정이 나오는가.

그리고 왜 이런 것들이 나에게서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무엇보다도 본능에 근거한 특정한 자극에 대해서 거의 모든
인간의 반응이 일치하는 경우가 생기는가.

왜약간호감도여러번보면정이드는가.
이것이 바로 인간의 기계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신의 룰이라면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그리고 한걸음떨어져서 생각하게된다면 나의 감정이나 정서의 영역을 벗어나서-심리대로 돌아가게하고 세상의 여러작용을

만드는 촉수들-통찰해본다면 인간은 철저하게 자극과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것이다.

이런 해당상황에대해 최적으로 먹히는 것을 진심으로 아주미묘한 느낌까지 커버한다면 모든 인간에 대해 90%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90%이상 진심이통하고 마음을 나누고 마음이 통할수가 있다.

결국 이런 것이다.
인간관계는 단지 의도에 따라 조종하는 최정점이 있을뿐이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그런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 적으론 그러나 실제로 그러는 자는 별로 없다. 안그러면 시청률이 더 올라가거나 투표 참여자가 늘어나겠지.

이세계에 진심이 없다는 증거
이세계에는 진심이없다.

왜냐하면 모든것은 조건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 신호조건이 부자지간이건 예를 들어서 얼굴이 못생겼는데 기부를 했을 경우와
얼굴이 예쁘고 호감가고 가녀린데 기부를 했을 경우와 틀려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신호자극의 조건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반응하게 되는데
똑같은 감정과 정신을 내어도 진심일지라도 그것에 대한 평가는 틀려지게 된다.
생긴게 안맞고 종교에의한것이면 욕을 먹게 된다.

(아마우주원리와연관되어있을것이다.)

첫인상이 모든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었을때와 마음이 닫히고 기분나쁘고 남자경험이 많아서 짜증나는데 정을 나누었을때와 그 인상이 틀려지고 나중에 예후가 틀려지게 된다.

그걸 업보라고 하기엔 선한 자가 외양 만으로 불이익을 당하는게 선한 사람이고 악한 사람이고 비뚤어진 자들만 그러는게 아니라는데에 있다-기본 적으로 장착되어 태어나는 측면이 있고.

그러므로 모든 것은 이런 조건들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데
-세뇌당해서 강권하는것도마찬가지이다.(일시적이긴하지만)

중요한것은 운명이라는 흐름과 카오스란 것과 이 신호자극들의 이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든지 역할이라든지 근본이란것들이중요한데,

한사람을 놓고봤을때 어떤때는 신호인데 나중에는 신호가 아닌것,
그것을 볼때

우주적인 발전이라든가 단지 전체적인것 이나 경험안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랑유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데,.
어렸을적경험이나 유전자지도나 그때 정신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진심이란 강렬한 것이 나오는데
현재느끼고 있는 이러한 중요한 의미나 느낌들이 이런 객관적인 조건에 좌우된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고
다시 재고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영화에 진심이 유발되지않는것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이란조건이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정신분열자는 진심이 유발이 될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식 같은 시나리오 창작자나 영화감독은 자기 영화나 시나리오에 인생 자체의 의미로서의 ‘진심’ 이 날 수가 있다.
조건없는 진심이란 것은 없다. 아가페란 것은 친자식이기때문에 나는 것이다.

결국엔 모든 것이 조건에따라 좌우되고 움직이는데,
이렇다고 진심을 포기해버리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그리고 운명의흐름이나 운명적인만남이나맞아떨어짐이나카오스라는것이나그자체가우주에서
어떤의미로있을지도모르는데,
(우주는하나뿐이라든가)
그이상의어떤의미가있고무슨세계가있고진행이있을지도모르는데
진심을놓칠수는없다.
그것이정답이다.

선한 마음이란 인간공동체가 긍정적으로 발달하도록 보통 드는 뉴런작용인데
이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하고 도와주려하고 순응하고 치료해줌으로써
그 혜택이 공동체에게가고 그것이 나도 누리는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감정이입이란 것이 인간유전자배열-인상,호감이 가지 않으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결정적인 오류가 아주 착하고 도덕적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도 그 유전자가 매력적이지 않고 비호감이면 감정이입이 안되고 살인충동이 난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신이 없다는 것이고 신이 있다면 아주 인간을 엉터리로 만들었다는 뜻인데
선한 마음이란 이런 것이고 결국 인간공동체가 살기위해 유전자를 변화시킨 것이므로
인간공동체의 노예가 될 뿐이고 인간들에게 복수할 수 없고 당하게 되므로 반드시,
절대로 남을 도와주면 안되고 철저한 전쟁원칙과 쾌락과 정서의 원칙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것만이 진화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인간의 뇌구조상 인간은 반사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인간의뇌는 잘못진화했고 그런 뇌로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다 보니
헐뜯고 경쟁하고 약하고 만만해보이면 까고 짓밟고 뜯어먹고
이런 사회가 당연시 되다 보니 본능과 이성의 충돌로
원숭이처럼 본능적인 것들을 반사회성으로 규정하게 되는데
여기서 조금 이런 짐승적인 경향이
심한 사람을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 규정하는데
그게 적으나 틀리나 그게 그거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똑같고
이런 뇌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한
약자는 당하고 인격은 파괴되고 쾌락과 공격만이 판을 치게된다.
어느나라나 제도로일하는 빌딩인간들의 무의식은 온갖 강간,
변태적 섹스와 쾌락
그리고 살인으로 가득차있다.
요즘은 인터넷발달로 이런 인간의 내면이 댓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다행이다.
그러나 십년전만해도 인간에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런 것은 잘 상상하지 못해서
인간에대한 일말의기대감이있었는데
요즘은 인간의 속 진짜모습
그걸 눈으로 보게 되니 인간들이 혼란이 오게되고 인간의 본질을 알게 되어가는 것이다.
도덕군자가 아니면 그렇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그런주제에 반사회성을 운운하는건 코미디다.
조금 덜 더러운 인간이
더 더러운 인간을 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녀사냥 군중재판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책에 있는 가치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이성의 뇌와 본능의 뇌가 진화로도 극복할 수 없는 애초에 잘못된 결합이기 때문이다.
고대중세 역대 군주들은 학살광에 잔인성이 뛰어나고 특히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군주들이 우리나라에도 조선 건국의 시조 이성계가 있다.
어느시대나 민중들은 쾌락강간 외모에대한 살의를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반사회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도덕군자들의 유희라는 것이다.
아무이유없이 인간들은 그러므로 그런 욕하는 인간들이 먼저 죽어야 한다.
욕하는 인간들이 정신은 더욱 더 더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자체가 멸종되어야 한다. 그것이 길이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미래의통치이론-

인간의 온갖 불합리를 극복하기 위해-두뇌 자체가 내포하는 불합리 부터 시시각각 고개를 드는 불합리한 작동방식의 불합리까지

미래에는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될 것이다.
거대한 중앙통제본부가 있고
그곳에서 평생을 시스템 관리만 하는 로봇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도시 농촌 땅이있는 모든 곳에 곳곳마다 모든 곳에 1m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가 될것이고 국민들의 생활은 24시간 감시가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반란의 낌새가 보이거나 무리를 짓거나 휴대폰에 불순한 내용의 통화가 이루어지면 즉각 화학약품형이나 과학의 탐지로 미사일과 로봇과 로보캅이 가서 사살을 할 것이다.
본능뇌와 폭력성 DNA나 학습행동이 제거되는 형벌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절대권력이 발생하는데 시스템 감시자의 교육받은 자식으로 계속 세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시와 통제는 로봇과 시스템이 맡기때문에 철저한 심리대로 통치하고 반란의 불씨를 끄고 세금을 걷고 모든 전쟁을 치룰 것이다. 이것이 과학의 힘으로 운영되는 세계의 모습이다. 이것은 연구의 힘으로 가능하다.

물론 모두가 원하는 사회는 아니지만 현재 민주주의 처럼 필요악으로 발전할 것이다.


사후세계는 존재하는가?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았다.

인간의 프랙탈 구조에 의해서 그 하위 단계로 계속 인간의 구조가 (프랙탈로)반복되면서 인간의 생전 정보가(시공간에서 기록된 파동정보) 프랙탈 하위로 빠지고 접혀진 11차원등을 통해 우주의 (신경계를 지나) 센터(뇌)로 가서 저장 되는게 아닐까?
그리고 그 기억이 재생되면 죽은 후에도 '귀신'형태로 나타나고 그 사람의 흔적이 숨쉬는게 아닐까?(우주의 '상상') 그리고 이런 인간을 인식하는 신경계,미생물은 시공간자체이고 전자기파 같은 전파들이거나. (마치 우리 몸속에 털길이 인식세포가 있듯)
그래서 앞의 사실에 더하기해서 인간의 염원으로 신경계등에 자극을 일으켜 우주의 두뇌활동에 영향을 주고 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을까? 이론 적으론 썩기 전이라면 가능하다.

죽은(자연사) 직후의 사람을 (혹은 죽기 직전의 사람을) 줄기 세포를 이용하여 뇌간심장박동,폐의호흡관장 뉴런을 중심으로 뉴런을 재생시키고 (혹은 교환하고 새로 만들고 - 살아있는 상태에서 새로 재건됨.) 심장,폐등 장기도 줄기세포로 재생시킨후,
인체의 신경 전기신호 교환과 비슷한 성질,강도 등 조건의 전류를 전신에 지속적으로 흘려주면 (특히 뇌간 부위에) 심장 박동 뉴런 신호를 보내면서 심장에 신호를 보내고
(호흡도 마찬가지)다시 심장이 뛰면서 인간이 살아난다.
<마치 심장마비 일어난 사람을 응급처치,전기쇼크 등으로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죽은 직후의 사람을 어떻게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 상태로 유지해 보관하느냐가 문제
심장박동기계를 이용하거나 굳어진 몸을 다시 풀어지게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
그리고 줄기 세포를 최단 시간내에 완벽히 특정 부위에서 재생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1 일단 죽은 직후의 사람을 곧바로 인공심장박동기와 인공호흡기를 이용하여 계속해서 피가 돌고 호흡이 이루어지게 하면서 체온을 유지하는 기구로 체온을 유지시킨다
(이때 문제는
(1)어떻게 자연사로 죽은 사람을 최단 시간내에 병원으로 이송하여 이런 조치들을 취할 것인가
- 자연사가 임박한 사람을 대상으로 2 번을 시행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 그렇지 못할 경우
최단 시간내에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콜시스템과 전문 인력 충원을 제안한다
(집에 장비를 마련해 놓고 전문적인 인력이 항상 관찰한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된 굳어진 사체를 다시 이완시키고 응고된 혈액을 새로운 혈액으로 교환할 수 있는 기술도 마련해야 한다
(2)신체의 인식 물질등이 '죽었다'고 인식하고 생존에 필요한 여러 물질등이 급감하는
현상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 죽은 후이므로 '죽었다'고 인식하는 물질이 뇌까지 전달되지 않고 혼자 처리해야만 하니 우리가 인공적으로 마련해 주입한 물질들도 (이를테면 세포면역물질등) 활동가능한 충분한 환경이 된다는 소리이고 ,
설령 뇌가 죽은 후에도 일부 생존,신체기능 관련 뇌세포들이 활동한다 치면 2 번에서 뇌와 교신하는 미생물문제 해결이 좀 더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물질 관리가 가능하다.
모든 물질관리 해결이 가능하니 기본적인 신체 유지(혈액의 응고,세포의 부패등 지연)는 가능하다.
이제 남은 문제들은 다시 뇌와 장기,세포의 유전자의 활동을 시작시키는 것인데
이것들이 정지된 가장 근본 원인인 뇌간 뉴런의 노화와 각 생존 관여 장기들의 노화는 -혈액 순환(심장,혈관,...),호흡(폐,혈관,...),면역계(백혈구,적혈구,T세포,...),...- 2번에서 줄기세포를 통해 해결을 하니 다시 '최초 전류'(엄마 뱃속에서 시작된 카오스 흐름 중의 뇌간 신호)만 3 번에서 제대로 발생시켜 주면 사체는 다시 살아난다)
대뇌세포까지 산소부족,영양분 부족 등으로 빠른 속도로 사멸하지 않도록('죽었다'는 인식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 이런 명령 유전자 있다면 제거)유지
줄기세포가 분화하는데 엄청 오래 걸릴텐데 그기간동안 신체를 유지하는게 관건 -
뇌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이것을 인식하고 빠르게 사멸하는데 (이 유전자를 일단 제거하고) 산소를 계속 공급해 주면서(다른 물질도) 신체를 최대한 오래 유지시키는게 관건
이 안에 줄기세포 분화가 촉매를 이용해 급속도로 되어야 함
2 그리고 뇌간의 신경 세포들로 분화하고 , 뇌간의 기능들과 연계된 장기들 - 심장, 폐 , 체온조절 장기 등으로 분화할 수 있게 셋팅된 줄기세포를 이식하여 새로운 조직들로 분화시킨다 (분화가 되지 않는다면 이 장애물을 해결한다 - 사체라서 그런건 아니고 어떤 물질,미생물 등의 활동이나 -뇌와 교신하는 미생물일 수도- 단백질의 활동이 사라져서 그럴 수 있다 이 물질을 인공적으로 주입시킨다 : 뇌와의 교신에서 생성되는 물질이라면 그 상황에 맞는 특정 물질을 미리 만들어 급속 냉각을 이용해 보관해 둔다 - 급속 냉각시 해동을 통해 복원되지 않을 가능성
죽은 쥐,원숭이 사체 등에서 줄기 세포를 분화시키는 실험을 해 볼것.
-그런데 샬레에서도 줄기 세포가 분화되는 일이 가능할 것 같으니 사체에서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죽은 사체에서도 전체 대사(뉴런에도 특정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도록 전류를 발생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 심장이 멈추어도 유전자 활동은 일어난다 : ATP 등이 남아 있다면 얼마간은 - 를 유지하고
(혈액순환 , 호흡등도)살아 있을때와 비슷한 상태를 만들어 주면 (대뇌는 거의 관여 하지 않기에 뇌간기능만 활성화된 상태를 인공장기를 이용하여 조성하여 주면 된다) (자연사한 후 일정 시간내) 줄기 세포가 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줄기 세포 분화 자체의 방법이다 이것은 연구가 더 필요한데
나는 줄기세포를 체취하여 특정 기관으로 분화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특정 기관으로 분화하는 중간 과정을 유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
그리고 문제는 '시간'인데 분화하는 시간이 사체가 활성으로 유지되는 시간의 안쪽 범위에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줄기 세포를 죽기 전에 만드는 것이 좋은데 이것이 안되면 줄기세포를 수시간안에 분화할 수 있게 촉매를 만든다 줄기세포 분화에 한 일년 걸리는듯 싶다 뉴런 성장 속도를 보면) 대뇌 세포까지 많이 사멸한 상태라면 줄기 세포로 만들어준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체의 뉴런 사이의 신호전달체계와 똑같은 전류를 온몸에 흘려 보내준다(이때 뇌간에서 특정 신호를 발생시켜 심장을 뛰게하는데 이 '특정신호'가 안나타나고 단순한 전류여서 심장이 다시 안뛸 수도 있다. 따라서 뇌간에서 발생하는 이 특정 신호의 속성을 완벽하게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문제는 -
(1)전신에 전류를 흘려 보낼때 이 전류가 뇌간의 뉴런을 통과하면서 도파민 회로가 돌아가고 유전자들을 활성시키지 못할 수가 있다 그러면 특정 단백질(신경전달물질)은 만들어 질수 없고 심장도 다시 뛸 수 없다.
(그래서 뇌간에서 심장으로 어떤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을 어떻게 전달하여 심장을 뛰게 하고 심장 자체에서 이 신호를 받아(혹은 자체적으로) 어떤 물질을 생산하여 (+스스로를) 뛰게 하는지 연구를 하여 이런 물질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적절한 방식으로(이방법도 연구) 주입하여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온들의 미묘한 양적 조합도 연관 될 수 있으니 이것도 살펴본다.
또 심장이 뛴다,뇌간이 활동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인식 단백질이 있다면(유전자와 연관되어 있는) 이 단백질이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2)또한 신체 상태를 인식하는 세포,단백질 등이 신체가 죽었다고 인식하고
더이상 그런 작용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심장마비인 사람을 전기쇼크로 다시 뛰게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다시 심장만 뛰면 전신의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 온다
이런 경우와 실제로 자연사한 경우의 차이는 자연사할때 죽기전 죽기 직전을 인식하고 전신에 신호를 보낸다는 것인데 이것은 (3)을 참고하면 된다 효율성 측면에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 '죽기 직전'을 인식한다는건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보다 불확실하고 불명확한데 이것을 유전자가 인식하는 것은 죽음 같은 중대 문제를 다루는 진화 과정상 시스템으로는 부적합하다.
한 가지 가능성은 텔로미어길이나 세포의 상태등을 확인하고 '죽음'(생존 관련 유전자들에 대한 정지 명령) 명령을 내리는 것인데 이것은 한번 고려해 볼만하다 이런 유전자가 있다면 부작용을 검토해보고 제거해야 할것이다)
(3)또한 신체가 죽을때 '죽음 유전자'가 있어서 전신의 기능을 완전히 OFF시킬 수도 있다 : 이런 유전자가 있다면 이 유전자를 찾아 부작용을 살펴보고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가능성은 배제하는 것을 고려해보는 이유는 시체는 죽은 후에도 머리카락,손톱등이 계속 자라는 경우가 있다 이때 머리카락,손톱등을 자라게 하는 기관과 유전자가 아직 손상이 안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전체 유전자에 모두 '죽었다'는 신호를 보내어 정지시킬 경우 머리카락,손톱 유전자에만 신호가안가거나/전체에 신호가 안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머리카락,손톱 유전자만 예외일 이유는 있지만 또 효율성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심장이 멈추면 자연히 부패과정이 진행되는데 굳이 신체가 전신의 유전자에 정지 명령을 내리도록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진화 과정상 이런 기능은 아주 약화되어 남아있거나(없어도 좋을) 아예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3가지 단계를 거치고 다시 봉합 수술을 하면 '뇌사상태'로 되는데 ,
이때 대뇌까지 활성화 시켜 이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한가지 힌트가 되는 것은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경험담인데
이때 거의 '잠'에 가까운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두뇌의 특정상태와 관련이 깊다.
뇌파를 조절하고 수면상태 등의 전체적인 두뇌 상태들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
이 유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물질들과 연관이 깊다.
그래서 뇌사상태에서 대뇌를 활성시키고 잠에서 깨어나게 하려면
대뇌를 각성시키고 대뇌 작용을 가능케하는 특정 유전자들(잠에서 깨어나는 사람 ' 뇌사상태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의 특성과 대뇌,뇌간등의 유전자 활성을 관찰하고 연구하면 될 것이다)을 이해하고 이 유전자들이 생성하는 물질등을 특정한 위치에 적절한 방법으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두뇌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혹은 무의식에 정보,신호,파동흐름 등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두뇌의 유전자 활성을 변화시켜 특이한 상태의 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구조상 일어나는 에너지 신호 인데 이름을 계속 부르니 대뇌가 작동한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단독적으로 대뇌 손상 없는(보통 위에 언급한 유전자들과 그외 다른 물질들의 조합작용으로 뇌사가 일어나는데 이 손상을 회복시키면 손상된 상태라도 다시 깨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환자들의 뇌사 상태를 복구시키는 기술에도 응용될 수 있다)
또한 대뇌를 깨울 에너지(ATP류의)나 뇌간의 신호가 없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두뇌의 물리적 상태와 심리적 상태의 중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정 심리적 상태를 만들기 위해 어떤 물리적 상태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순서로 유발시켜야 하는지 알면 깨어나게 하는 것은 선택인 것이다.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에 대뇌가 형성되고 유전자들이 활동 할때 뇌사와 흡사한 상태를 거친다. 이때 특정 신호에 의해 대뇌가 돌아가도록 유전자들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 신호를 이해하고 주입,유발시키면 된다
그러면 대뇌도 작동하고 깨어난는 상태가 되면서 다시 주체적으로 외부 신호를 받아 각 장기로 신호를 보내는등 생명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줄 역할은(외부 환경 신호등은 주체가 알아서 하니) '주체시스템'을 다시 원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중요한 부분이고, 또 이것을 기반으로 현세-살아있는 세상에서 중요한 행복에 관해 말해볼까 한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들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낄 능력이 있다.
그런데 꼭 어떤 것에만 자신의 모든 촉수가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여행할때 최고로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노래부를때 최고로 행복하고
어떤 경우는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때 최고로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일할 때 최고로 행복하다.
그런데 이런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모두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것들에 뇌의 작용이 조금씩 틀려지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행복은 추상적인개념인데, 운명에있는 특정상황을 통틀어서 만든개념에 불과하다.
실체는 생활이고 현실인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하면된다. 불행을 피하고.


아인슈타인도 현대 한국에 태어났다면 길에 다니다 가래침을 맞지 않았겠는가.


과학 기술에 대한 상상


인간과 동물은 같은 법칙에의해서 같은 방식으로 DNA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진화한다.
DNA의 변이를 일으키는 원동력(필요)에 의해서 DNA가 특정방식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뱀이되고 뱀같은 인간이 된다.

그 DNA의 변이방식은 유전자간의 응집성,상호법칙들,가위운반자,~~~~~~~~~~~
DNA관여 호르몬의 법칙 의해서 결정된다.

이 모든 법칙은 하나로 표현될 수 있다.
조합방식은 날짜와도 관련이 있는데 초기에 뱀같은 그런 유전자 변이가 생겨난 방식은
부분적인 방식은 동일하다.

근데 왜 하필이면 뱀의 모양인지,말의 모양인지 그건 우리가 익숙하기 때문이고,
어쨌든 그런 대표적인 방식으로 변이가 일어나고
때론 새나 앵무새 펠리컨같은 방식으로 변이가 나기도 한다.

단지 유전자 결합법칙이 아닌 특정형(생물의물형)과 성격을 만들어내는 조합법칙이다.
그 유전자 변이의 동력과 양상은 카오스이고 미리 그리 변화할 소양에 대한 환경에의
반응이고, 무엇보다도 필요에 의해서다.

환경속에서 변이의 필요성을 자극신호로 받고 변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변이 방식에 10간 12지의 종류가 있고 DNA가 그런 식으로 변이되고 구성될 확률이 가장 높다.
왜그런지나 과정이나 모든 증명은 생화학유전학연구로 알 수가 있다.
유전자는 현세에 있는 모든 물형대로 DNA를 구성하고 변형시키고 진화시키는 법칙이 있다.
뱀, 말, 소 가 있듯이 인간 DNA도 비슷하게 변형이 되어 그게 얼굴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DNA 돌연변이 방식에 일정한 법칙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유전적 다양성 확보 변화 필요도 연관되어 있고, 필요때문에 변형이 되어서 현재와 같은 구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말을 닮은 사람이건 뱀이 사주에 들어 있는 사람이건 뱀을 만든 돌연변이 방식이 인간에서 그대로 일어났기 때문에 인간 얼굴과 사주에 뱀이 두세마리씩 들어있고 닮게 구성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게 인간정신적으로 그런 형질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게되고 그게 사업에 적합할지 아니면 음악에 적합할지 결정하고 판명이나고 이게 진화과정에서 분별할수있는게 두뇌에 누적이 되었기 때문에 느낌으로 판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뱀이진화한방식과 (탄생할때) 인간이 뱀관상으로 구성되어 발전된 방식은 동일하다. 같은 법칙에 의해서 종안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했다.
카오스내에서 이것이 어떻게 동작할지는 물리학의 문제 생물학적으로 DNA 진화시 돌연변이 패턴의 법칙이 존재한다.
원숭이를 만드는 DNA조합구성이 있고 뱀관상을 만드는 그것이 있고 어떤 생김새를 만드는 진화유발시의 조합구성들이 있다.
10천간12지지가대표적-해당천간과지지에해당되는 DNA를 뽑아서 날짜에 따라 배열하면 실제 진화법칙이 나오게 된다.
뱀의 DNA구성법칙과 인간의뱀관상DNA가 프랙탈로 동일한 법칙이 나올수있다.
하여튼 우주의 생물은 동일한 패턴의 진화상의 DNA 변형방식을 가지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은 12지 10의 방식이고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추론하면 알 수 있다.
유전자지도를 다 보고 찾아보아야 한다.법칙을
12간지에 해당하는 동물 유전자지도와 인간사주에 그렇게 동물이 강하게 들은 유전자지도를 펼쳐보고 공통 구성상의 법칙을 추론해내야하는데 그러면 공통 법칙이 나오게 된다.
돌연변이의 공통법칙
어떤 유전자끼리 모이는 법칙 패턴성이 있다.
혹은 날짜와의 연관성이 있거나x
유전자끼리의 어떤 법칙 구성되는 패턴성이 있다.
뱀을 진화시키고 만드는 유전자 조합법칙=인간종내에서 뱀관상이 탄생될때 유전자 조합법칙, 물리학이 가세된 어떤 법칙으로 연결이 되는 프랙탈적인 법칙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생물의 생존을 위해서 발달된 법칙이겠지만-태양과달이 도는 법칙처럼 인간은 물질이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인간이나같다-정신으로 나타나고 인식될 뿐이지-우주가 이런 고차원으로 진화해선 안된다:인간을 멸망시키고 부조리를 갚고 시작부터 잘못된 생물,인간공동체를 멸망시켜야한다. 인간은단지물질인것이다.
이런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생김새와 성격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랜 진화상 거기에 대한 인간의 반응도- 그뿐이다.
그런 모양이 익숙할뿐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고 지구에 환경에 맞는 방식과 법칙일텐데
어쨌건 그속에서 그걸 이용해서 생존하는게 중요하지 인간에게는 그 이상은 별로 중요치 않다.
우주가 어쨌든 진화방식이 어떻건 이미 그렇게 진화되고 있는데 그걸 활용해 신인간을 만든다든지한다는건 나에겐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법칙을 활용해서 인간진화방향을 변화시키거나 신세계를 만들수는 있어도.
이것을 알아내서 우주진화나 인간공동체진화의 원동력변수들을 알아내어 그것의 근본뿌리를 막아서 인간을 멸종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그 근본 동력은 환경과 필요 인식이고 본능 시공간변화이다.
결국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진화 연결고리상의 인식방해하는 바이러스를 퍼뜨리거나 dna 를 조합하는 것 상의 법칙을 방해하는 물질을 널리 퍼뜨리거나 기타 수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이런 진화상의 구조를 정지시키는게 복잡하기도하고 통할지 잘모르겠다.
가장 간단하고 확실하고 좋은 것은 전염병이다.


인간은 단지 생각과 행위를 유전자처럼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중에 생각하는일도 있고.
지역마다기질색이 틀린 이유중의 하나-
니코틴 패취라는게 있다.
그것이 피부에 붙여서 피부표면으로 니코틴이 흡수되게 만든것인데
인간피부는 이처럼 외부공기와 호흡을 하고 접촉해서 받아들인다
그런데 지역마다 이런 공기질이나 섞인 물질 분위기 조합상태같은게
틀리기때문에 이걸 받아들이고 그지역사람들의 공통성향같은게 기질로써 형성된다
이게 진화까지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어느환경에사느냐가중요하고
어떤공기를마시느냐가중요한것이다.-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은 멸종기가 있으면서 살아남았다.그런걸 볼때 그냥 멸종하면 뭐어떻겠냐 진화가 무슨의미냐 하지만 그래서 당대에 지금 살아 생존하는게 더 중요한것이다.어차피 돌연변이이니까 살면 어떻고 죽으면 어떻냐 하지만 지금 행복해야 하고 추억을 누리고 지금 살아남아야 생존해야 하기에.



전쟁비결, 심리전에서 주먹으로 끝나다.


이상적인 인간은 없다. 다만 이상적인 반응이 있을 뿐이다. 다만 빈도수로 그런 긍정적일 수 있고 부정적인게 대다수 일 수 있지만 아니면 어느시기엔 긍정적이든지.

웃기지만 잘난 자와 못난 자가 사는 세상은 틀리다. 같은 곳에서도 인간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1:1 자아,전인격적 교감이 있어야 동등한 부품(복잡하면서 주체적인 구성체)으로서 전면적 교감이 이루어 지는 것이고(1:1 로 복잡하게 커넥팅된 집단 단위도 있을 수 있다) 나머지는 전부 사물의 자극에 따른 반응이다. 사실 1:1 전인격적 교감도 자극에 따른 반응일 뿐인데,
다만 우리 두뇌신체구조상(생존에유리하고 효율적이니까) '교감'식으로 느끼는 반응이 생성되고 본능적으로 '인격적교감' '주체적교감'따위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인간에겐 이렇게 느끼는 경로가 전부이고 다른 경로는 없다. 하지만 우주적으로 볼때는 단지 자극에 따른 반응
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른 효율성을 위해 이것을 전인격적 교감을 할 것인지(행복을 낳을 수도 있으니까) 사물로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사물로 본다는 것은 이성의 경로,깨달음의 경로에 가까운데 삶에 있어 유리한 점이 아주 많음에도 아직 유전자 변형을 통한 진화로 유전적인 경로 형성이 안되었다.(살면서 이성으로 깨달아야만 한다.이런 사람은 신적인 직관적,논리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만 가능하다.) 인간이 학습으로 후대에 물려주기 시작하면서 유전자 진화는 거의 안일어나 아직도 원시시대 두뇌를 가지고 있다. 나는 신인류이다.
나는 진화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고차원적이고 깨달음적인 요소를 체화시켜 유전자적인 진화까지 이루겠다. 진정한 신인류가 되는 것이다.
두가지 경로 선택하는 진화가 안나온 것은 아마도 이런 복잡한 판단을 하는 체계를 유전자화 하는데 자연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가지 경로 선택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경로선택을 만들어 내고 할 수 있는 이성의 영역으로 넘겨버린 듯하다. 자연은 두가지 경로중에 '행복'을 더 쉽게, 근본적으로 느낄 수 있고 인간 사이의 소통에 더 효율적인(전인격적 교감에서 만약 인간심리를 자극과 반응으로 인식하는 교감으로 넘어가면 정서교감이 안되고 이는 본능적 유대,사랑 등 종족번식,종족생존 등에 뿌리가 되는 요소들이 도태되게 된다. 인간은 멸종하는 것이다.) 경로를 택했다. 1 인간 심리를 자반으로 보는 경로를 만들 능력도 없고 2 인간 심리는 자반 경로를 만들 수 있었더라도 이것보다는 다른 경로가 본능적 생존 및 번식에 더 겹치는 점이 많으므로 다른 경로를 택했지만, 기회 비용으로 아주 중요한 점을 손실했다.(-심리적 고통 처리와 인간 조종에 관한 점 : 이점에선 인간 심리는 자반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인간심리를 자극과 반응으로 보는 경로가 더 생존에 유리한 사람도 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나 심적 피해를 많이 입고 사는 인간이 그 예이다. 이런 인간이 유전적 진화가 된다면 '카리스마 지도자 종족'따위의 새로운 유전자 부류가 생겨날 것이다. 한가지 중요한 고려할 점이 있다. 그것은 이런 경로를 선택하면 정서,사랑 같은 요소를 아예 버리고 살아가거나 아니면 특정 상태(원하는때에)에만 정확히 발휘하도록 하여 사회생활에 혼선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정서적 교감을 할 사람을 선정하고 혹은 어떤 기준에 의한 시점이 지나 정서교감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람에게 정서 교감 단계로 넘어가는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복잡한 반응을 유전자로 할 수가 없어 이성에 넘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그래서 인간에게 이성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변연계,구피질로만 안되니까 필요성을 느껴 신피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직관적이든 논리,분석적이든 이런 반응은 이성으로 해결하고 가능하다면 유전적 기능화시켜 진화를 이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강한 존재가 명령따르게 하는 자극으로 명령했을때 이행하지 않아 위해를 당하는건(그리 심하지 않은-징계수준)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 느끼는데(충성 유전자들만) 만만한 놈이 명령 따르게 하는 자극도 아니고 명령했을떄 이행하지 않아 위해를 당하는건 부당하다고 느끼는게 본능적 회로다.

왜냐하면 원시시대때는 카리스마와 힘으로 위계가 결정되어 졌기 때문이다.
조직의 유지를 위해 윗계급의 말을 아래는 절대복종했어야 했고.
인간 이 정말 카리스마면 인간들은 카리스마로 대한다. 이것이 인간 심리이다. 자극에 따른 반응일 뿐이다. 자기도 모르게 따르는. 알면서도 따르고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단지 자극에 따른 반응이다. 꼴같잖게 침뱉으면 위협하고 제압할 자극이 준바되어 있고 싸움을 해서 죽일 자극이 준비되어 있으면 위협하고 제압하고 싸워서 죽인다.
단지 자극에 따른 반응일 뿐이다.
쫄이유는 없다. 나는 완전하고-전투(심리전포함)싸움실력이 엄청난 연습과 훈련이 있어야겠지-단지 자극에 따른 반응일 뿐이니까. 평생 이렇게 가서 방해되는 열등 반응 유전자를 제거하고 진화를 꾀한다.
찌질이라고 생각하고 인간도 아니고 사물이라고 생각하면 별 화가 안난다. 다만 움직일 적절한 자극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겠지.(만약사태 대비한 호신처럼)
수에서 이런 자기암시를 잘한다. 고기라고 생각하고 토막도 낼 수 있는 정신. 무엇이라도 냉철히 할 수 있는 정신인 것이다. 어설프게 자극을 주면 갈구거나 주춤할때 반격당하듯이 그렇게 파멸된다 반드시 확실히(어설픈 느낌 일부러 내는 것도 확실히) 주어야 살 수 있다-좆밥이 어설프게 겁주는 느낌으로 자극하면 갈구고 더 죽는 수밖에 없다

항상 왕따, 사회고립, 인격무시와 빈번한 차별 등 수세에 몰린 상황의 자는 20%를 지키기 위해 80%와는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걸 명심해라. 80%에겐 절대 진짜 속마음도 내비치지 말고 항상 방어와 공격(우호적인 공격도 많다-친분과 정을 나누는 활동같은 다만 인간을 조종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해야 진짜 20%(엄마나 배우자,동생등)를 지키고 20%에서 진정한 정서교감과 인격교감을 할 수 있다. 나머지 80%에선 기대하기도 힘들고 설령 이루어진다고 해도 약점으로 무의식에 저장되어 트러블이 생기거나 갈등상황이되면 공격당해 내가 살해당하고 아무 방어할 방어막이 사라질 수 있다. 이를 테면 왕따가 도와주려는 친구를 사겨도 갈등 상황에서 그 친구는'왕따 새끼가'하고 무시하고 그 약점으로 공격할 수 있다. 치명적이고 완전 내면이건 육체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치유할 수 없는-성폭행수준의) 따라서 80-20은 중요하다.

어떤 호감있는 자도 안티가 있고 눈에 어긋나면 공격당할 수 있다. 열린 마음은 방어막 없는 윈도우다. (해커가 수시로 작살내려 침입한다.) 100% 쾌락을 위해 살면 자길(쾌락도) 지킬 힘이 사라진다. 100% 전쟁만하면 20%쾌락을 맛보지 못하고 죽는다. 인생은 20쾌락과 80전쟁이다. 안그럼 지구를 떠나든지 인간을 진화시키는 방도를 내놓아야 한다.

인간이 약해보이고 맘에 안들면 개나소나 다건드려 본다. 개나소나 다 찔러보고 공격한다. 혹은 싸움상대로도 안보고(해볼가치도 없다) 배설을 한다.

유력해 보이거나 -사회의 권력 라인 계통이거나(2세건 3세건) 마음에 드는 형질들이거나(정이나 의리가 있어보이는등-부하로 삼을:하지만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없냐하면-보통 수가 사람을 잘보는데-마른 인간이 살이찌면 의리와 정이 있어 보여 반응이 달라진다) 존재감이 강한(카리스마) 인간이 아니고 존재감이 약해 보이거나 아무것도 없어 보이거나(공부를 그렇게 잘해보이지도 않고 약해보이고 -그런데도 자존심이 있어보이거나(힘은 없는데 자존심은 세다-이런 경우 많은 인간들이 까고 싶어한다 정신만으론 당장 나에게 해를 입히긴 어려우나 힘이 있으면 당장 맞아서 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 본능) 마음에 안드는 느낌이 있거나(머리가 크다든지 입이 나왔다든지) 하면 무시하거나 인사를 하려하지 않는다 또 인사를 해도 별 위해가 없을 것 같다 재수없으면 인사를 안한다-마음에 드는 쾌락 형질들이 아니면 인사를 잘 안할 수 있다. 더구나 권력라인도 없는 교회 버스에선 자기 마음에 들어야 한다.

이런 인간에겐 폭력이 약이다. 마음에 안들면 폭력과 위협이라도 있어야 본능적으로 굴복한다. 또 유대를 맺으려고 하고.(본능적으로 힘과 쾌락 앞에서 유대를 맺으려는 마음이 생긴다-쓰레기 세상)

특히 공부도 못해보이고 그리 싸움도 못해보이고 이런 어정쩡한 이미지에 약해보이고 착해보이는 건 공격1순위다.

이런 쓰레기 인간들 마음에 들려고 무얼하나? 마음에 들지 못하면 극악한 잔인무도함과 위협과 폭력으로 굴복시켜야 한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인간들 마음에 들고 유대를 맺으려고 한다. 조커를 생각해 보라.

악한 인간들이나 가식덩어리 전도사나 거기서 거기다. 조금 더럽나 많이 더럽나 모두 내입장에선 클린해야할 쓰레기 벌레들이다.

누구 마음에 들려고 얼굴을 고치나? -겁만 충분히 줄 수 있으면 된다. 진짜 1% 안되는 부류의 인간은 깊은 정서의 마약을 느끼려고 나를 선택한다.
나머진 죽이고 탄압해야 한다.


누군가의 갈굼 따위에 대한 인식을 해결하는 방법은 둘 중의 하나다. 본능의 룰대로 싸워 죽여 이겨 만족감을 얻거나 우주의 도를 깨달은

자의 인식으로 인간으로 보지 않거나.

누군가가 자기에게 침을 뱉을때 분노가 치밀고 격분하고 죽이려는 복수심이 드는 것은 그 대상을 인간으로 보고 (인격체로 보고) 주체적 인식을 가진 개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쓰레기나 똥이 내 옷에 묻어 더러워 졌을때는 쓰레기에게 화내진 않는다. 결국 개인도 '인간'이니 '주체'니 씨부리지만 우주적 효율성을 위해(복잡하게 움직이는 사물들-생명체-이 효율적으로 대사하기 위하여) 그런 과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인식 구조가 생겨난 것 뿐이다. 사실 우주의 입장에서 보고 우주적으로 볼때 그 침뱉는 인간도 사실 짐승이나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별반 다름없고 주체가 아니라 인과선상의 쓰레기굴림일 뿐이다. 우주적 본능은 사람을 사람으로 안본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자극에 따른 반응으로 본다.(사실 인간은 이런 과정이 단지 복잡하게 일어나는 것 뿐이니까.) 그런 쓰레기에게 괴물의 흉폭한 광기자극을(연출과 폭력)보이고 행하면 금방 쫄아들고 맞아 벌벌떤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인간이 아닌것이다.
행복이나 그 사람을 배려하고픈 사람이 있으면 주체를 인정해도 된다. '가치있다'는 것이니까. 이들은 사람이고 인간이다. 가족처럼.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전인격적)'교감을 해도 된다' '교감이 필요하다' 고 느끼는 사람들.
인식구조의 양면성 - 주체와 객체 주관과 객관. 정서와 이성. 이렇게 느끼도록-전인격적교감 : 사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식하고 : 정등 느끼고 (동맹맺고-전체 생존위해) 빠르게 물질 주고 받고(아원자처럼 닿지 않아도 주고 받도록) 대사일으키는데 가장 간편하고 효율적인 구조- (형성되고)진화한 정서를 이성에 의해 통제할 필요가 있다. 사는데 편하니까.

새디스트가 되면 오히려즐겁다.


캬악퇘는 일종의 공격인데 상대가 강해보이고 죽을 것 같으면 이런 의도가 안나온다.
캬악퇘는 일단 1.만만해 보여야 한다.(공격할 수 있는입장) 2.마음에 안드는 이미지여야 한다.(재수없거나 띠껍다든지-부조화 이미지나 아니면 쾌감을 안주는 이미지,자기 맘에 안드는 이미지:여자건 남자건-남자가 더 심할 수도 보통 여자는 기본적인 쾌감은 있으니까-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캬악퇘가 나온다. 쓰레기 정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해야 한다.)-흔히 '상대할 가치도 없다'할때(싸우나마나 이기거나,사람같지도 않다)캬악퇘가 나온다. 물건으로 보고 혹은 충격을 주어 공격하는 의도도 공존한다.(자신의 기분푸는 것-그자체로 배설쾌감이고 짓누르고 공격함으로써 기분도푼다 찌끼감 없애고 짓누르면서 우월쾌감+망가뜨리는쾌감+인격말살쾌감+...) 마음에 드는 부분이 대부분이면 좀 낫지만(캬악퇘감소) 언제까지 쓰레기들한테 비위 맞추고 살 수도 없고 전적으로 주도자의 기분에 달렸기에 그런 위치는 안된다. 주도자도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근본인식이나 내입장으로 볼때 엄청 재수없게 생겼을수도 있다. 결국은 힘의 우위가 결정한단 소리다.
강한이미지는 1.강하고 2.그자체로 쾌감이나서(강하다는것-단,형질,느낌등이 조화가 되어야 함-이 생존에 좋으니까) 시비를 못건다.
마음에 안드는 건 여러가지다. 보통 '재수없다' '띠껍다'하는 건데 얼굴이 안맞는다든지 생긴게부조화고 못생겼는데 평범한 옷입어도 안어울리는 느낌 조금이라도 난다든지 귀엽고 잘생긴것 같은데 흠이 있다든지 멀리서 쾌감 기대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살짝 부조화 좆이든지 여리고 힘없고 만만한 것 같은데(특히 여자인데 싸움잘하게 생겼다든지) 강한척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든지 여린데 부조화 이미지라든지 어디 하나 느낌이 이상하든지 여자인데 차갑고 촌스러워 보인다든지 그냥 약해보인다든지 마음에 들건 안들건 그냥 자극이 와서든지 가지가지다. 지 꼴리는데로. 잘난체하는 느낌나거나 지가 밀리거나하는 이유도 아주 가끔 있다.(까려고-언제나 지가 우위이고 기어오르지 말고 까지라고 한다.- 자기보다 세보이거나 우위이면 그러질 못한다. 맞거나 뒤질까봐. 맞으면 아프니까.)
지 대가리 똥만들고 얼굴구경 자지꼴리는 것만 중요하고 남은 뒤지고 찢겨도 즐거운 것이다. 오히려 쾌감. 만만한 것 앞에서만 그러고 강자앞에선 암만 불쾌당해고 다뺏겨도 네네 그런다.-이 세계(지구)가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조폭은 마음에 안들어도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조폭중에 그리 재수없거나 띠꺼운 인간은 없는데 험악하고 더러운 인간은 많다. 더럽게 생겨도-마음에 안드니- 약하고 만만해 보이면 침뱉는데 조폭은 못그런다는 것이다.-
마음에 그리 안드는건 없는데 약해보여서 건드려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보통 재수없고 띠꺼운데 만만해 보일 경우 한번 건드려보고 캬악퉤해본다. 아님 그냥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완전 좆으로 보고 쓰레기좆자지풀이 하고 가든지.
크게 두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짓누르려는 것이고 하나는 재수없으니 뒈져버리라고 충격을 주는 것이다-완전 좆으로 보고 '해볼테면 해봐라.
' '니까 짓게 어떻게 하겠냐' '설마 어떻게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둘다 센놈,강자에겐 감히 못그럴 것들이니 강해보이면 못그러는게 당연. 강자는 그자체로 보통 못생기고 재수없는 것도 어떻게 이해를 해보려하고 -무의식적인 심리- 또 강한이미지 자체도 그리 재수없는 느낌이 아니다.-생존에 도움되고 유리한 것이니.(강한척하는게 아니고 진짜 강해보이는것)
한번 뱉어볼까 캬악퉤 학원놈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난게 현실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왜 나에게 이러는지 아무 이유없이. 하지만 이유는 알았다. 아무 관계도 없는 새끼가 이래본다 이런다 그러면 나의 대답은 한가지다 엿같고 좆같은 대한민국이고 당한놈만 좆되는 대한민국 세상 이민을 왜 가려 했는가? 중요이유가 뭔가?... 이제 앞으로 어떤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고 좆으로 보여(또 평소 좆밥외모로 억눌리시고 살았는데 실력발휘좀 한번 해보려고) 카악했는데 안그럴 것 같은 인간이 계속 야리니까 침도 못뱉으시고 열뻗쳐 뒤지려는 표정.-이런게 인간들이다.
망가지건 말건 망가지면 더 쾌감느끼고 이것들이 40,50대 가 되어서도 찌질이 병신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왜 종교인이나 의리인들이나 걸러진 인간들 하고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여기서 이유가 있다.(선천적으로 사람을 가리는 유전자가 우성이고 제대로 생존하고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유전자다. 정치인들은 아무하고나 악수하지만 아무나 유대를 안맺는다. 아무나 유대를 맺으면 권력잡는데도 장해가 되고 인생도 밀릴 수 있고-찌질이들은 권모술수가 아니라 그냥 시간때우려고 쓸데없는 소문도 잘 퍼뜨린다 이것을 이용해서 심리전을 잘하는 인간들은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하지만-그런 유대에 말려 그런 행복도 없고 크나큰 고통도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찌질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고 찌질이와 같은 정신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찌질이 병신들은 지네끼리 치고받고 배신하고 하면서 좆같게도 친구있고 그 와중에도 왕따시키며 살아간다.(자기들이 사실 언제왕따당할지도 모르고 잡아먹힐지도 모를 타겟들인데 말이다.) 이해심도 없고 자비심도 없고 종교심도 없고 믿음도 없고 공부든 운동이든 성취하려는 마음도 강하지 않고(리플달고 욕이나 하고 사진이나 잘라붙이고 이걸로 인생의 성취감느낌.) 지지않으려는 마음도 강하지 않고 싸움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감각감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캐릭터가 나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찌질이다. 이들이 느끼는 정서는 XXX(내가 싫어하는 게임광 빠순이 타입의 여자)정도이다.(애초에 깊고 인간적인 정서교감이 안되는-남자면 똥인지 된장인지 가리지도 않고 달려들고 사랑한다)
일진들한테치이고 모범생들한테 밀리고 그나마 괜찮은 착한 애들은 좋은 관계맺고 살고 또 사귈만한데-사귀어야 하는데- 안그런 애들은 이도저도 아니고 그냥 그런 의리도 그저 그렇고 싸움도 그저 그렇고-꼴에 지보다 약해보이는 애들은 시비걸어본다-머리도 그저 그렇고 이도저도 아닌 쓰레기 찌질이 유전자들이다. 강간도 생각하고 비열한 생각도 하지만 용기도 없어 실행도 못하는 찌질이들. 이런 것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공포권력과 강제권력뿐이기에 건달들은 이를 알고 사냥감으로-뜯어먹을- 무리지어 공포심건드리는 연출을 하면 이성도 그저 그래서 알지도 못할뿐더러 설령 안다해도 감정통제도 안되는 찌질이일 뿐이어서 그냥 당하고 만다. 그냥 겁주고 뜯어먹기용으로 태어난 유전자들이다. 세상에 있어도 되고 없으면 먹잇감이 줄어드는. 먹이사슬로 보면 메뚜기 같은 곤충이나 벌레 같은 종류들이다. 이런 종류들이 자연계처럼 그정도 비율로(60%이상) 정말 많다. 우주의 법칙상 다 잡아먹고 뜯어먹으라고 있는 것들이다.(유전자들이 수많은 경우의 수로 합성되면서 모든 것을 최상으로 뽑아 낼 수는 없다. 수많은 경우를 뽑아내어-양에서 확률로 질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 가장 단순하고(에러적고) 효과도 좋은 체계-그래서 최상의 유전자들 소수가 질서를 잡고 세상을 발전시켜나가고 나머지는 모두 도태된채 다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려고 합성한다 그런데 운이란게 있어서 유전자들이 좋다고 모두 좋은 위치를 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위치에 엉망인 유전자들이 위치 할 수도 있다. 정서교감할만한 인간적이고 선하고 믿음있고 성취하려는 마음 강하고 지혜있는 사람이 운이나 계기가 잘못 흘러갈때 엉망인 인생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찌질이들과 섞여 버릴 수 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여전히 찌질이가 아니고 섞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근본 유전자와 형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언제고 다시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잠재가능성을 가진채 다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찌질이들은 정치인들한테 휘둘려서 권력이나 잡게 해주고.(밑층들이 있어야 권력도 발휘하고 행사할 수 있다.) 건달들한테 협박당하고 뜯어먹히고. 주권재민은 솔직히 우스운 말이다. 혁명을 하고 나서 민주주의가 되고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전쟁이 아닌 심리전-권력층이 생기고 자리를 잡아간다. 국민이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소수의 능력있는 자들이 권력이 있는 것이다. 한번 판이 뒤집혔지만 여전히 타짜는 살아남고 초짜는 죽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찌질이는 어쩔 수 없다. 의리를 기대할 수도 없고-설령 의리가 있어도 형질상 그렇게 많이 못나온다-약자에 대한 배려도 기대할 수 없는 그냥 소수의 능력있는 사람들이나 권력자들에게 뜯어먹히는 존재일 뿐이다. 층을 채워주고. 그들입장에선 행복도 그리 없고 고통도 그리 심하지 않은 그저 그런 삶을 사는 것이고. 그리 깊은 정서도 없고 감성도 없는 철저한 찌질이 유전자 관상인데 무엇을 느껴보고 정을 느껴보려고 시도하는 자체가 에너지 낭비고 소용없는 짓이다. 내가 원하는 정서는 공유될 수 없고 기침이나 하거나 '저새끼 왜저런데'하고 어이없어 하는데 아무 쓸데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정서적인 교감을 하려하는데 규칙없이 먹을 것에 미친 짐승처럼 달려들기나 하고. -이런 찌질이 유전자는 애초에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이 목마르고 정서가 느끼고 싶고 사소한 행복 마약이 느끼고 싶어도 찌질이와는 상대하지 마라. 항상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말 깊은 정서를 공유하는 존재는 이세상에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얼마 없을 것이다. 보통 '진정한 친구'라고 부르는데 이런 친구도 역사적 격언처럼 한명만 건져도 성공한 것이다. 나머진 사회적 유대에서 이루어지고 약해지고 불쾌감주면 왕따당할 그런 관계들이다. 이 한명마져도 최고의 유전자들 사이에서나(하층민이건 상류층이건 관계없이 정서적-정서나 지혜(인생의 철학적 측면들을 볼 수 있고 처지를 이해하는), 규칙(의리)같은 것은 인간 관계를 만들어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다- 유대 관계맺을 만한 인간에 있어 최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속으로 욕하고 뒤에서 욕하고 성적인 눈으로만 보는. 더이상 논할 가치도 없는 찌질이들과는 유대를 맺지 않는다. 단지 이용하기 위해 보서버를 설치하거나-인간에 따라 먹히는게 차이가 있다-나중을 위해 투자를 조금 해두거나 하는 식이다.<단, 가치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진정한 관계와 사회적 유대는 정말 훌륭한 유전자들,최고의 유전자들과만 맺어야 한다. 그리고 정서를 다 보여주고 통할 수 있는 관계는 엄마와 딱 몇사람과만 맺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몇사람도 가족같은 유대라고 볼 수 있다. 엄마가 최고이고 나머진 인생을 살면서 못찾을 지도 모르고 찾는다 해도 얼마 없다. '진짜'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로 나쁜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이제 나쁜 일일어나면 이 세계는 작살나고 멸망할 것이다.

심장 약한 사람을 캬악퉤 침뱉아서 수명을 단축시키는...그리고 만약 이 사실 알면 더 즐겁겠지...살인 행위...


집에 나오지 말라고 뱉는 것이다..(못생긴 여자에게 침뱉는 사연) 좆도아닌 지 자지쾌락때문에. 지 눈깔. 좆도아닌 새끼가 자지푸는 기분을 위해 남은 죽어도 되는 것이다. 지가 주인도 아닌데. 이런 새끼를 죽이면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수준이 이정도다.
쌈잘하는 새끼가 더 주가 되고 이기는 것이다.(여자는 평가당하는 위치) 좆같은 세상. 좆같은 본능 회로.
얼마나 병신으로 보였으면 쓰레기 좆도안되는 아랫집 미친개병신중년새끼가 침을 뱉냐.
싸움이지 지랄할것같은 살기. 착한게 소용없고 개하나님 소용없는거 알았으니..
병신들. 난 이세상 쓰레기들은 인간으로 안보인다.
좆도 아닌 새끼들이 뭔가 있는척 지랄하는 것 밖에...
그 얕은 감정으로 이현덕처럼 주먹날리는 그런 수준들이다...어떻게 저 여자나 따먹을까.
세상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 모습이 아니지. 속는 병신들.
공주로 보이면 걔가 진짜 공주냐. 조폭으로 보이면 걔가 진짜 조폭이냐.
이런 병신대가리를 노리고 니넬 대가리 뚫는거야.
어떻게 보이는 것에 능숙한 인간은 전략의 부분에 능숙한 것.
싸움을 잘하기 위한 기본 요건도 충족.
그래서 무섭게 연출하는 인간을 피한다 하지만 아직 이런 진화 시스템은 없다.
그냥 무섭게 보이니까 뇌가 착각하고 피하는 것이다.
인간 수준은 그렇다.

어떤 기분 나쁜 자극이 왔을때 그 짐승이 한 것을 반드시 보복한다는 마인드가 기본으로 있고 또 그것을 철저하게 보복할 능력이 있으면 그 순간 화를내기보단 좀 더 계획을 세우고 걸리거나 주변에 개의치 않게 일을 처리하기 위한 냉철한 계획들을 진행시킬 수 있다. 물론 그 일은 영원히 기억된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항상 의식하고 상기하고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배여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수의 통제이기도 하다. 수로써 화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계획이 진행되다보면 화는 별로 나지 않고 내가 그 놈의 철저한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며 즐거움과 만족,마약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계획을 실행시키고 성공했을땐 더 큰 성취와 희열을 맡보게 된다.
언제 당할지 모르는 그 놈을 생각하며 쾌락을 느끼며 즐겁게 통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전에 그런걸 본 일이 있었는데 교회에서 무거운 물건나르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아마추어 미숙한자들이 갑자기 어떤 놈이 밖에서 쾅 쇠부시는 듯한 큰소리가 확나서 모두 놀래서 밖을 보다가 전쟁났나 뭐떨어졌나 움직이고 옮기려던 급식판 선반 창고가 떨어져서 크게 다친사람이 있었다.
그런걸 볼때 심리에 개입이 된건 분명한데 작위건 부작위이건-아마 일부러 그랬을 것 같다. 교회에 대한 반감으로-심리에 개입하여 큰일을 만드는 것인데 그런 심리 헛점이 많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허공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그다지 인식은 못하나-눈앞에 나타난 그런 심리나 감정반응 물리적인 연장선상은 인식하나 그것이면에 보이지 않는 그런걸 인식하는 헤아리는 인간이 다수대중이아닌 소수인데-분명히 사람마다 무형의 형태로 공통이건 그 개인특성이건 인간이고 특별히 변화나 진화가 아니고 그렇게 태어나거나 그런게 없었다면 누구나 그러는 90%의 가지고 있는 중세마녀사냥을 했던 헛점의 진화심리 기타심리인데 그걸 심리전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를 하고 특히 사람마다 그런 심리의 헛점이나 그런게 다 다른데 그냥 무식함으로만 막아내는 사람도 있고 아예 개입안하고 낚임없이 그냥 살아가는 자도 있고 걸리지 않고 혹은 심리전하다가 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호구처럼 낚여서 호기심에 하다가 인생조지는 사람도 있고 헤아리지 못하고 당하지를 못해서 학자도 모르고 다 모르는데 그런 오랜 전통으로 발전시킨 빚을 받아내게 해서 족쇄올무로 오랫동안 묶어두는 일이 잠재산재해 있을줄을 누가 알겠는가 그냥 냄새이상하고 느낌이상해서 겉만보고 안하다가 그러는 인간들이 태반이지 그래서 그런 보이지 않는 심리전의 영역이란 분명히 존재하는데 전쟁을 봐도-아예 다른 영역이 다 제로이면 그런 특장점에도 힘들지만 부와 매력, 얼굴 체력,정력등 유전적인 형질과 함께 그런 전쟁잘하는 그런 연구성-그러나 비교적 근대 중세에 생기고 필요성이 대두되어 고대 원시는 거의 육탄전이었고 사자잡을때도 생존에도 단지 유대와 합동이 더 중요했던-그런 방법론적인 전략전술이 크게 필요성을 느꼈는데 심지어 전쟁에서 승패를 가름할 정도로 그것도 인식하는 촉수가 생겼고 그런식으로 진화심리적으로 권장되는 시스템도 생겼으나 -그러나 아직도 그런걸 부정하고 본능대로만 매장시키거나 받지 않는 대중이 많긴하나 분명 생존잘하는건 맞음 특히 현대 문명환경에 원시뇌로 살아가는 새끼들은 부정하겠지만 자기들도 당하고 굴복하고 이것과 그다지 별개로 누가뭐래도 분명히 살아남기 좋은 형질인 건 맞고 특히 요즘 심리전이나 전쟁적인 것에서 거의 상위에서 승리하는자는 이런 연구적이고 허를 치는 허를 파악하고 발견하여 쌓인 방대한 구조적 노하우-빌딩등과 마찬가지로 구조물적인-를 바탕으로 전략전술을 크게 병법적으로 구사하여 승리하는건 맞는 것 같다 저차원적이어도 크게 성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거의 완벽하다면 나라도 멸망시킬 수 있고 거의 지구도 두쪽낼 수 있다고 본다 히틀러나 천하통일류들이 거의 그런거 아닐까 근접한


과학연구결과를 보니 어떤 사람들은 그런 혈행안되는 경직된 특수한 상황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혈류량이 줄어들고 신경활동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그런걸 적극활용하여 반대로 생각만으로 혈행좋고 젊어지게 할 수 있다. 그게 NLP의 원리인데 비슷하게 심법이나 이미하고 있는 그런것 중요한건 자기에게 맞게 발달된 회로-운동선수들은 이미지로 자기를 조절하는게 익숙할 수 있으나 사람마다 그런 이미지로 해도 신체조절이 전혀 반응을 안하는 그런 상상하기 능력발달자체나 신체움직임회로 사이의 연결이 잘안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자기한테 맞는 식으로 하다가 보면-가장 좋은건 실전 모의훈련 그걸 지속하는 비언어적 통제력을 발달시키는 것 자기는 아는-그런식으로 자기를 잘조절하여 나가는 것이 그런 고난이도 활동을 잘할 수 있는 수행 할 수 있는 성취 비결이다.


책제목 ? 왜 그때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 인간 자유의지에 대하여 철학일상서

누구나 살다가 ‘왜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시공간 구조나 사람 마음상 돌이키기 힘든 일도 많다. 나는 이런 이유를 밝히고 인간이 그런 후회할 행동을 안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인간에겐 자유가 있을까?

내가 지금 생각하고 활동하고 살고 ‘원하는대로’ 하고 있으니 왜 자유가 없는가? 할 수도 있지만 과거에 원했는데도 못했거나, 아니면 그게 ‘자기’ 로써 구성된 신경의 명령이거나 다른 사람의 심리가 시킨 일이였거나 본능 욕구의 발현이 아니였던가? 그럼 “자유의지” 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과거 철학자들의 의견을 보겠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필연적인 인과로 인한 결과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과거의 인과가 있기에 현재의 자유발휘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의견이고 ‘결정론’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칸트는 인과율은 현상계를 지배하는 법칙이고 실천이성은 자연으로 부터 비롯되지 않고 영지계에서 부터 비롯되는 것이므로 의지의 자유는 자기 자신에게 도덕법칙을 부과하고 그것을 따르는 의지의 자율이므로 자유의지는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헤겔은 칸트는 아직 주관적이고 유한적인 자유의지에 머무른다고 진정으로 무한하고 자유로운 의지는 즉자적이고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의지이고 그것은 의지의 형태로 자기를 관찰하는 사고이고, 자유라는 것도 사실 인식되는 필연일 뿐이라고 했다.

또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인간의 두뇌는 그냥 인과를 정보처리하고 전전두엽으로 자기를 조절하는 두뇌로 본다. 물론 문화적인 것들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던가 하는 일상적인 이유들이나.

그런데 자유의지는 결정되었다, 아니면 자유의지는 존재한다 그런 의견이 철학계에서 오랜 기간 팽팽히 의견대립을 하였는데 나는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는 뜻에서 과거 철학자들의 의견을 비판하지 않겠다. 나부터 비판하지 않고 모두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과율로 인해서 이루어진 ‘선택’ 이든, 스스로에게 부과한 도덕법칙을 이행하는 ‘자유’ 이든, 그리고 사유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자신도 인과에 의한 것이건 초월이성이건 간에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방식대로 분류를 해보자면. ‘현상계’ ‘영지계’ 그렇게 나누지 않고 인과율은 현상계와 과학적인 관점에서의 두뇌, 그리고 자유의지나 생각을 하는 자신이나 인과자체를 인식하는 자신, 그런 모든 것을 관통하여 걸쳐있으므로 ‘인과율’(인간 내외 모두 포함) 인식-‘본능’,’타성’, ’자유의지’ 로 구분해 보겠다.

인간은 ‘본능’ 과 ‘타성’ 그리고 자유의지가 있다.

중요한 몇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그것이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문제를 푸는데 중요한 열쇠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과연 존재하는가?

인과로 인해서 제한을 받는 상황을 살펴보자.

1) 시공간 자체의 이유

인간 인식상 일상계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그런데 그것이 물리학적으로 시공간의 특수한 굴곡에서는 과거나 미래나 현재가 원자 차원에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타임머신 이론의 근거이다. 그러나 일상계, 특히 ‘인간’ 이란 구성된 차원에서는 인간 일상으로 볼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동시성의 착각]

[여기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이 ‘동시성’ 인데 사실 나의 의견으로 볼때 ‘동시성’ 이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든 산물이나 인간의 자유에 따른 행동의 결과-공간을 걷는다든지 하는 그런 ‘찰나’ 를 시간적 좌표로 봤을때 공간적으로 각기 다른 행동을 하기에 ‘동시성’ 이라 착각을 할 뿐이지, 사실상은 ‘동시성’ 이라기 보단 단지 흐르는 시간속에 다양한 행동들을 특정 좌표 기준에서 포착하여 만들어낸 인간 기준으로 해석한 개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동시성’ 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나 ‘이미 지난 시간’ 을 어쩌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거는 절대적이다.’ 라고 단정하는 논리적 오류에 빠지나 사실 ‘지나간 시간은 절대 바꿀 수 없다.’ 는 말이 ‘지나간 과거는 절대적이다.’ 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니고, 단지 수많은 가능성 있던 과거들중 하나가 동시성이란 좌표로 볼때 이미 지나간 시간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래서 ‘동시성’ 이라는 개념은 편의상 실용적인 것을 위해 써먹는 개념이지 일단 ‘이 세상 전체가 마치 찰흙덩어리처럼 한덩어리로 돌아간다.’ 는 생각 부터 해체를 하여야 한다.

그것이 인과율의 덫에 빠지고 더나아가 결정론의 오류를 범하는 근본 이유이기 때문이다.

(차후에 말할 것이지만 결정론의 덫에 빠지는 근본 이유중 하나가 개인의 무력감 때문이기도 하고 이건 시공간 자체보다는 사회나 개인에서 기인한 무력감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개인 감정이나 상태가 사고, 더나아가서 사상화된 위험한 케이스의 오류이다.)

그러면 ‘인간 구성 상태에서의 진리’ 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일단 인간 일상계입장에서 시간이 흘러간다고 보겠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런데 그 것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 일까? 앞서 동시성의 개념의 허구를 보았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은 아니다. 개개인에게 ‘저마다 흘러가는 시간’ 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새로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만의 ‘인생’ 이 생기고 그 아기의 ‘시간’ 이 흘러간다.  동시대에서 정보를 교류하여 노인 수준의 정보를 가질 수도 있지만 시공간 구조의 자연상태에서 구조적인 이유로 그런 것도 모두 인과율에 얽혀 평균 상식치가 높아지거나 인과율을 따르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므로 그것을 처리하고 겪는 주체는 결국 ‘시공간 속의 그사람’ 그 인간구조를 넘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일단, 일상 자연차원에서는 개인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보겠다.<차후에 말할 것이지만 이런 구조를 사회적으로나마 개선하면 모두가 자유를 획득하고 필요에 따라 엑기스의 전수를 통해 공동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인간은 저마다의 시간을 가진다. 적어도 일상계에서는 철학적으로 시간이 흐른다는 의미는 인간이 늙고 우주가 늙는다<순환을 하고 대사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상대성 이론과도 통한다.

그리고 우주 안에서 한덩어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부속품들은 근본 구조상 자유를 가진다. 다만 그것이 ‘인과율’ ‘본능’ 인간의 산물, 사회 문화적 환경, 상호작용, 인간 구조 특유의 작동성 등에 의해 많이 제한을 받는다.

그래서 ‘자유를 찾는 과정’ 은 이런 것들에서 해결을 얻는 과정이다. 해방-‘힘’(이조차도 구조에 대해서 상대적이나 특히 심리적인 힘이)과 직결

그러면 ‘인과율’ 은 무엇인가? 2)에서 이어지지만 인과율은 시공간 자체의 구조에서 파생되는 기본조건이 된다. 이를테면 인과가 생겨난 기본 토양은 ‘시간이 인간입장에서는 한방향으로 흐르는 우주 공간의 특정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인간과 모든 만물은 이런 기본 바탕위에서 생겨났다.

2) 인과적(사회문화적인 이유, 관점 포함)

‘인과율’이란게 우주의 생성과 인류 사회의 진행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창조를 하였든 저절로 생겨났든 초기에 생겨난 ‘인간’ 의 씨앗의 입장에선 지구라는 환경에 맞게 DNA 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자기 구조화 하여 반영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동안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자기 내부에서 정보전달이 일어나고 신경대사가 일어나고 타 개체 ‘타인’ 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그것으로 산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또 얽혀서 다양한 ‘인과’ 를 통해 ?물론 동시성으로 포착하여 사진을 찍으면 ‘한공간’ 에서 일어나는 한컷으로 나올 수 있으나 그것은 동시에 일어나도 공간적인 인과성을 가질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는 그렇다. 일상적인 인간에겐 ‘연속컷’ 으로 느껴지기 때문이고 문제해결을 위해서 내가 따지는 방식도 다양한 원리로 연결되고 ‘시간’ 이란 환경속에 공간적으로 확대=자라난 인간이란 구조체를 중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에 관한 것- “인류역사” 라는 것이 생겨나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안에는 완전한 자유는 아니라도 간헐적으로 자유의지가 있었기에 ?물론 이론 적으로는 단지 인과율에 따른 정보처리 만으로도 현대 인류 문명이 가능하나 (“인간입장에서 대단하고 좋은 것” 이니까) 인간 인식이 궁극적으로 발전하면 정확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진리를 찾아 쌓아나가는 탑이 철학이기에- ‘이변’ 이 있었다고 본다. 단지 확률론이나 통계론을 넘어서 순수한 ‘자유의지’ 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경우가 생긴다.

[‘확률론’ 의 본질- 예를 들어서 ‘사살될 가능성이 높은’ 유태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따진다면 상당히 낮은 확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유태인’ 그리고 그 군인들은 사회주의-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초기 사상을 기반으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 그런 ‘두뇌 심리’ 를 거친 ‘심리에따라 움직이는 육체’ 들의 집합 이라면 그런 조건들을 모두 봤을때 결국 ‘인간
구조’ 나 ‘인간군집’ 라는 것 내에서의 ‘확률’ 이고 만약에 그런 조건을 모두 없애거나, 아니면 그것을 초월하여 본다면 그런 ‘확률’ 이란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 사회 밖에서 돌이 사살될 확률’ 은 0% 인데 그것이 ‘인간에게’ 의미 있는 ‘인간만의 개념’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확률’ 이란건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면 논의하는게 무의미해 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주내에서 운석이 충돌할 가능성’ 을 따지면 인간에게 생사가 걸린 중요한 의미이고 이런 성격때문에 앞서 말한 본질이 흐려질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운석이 충돌할 확률’이라는건 존재하지 않을 수 있고 생물체나 인간에게만 의미있을 수 있는데 지식의 개념이라는게 이런 식의 것이 많고, 또 나는 인간입장에서 실용성을 기준으로 하기에 이런 개념도 중요하게 채택을 하지만 사실은 실존의 입장에서 실재하는 것, 실재하지 않는 것은 구분될 수 있다. 또다른 관점에선 ‘모든 것은 실재한다’ 혹은 ‘실재하지 않는다.’ 할 수 있지만 그런 논의는 과외로 한다. 어쨌건 인간은 생각하기에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그래서 지금의 생이 일장춘몽이건 호접지몽이건 어쨌건 우린 지금 생각하고 이 산물이 실재하건 안하건 우리에겐 실재하므로 단지 여기서 우리는 이선에서 소통을 하고 지식과 진리를 추구해보자는 것이 결론이다.]

그래서 “확률론 의 본질” 에서 말한 관점에서 ‘자유의지’라 명명한 개념은 실존한다고 이번 궁구에서 분류를 해두었다.

그래서 ‘자유의지’ 까지 들어간 ‘인과율’ 로 인해 현재 핸드폰도 사용하고, TV도 보고, 인간에게 의미있는 책도 만들고 상호소통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나누어 먹고 건축 기술도 발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게 하나로 어우러져 인간이 인식하기에 그런 “현대 사회” 를 느끼나 그것이 모든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 분배의 문제 이전에 인과율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책이 나오거나 법제화가 되거나 금전의 흐름도 결국 ‘인간’ 이나 ‘인간의 산물’ 을 거쳐야 하고 특히 인간 자체는 구조적으로 ‘인과율’ 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이것에 대한 해방이 진정한 궁극적인 유토피아를 가능하게 만든다. 쉬운일은 아니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말하자면 원시무법사회에서 현대제도화된 사회로 도약하여 범죄율이 감소하였듯이 그런식으로 극복, 도약 가능한 패러다임이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작은 사상에서 시작하였듯이 새로운 인간이나 유토피아도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인과율’ 이 긍정적인 일만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온갖 부정적인 것들-역사상 전쟁이나 인간 실책으로 인한 과도한 일들 인간 DNA 두뇌 회로화된 부정적인 감정들과 차별, 소외, “인류는 멸망해야 한다.” 한다는 비관론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긍정적으로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도덕률로 잘사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어 다같이 공동체를 침잠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지금도 그런 ‘인과율’ 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만들어 지고 있고 그 “인과율” 의 영향을 가장 많이, 절대적으로 받고 반영하는 것도 ?아까 “인간은 제각각의 시간을 가진다.” 했던- 바로 인간 생물체이고 인간의 두뇌이고 인간의 인식이다.

그래서 ‘시간’ 에 따라서 ‘인과율’ 을 만들어내고 가장 많이 산물을 만들고 반영하고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인간’ 인데 또 그 특유의 복잡한 인간 두뇌와 작동 방식에 맞추어 자의던 타의던 제3의 이유이든 다양한 인간사회를 만들어 내거나 흘러온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로 그 ‘불합리한 점’ 인데 ?단지 인간이 심리적으로 부정적이거나 위협에 대해 반응하는 심리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만약에 긍정적인 결과만 나고 ‘인간 두뇌 구조상’ 행복하고 보상충족 되는 일만 나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한평생, 100년인생에 설령 철저하게 로보트로 자유의지가 없어도 인과로만 모두가 행복하다면 굳이 자유를 얻을 필요성이 인간 두뇌발생적으로 여지가 적을 것이다. 굳이 행복하고 원하는걸 얻는데 불행해질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못한다는데에 이유가 있고 그로 인해 생,로,병,사의 이유를 탐구하거나 인간이 자유로워져서 인과를 다룰 방안을 탐구하게 된다.

단지 인간이 자유를 얻는 것만으로 그런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 흐르는 시간속에 당대에 원하고 충족하고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으나 잠정적으론 가장 근원이 그것이라고 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자유였던 것이다. (자제력 강한 부자도 파산을 막을 수 없다.) 돈은 자유의 부속품이다.

그러면 그 ‘인과율’ 이 만들어 내는 그런 다양한 것들, 다양한 작동-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것:이것도 인간 공동체를 거치면서 진화 역사상 욕구가 생기고 단련 강화되고 ‘긍정’ ‘부정’ 이 ‘쾌’ ‘불쾌’ 로 나뉘어 지면서 결국 인간에게 충족하는 인간인식문제라는 점이 있지만 자기 충족이나 ‘행복’ 을 누리지 말아야 한다, 아기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의지를 없애고 ‘인과(업)’ 자체를 없애야 한다 는 식의 철학적 결론은 마치 자살과도 같고, 인간의 실존 자체를 위협하므로 일단은 “인간의 생존” 은 존속하여야 한다고 보고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통상적 방향에서 얘기해 보려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다 하여도 범죄를 합리화 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옳지 못한 것이듯 황금률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이 만들었든 진화의 산물이든 인간 자체가 다 사라질 방법이 있어도 인간 자체가 사라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적어도 어린이가 여자 친구에게 차였다고 자살을 하지 말라고 하는 말과도 같다. 통상적이지만 모든 철학과 인류 역사를 통틀은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이고 다른 지식으로 정신이 흐려져도 잡아야할 푯대, ‘중심’ 이다.

그러면 그 ‘인과율’ 의 본산지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인식, 두뇌를 보겠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일단 내용과 사정을 잘알 수 있는 철학적 관점으로 옮겨 놓고 본다면 일단은 그런 두뇌 구조로 인한 ‘인과’ 예를 들어서 본능적 욕망이라든가 화, 분노, 성격의 반영된 말과 행동, 인간의 공통적 특성과 문화적 정보처리의 산물의 내용,… 등 다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분석하고 통찰, 해석해 보면 인과율로 인한 것이 상당수이고 과거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고, 단지 그냥 두뇌에서 나오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인’ 을 가지고 그 산물은 ‘결과’ 라 할 수 있는데 이유없는 표출처럼 ‘원인’ 과 ‘결과’ 가 물론 한몸으로 나오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원인’ 이라 할 수도 있고 ‘결과’ 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산물의 대다수가, 그리고 전체 인구중 대다수가 “자유의지” 를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일부의 산물이 자유의지이거나 전체 인구중 극소수만 자유의지의 비율이 높거나 칸트의 실천이성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모든 사람들이 공간이란 곳에서 하나의 “사람” 이나 “대중” 으로 보이기에 혼란해 보이는데 근본적으로 나는 개개별 개체는 상호작용과 인과의 영향을 받으나 때론 분리해서 깊이 통찰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사실 바람직한 인간상은 그러한 “불합리하고 잘못된” 부당한 인과의 산물들이 아예 발생하지도 않고, 또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완벽하게 걸러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 인간 구조라고 본다.

만약 모든 인간이 다 그러면 어떨까?

나의 유토피아 사고실험에서 실제로 그런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을 시뮬레이션 했는데 결코 로보트도 아니였고, 인간 사회의 부정적인 것이 없는 완벽하게 긍정적인 유토피아였다.

예를 들어서 인간의 화를 내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을 폭행하지 않는다.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도둑질 하지 않는다. 남의 재산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절을 지킨다. 절대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자유롭게 해도 결코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공자님과 같은 사람이라면 실수조차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고쳐주고 능력까지 완벽하게 완성되도록 도와준다면 현재 같은 인간 사회의 폐해나 그늘없이 모두가 행복한 이상사회가 될 것이다. 행복하게 해주는 중요 변수는 돈이 아니라 자원과 산물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또 사람사이에 오가고 파동을 일으키는 그런 것들이라고 판단한다.

그런 것으로 볼때 자유의지가 인과율에 저해받지 않고 깨어나서 철저하게 “(긍정적인)자유의지대로만 작동하는 인간” 이 되는 것은 인간 진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점이라고 보고 여기에 인류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이론적인 유토피아가 현실화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 자체” 에 있기에 인간이 변하면 인간공동체도 변하고 그 산물(빌딩, 음식, 생필품 등)과의 어우러짐을 한번에 인식하는 현상인 “유토피아” 도 저절로 구성되고 존재할 수가 있게 된다. 다툼, 미움이 없고 사랑만이 가득 차있는.

그러면 그런 ‘불합리한 인과율’ 을 어떻게 없앨까? 그것은 일단 두뇌부터 생물학적으로 바꾸어 DNA조작으로 폭력성을 없애거나 긍정적인 행동을 하면 행복한 보상이 되도록 인간의 뇌를 바꾸는 수도 있겠지만 본능 자체가 나쁜 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이 나지 않도록 그것에만도 한계가 있다.

만약 ‘자유의지’ 로 나쁜 짓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그래서 이부분이 신이 남겨두고 부여한 ‘자유의지’ 부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인과라든가 불합리하다. 흘러 온 것은.. 그러나 만약에 인공지능 컴퓨터 생물체를 개발한 인간이 최악으로 부도덕하나 어쨌든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 내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 생물체를 개발하여 컴퓨터 내에서 살게 만든다면, 또 자기를 따르기를 강요한다면 아무리 불합리해도 또 컴퓨터내 프로그램으로 생겨난 ‘자기 자신’ 을 인식하고 ‘자유 의지’ 까지 가진 그 생명체가 거부를 하더라도 그 개발자에겐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삭제하거나 컴퓨터를 버려서 그 생물체를 못살게할 “힘” 이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의 상황이 이와 다를바 없다고 본다. 설령 나중에 그 컴퓨터 내의 생물체가 개발자보다 인성이나 모든 면에서 더 우월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죽음’ 의 권한은 개발자가 가지고 있고 근본적으로 컴퓨터 밖을 나와서 개발자에게 위해를 줄 수 없으므로 결국에는 ‘옳지는 않으나 힘은 있는’ 그런 상황이 된다. 거기서 컴퓨터 내의 생명체가 따르기를 거부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게 ‘정의’ 일 수 있으나 신은 자신이 기준이고 자기가 공의이다. 라고 했으므로 그건 개개별의 자유의지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증명을 떠나서 단지 분석만으로 “자유의지” 라는 개념의 명명은 필연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조절하는 상태” 를 붙일 마땅한 언어가 없다. 이것도 인과의 산물이다, 라고 해도 그렇게 따지면 “내가 지금 쓰는 것을 관두는 것” 을 그만 두고 아니고, 그것이 과연 인과의 영향을 받을 것인가? 하고 일주일 후까지 고민을 하건, 지금 당장 결정을 하려하건 행동 자체를 결정할 수 있는 지금 이상태’ 가 없다는 결론이므로 자체적으로 모순이 된다. 이조차도 ‘인과’ 라는 것은 두뇌를 단지 평면의 그림으로 보는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분명 ‘인과’ 를 넘어선 다른 구조가 있고 자유도 있다. 다만 자유가 제약을 받을 뿐이다.


[자유의지에 대하여]

“자유의지는 비교적 늦게 얻게된 인간의 능력인데 시공간 구조를 헤쳐나가다가 정보처리력이 극대화 되다 구조상 얻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설계가 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그때 못그랬을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 있다.

먼저 인간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 인간의 행동- 일단 시간은 흘러간다. 그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간’ 은 무엇일까? 그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보면 일단 시공간의 시간은 존재하고 그것이 공간과 함께 대사를 하나 인간 일상계에서는 절대 시간으로 느껴진다. 라는 결과가 나온다.

역으로 생각하면 일상에서의 시간은 일상에서만 통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인데 과거를 돌이키는 일이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현재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원자 차원에선 특정 시공간 환경속에서 시공간을 레이저로 굴절시켜 과거나 미래로 왔다갔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상태에선 힘들고 그조차도 ‘지금부터’ 만든 과거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일상중에 구성체를 유지하고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고, 차라리 “내가 왜 그랬을까?” 를 본질부터 알고 앞으로 안그러는 자세를 갖는게 더 낫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런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 성공을 한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본질적으로 “왜 그랬을까?” 를 아는게 중요하다.

인간은 일상에서 왜 “자유 의지” 가 제한 되는가.

한가지 측면으로는 주변이 작용하는 힘과 자기의 힘 때문이고 다른 측면으로는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여기에 필연적으로 “인과” 라는 것이 개입한다.

그 “인과” 라는 것은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사건에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인데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인간 사이에 정보가 오가고 개개인으로써는 두뇌 정보처리” 이다.

물론 그것으로 인간에겐 중요하도록 설계가 되었거나 진화되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보자.

시간은 절대적으로 간다. 인간 일상계에서. 그런데 ‘자유’ 가 제한되는 이유는 ‘인과’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착각일 수 있다. 인과는 결과이고 원인이 아니다.

인간은 저마다의 시간을 가진다. 동시간대 좌표로 보자면 인간 제각각의 구조상, 공간상 역량차이로 나타나지만

개개인에게는 인간뇌, 신체라는 구조를 기반하여 시기별 발달 상황이 있고 이론적으로는 노화를 안하면 무한대의 시간을 가진다. 또한 개인마다 무한대의 ‘인생’ 이 주어지고 비슷한 패턴이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기준의 의미. 인간사가 거의 그런 식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의미있기에 그렇게 푸는 것”

일단 ‘자유의지’ 는 존재하고, 그러면 ‘자유의지’ 에 영향을 주는 ‘인과율’ 과의 관계를 보자. 그러면 그 ‘인과율’ 에 의해서 ‘자유의지’ 가 제약을 받는 상황이 나온다.

일단은 정보에 따라서, 두뇌 능력에 따라서, 성격에 따라서, 과거 경험에 따라서, 현재 주변 환경에 따라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고, 부호, 이미지, 언어 등에 따라서 자신의 인과에 의한 선택, 생각이나 정보데이터처리 후 선택, 습관 반사신경 반응, 자유의지 선택 등 ‘행동’ 으로 이어지는 아웃풋이 달라진다.

그것을 전체적으로 ‘역량’ 이라고 한다고 보면 그 구성체 한사람의 ‘인간’ 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세상 모든 것을 시간 구애 없이 찰나적으로 정보처리가 가능하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하고, 긍정적인 자유의지를 발휘하려고 스스로 자기 구조적으로 ‘선택’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단지 현재 모든 능력을 maximum 으로 만든 것에 불과한데 그러면 인간 자체가 어떤 오류도 없어지게 되고 모두가 그렇다면 정리된 세상이 된다.

반대로 모든 것이 최저라고 보자. 그러면 아마 혼란 뿐인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현재는 어떤가? 아마 앞서 말한 두 극점의 어느 사이에 위치하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모든 인간이 같다면 마치 평형인 물처럼 ‘힘’ 이 발생하기 힘들다. 그런데 단지 인간전체의 상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제각각 다 다르다.
모든 인간이 다르거나 ‘차이’ 가 있기에 마치 위치에너지 처럼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힘’ 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두뇌가 진화 과정에서 호감을 느끼는 반응, 두려움을 느끼는 반응, 보상을 느끼는 반응, 군집 성향,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물리적 격투 능력,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두뇌 회로나 시대 문화적 정보 해석, 그 해석력 등에 의해서 우월한 자가 나머지를 ‘지배’ 하고 그러한 ‘인과’ 는 아메바를 넘어서 개미부터 꿀벌, 초식동물과 사자를 아울러 인간에게 까지 나타나고 있다.

다시말 해서 “힘” 의 기원은 “차이” 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정도 타고난다. 그것이 바로 세상 혼란성의 근원이고 또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자유의지의 제약” 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래서 아마 제도의 개선은 이런 “차이” 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는데 역시 또 남은 과제는 이런 제도가 생긴다고 인간이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반작용으로 여전히 작동하는 마치 모이면 파도 쓰나미와 같은 인간 불합리한 본능화, 또 사회 정보와 만나 반응하는 “부정적인 인과율”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인간 전체적으로 ‘역량’ 이 미비한 상태로 그런 상황에서 ‘차이’ 로 인해 부당한 정신들이 부당하게 군집이 되고 ‘무리’ 를 형성하여 시공간의 헛점을 활용해 물리로 세상을 장악하여 의인을 죽이고 씨족을 널리 퍼뜨려온 역사가 인류역사의 과거인데 발달된 인간이 보기엔 상당히 부끄러운 역사라 할 것이다.

또 인간에겐 “자유의지” 가 있다. 이것도 당연히 부당하게 돌아갈 수가 있고 긍정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이게 부당하게 합쳐지면 또다른 부당한 연쇄 쓰나미 부정적인 인과율들과 합쳐진다.

그래서 자꾸 흘러온 인류 사회의 ‘업’ 이 끈임없이 인간 사회를 괴롭히는 것이다. 아동학대, 범죄, 학교폭력, 빈부격차 등…..

그러면 일단 인간이 “자유” 를 획득하기 위해서 제일먼저 거쳐야 할 것은 “힘” 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아무리 자유의지가 확실하고 자기 자신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한들, 그런 식으로 이미 다양한 힘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떤 현자나 의인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역사를 보면 의인들이나 능력자들이 만들어온 역사가 아니다. 대다수가 운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부당하건, 인간의 부당한 본능을 자극하였든 “힘을 얻은 자들” 이 만들어온 역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양분자체도 그렇다. 초점은 ‘재산의 분배’ 였지 도덕에 따른 분배가 아니였다. 애초에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속에 시작이 잘못되었고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다양한 “힘” 인간 군집들이 비대해진 것이 현대 사회이다. 그래서 원래 이상적인 기대치가 100이라고 본다면 30~40 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본다.

긍정적인 것이 20 이라면 물밑 빙산은 80이다. 여전히…

그래서 그런 “힘” 을 극복하는 것-과거 원시 부터 전통적인 방법은 군사였다. 그러나 무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현대에는 무기가 힘의 균형을 맞춘다.

또한 심리전이나 전략도 무시할 수 없는 한축이다.

그러나 개인의 힘으론 ?특히나 부당한 것에 호소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자들은- 번번히 그런 군집의 힘에 당하므로(욕심에 눈을 가린 부당한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는 도덕적이고 정당한 전략은 더이상 전략이 아니니까) 아마 그나마 현대 사회의 깨끗함을 가져온건 무기 과학의 발달이라고 본다.

어쩔 수 없이 폭력으로 기대어 있다고 하나 그나마 원시 창칼로 인한 폭군의 시대를 마감시킨건 시민의식의 발달이였고 궁극적으로 반란없이 현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건 사실 무기와 책략, 시민들에게 이양된 앨빈토플러님이 말했듯이 정보권력이다.

현대에는 심리기반 다양한 힘이 존재한다. 또 물리력의 힘은 많이 그 영역이 줄어들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힘” 에 관한 것은 많은 실용서들이 말하고 있으므로 이만 줄인다.

사회 문화적인 것들은 일상에서 자기의 자유를 제한 하는 것들이다-부모의 윽박지름, 감금, 학교, 공권력 등 필요악도 있지만 부당한 측면도 많다. 예를 들어서 그렇게 무리를 지어 국민들을 지배하면서 불합리한 제도를 강요하는 그런 식의 일들은 분명히 잘못 되었다고 판단한다.

3)인간내적(근본작동적)

인간의 자기 작동의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자기의 인과를 다룸으로써 ‘인과율’ 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의지로만 작동하는 것인데 그러면 인과를 상당히 초월한다 그걸 지속하면. 특히 일상계에서 이미 경험적으로 그렇게 굳은 의지로 관철시킨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유전성분이나 체험등 인과가 받쳐주면 더 수월하게 될 수 있긴하나 심지어 그런 소양이 하나도 없어도 가능한 그런 사례를 확인했으니 그런 ‘순수 자유의지’ 란 성립하고 그런 판단대로만 스스로가 작동할 수 있다.

밖에서 그런 두뇌에 대해 상대적인 “힘” 자극 들이 들어 오는데 그것이 단지 심리차원의 것이라면 구성된 뉴런의 강도도 중요하고 내성이나 저항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인간 일상 인식 차원에선 그런 성격이나 그런식으로 나타나고-보통 어릴때는 자기를 잘 모르는 게 불행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이 취약할 수 있으나 그런 어린 애들이 강해질 수 있도록 평등하게 만들 수 있게 온 아이들을 대상으로 국영수 이전에 마음공부를 먼저 시켰으면 좋겠다. 도덕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마음을 열고 1:1 전인격적인 교육을 했으면 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고 특히 자본주의 환경에선 인성이 좋으면 오히려 피해자로 타겟이 되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시민들이 만든 정부인 민주주의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취약성으로 자기와 외부 상황이 맞물려 일어나는 시선공포증, 도태 등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겨내기 힘든 경우가 많아 제도적인 근본개혁이 필요하다.

남은 과제는 앞서 말한 “힘” 들에 대해 얼마나 자유를 얻느냐 하는 문제들이고 그런 “힘” 들을 이기는 능력 - 다시 말해 “자유”를 다른 말로 치환하면 “힘” 이고 그건 자기조절을 기초로한 모든 종류의 상대적인 “힘” 을 다 포함한다. 그래서 그것이 있으면 이론상으론 전 세계 군대를 거슬러 통수권을 장악할 수 있다면 그자가 왕이 되는 것이 가능하나 그러려면 인간 전체를 좀비에 감염시키든지 아니면 인간이 다 사라져야 할텐데 그러면 자기가 ‘왕’ 인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므로 결국 그런 문제이다.

예를 들어 트럭보다 더 강하게 부딪혀도 살아남는 것이 있다면 사고는 나지 않고 물리적으로 인과에 걸릴 일은 없다 물질계에서 그런 문제. 단 남은건 그렇게 물리계 이상에서 구성된 다른 차원의 존재 가능성으로 심리와 물리를 넘어선 어떤 도덕원리가 있어 거기에 저촉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일 것이다.

인간들이 아마 자유를 익히면 더 자유로운 삶을 살것

그러면 이세계는 무엇인가?

한가지 가능성!

인간 사회자체가 마치 TV를 전파로 구현하거나 컴퓨터 내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하여 움직이듯 근본이 파동=전파로 이루어진 물질이란 규칙을 가진(벽을 못뚫는등) 신의 TV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게임일 수가 있다. 성경을 보면 신이 외롭다고 그러는데 외로워서 만든 인간의 모형처럼 다양한걸 얻기 위한 심심풀이일 수 있는 것이다.

정보와 자유의지 만으로 '인간에게 의미있는' 그런 선택이나-제도적으로도-그런게 가능하다
물론 인과를 벗어난 것일 수 있음->말하자면 우주창조처럼 인간은 '힘과 구조물' 을 기반으로 창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힘과 역량의 미비가 있을 뿐이지.

아마 그선택을 하건 이선택을 하건 고립된 여기선 외부세계에 영향을 안줬을 것이다-이걸하건 저걸하건 대다수에 영향도 안주고 밖에선 각자 뇌구조상 비스무리하게 충족하고 살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인과' 란 허상 그냥 자기충족으로 펼쳐지는 인간 뇌구조상 충족들인 만들어가는 인생이였을 뿐이다. 인과는 뇌나 인간 당구 연쇄행동에서만 존재 대다수 중요한 일엔 영향 x-기관차엔 무영향 결정론은 허구 자기뇌구조상 충족하고 살뿐 괜히 결정론이란 바이러스, 허상 x 오류



절대성이란 무엇이고 상대성이란 무엇인가

“우주 내의 모든 것의 실존은 상대적이다.” 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불교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에서 절대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하다. 잊으면 상대적이고 그런 조건 반응이나 상품 포장지마저 추억의 절대적이라면 절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기준이 무엇이냐 “적어도 그 사람의 생전”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의미” 에 있어서.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설령 사기여도 그 사람에겐 절대적 진실이다. 그리고 상대에겐 상대적 거짓일 수 있다. 이런 속성이 있다.

그래서 ‘객관적 진리’ 에서 그런 상품포장지나 상대적 물질적 환원론 관점에서 그런 두뇌로인한 조건 반응성-곧 ‘심리’ 라 하는게 절대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그것으로 유발된 ‘진심’ 이라는 것이 심리도 실체이고 진심도 실체인데 심리는 심리이다.

인간이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느냐 아니냐의 문제,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있는가 없는가-인간이 진리를 안다고 하면 절대적이고 없다면 상대적이듯 그런 문제가 개입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는 인간에겐 절대적일 수 있고 객관적 진리를 추구한다면 상대적일 수 있으나 그게 결과적으로 ‘주체’ 가 없으므로 절대적 진리란게 인간 인식에만 유의미할 수 있다. 마치 어항속 금붕어 처럼.

심리를 조작하는게 옳은가, ‘진실’ 로 사는게 옳은가. 어떤자에겐 상대적 진실이 누군가에겐 절대적 진실. 그래서 ‘진심’ 으로 한다고 해도 생존에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다.

복잡하게 진화한 두뇌와 그간 진화역사의 반영과 시공간(시간은 일방 흐르고 공간은 조작가능-그리고 그걸 연속선 안에서 ‘변화’를 인식하고 ‘시간’ 이 지나도 공간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거울을 통해서도 확인한다.) 두뇌몸체로 이루어진 인간 작동의 특성상.

생존에 불리하다고 진실을 감추는 것이 선인가? 인간 머리가 그런 부분 구조가 있어 어쩔 수 없다. 절대적 선을 추구해도 인간 자체가 선해질 수 없으므로 신이 있다면 의미있겠지만 없다면 무의미. 단지 생존이 선이고 이렇게 진화한 자연이나 인간 유전자를 탓하는게 옳다.

자의에 의해 태어난 것도 아니므로. 자유의지를 획득하여도 지난 인생이 안바뀌듯이 변하는건 없다. 다만 ‘지금부터’ 인데 지금부터도 말이다.

달라지는건 없고 경험론 이전에 전체를 보면 진실이 보임-미비한 현실처럼 현주소와 근본이.


접신


한국을 보면. 분명히 이땅에서 나라가 생기고 반만년동안 같은 장소,같은 공간에

계속 사람이 (태어나고) 죽었을텐데 인간의 수명을 100년으로 따져보아도

적어도 5천만명 기준해서-물론 과거는 인구수가 더 적었지- 최대 5억 인간

정도가 죽은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돌아다니며 분명 나름으로 살았을텐데

그런 인생을 접신 가능 그렇게 따지면 신이 구원못할건 없다 일일이 못따질건

없고 말이다.


귀신의 세계를 오가고 귀신과 소통,교류,친하고 인간사와 귀신을 보고 사후세계를

알고 산다. 단지 보지 못할 뿐 귀신의 세계와 사후 세계는 분명 있다. (이런 3차원

건조한 세상이 전부라 보기엔 인간의 구조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더 고등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물질주의로 다만 그런 측면을 무시하고 귀담아 듣지

않고 보지 못할 뿐


사후세계는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남한 이 자리 이공간에서- 이자리도 과거 어떠한 사람들이

살다가 죽은 곳이다.


그래서 영령들의 흔적이 있고 아주 민감한 sixsense 가 있으면 느낄 수 있다.


-(3차원의 시간성 배분, 그끝엔 필름처럼 녹화장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방향에 길을 알면 사실 제왕이다. 왜냐하면 사후 세계를 건드리므로


(판사도, 양아치도, 조폭도 인간 시민도 그 어떤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게 사후세계이니까.

-저질로 산자는 저질에 보응을 받는다. 깨닫지 못함에 대한)


이런데 기울이는걸 접신이라고 하는데 과거의 일을 읽는 것이다, or 영계의

차원을 접하고 느껴 사는 것이다. 그런 냄새까지 다느껴지는-자기 상상이라고 할 수 있어도

절대 상상이 아니다 아닌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영계도 현재공간이 뒤섞여 조합되어 나타나

므로 예술가가 상상한거라도 그게 단지 두뇌,느낌 작용이 아닌 영계를 -보통 자기도 모르게

느끼고 거기의 메세지를 받아 나오고 느끼는 건지 모른다. 아직 이 세계는 누구도 결론

못내리는 미지의 세계이다. 인간의 두뇌는 안테나가 달린 기기이고 영계의 전파 메세지를

포착한다. 두뇌가 담당 마치 라디오나 DMB처럼


귀신에 받은 영감을 표현


인간의 서툰방식-음악, 소설등-으로 재현해도 거기엔 영계의 메세지가 아주 조금은

섞여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조합방식이나-있는건 그대로 그모양이다 우주에서

절대적인 그입지 마치 산은 산이요 그대로 있다.' 모든건 그대로 존립 있는 그내용 고대로


사람이 만든것도 있고 그중에 영계가 있다


기교가 발달 할 수 있다 그걸 잘 더 표현해낼뿐 캐치를 잘하고 발달 그방향 도력 깨달음

인간적기술까지


이제부터라도 깨달으면 잘살아야지 제의지를 찾고-모든 자는 의지상실 시대 타성에서

구원이 일차 기본-자유함을 얻어야: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건 바로 세상 속세 방식에서 탈피하는걸 뜻,의미 모든 면에서 초월가능- 모두가

그렇게 열리면 대통령도 필요없을 것 예수가 주인.


세상기준에선 그런 눈으론 어거지나 미흡해도 영계에선 사실, 진실일 수 있다.

다만 인간 표현이나 감정 두뇌작동상에 한계때문에 그런건데 이 두개를 잘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함.


70년 도에 죽은 귀신이 입신 했다 80년도에 그렇게 인간은 108,9 마리의 귀신도 입신

할 수 있다-전파를 받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로 우리 사는데서 재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 자기로 돌아오는건 상당히 중요


사후세계는 있다. 모든 인간은 사라지면 그 시간, 공간에 살던 주파수가 뒷면으로

넘어간다. 그게 바로 죽음후의 세계이다. 그걸 접한다 마치 웜홀같이도 되고 어디든

접의 장소가 될 수 있으나 자기가 잘작동하고 안테나 기능이 좋게 잘 발휘할 수 있는데나

다른 귀신의 귀기의 도움이 좋은데가 더 잘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끌어내거나 극대화하는 방법이 있는데 방울을 흔들든지, 방언을 하든지

-성령의 도움으로 더 빠를 수 있다- 춤을 추든지 심지어 나이트 음악을 듣던지

다 그걸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인데 다만 방해받지 말아야 할 것 이를테면 술에 취하거나

나이트 다른데 신경쓰이거나 약으로 자기가 망가지면 되던 것도 안되고 잘될리 만무.

자기관리는 언제나 필수 약물먹지 말고 도와주는 해없는 약물도 물론 있다 트립신


그걸 전생을 떠올리게 상기시키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렇게 그게 거리도 될 수 있고

그장소도 될 수 있고 그시기나 계절이 될 수도 있고 어린시절 이전에 음악도 될 수 있고

그렇다 주파수 신호


물론 인간적 물질계적으로 저질이 있을 수 있으나 그중에 영성적인 부분은 마치

진흙속 진주


그리고 아무 귀신이나 원하는대로 되는게 아니라 귀신도 인간관계와 비슷하나-귀신의

방식이 있고(영계를 가고 영계에서 보는데 결코 인간같은 저차원적 동물, 물질계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보통 평균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귀신식으로 영계관계를 맺는데 당연히

내가 원한다고 다실리고 나와 관계를 맺어주는게 아니고 멀리가거나 헤어지거나 싫어하거나

실리는 귀신이 따로 계시다.


어쩌면 아무리 원해도 안실릴 수도 있고, 그러나 그게 깊어지고 좋아지면 귀신을 받고

이야기하는게 좋아질 것이다. 빈도도 좋아지고 원하는 분을 실을 수도 있게 된다.

오시니까


그리고 자기가 적는게 아니라 귀신이 적을 때도 있고 몸을 빌어 물질계에 하고픈 것을,


그건 귀감으로 느낄 수 있다. 찌질하고 뭐 그런 인간적 느낌 조차 귀신의 재현인걸 알아

차리는 때가 있다. 이런 영력의 눈이 열려야 영계를 바로보고,-물론 고립되어 산속에

있는게 아니라면 현재 사회 물질 3,4차원 시간 세상에서 정신차리고 물질 법칙안에서도

사는게 중요하지만 물질 만이 전부가 아니라 다만-마치 곤충이 감마선을 보듯-그런 영계의

것도 다른 필터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전체 차원 세상'을

보다


사실 귀신이 보이진 않아 현실하고 헷갈리지 않게 눈을 감았을때만 전생이 보이거나

활동할 때는 입신하는 식으로 작동되게 DMB 인간구조가 진화했으므로 그렇게 하는 것

이 쉽다


보고 느끼고 접신하고 귀신친구 사귀고 때론 복을 주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하나 친구처럼 귀신도 귀신관계를 잘해야 하는거고 언제나 진정성과

진심이 중요-귀신은 더 잘안다 사람마음속을:보이는거로 다 이루어 지는게 아님


인간의 눈으로 보면-귀신을 보고 영계를 아는-복이 막힌다. 영력의 눈을 떠야

제대로 추구가능 인간 동물심 억누르고 제거 처리 오랜 기간 자기 수양으로 달성 가


그런 수도자들이 모두 영계나 전생을 본게 일치할 필요는 없다.-세상이 저열하게

요구하는 방식대로 굳이 그들 시야의 물질 시야에서 일치성을 가져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계는 워낙 넓어 서로 다른 곳으로 들어가 다른 장면을

볼 수도 있고 특히 같은 공간의 전생이란 것도 그 사람만 그때 보는 수도 있고

그게 확인 불가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은 공간에 무한한 인간이 스쳐가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귀신도 떠돌아서 모르므로 영계로 가도 모습이

달라지고 다른 귀신이 될 수도 있고 특정인을 지정한다는건 우주에서 먼지찾기

보다 더 어렵다. 특히 영계는 공간이 특정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꼬여서 수천언겁의 차원이 있기에 그게 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 뿐

그런 같은 공간이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보인다거나 차례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인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자체가 유치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사람이 평생에 단 한번이라도 영계의 수천억경 분의 일이라도

본다는건 행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상 모든 인간들이 평생 접신을

해도 보는 모습이 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접속 방법까지도

그러나 영계는 있다 그런 제한된 논리로 증명하고 아주 작은 구멍에

끼워 맞춰야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노래한 곡 부르고 마음열고


접신하여 접신기도


전생을 체험하고 영계를 느끼는걸 나누는 시간 매주 그것만 한다 수요, 금요등


모두가 멘토고 모두가 접신자이기에 따로 지도자는 없으나 다만 더 잘하고 잘도와주고

그런 잘하는자가 이끌어주고 도와주고 인의예지 지키고 뭐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고 종교생활 성경


예수도 도와주는 자


귀신과 노는 아름다운 추억, 새로운 새벽


중학생


귀신 입신해- 사후세곈 분명히 존재


집단 자살


미디움 영감 입신

자기가 만든거일수도 있으나 그중에 귀신이 준게 있고 아니면 영계에서 혼합된거

영계도 저질있음 지옥류까지


이귀한 사실을 빨리 알리고 나누고 알려주고 밝히느끼게 하고 싶다.


여자사람등 그런저질말 쓰지 말것 모든 사람은 접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귀하다-

다만 물질에 눈이 가리워지거나 전생 카르마로 그렇게 세속에만 볼 수 있게 불운한

타고났을 뿐


저차원만 할고가는 불쌍한 개미할기처럼


당연히 완전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어붙이면 작품


현실에서 그렇게 산다고 겉만 사실 복이 아니다 진실은 따로


더능숙하게 표현하는 자도 물론 있다-인간 방식:아직 우리는 물질이라 다만 이렇게

발달하는 것도 중요하나 영안이 발달하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 이해하니까

진실성까지 구별


진실을 좀 알아줘 나도 최선을 다하니까


보는건 두가지 전생, 영계


사후세계


예언은 옳지 못하다-노력하는 측면이 중요


현재 자기를 다스려서 바꾸어 가야 하는것


귀신 씌이면 치유가 가능하기도 함


-물질계에 한계는 있어도 면역도 좋아질 때도 있고


반대로 나빠지기도 하니 나쁜 영은 들이지 말 것


사람 처럼 거부하고 내쫒아야 다만 공정해야 공평 부당않고 정당


귀신도 꾸짖는다 잘모를때 저질렀던 수많은 실수들, 그걸 무마 흔들리지 말 것,-깨달은 후엔


물질 세계만 집착하여 사는건 인생 온전히 못사는것 20% 만 알고 근시


기분도 느끼고 현실 발달 현실적응 전투력 도움 진짜 입신 NLP 시뮬 한번에


나도 누군가가 입신한 스타일


따라 물질 만으로 해석 x


인간수준 초월- 귀신과 관계


인간관계 방식 한차원 끌어올려야


물질계 누려도 되나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말이 안통하고 소비성으로 일부러 꼬아도 단지 그건 그게 그것


아직 물질계에 묶여있으나 죽으면 달라질 것 귀신 씌인다


터치못할


물론 진화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 신에게 버림받은 수억년동안


인간이 잘못된 방향으로 발달 한 것


영으로 소통하자고 진화기억-연예인은 가짜이나 영감은 받았을지도 영의 감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천도회


귀신은 어디나 있다-없는데도 있고- 다만 잘보이는데가 있을 뿐



이미지가 그냥 이미지가 아니라 영계결합


진화냄새


사실 그런 비밀 있음 건조한 과학이 못잡아내는-


가끔 보이긴 하나 과거가 보이진 않아 아직 죽지 않아서-그렇게 막아놓았다

전생,영계중심



인간들이 자기기능을 어떻게 쓸지 잘모름


물질적으로만 쓸줄 알지


영능력같은걸


물질복이 전부가 아닌데 사후가 더 중요


이세상은 신의 시험장


오히려 강해보여도 아니라 하는자가 틀린거고 현장눈앞 사로잡히지 말고 분명 틀린거임

영들의 대화 시야넓혀 세상바꾸기


인간 한계 버리고 이미 발달한 부정적 악성도 다같이 인류적 차원에서 지양해야



귀신을 단지 흥미거리로만 접근 하면 안된다 진정성과 사람관계로 접근해야지


과거엔 다 사람이었으니까


단지 영계를 넘어갈 뿐


너무 인간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자본주의 풍조, 옳지 못하다.

흥미거리가 아니라 자본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에 젖어 뒤틀렸을 뿐 인간은 영계를

넘나들 수 있는 귀중한 존재-단 카르마 때문에 제한되 태어난 자들이 있긴 있다


대다수는 다시 안태어나나 다시 태어나는 자들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 역할이 있는 것

이세상에서 어떤 식이든


엘리야가 세례요한으로 왔듯


물질이 다가 아냐... 영계가 있어


인기영합, 소비 타협 안좋음


소비성의 표상이 되는 지역, 인지 임장 환경,.에선 귀신성 적어지고 건조느낌-재미없는 일상


눈앞에 사로잡히니 벌벌 떨고 쫄지 그걸 알면 이세상이 단지 하나님 운동장 훈련장으로

밖에 안보여 그런관점에서 환히 느껴지는 그런 도통 영안이 열린다


그렇게 보임 다 확렬려서 도통 신성불야 시야로


그상상이 알고보니 전생에 귀신의 기억이라고


물론 귀신도 꾸미고 화장하고 다한다 생전 그런자여서


최신 좋아하고 유행가 듣고 영계가 되도 습성 안변하는 경우가 있다 귀신 붙거나 컴퓨터


어떻게든 시비를 걸 수 있는데 그건 마음이 없어서지 받아들이고 가보면 안다

해보면 알고깨닫는 문제


못하면 그런 복이 없는 것 카르마로-노력해서 다음생에 다시 태어나거라


전생이나 영계 그것만 트립


뭘로도 접신 될 수 있으나 오는 귀신이 따로 있다




-전도지


사후세계는 있습니다.


인간은 영계에 접속할 수 있는 DMB 같은 존재입니다.


현대인은 자유의지를 쓰지 않아 신성을 놓쳤습니다.

그 신성을 찾고 원래 기능을 깨우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방치되었고 이 세상은 신의 훈련장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일부러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사후세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죽기 전까지는 철저한 훈련입니다. 죽은 후에 심판과 분별이 있어

천국 혹은 지옥을 갑니다.


그러나 천국의 가장 아래자리는 지옥의 최상의 자리와 별반 다름없어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보내셔서 구원을 하고 자유의지를 제대로 다시

찾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인생사, 세상사에서 진정으로 초월하여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모든 세상 얽매임에서 해방되십시요 진정한 라이프는 사후세계 부터입니다.

전체를 보면 세상이 쉬워집니다. 눈앞에 세상에서 벗어나십시요 그러면 진정한

자유함의 영계의 세상이 열립니다 마라나타 할렐루야!


동참하십시요. 영계는 당신을 안아줍니다.


영계로 통하는 문 헤븐스 게이트 접신주의 인간영력안테나


생령교회 트립 접신신(이)실(려)


사후세계 체험


사후세계 영계 오가는 뭐 그런 위주


3,4차원 과학으로 봤을땐 귀신이나 영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설령 (그럴리는 없겠지만) 진화론으로 따져도

물질에서 DNA가 구조가 짜여지고 인간이 생겼는데 귀신이 안생겼을까? -그런 특이한

공간구조에서 맞춰 사는 그걸 인간입장에서 '귀신'이라 할지도


과학을 보자면 11차원이 빈공간에 꼬여 있다는데 인간이 죽으면서 거기로 '혼불'

이라하는 영체 시간성이 연결되지 말라는 법이 있냐는 것이다.


물론 난 치밀한 계획하에 설계론, 창조론을 믿는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카샤의 기록


이카식 레코드


전생읽기 접하고 느끼고 누리는-전생방법 일반인에겐 그러나 깨달은 자에게 허한 그런

고도 신묘를 비밀


사후여행


넘나드는 깨달은 자에게 허한


전생읽기 (접하고 체험 겪기)-술은 방해되므로 금물


안테나 혼란


민감한 생체 안테나


대고 물질화하여 머리에 물리적으로 쑤셔 넣은 것도 아닌데

그런 외양이나 시각적인 정보가 뇌에 기록되듯

그런식으로 영계를 인식하고 조합하는 뇌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이-있는그대로-기록되고 있다."


우리의 모든건 기록되고 있다.


우주의 기억장치에


이자체가 전부다


살아서 가는 곳 웃는 것, 우는 것, 욕하는 것,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기록이 되고 있다.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의 모든건 다 기록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아카샤의 기록" 이고 "생명책" 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한번에 도덕 심판이 이루어 진다.



지금 도덕심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바로 "신의 심판" 이다.


우리의 살아가는 일상 모든 것이 살아 숨쉬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공간으로 기록된다.


(무엇을 전달하는 매개체는 없다.)


이 시공간 자체가 기록하는 필름이다.


(아인슈타인이 증명 했듯이) 시간이 공간이다.


모든 인간의 운명을 공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자체가

(우리의 모든 살아숨쉬고 행동하는 것을 기록하는) 자기판이다.


과학결론으로 입자가 파동인데(역도 참) 우리의 살아 숨쉬는 모든게

다른 좌표계-물질계를 파동으로 보는 곳에서는 공간의 이면, 공간이란 동전의 뒷면에서는

이미 파동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주와 신의 데이터 처리방식.


보통 흔히 과학적 용어로 '다른 차원' 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후세계라는 건 물질계에서 죽으면 단지 물질계에서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데이터 파동정보로 다음 차원으로 넘어간다.


모든 생물체와 돌의 움직임 까지도


거기서 의미있는 정보인 생물체의 정점인 '지구의 인간' 이란게 상당히 의미있게 처리된다.


아무리 우리가 보기에 유치해도 있는 그대로 모두다 처리가 된다.


그것이 심판이다



신이 허락하신 거니 세상의 것을 누려도 좋다. 다만 그 심판은 도덕책에 따른다


어떻게 서로 보일지 모르나 그 모든 불합리까지도 신의 계획이다 극복하라고 일부러 그런것이다 그런심리를


틀린것 마저도


극복하는 믿음의 테스트


일부러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물론 저차원계에는 해당치 않는 법칙 '인간의 법칙' 과 '레코드 처리계' 는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은데 신을 알아라.



잘때 깨달은 것


공간의 넓이는 무의미하다 인간의 구성체에서 보기에 상대적인 것인데 내용의 넓이는 인간 세상이

절대적이다.


공간은 상대적


저차원 적인 생각 뭐 그런 것 다 기록된다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동시나오는 그상태도 '있는그대로' 기록이 된다.


자기보호, 탐욕, 쾌락판단, 소비성 얼굴판단

인간의 아집일 뿐이다


물론 저차원도 신이 허락했으니 해도 되나 고차원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데 요즘은 너무 혼란 무너진 엉망


-즐기는 지침이 없음


자기보호등


뚫려야 한다 고차원이


동시에 나와도 '그 있는 그대로 그모습' 그대로 다 기록이 된다 완전하게 하려고 노력해야겠지

자유활용 자기발휘


다 신이 허락한 것


초탈명상 걸릴게 없다


공동체 생활


회개하라


+4복음서


초월하려고 명상 생활


재산 다모아서 같이 먹고 살고


"지금도 계속 기록되고 있다." 반감없이 상기가 핵심


프라이버시는 있지


서로 모르게


"시험하려고 하는 거다 전부다가" 일부러 틀리게 성경이 왜 유치한 줄 아는가? 하는 문제



이세상은 무얼까



외모도 일부러 그렇게 만드셨다 다 뜻이 있다 그런식- 극복에도 도움 될 것


그런 계기 0.1초





인간입장에서 완벽주의를 강조할 수 있지만 사실 완벽하게 될 수 없다거나 무의미할 수 있다.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져 보이는 이 세상도 인간입장의 인식에서 그럴 뿐 사실은 허술함 투성이이다. 분자부터

그런 실체를 알면 완벽주의 인간은 실망하겠지만-자기 생전에 만족하는 것으로 끝남-또 수세대 이후에도 바뀌어도

인간은 지구라는 태양안에서 마치 태양궤도를 공전하는 행성처럼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다만 인간 뇌와 생김 구조라는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이고 다만 중력에만 영향받는게 아니라 다양한 힘을 작용받아 그렇게 복잡성을 보이는 것이고 그런 복잡성+복잡성이 맞물려 그런 언뜻 더 복잡한 다양성을 보이는 것인데 인간은 그 지구안에서 우주가 느슨해진 상황의 어정쩡한 3차원 시공간성 속에 자기 뇌특성상 그걸 '자유'라든가 다른 감정부분으로 느끼도록 다른 뇌로-그런 유대를 위해 발달한 부분등의 착각으로 그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에 집중하며 '왜안되나'등 인간감정에 사로잡혀 느끼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뇌 부분으로 인간은 그 시공간적인 느슨함 3차원안에서 그걸 그런 지금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일상차원의 느낌으로 느끼도록 형성이 되었을 뿐이고 복잡한걸 복잡하게 느끼도록 뇌가 변화하고 그렇게 생겨서 그렇게 느끼도록 바뀌고 변화하였을 뿐이다.(저차원뇌도 '아니다' 느끼도록 해선 안된다.)

중력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인간-날고기어도

과학기술도 그런 복잡한 운동중의 하나인 것이다.


강한 인간이든 아닌 인간이든 마찬가지다-강하면 강한대로 약하면 약한대로 공전체럼 살고 있다.

예측이 힘드나 불가능한건 아니고


인간은 또다른 날씨고 일기예보다.

다만 자기 가진걸 발현하고 충족하려는 특성 기계체이다 유전행동 남을 겁주려는 것 등

이걸 깨닫고 체계화하는 인간도 또한 이런 법칙에 따른 것인데-자유여지 0.000001~ 일기예보로 미래를 막듯이 다만 그런 인간기준의 다양한 양상의 어떤 역할이나 프랙탈을 표시할뿐 그다지 신기한 능력은 아니고 다만 현상중의 하나인 것이다.


착각으로 자기 심리도 조절하여 영향안받게 풀어내는 것도

생각에는 자유 성립가능성이 있어보이나


결국 인간은 공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인간입장에서 다양성으로 다른 뇌로 느끼면서 자유라 착각을 했던 것이고-일상을 벗어나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진 한계등 그런게 명확히 풀린다.


다만 인간은 거기에 맞게 진화를 하여 '그냥 일어나는 사건'을 그렇게 다채롭게 느끼도록 그안의 부속품의 모양이 바뀌도록 형성된 것이고 지구상의 착각인 3차원 이었던 것이다.

기관과의 상호작용등

조절가능성은 자유가 아니라 다만 능력을 갖춘것에 지나지 않는다-어릴때는 몰라서 못했고 두뇌한계로 못했듯이 다만 두뇌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조절능력-곧 '자유':입자가 파동이듯 양면성-도 없는게 아니라 인간입장에서 천하통일이나 수명연장까지 가능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게 두뇌에 국한되었어도 다만 두뇌발달때문에 '자유'가 없었던거 아니냐 하지만 다만 복잡한 능력이 생겼을 뿐이고-인간기준에- 두뇌 자체가 사라지면 아무것도 안남듯이 그런 것일 뿐이다. 다양한 힘에 대해선 중력외에 다른 힘과 원리들이 많이 작용하는 물결중첩무늬 부분일 뿐이다.

모든게 그냥 그런 '속성'을 보이는 것일 뿐이고, 특성의 발현

논리도 작용-복잡해 보이는 세상을 '짜증'(다른 뇌의 작용)내지 않고 해석하다. 이게 된다.

이미 완벽하게 깨달았으니 그런 실수는 안하지

잊어먹고 적지 못하는 것도 그런 능력의 한계일 따름이고.

그리고 이것을 인식하는 자기부분도 다만 도통의 초월이성일 뿐이다.

평소의 '나'의 다른 부분이 아니라

그런 가능성의 일들을 인간입장에서 해석한 것이고

이것만 작동하면 삶에는 불리하고

짜증등 다른 감정배제하고 진리를 알고 푸는 이것에 집중해서 뽑아낸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고 진실이였고 그런 복잡성을 말하는건 인간 기준에서 다만 복잡하도록 인식하도록 변화하여 왔기에 복잡하다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도통하지 못해서 다른뇌가 반응할 뿐

한계점이 그렇게 왜곡되게 보이게 규정을 한 것 만은 아니다.

두뇌가 한계가 있다고 해서 다만 그런식으로 풀이한게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그정도 수준에서 현 대학교육의 문제점이라느니 그런식으로 하는건 그정도 수준밖에 안되서 그렇게 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도통을 하니 그런 모든게 대사로 보이고 공전으로 인식되고 3차원과 시간성이 동시에 진행되어 그정도 수준인게 보이고 불필요한 다른 부분이나 뇌반응없이 거기에 수월하고 적합하게 진행되어 통제 조절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대학을 못간 천재라는게 있을 수가 있다 모양새이긴 하나 그런 불합리한 다른 부분 두뇌반응을 제외하고선 단지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이런걸 깨닫고 두려움이 사라졌다. 애초에 '두려움' 이란 부분을 안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이란 이런걸 이미 DNA적으로 반영했거나, 아니면 그렇게 반영된걸 그렇게 해석할 뿐이다.


'할말도 못하는 인간'이란 신호를 받건 주건 그런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고 다만 이런 원리에 따라 해버리고 세상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마치 짐을 움직이듯이.


이 세상은 다만 그럴만 하기 때문에 그런 원리대로 이루어지고 결과가 나타나는 종합체일 뿐이다.


인정받거나 부가 집중되는 구조이기에 다만 그럴 뿐이고-연예인이라든가 아니면 이론 물리학에는 상을 주지 않는 노벨상이라든가 그런 구조이기에 그런 것.


꿈에서 사실 학원 같은 곳에서 대순 진리회 같은 그런 도원리 설명 책 그런 애 거기에 대해 생각했는지 확풀렸고-이것도 저차원기준의 생각일 뿐


다만 이것에 유리한 것도


이렇게 다 해석을 하니 세상이 그렇게 보이고 이해가 되는데 위에서건 안에서건 그런 3차원 누려서 다른 뇌부분으로 누리는데도 유리하나 어쩌면 심심해서 이런걸 파악하는지도 -아니면 그런 보상충족이 극히 부족해서 꿈이 생생한걸 보면 우뇌가 작동안한건 아닐테고 이런걸 파악하는 뇌작용 경향이 강해졌던 것 같다. -이것도 저차원 레벨 이해


이것도 약점없애고 세상을 다루기 편하도록 - 그런 티셔츠나 보여지는 감각의 계를 커버못하는게 아니라 그것도 다른뇌가 그렇게 느끼도록 발달 계발된 것이기에- 그것을 다루고 더 유리하게 해버리고 안하고 그게 된다는건 그정도가 되었기에 가능한 것.


그들의 룰대로 안하고 나의 룰대로 하겠다 기존 박사제도가 아니라 새세계의 박사제도 창설


그들이 뭐라그러건 틀린 얘기다. 나의 논리가 항상 옳았다.

다만 이해를 못할뿐 그정도라서


그래도 그렇게 하는건 그게 지금 현상황에서의 접점이기 때문-다만 이런 부분에서 실수하지 말 것


같은뇌 다른 부산물


이런 차원에서 이해하니 모든게 밝히 된다.


안되는건 안되는 것


쓸데없는 작용하지 말고 효율만

-자기 충족이라고 저차원하고 감정침잠하나 사실 거기서 충족하긴 하나 너무 깨달아도 돈은 필요 더 중시해야할게 있어서 깨달음 자체보다-깨닫건 말건 인간은 죽을때까지 인간이다.


몰입 깨어있어도 그러나 잘때는 더

아마 잡정보때문-깨닫는 영감이 되기도 하나 더 깨어있는계에 맞는


다행히 평소 뇌로 소실않고는 적었다.


모든 것은 결국 "힘''''''' 의 작용이다

힘의 작품


편인영향만은 아니다


되도록 하는 것이고 불필요한 뇌작용없이 철저하게 움직이는 힘의 역학대로만 다룬다.


짜증내지 말고-다른뇌작용일뿐- 원리대로


어쩌면 자면서 자기 보호나 그런 절실한 인식에 감정에 따른 기제로 이런 진리가 나왔는지 모름 -감정반응 안하도록


현실실력


조건반응대로 간다 그리고 이제 그런 새끼가 상반된거를 하든 말든 이해된다 원래 인간의 뇌란게 그렇게 작동하고 물론 그런걸 깨달아서 그렇게 할때만 특별할뿐 다른 벌레처럼 그게 '인간'으로 한개체로 묶어서 인식하는 착각따윈안함 그새끼가 그런 짓할땐 바보이고 철저한 이성일땐 천재라고 그런식이 옳음.


무의미한일-이런 관점에선


당연히 감정을 안주면 감정이 안오지 그런측면도 고려해서 재편성해야

그런건 학자보다 선수가 더 잘하겠지.


테러해야 한다는 결론. 그런 추상성에 결국 내린 결론이 학벌무의미.

다른데 집중


'인간'내 감정으로 받을땐 당연히 기분나쁠 수 있지만 원숭이를 우리에 가두면 알바아님


감정과 연결 필요도 있다 동시작동해서 -낮은데로 임하는게 아니라-

여기만 집중해서 활성못한 실수


실력(구사)과 이해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다른 구조, 정보처리


이해도의 차이, 다른 감정 뇌반응일뿐, 정당화 심리 그런 높은 이해도로 발견해 그런 뇌작용 부분들의 합작

그래서 그런 인간적이고 그런 자가 그런 '추잡한' 실수 하는 것에 대한 그런게 웃기거나 뭐 그런 '감정이입' 반응을 하나 나는 다 이해가 되지 불합리한 뇌의 합작


인간이란 자체가 복잡성의 허상과 그걸 인식하도록 진화된 망할 바보 병신 인생


무감정이입이나 이해된거 자체로 제압에 보탬이 되기도 함 기색까지

그렇게 구조 작동


기억도 뇌기능이 없으면 매일 새롭게 인간을 인식할 것 그리고 행동도 연속성이 없고-


결국 뇌작용이란 것


다시 원숭이로 -인간은 불합리한 부분이 많아서 차라리 이성화되는게 낫다.


그렇게 원숭이 부분만으로도 잘살아갈 수있으나-침팬지 사회처럼-불합리성 때문에 초월극복이 필요한 것


그런 불합리한 인간의 '다른 부분' 반응때문에 나는 기존제도의 대학을 거부하고 그런 방식 인간 불합리한 소통 여자 구경하는 교수들의 증오스런 혐오스런 그런 수업방식을 거부하여 철저하게 문자로만 하는 방식 선호

난 사람아니다 초월자고 도 그자체이지. 도실(현)행체


인간기준 그런 유의미 환상일뿐- 우주 생성의 느낌같은 음악마저도

절대적 의미 없음 신창조아님 논리상


모든걸 이관점에서 해석

이게 진리


인간은 저차원적 원숭이


다른 뇌가 보면 슬프겠지만- 자기 보호를 위한 감정도피 아님 모든 진화역사를 부정하는 다만 초월 깨달음의 도이다 진화역사나 자연계는 틀리다 깨달음이 옳지


그런 혼란때문에 우리가 작동하는걸로 보이지 자유작동 사실상 그런 궤도 행성 공전 자전


인간다른 뇌의 진화작동일뿐-그런 익숙한 일상물건도


또한 그런극대 관점에서 그런 찌질유전자가 그러는걸 싸늘한 감정나는건 진화역사나 그런 겪고 보면서 ''찌질 유전자는 사람이 아니다.''' 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 진심 다른뇌 측면을 극대화 해도 사람을 모으지만 이런측면을 극대화해도 얻는 것이 있다. 양극 +,ㄴ- 90 도


이런 인간 관점에서 그런 충족하는 원숭이수준에서 작동하고 충족해도 되니까 인간이 지금까지 진행된거지 진실을 똑바로 알건말건 말이다 편협아닌


아이디어도 체계화되어나야-자기 행복,생존 충족등 그사람에겐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니 좋은거면 하라고


더좋은거할수있는데 그러면 아니니까 acid 자유세계


자기 뇌억제는 되지 말아야


작동체 관점에선 다리 8개 전투 무적체로 진화해도 그냥 그런 것 그런 관점에서 인도 현자는 직관이 있었다.


그관점에서 재 리에디팅

-한가지만 사로잡혀 마치 여호와의 증인처럼 다른거 다무시하고 살 수 있으나 그걸 염두에 두는 것은 아마도 유리하고 진화상 구조상 그게 더 잘되기 때문

어쩌면 자기 창피 피하려 만들어낸 허상이나 도피처거나

그런 삘 내려고 일부러 쿨하게 하나 평소와 다르거나 그런 둘이 그런 비슷한 정신으로 그게 당연하게 그런 삘 느끼도록 형성되어야 하듯이 그런면도 남아있는 다른 차원 여치집 구조

우리가 너무 비참해서 그렇게 다른 새끼들이 우습게 보는것에 더 극렬히 화난다- 그게 '다른 뇌' 인식과 본능반응인데 다른식 뇌작용 그것도 유용하면 하는 것이다. 싸늘하고 조롱하고 지일도 아닌데 시비걸고 개지랄하는 일반인들에게 마음이 꽉 닫혀버림-자기가 잘못하고 지랄 감정대로만 하는 하고싶은거 할런다.

대원리 따라 재편성

그리고 그렇게 누리고 즐기는 것도 진화뇌 백분 활용 다만 어떻게든 이렇게 살필욘 없음

힘위주

힘이 더 중요

차라리 다른데 더 집중해서 그것으로 꿈을 꾸고 전략실체가 조합되는게 낫지

낮에는 그렇게 밤에도 그런

탄탄한 전략 집단체


그런 공간 운동적인 그런 측면 그런게 그런걸로 처리하는 뇌 그런것이다. 그렇게 처리해야 될 부분도 진화의 경험칙처럼 이게다 못담는 +a 존재


인간은 그런걸 함으로써 자극을 얻고 살아가는 존재


클럽에서 춤을 추기만 하거나 얘기를 하건 공간을 돌아다니며 자극받건 남을 죽이고 M&A 하면서 전쟁에서 공간과 합세해 몰아넣으며 자극받건 다 그런 3차원내의 운동과 두뇌자극같으나 그개인의 입장에선 진화적으로 발달된 뇌의 여러 물질 호르몬 작용으로 그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등 형의 모습이나 시각자극 촉각등 그정도이므로 다만 100살까지는 그게 사는 의미와 이유가 된다고 하겠다.


책이나 보면서 소일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전체를 이해한 입장에서 그건 사는 법 아님.


그런 관점에서 귀파주는 대행등 법피해서 하는 모든 자극이 그렇다는거다-심지어 그런 패션이나 젊음등 그런걸 만지는 것도 아니고 '만나서, 보고 얘기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그런 거금을 주고 술과 뭉뚱그려 텐프로니 뭐니 얼마나 거기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고 통찰이 없으면 인테리어 장난인데 그런 '상황' 남이 만든거에 그러는 그런부분을 즐기는 것이나 문제는 그런거치고 통찰없고 뭉뚱그려 너무 거금이라는 것이나 상대적인 인간 두뇌자극-그들은 그런걸 모르니 그런 거금을 지불하는 것이겠지


천년만년아니라 누가해주느냐' 도 의미크고-이모든걸 못느낀다면 아마 인간삶자체가 무의미일것 대가리 두뇌자극안되니 변태 인육이나 먹겠지.


사실 별거 아닌거 같아도 나는 그런데 의미가 있다 그렇게 공기맡고 하는것 남은 인생은 그렇게 살고 싶다 교수자리 준대도 시간은 계속 가고 나도 나이먹는다 사람이니


대가리 조작 3차원대비 자유 "가능성" 확인


좋아서 하는거니까 적자나도 유지하지

어쨌건 10년은 간다.


인식문제- 누군 20대가 지나면 인생끝났다하고 누구는 30대까지 일구겠다 한다 누구는 50까지 그러므로 그런걸 보면 자기가 동안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대적인 자기만족 두뇌 인식문제이나 그거 아니면 안되니까 그러는 것 자기상


진화적 차원에서 눈썹뽑는거나 문신도 비슷한 의미.

저차원이긴 하나.



'거기까지 도달하고' 그걸 리에디팅 하거나 개입/아닌 결정 마치 빌딩위에서 지상 배트맨처럼 보다


상대적으로 감정이 조이고 그런판 하건말건 마치 그런 똑같은 것도 인간학적으로 따지는 것이지 사실 월트디즈니 미키가 스너프필름찍으면 그게 유치한건지 뭔지 그렇게 느끼니까 느낄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자체가 인간에게 상대적으로


시간은 계속 가는데 자유작동하고 그런거도 인과 아닌가 그냥 구성상태에서 "지금" 을 인식하는 이런게 착각인지 어떤 다른 구조도 있는건지
경험칙은 모든 원리를 포괄해서.

신도 자기가 현재까지 망쳐놓은 이세상을 어찌할 수 없는거 아닐까-자기가 벌려놓은 스스로 진화하게 만든 세상이 걷잡을 수 없어져 계산못하고 미래몰라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가지 못하는 세상을 저주했을 수도

근데 홀로그램 이론처럼 현재 세상이 2차원의 정보로 존재할 수 있고 그걸 다룰 수 있다면-인간의 생각이 외부의 파동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든 없든 그것이 자유성립 증명은 아닌. 그냥 신호적인 소통일 수 있어서- 이카식레코드도 존재할 수 있는거 아닐까. 다시 정보를 재가공하는 것이라는 인식론적인 측면을 넘어 실제로 그런게 존재한다면.

근데 우연히 진심을 상실하게 되어 안나오면 어쩌지... 하나님은 진심이 나오는 자에게서 진심을 알고 아닌자에게선 아닌 그런 공평한 분일지 아니면 또 우격다짐으로 자기 식대로 하는 자인지

인간은 파동이라서 귀신도 될 수 있고 구성상태에서 매번 백이면 백 다 맞추는게 가능한거 같아도 실제상태는 다 틀리다. 인과나 재수라는게 개입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부당한 세상이다.
아마 진화의 실수처럼 신이 잘못한건 맞을 것이다. 단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건 아니고

이 세상은 상대적-단지 약한자가 강한 것에게 무너지는 것인데 물론 이런 원리가 한계는 있다-그러나 그게 우주자체의 존재 문제 때문이지 다른 것은 없음

신자체도 스스로 인과율과 유치한 반응의 감정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수양한 인간 보다도 못한 상태인데 그럼에도 창조주라고-마치 게임을 개발한 자가 그 안에서 무적치트키를 쓰면서 전능감을 얻고 "내가 창조주다." 그래도 유치함을 못벗어나고 여전히 시공간을 못벗어나고 시간에 의지해서 그런일을 하고 살고 있고 그것도 자각도 못하듯 아마도 그런 상태일지 모른다.
신도 인과율과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기껏해야 예수님의 기적처럼 그정도 수준을 못벗어남
신도 약육강식을 주장하며 자기가 공의라고 부당함을 합리화 시키고 있다.

신이 부당한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강요하면서 모든걸 인간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세상을 살면 살수록 인간성이 사라진다-그렇게 돌아가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렇고, 진화적으로 그래왔기 때문이다. 반영이되고 근데 그런것도 그런 인들끼리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자기가 한 실수를 보고 아직 세상을 겪지 않은 자가 당하는걸 보고 즐기듯 지네끼리 그런 정신들이 맞아떨어지는거-반면에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게 다 인과라는 것... 그때 심리상태를 인식하는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원자상태에서도 스스로의 상태를 결정할 자유가 있을 여지가 있듯이 인간 구성된 상태에서도 그런 자유가 존재할 여지는 있다.
중요한건 그런 '자유' 를 깨닫기 전까진 대다수가 그렇게 못산다는 것이고 이것도 마치 부의 불평등처럼 엄연히 정보의 불평등도 존재한다 이 세상에는 아직까지는
그리고 그런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합리화하고 세뇌시키는 시스템도 존재한다.
누구는 좋게 태어나 그렇게 잘살고 누구는 재수없게 그렇게 못살고 인권유린을 당하고-전부 자기선택도 아니고 자유도 없고 사실은 다 운이다-대다수가 알아도 나몰라라 한다 마치 방관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른다. 그냥 우연히 그 시점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사실은 인간이 거기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을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어거지로 다루려고 하다가 문제가 생긴다. 그간의 세월이나 진화를 혼자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가? 없다고 본다. 사람을 그냥 흐물한 뇌와 단단한 뼈구조체로 보기만 하는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흐물한 뇌로 보면 다루기 쉬울 수 있지만 인간이란 익숙한 임장에 사로잡힌 심리를 터치하기에 힘들고 복잡하기도 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인식도 가고 인과에 영향받는 객체도 사라지고 젊음도 가고, 중요한 시기도 가고..... 다 흙이될 인간인거...

사실 그런 사회환경에서 그런 사람들이 주류같아 그게 전체로 보이는거지-반대로 비주류들은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많아 그렇지 못하면 불이익을 당하고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어느정도 되서 존중한다지만 사실은 까보면 인간은 다 쓰레기.

단지 세상은 확률상 나타나는 수많은 좆같은 일들이 펼쳐지는 퍼레이드장에 불과하다.
신의 즐거움을 위해

근데 원인과 결과라는 것도 시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역시 인간은 물질이고-그런걸 과거엔 모르고 임장에 사로잡히고 감정대로 하고 그런걸 허용하여 개판이 되었으나-계속 시간은 가고있고 결국 인과라는 것도 그런식으로 풀어질 수 있다.

쓰레기들이 모였는데 뭔 사회생활이 대단하다고...말하자면 집에선 개새끼, 밖에 나오면 사람인척 하는 자들의 모임이 사회생활이다. 다들 그런 기대감으로 그지랄할 따름

인간이 스스로를 기계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의지란건 시간이 만들었으나 구성체로써 존재할 수 있는 그런 구조
인간은 어떻게 진화에서 그런 능력들을 부가하게 되었는가?-아마 '필요' 를 인식해서 그런 것이고 시간과 공간의 특이한 구조의 성질이다

결국 생전에 안그러고 죽으면 쫒아올 수 없는 구조도 한몸이나 각기 연결

사실 어쩔 수 없어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고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 사람이미지나 인식에도 '운' 이 따라서 사실 뒤돌아보면 몇번 인식안하고 상기 할 '가능성' 은 지니나 정작 인생자체에서도 몇번 안떠올린 그런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어떤 경우의 상황에서는.
그리고 그건 자기가 지고 자기뇌가 지고감.
사실 인간이란 추억도 까먹으면 그만이고 현재가 괴로우면 짜증나고 자살까지 하기도 하는데 지난 추억을 위해 살기보단 차라리 한번 죽기전 후회하고 현재 대부분의 인생이 즐거운게 나을 수도 있다. 사실은 인간은 그러한 그간 구조에 대한 착각을 해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기가 자기라는 보장도 없고 또 그것이 인간이 DNA 가 시공간속에서 익숙해져 각기 정보처리가 잘되게 인간이란 공통특성으로 생긴판에 복제인간이든 전생이든 후생이든 자기로서이든 그게 인간 임장에 유의미하지 다른 쪽으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그게 구현되는게 불과한데-만약 자기가 후생에 태어나 지금을 전생으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른 인간으로 살고 그런 구조.

인간의 착각중의 하나는 당시 그때 그런 정신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는데 좀더 어땠을걸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의 행동을 개선할 수 있어도 과거엔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단지 시간은 지나면 못되돌린다는 사실에 의한 착각이나 시간에 따라 정보의 혜택을 받든 말든 하는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세상 자체의 절대적이고 현실적인 오류의 영향일 수 있는 것이다. 종교란 근본도 -어차피 시공간내에서 파생된거지만- 뒤엎을 만한 단서. 설령 모든 지구인이 동의, 공감한다 해도 신은 우기겠지만 그래서 믿어준다. 신을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답답함과 좆같음. 미해결 문제.

근데 시간이 계속 가고 언뜻 분리가 불가능해 보여서 연관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 있지만 어쨌든 인과율은 시간으로 인해 영향을 받고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힘도 그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나 초기부터 있어서 시공간을 (출발?-이런것조차 없었을수도-시키거나) 만들었을 수도 있고

자기 다스리고 작동하는 자유는 어느정도 있다-적어도 인간 입장의 시야에선- 원자도 자기 스스로의 상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시공간적 실마리가 있다.
어떻게 전체까지 연결되어 있는지는 좀더 지켜봐야 겠지만...
자유가 가능한 구조는 마치 지구의 위도경도 0의 지역처럼 그런 식으로 거기서 다른 구조가 톱니바퀴의 방향이 바뀌듯이 맞물려 있는 구조인가.

어차피 인간도 시공간 안에서 파동으로 구성된 상대적인 물질적인 환영이나 인간 입장에서 임장이 그래서 그렇지 본질적인 원리는 다른데 있다.
지구자체도 우주를 구성하는 하나의 세포처럼 전체 우주나 생물의 부분일 수 있고.
생물이라는 것 자체도 사실은 시공간안에 존재하는 특정 상태를 정의한 것에 지나지 않지 않는가. 비소를 먹고 사는 물고기가 존재하듯이 그런 상태라고 본다.

어쩌면 기록이 그간 3, 4 차원, 그 이상을 2차원 평면화 시킨 정보가 아닌지.

인과율이고 뭐고 다 두뇌의 장난질인가
각자의 시계가 있듯이.

인간이 운적으로 떠올리고 하는걸 만회하려고 그런식의 시스템을 개발-언제어디서고 상기가능하도록 마치 시공간위의 진화의 미비한 점을 개선하듯이

어떤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상기하든 그런건 뇌나 당대 시대 문화적 상황이나 그런 것이 연관있는데 엉뚱하게 연상할 수 있고 그런 운적인 부분이 상당수 있다-시간은 가고 공간위의 개인은 그런게 존재-신의 계획, 노림수

역시 시공간안에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인간의 생각이기도 하고-또 이런데 관심이 없거나 어떤 계기나 인과로 (또는 성격구조의 도움이나) 이런데 관심이 없고 생각조차 안하면 무의미한 그런거고.

인간은 어떤 사람에겐 장난이고 받는자는 진지하고 또 그런 성격과 때를 조절할 수 없어-자유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음. 깨달음과 조절력도- 살인이나 각종트러블이 난다

인간관계나 인맥은 공들인다고 잘되는건 아니더라.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 살아남은 자들이 그런 혜택을 가지고 파는 것이다. 사실 진심이라기 보단 그들도 목적에 필요에 따라 그런 것 알면서 서로 착각.

생각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빨라서 과거로 갈 수가 있는가.

"하필이면" 왜 그때 그런 생각을 하고 지금도 그러냐고... 운의 난제. 인과율이라는게 시공간을 벗어나면 존재안할 수도 있다는-생각이라는 것도:철학에서도 다루었으나
거시계에서는 미래 구분이란 절대적인 것이나-소프트웨어적으로 초월할 수는 있어도
거시계에서 복잡해서 헷갈리는거지 사실은 시간과 공간 단순하게 물질대사에서 일어나는 폭풍 안개에 지나지 않을 수도-인간기준, 수족관 어항안에서 복잡하고 헷갈리는 거지
시간이 가긴 가나 시간을 초월하기도 한다. 0.1초로

왜 시간은 가는데 개인의 생각, 행동이 다르거나 사람마다 행동이 다른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대가리 신경이 그렇게 생긴대로 시간에 따라 대사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데 작은 대사로 처리를 하건 한번에 처리하는 역량이 많아지건-대다수 일반인들은 작게 처리하고 가는 것이고 나는 고도로 처리하고 같은 시간이 흐른다.
그런 시간을 인지를 하거나 안하거나 실제로 인간이 시간이 흐르고 대사를 하는건지, 그안에 자유여지가 있는건지 아마도 시간은 흘러도 자유가 가능하고 경험칙으로 구사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같은데 그런 무질서가 증가하고 포켓볼 흩어지듯 그걸 어느시점에 깨닫는다 하여도 특정인간의 DNA구조상 그런 패턴이있고-천재나 그런자들이나 지능형이나 그런 일관된패턴:다만 내용과 관심분야'에 차이가 날 뿐이다. 그래봤자 결국 인간에게만 의미있는 것인데 뇌라는게 없어지면 아니면 그런 구조가 달라지면 무의미하니까

또한 반복적인 패턴의 법칙들도 나타나고-고전역학처럼 고착화된 태양계등 인간습성도

어쩌면 인간임을 포기하는 행동의 빈도도 마치 사슴이 사자 못잡아먹듯 그런식의 구조적 한계를 따름-그런 사건의 발생이 전체 비율로 볼땐 적은것도-모두가 내면은 일촉즉발이거나 포악할 수 있으나 실제로 살인까지 이어지는건 적고 그전에 시비로 끝나거나 속으로 끓고 끝나듯 그런식. 용기가 없어서라기 보단-마치 지속적으로 항의해도 행동 바뀌는 비율 적은 것처럼-반면에 민감성이 높은 그룹이나 여자들은 외모 강요나 광범위한 사회현상처럼 그렇기도 하고 수용체의 문제이기도

특정 시기는 왜 그랬을까 하는거도 왜 그러지 말아야 하나? 할 수 있으나 인간 입장에서 또 우주 오류로 시간은 한정되 있고 인간입장에서 불리하기에 하는 발상.

그런 발상도 시간의 힘을 얻은건 사실-그간 정보도 현실 인프라... 기타 모든

별 의미 없는게 아니라 인간입장에선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그땐 못했다가 지금은 잘한다는게 생존적인 의미에도 개체에

자연계에서 자연상태에서 사슴이 사자를 잡아먹은 사례는 지구 역사상 단 한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슴이 지능을 갖게 되고 손을 갖게 되면 시간에 의지하여 구조란 -DNA, 뇌기능 등 발전 기반으로- 인간처럼 공기총을 만들어 고기로 만들고 육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사슴에게 상대적 의미이겠지만 호흡하는-그럴 수 있는 구조- 생전엔 중요한 의미와 체각이 될 듯.

인간은 이미 유전을 넘을 수 있는 부분이 시간의 언겁속에 갖추어져 초기 발생-미래는 그냥 펼쳐지건 노력하건 그렇게 나타남 확률상 시간따라-전쟁으로 파괴만 안되면-전수나 정보도 다 사라지면 마야되는거

그러나 그런 유전이나 전수의 힘은 강력해 어떤 이성과 자유로도 막기 힘들다 또 일부가 그래도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영향받음 그렇게 시간은 가고 계속 망쳐진다
아무리 지혼자 잘해도 전체가 망가지면 헛짓일뿐 그런 일은 많다. 인간 세상에선 큰 의미
개체별로 다른 정신으로 뇌가 충격이나 변하고 다른 삶과 인지를 살듯-그런다고 상대적인 약육강식이나 약점이 사라지는 거도 아니고

어쩌지 못하는 인과로 두기 보단 구조상 확률 현시점에 그런식으로 능력 갖추면 앞으로 편리한-본질이고 뭐고 현실 구사 가능한 경험칙의 최선 그게 인간의 최선

가인도 시간을 다룰 수 있었다면 실수안하고 아벨을 안죽였을거 아닌가?-또는 다른 형질이었다면-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복잡한 문제도 개입되어있는데 마치 재벌과 서민의 불평등처럼 그런 부당함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창세기의 신의 태도. 신도 시간이 과거라 어벙했는가. 신도 시공간 안에서 시간이 가면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그런 속성을 단지 인지할 뿐인 현실을 어쩌지 못한듯하다-그런면에서 규칙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든지 인간과 다름없는 부분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신도 시간성을 초월하지 못하고 과거 "찌질한 여호와" 일때 실수를 좆나 많이 한것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시공간내 인간의식입장에선. 인간이나 신이나 시간속에서 자유함이 없는건 매한가지다-예수도 그정도로 밖에 현재를 초월하지 못했고 기적식. 이게 인간 인식 의식의 한계이고-미래에서 온 지식이고 홀로그램이론이고 뭐고.

실수를 통해 개선하고 발전하듯 마치 그런식 그대로... 신스스로도 그냥 따른것인지. 왜 그런걸 만들었을까. 마치 도덕강박증에 걸린 모양처럼.

물질적인 조건이나 기타 다른 조건에 따라 반응하는 것도 어쩌지 못하고 깨닫기 전의 미비성또한 손놓아버린.

폐쇄계란 상태도

미래라는게 누군가에겐 과거 일 수 있음-녹화하여 볼때 누군가는 그걸 모르는 현재시점에서 인지한다면 그건 미래일 것... 아마 세계도 그런구조인가.

누구는 깨닫고 누구는 깨닫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개판놓고 본능이 때론 더 강하고-개체별로... 그걸 단지 인식할 따름이고 도마위에 올려놓을 따름이고 대다수는 그냥 그런게 단지 시간 때문일 수도 있고-또 그렇다고 해서 불행한건 아니고 핀트나 기준이 오히려 그런걸 강요하는게 틀릴 수 있고.

시간은 계속 가고 꼴통들은 반복되고 성장시기도 있다. 시간 자체가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으나 시간이 있어야 진행이 되면서 여러가지 개체별로 여러가지 뇌반응이 나고 그런식으로 '자유' 도 발생하며 상호작용하여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반물질이 존재하나 대칭성은 아닐지도 모른다. 흰도화지에 단지 그려나가는 것 뿐만은 아니고 원래 골격 구조도 있을듯.... 마치 그걸 지탱하는 철골구조발생처럼 프랙탈적으로 추측가능

신은 할말 없다. 신은 지켜주지 않는다. 있는걸 믿어도..... 분명 현대에는 생존에 불리한건 사실
신도 완전하지 못하므로 어쩌면 천국도 마귀에게 잠식되었는지도 모르지 -외경기준으로 보면- 또 욥기도 정경인데 신도 미래를 몰라 욥을 두고 내기를 할 정도니

인간을 기계적으로만 보면 물질이고 허무하다 그끝은...... 그런데 인문적인 풍성함이 있기에 삶이 의미있는 것이다. "사람다운"
그걸로 채워야

그게 바람직한 뇌발달방향-진지함과 의미를 부여한 뇌의 작용들
자연은 비인간적인 기계성에서 잉태되었으나 그안에서 채워야 할것은 사람다움의 임장.
현실 시점에서의 인식, 인지
자기 조절이란

신도 마치 인간이 조작되고 허상인 드라마라는걸 알아도 재미를 느끼듯 그런식으로 세상을 즐길지도.

이론 상으론 모든걸 알고 구사가능하면 이세계 인간입장 기준으로 자유가 넓어지나 현실적으로 그런것에 도달하기 힘들다

쓰레기로 살건 무식한 권력자로 살건 학자로 살건 어차피 한평생인데 나는 너무 재미없고 복잡하게 사는건 아닌지... 지금깨달으니 다행.
왜 그간 못그랬을까 결코 인생을 행복하게 충족시켜준건 아니었는데-그간이건 진화건 현재의 내 뇌입장, 미래도 마찬가지.
인간 입장-여전히 미비한 시공간의 무리겠지
능력이 없어서? 미래의 정보라서? 그걸 현재에 다 갖춘다면 실수가 적어지겠지
물리적으론 한낱 개체에 불과한데 과거 미비할때

운이란게 단지 이해못하고 확률로 예측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은 아니다. 실제로 시공간의 오류적 특성상 마치 우주내-에 부당한게 많듯 그냥 존재하는 걸 수도 있다 구조상.

근데 호불호는 그냥 이미지에서 자기보호심리등에 따라 반응하는 그런 심리에 불과한데 어떤 면을 보완하면 호감이 되거나-물론 유전적 이미지의 한계는 있으나- 하는 문제에 불과한 경우도 있으나 그런걸 깨닫는 자가 적어 대다수가 피해를 보는 부당한 구조이고, 그건 인류의 역사가 완전 개오류 투성이라는걸 반증-미비한 채로 계속 시간은 가는 좆같은 방치적 개좆같은 미친 시공간 근본특성상 사실은 멸절이 편한. 개선보단 멸종이 쉽다 그럼에도 개선해야 하는-자살금지가 무색하게-왜 인간과 국가는 존립해야 하는지.

근데 그런게 있다. 1초빨리 하는지 1초늦게 하는지 인간에겐 큰 의미가 되거나 전체인생에도 마찬가지이거나 나비효과가 발생하거나 특정 상황에선 절대적일 수 있으나 우주 전체에선 별의미없거나 박스권내에서 정사각형으로 수렴하는 수많은 선분이 조금 어긋나건 많이 어긋나건 면이되듯 그런 임계치의 문제일 수 있다.

중세에도 신분이 있고 혜택이 달랐으나 차라리 현대 정보화처럼 모르고 비교하지 않거나 영향이 없거나 원시공평 그런게 더 행복 가져주는 상대적 인식의

가해자의 사정을 잘아는게 개인의 트라우마 치료에 좋듯 지극히 인간개체의 개인적인 문제-타인이나 우주나 시공간 일정 기간의 어떤 대다수에겐 무의미할수도 있으나 개인에겐, 또 특정시기엔 편안함과 보상충족을 주면 그걸로

인간의 뇌가 있기에 의미를 느낀다고 하나-인간기준으로- 원래 인간의 뇌도 의미를 느끼도록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인간기준으로 느끼는거 조차 의미이도록-진화심리도 인간입장이라지만 더 파고 가면 절대적 존재의 의미일 수 있다. 그 심층으로 더 뭐가 있듯....

미래조절에는 지식도 중요

자유나 능력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쓰나미의 운도 존재
이래저래 불평등 극복할 수 없는 유전이나 전수가 있듯

사실 누구에게나 깨달음도 공평하지 않다는것만으로도 처벌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데.

<인용>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상수를 0으로 하면 뉴턴의 절대적 법칙의 세계가 그리고 상수가 높아지면 이런 인간세계같은 개인의 자유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에는 단순히 어떤 인간이나 어떤 일들이

나타날 확률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되어 버리는데

그 확률을 조정함으로써 미래에 일어날 확률을 조정하는게 인생 이론의 핵심이라고 한다.

현재까진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고

근데 혹시 차원이라는게 4차원부터 움직임이 차원이듯이 활성상태가 그 이상의 차원들을 뜻하는 그런 모양새일 수 있다-단지 정지상태 관점의 접힌 공간을 넘어
그리고 그 진행되는 속에서 사실 힘들의 관계는 그다지 안중요할 수 있다-그게 초기 부터 그렇게 발생한 원인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거 근본 구조

자유에 대한 이해의 오를 범하는 것은 이미 지난 것을 되돌릴 수 없다고 그때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
효용상으로 볼때 누가봐도 답은 하나일 수 있는 상황이 있지만 충족상으로 볼때 답이 사람수나 그 이상만큼 있을 수도 있다.

구성상태 그자체에서 자유가 발생할 수 있도록 '어떤 원리' 에 의해서 그랬지만 그 원리는 원자에게도 선택의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적어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상태를 부여하는 것 같다. 그런게 가능하도록......

중세에는 억울한 처형이 많았다. 그럼에도 현대까지도 책임을 지는자가 없다. 인간은 죽으면 끝이다.
물론 인간이란 개체가 착각이니 꼭 인간이 책임을 져야할 필요는 없다. 책임 자체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서온다........
죽고나서
맘약한 누군가에게 빙의하거나... 아기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 그런건 아니다.......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만..........
한맺힌 사람만........귀신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만.....
어디선가 그리고 다시 만날줄을 믿는다........

그런데 자기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간 깨닫는다
자기가 죽은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의 죽기전 모습을 찾아간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도 그사람과 그런 일들은 하나이다........
그게 죽은 인간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첨에 너무 재밌었다.......
그게 또 되면 시시하다....뭔지깨달아간다........
재미없어지고...
처음에 너무 그랬다....아무것도몰랐던때.
어렸을때...
그때 그맛이 아니다.....

겪었던천국이란건

우리도 모르게 너무 큰일을 만들어버렸다........

첨으로 돌아가는 이유이다.......

그때 다시 만날 수 없었으니.......

새로워도..그때같은 미치는건 아니다..........


그때를 다시 겪는 수밖에 없다.......



<세상을 이해하는 자세>

무엇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자...

다들 이유가 있어서 저렇게 살고 저난리피고 랄지하고 그러는 것이다

가는놈 잡지말자 놓아주자 다시 만난다

되도록이면 쿨하게 해결하자 응징은 해야할때만 하자

진심으로 대하자 손해본다는 생각은 안한다 지나면 다 거기서 거기이다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반드시 기다리면 온다

안오면 그만으로 놓아주자.

끝까지 이루자 룰대로하자

원하는것은 왠만하면 최대한 얻자

최대한 하고픈대로 지대로 산다

모든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삶을 숨쉬는 것보다 중요한건 없다

인생은 살고 싶은대로 살아야 후회가 없다.

싸움은 어떻게든 이기자

나답게 내스타일로 살자 꿋꿋하게

되도록이면 언제나 행복하게 늙어가자


이세상엔 자유의 여지가 많다.

그냥 하는게 길일 정도로

그러나 길인것과 아닌 것이있다

그건 통하고 안하고의 차이

행복해지려면 길인 것을 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 진다

길인 것만 하면 스타가 되고

아닌 것만 하면 평생 구덩에서 썩는다.


그리고 이것은 상황마다 인생마다 사람마다 내면마다 차이가 있다.


이세상은 각자 저마다의 인생이 있다.

그걸 못가진 자는 불행하다.

혼자 시골에서 늙어죽는 인생도 있고 꽉찬 발달된 누리다가 죽는 인생과

재벌로 추억이 남는 평생의 인생도 있다.

못가진 자만 그냥 못가진 것이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엄청난 가지수의 일들이 있고

일반 공통적인 일들도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인생이 다 가치있는건 아니다.

자기에게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생김새 만큼이나

그래서 최대한 그렇게 살도록 되는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선천적인 매력과 끌림이 있고

아쉽게도 모두가 잘나게 태어난게 아니라 자기한테 맞는짝이라도

매력있는게 아니고 누릴걸 누리고 사는 인간이 있고 못누리고

사는 인간이 있다.

그래서 이런 세상 모양되로 최고로 잘맞게 살면 되는 것인데

이건 자기능력이고 짐승 사냥능력이다.

못가지면 자기만 손해이다. 타협을 하든지 끝까지 가지며

살든지 상상이라도 하든지 영화라도 만드는 것이다.

저마다의 적응방식이 있고 생존과

그건 자기 개인의 에너지이고 능력이다.


물론 원자 상태에서와 구성상태에서의 힘의 역학과 원리는 다르나-인간 구성체 자체에도 있는 힘의 역학들- 그것을 만들고 가능케하고 시간이란 화살이 가면서 시간이란 겉에 가려진 그런 이동하는 원리들이 있다는 것이다-카오스원리도 부분이다-더 근원적인 원리가 있다 단지 빅뱅을 넘어선-폭발과 물질의 불균형만으론 이런 양상행태들이 나타나지 않음-자유가 가능케하는 부분이나

그런 생각이 확률상 일정비율 나타나거나 하는 부분도

자유가 없어도 좋으니 행복하자. 자유의지가 있고 불행하기 보단 자유의지가 없고 행복한게 그간 오류 발생의 시공간 속 진화해온 인간뇌에 적합

행복은 사실 이론이나 논문이 아니라 햇살이나 음식에 가깝다. 본질적으로
비슷해보이나 맛이 다르다. 그러나 맛있다고 해주는 것이 행복이다.....

자유의지의 본질-한사람은 뇌로 한번에 여러 선택을 할 수 있는데-시간이 가면서- 그것이 임장이나 인간체계, 개념기준에서 자유니 뭐니하나 본질은 그냥 대사이다 신경....

시공간이 생각보다 느슨해서 그 느슨한 여유로 인해-차원 발생 차원사이의 갭- "자유" 가 가능한거 아닐까-시공간에서 태어났으나 그런식 작동 가능하게

과거의 나가 신경발달이나 변형으로 다른나가 된거에 신은 죄를 묻는다는거잖아-어차피 시간은 계속 가고 변하는 부당한 구조에 기대어

"하필이면 그때 그래서" 집중하고 파면 무한히 부당한 시공간 세상 신의 룰
인과란게 사람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우주내에 원인과 결과의 순차는 있으나 인간에게오는 의미가 인간 머릿속에서만 있는 것이다. 자유의지란 것도 인간 구성체여서 의미가 있고 돌은 무의미하듯이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자기보호심과 이익, 그간 세뇌나 지식등 그 당시 인식으로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나 현재 악플로 예수를 까는 것이나 동일한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시대상이고 인과고 정보고 이런거로 구원이결정된다는 거 자체가 재벌세습만큼이나 부당하다.-알다시피 세습은 한국이 유독 심함.

자유자(P)가 있다. 피동자(S)가 있다.


그리고 현상에는 순응자(A)가 있고 반발자(B)가 있다.



자유자의 선택권에 의해 S가 움직이고 a,b,c,d 등 비선형적 결과를 보이는 현상들과

A와 B가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여기는 확률분포의 법칙(a)을 따라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뉴턴역학의 접합점이 된다.


관찰자와 피관찰자에 의한 세계속에서 특정한 방정식에 의해 세계의 모든 것이 결정이 되고

그것은 양자역학의 확률분포를 따르고 그것을 벗어난 완전한 예외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P의 결정 P(자유결정)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

P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방정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P(자유)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모든힘은 공간왜곡의 결과이다. 파동 - 통일장


슈뢰딩거 방정식, 파동함수, 통일장, 빅뱅 방정식 등




1,2,3,4,5,6,7,8,9,10,... 자연수가 있을때

1+2=3 , 2+3=5 , 3+4=7, 4+5=9,... 이런식으로

n+1 이 되는 식으로 칸이 밀려나서 자연수에 해답이 나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2,3,4,5,6,7,8,9
 + =
   +   =(2)

     +     =(5)

       +       =(7)


n3+2=n1+n2 (단, n은 자연수) 그리고 그 해답은 항상 홀수이다.


반물질을 제조하면 우주가 다 사라지겠지만 애초에 그게 불가능한게 물질을 통해서 하는게 인간 한계라서.
또는 반물질을 끌여들여

설마 뇌속 파동이자 입자가 빛보다 순간 빠르게 움직여 다른 대사를 엿보는 미래초월의 신경대사가 일어나는 건가?- 아니면 우주를 그런식으로 알고 이카식레코드에 접속할 수 있는 뇌가

만약에 항상 해보고 '미래' 시점의 인간들의 반응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 부분에서 구조상 미래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부분에서 상대적인 것 아닌가? 다분히......
-이걸 언제나 구사 가능하게 조절하면 생전엔 그사람은 또는 모두가 그래버리면 그만큼 상대적인 인식-

자유란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다-그러나 인간이 없었다고 가정하기엔 이미있다 그런 오류




상자가 있다. 그안에 햄스터 100 마리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 90마리는 상식의 혜택을

받아 하지 않는 일을 10 마리는 한다.


다만 상식의 혜택을 못받아서 그랬을 뿐이지-돌아다니며- 남의 햄스터의

의지에 의해 학업을 못하든지 여전히 '자유'의 여지는 있고 깨닫거나

아니면 힘을 길러 햄스터 사회기준으로 많이 바꾸거나 달라지게 만들 여지소지는 다분히

있다.


경찰,......모두 이런식해석


그 개개별 한마리 한마리는 모두 '인간' 이고 그 상자 안에서 돌아다니는 그것을

개개별 햄스터 나름의 각각의 자기 뇌로 정리한게 바로 자기입장의 '인생' 이다

다만 찌질할 뿐 뭣도 없다.-그렇게 뭣도될수있고 초라할 수도 있다는게

3-4차원에서의 자유적 결과를 말해준다


그안에서 좀 뛰어나면 다른 햄스터의 존중을 받고 편하게 그런 대우속에 살다가

늙는다-다른 햄스터가 요구하는 본능이나 인식대로-


그것이 바로 '권력'이고 모든 햄스터는 일정시간이 되면 새끼를 치고 죽고 그새끼들이

다시 그걸 반복한다 조금씩 달라지며 이게 바로 '세상'이다


광신이고,꿈을 이루고,만족이고 사랑이고 행복이고 모든게 이렇게 발생한다


이관점이 옳은것이다 자기착각이니 종교이니 넘어서 아무리 접힌 공간이 고차원이니

해봤자 추레한 햄스터의 개인사일 뿐이고 자기충족일 뿐이다


물론 그 한마리가 많은 햄스터에게 영향은 줄 수 있다 나름의 상자안을 다니며 깨달은

햄스터 기준의 지혜로 이게 바로 심리학, 학문들


모두 결과적으로 자기입장의 일이고 상호작용이고 죽으면 상자속의 '추억'이 끝난다

행복이니 보상충족이니 하는 일들은 모두 상자속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햄스터가

돌아다니며 자기보상한 결과이다


물론 한마리 햄스터가 나머지 99마리를 죽일 수도 있다. 독성물질을 만들어 계획적으로

안걸리고 돌아다니든지 해서


그런 자기입장의 모든것


이런 관점이 옳은 해석인듯하다 인간철학의 자유개념-학문조차도 상대적


그리고 그 햄스터 관점의 자기작동이 바로 '자유'이다.-당연히 인과율도 있고 햄스터

나름대로의 동시성도 있다.


행복대신 생존을 택하건 그건 햄스터 개인사의 일들이고 그만의 일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그렇다 '인생'이나 '행복'이란건 햄스터 입장의 개인의 기분이다


가족사도,


햄스터 사회에서 짓밟히든 말이다


제각각햄스터가 슬플뿐 그뿐이다. 아무도 서로를 도움안줄 수도 있고 돈도마찬가지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뭘추구하고 살지 확열려버린다 아집이고 뭐고 다 없이 산에서 내려다 보고

상자안을 돌아다니듯 개인성향유전대로 그게 옳은 것이고 도이고무당


그안에서 햄스터들끼리 좋은걸 만들고 유통시키고 권장하고


한햄스터가 괴로워도 햄스터가 상자안에서 바라듯'종말'은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상자를 만든건 가학적 새끼이기 때문이다.


이런걸 통찰하는 햄스터도 별로 없고


연구비를 준다고 얌전해지진않는다


그리고 그안에 감춘 햄스터는 고립된 혼자 열폭하여 사소한 도구로 지랄한다. 자기기준의'행복'

이 망가지며


가족에게 그 햄스터 본능의 피해를 돌린다


상자를 없앨 수 있는건 핵이다.


그리고 단지 지구영역이 상대적으로 넓을뿐 상자는 곧 지구,나라


충족이 안된다고 지랄할 필욘 없다


햄스터 기준의 미묘한걸로 이성도 선택하고 사소한 일일 뿐


그러나 햄스터 기준에선 살인도 부르는 일


갇힌 그대가리 수준


자유는 있다 행사여지 구사 하는 추상정보-햄스터 사회내에서 그런걸 활용하여 광신에 빠지기도,

안되기도 하며 조용기 미친


어떤 햄스터에겐 심한 재앙


법이란게 있어 직접죽이면 어긋


다른 햄스터가 하는 짓을 가지지 못하다.



그 원숭이가 추억을 가지든 말든 알바아니다 다른 햄스터는. 인간조차.


원숭이라 안하는게 더 맛은 나을지도


도를 깨달았으나 다른 원숭이들은 모르는


조금뭉치고 많이 뭉친걸로 햄스터 사회 심한 차별을 하며



유난히 쓰레기들이 많이 모인 집단-그걸 유지하는건 특수미끼


같은 원숭이 시체를 보며 '원숭이'수준의 작동원리 잔혹함을 키우는등-다 선조들이 했던짓


유난히 당대호들갑 떨필욘없음-주도자는 힘없는 문필가 기자 원숭이들


햄스터, 원숭이 기준의 일들


보상 충족


어차피 그런거 좀 대차게 사기치자-얌전히 있으라고 억압당한게 너무 억울해서


최대한 정보 집중시켜 파괴가능 온재산 털이도


치는자는 아는데 당하는 자는 모른다 이넓은 세상에 원숭이기준으로


더구나 상자를 무너뜨릴 힘은 없지만 다른 힘이 있다면 구조를 속속들이이해하고-그게바로나이다


핵분열


프레임을 전환하다


보상충족 환타지아들


선생새끼들 가래뱉으면 아가리 절단난다


도덕적이고 뭐고 애초에 따질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햄스터들의 일


모든 눈앞의 코끼리 다리짚기 도가 여기서 이렇게 끝나다


햄스터 작동원리 따윈 아주 사소한것 우주의 도와 연관없음 해봤자 빛정도 그런관점


햄스터가 생각하는 시체귀신 없음


그냥 본능적으로 못생기고 재수없어 가래뱉았는데 귀신이 그랬단다


관점 해석이 잘못되었다는거지 그런 관점 틀리고


햄스터 사회에 뇌관을 당기는 것들


농촌에선 가래안뱉고도 살 수 있었는데 왜 도시는 빡세게 항상 무장해야 하는지 하는


햄스터 기준의 문제


죽기전에 퍼뜨려야


하나는 걸리겠지 이것때문에 안걸릴 수도


스마트 폰을 쓰건 뭐건 거기서 거기의 문제 이런식으로 열려 신경작동까지 구성되어버려


햄스터 좆같게 말살


절대 신의 뜻에 놀아나지 않겠다 666이 아니라 777웃기지? 원래 없어



초식동물출신 육신인척


그런 본능으로 어리석은 그런 관점에서 살건 앞이 꽉막혀서 실패를 하건 그 상자안,

햄스터 사회에서 모두 햄스터 개인력량의 문제일뿐 마치 흰쥐 길찾기 실험과 비슷한


쓸데없다 하나 햄스터 보상충족에 우루루 몰려


햄스터 기준의 일과 마약


그게 끝인거 같다 아마도 그안에선 그렇게 크고 거대하게 보여도


남이말해주는 느낌다 땟국물


필요없는건 하수구 막히니까 이제그만


회로정돈


이걸 알아도 유리한걸 취한다


그게 포인트가 아닌데 나쁜 남자가 포인트라서 오히려 사과하면 병신됨


남자에 음험한 년은 꼬시기 힘들어 사실


그런 남자친구가 그렇게 보여지는거 보고 당황해-남자끼리 잘외교잘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적잖이 당황


본능상


안되는 구십개에 집중하지 말고 되는 하나에 집중하자


사회적으로 자유를 좀더 깨닫고 적극 활용 가능


몰랐던 조선 시대에도 차원이 있었고 DNA 의 원리나 심리원리로 돌아갔고 단지 알지 못했고 활용을 못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런 것이다.

사실 세상은 운이다 결정하는데 할 수 있을때 해야 한다. 이런거나 발상도
나도 사실 이런걸 인과의 영향 많이 받음-이유없는건 없다 사실

타인의 의도에 의해서도 운의 혜택을 받는다-꼭 첫사랑이 안이루어지는건 아니나 통념상 그렇다는거겠지

인간 구조상 예측가능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그게 완전한 미래를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듯 그런 부분

근데 인간관계를 보자면 사실 사람성격을 바꿀 수 없고 그냥 얽혀서 거의 죽을판이나 거의 안바뀌므로-또 바뀌어서 그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일이 많고 사실 그걸 벗어나는게 중요하다-그인간은 거기까지다. 근데 그런 이런 조건 반응성 오류성으로 인해서 많은 부당함이 있음에도 "진심" 이나 "도의" 를 주장하는건 아닌거 같다.

인간은 기술발휘하고 그런걸 보면 구조적인 측면이 있고 자유도
역량이라는건 뇌 용적 문제다- 만약 그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외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내부적으로도 그런 인과나 단편적 생각이나 뇌의 특정부분 반응들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통합 항아리-그릇으로 운용이 가능하다면 그건 거의 인과나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구성체의 사람으로 도약해 살 수 있을 것이다-그게 인과니 뭐니 여러영향으로 되건 그렇게 되어도 사실은 그게 '자유' 로서 가능한 그런 부분이니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부분.

이런 관점에선 '왜 하필이면 그때 그랬나' 하는 것도 해결가능-인과적이라 그래도 동시에 다 한다면? 그건 용적 문제

인과적으로 하면 넘겨버리고 생각안하면 되는 부분도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그냥 "자기 마음안에서 없애는"-그게 시공간에서 최선

유전이나 다른 것도 작용하겠지만 "계기" 상 뭐에 임장을 느끼나 하는 것도 중요한문제-특히 사춘기 임장 세뇌가 후에 많은걸 결정... 사실 다른것에 임장 세뇌느끼면 인생길이 하는일이(인습적시각) 달라질수도 있는데

어차피 그런 "기본틀" 을 많이 바꿔서도 그렇게 행복하고들 사는데 그렇게 기본틀을 바꿔주어 좀 행복하게 살게하면 어떤가-그때 망신안당하고 모면하면서 좋아지게

그런식으로 하나님이 일말의 자유를 보신다고-혹은 인간이 그런 상황에서 그런 자유를 낼 가능성 그걸 안다 해도 그게 '인과' 에 의해 된다는 그런점은 어떻게 간과할 수 없고 또 그걸 안타까워하신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그 '상황' 에서 그 유전자 조합이 나는 신호 그걸 "진심" 으로 받는 뭐 그런게 온당한가? 아니라고 본다

자긴 외모가 전부인데 그게 더 뛰어나니 질투심에 어쩌지 못해 몸부림 치는 것이다.

그런 상황되면 누구나 그럴텐데 그걸 가지고 근시안적으로 처인식하여 감동받고-그것도 매력이니 그렇게 해석... 인간 진화 정말 답없다 씹버러지들....

근데 그냥 뭐 "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 하고 자괴감에 빠져 뭐 그러고 대체를 찾고 지랄들 하는데 사실은 파보면 다 이유가 있다-원래 인간관계가 안되는 애라든가 하는 그럴 소양이 있더라든가 하는

외모 때문에 진심이 안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운에 그런 인간도 있는데-반면에 외모덕 많이 보는 애들도 있고

현재 빠삭

원래 얻을 수 있는 운을 그냥 놓친 것인지

인과 신호가 개체를 만들었어도 어디서 의지가 나오고 왜 발달하는거지 - 구조상은 그렇다 치고 시공간 차이 곧 인과도 영향인데
최초 발생 신호도 영향줌 사주처럼-그날따라안땡기는등 구조상 이유라 생각했던 인간 입장 이게 착각?
어디까지가인과이고 자유인가
내가다양한이유로엉뚱한구조와추상세계에서헤매고잇엇던것인가ㅡ신은일상을중요시하시는데 자유를이미주시고구조는그렇게하여

그런 '인과' 의 신호가 수정란을 만들어서-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하고- 구성체를 구성하게 되었는데 그 "구성된 후" 의 개체가 의지가 나온단 말이다. 그런데 그 의지가 어디서 발생하고 발달하는가? 그게 '인과' 의 영향을 쭉 받고 시공간 대사의 영향을 받긴했지만 최초 수정란 발생의 인과와는 상당히 무관할 수 있는 그런식의 개별적인 구조적인 측면의 의지가 나오긴 하는데 이것이 인간 개체의 착각인가? 아니면 실제로 그런 것인가? 실제로 그런 것이라면 어디까지가 인과이고 어디까지가 자유의지가 가능한 부분의 발생으로 그런 자유의지를 구사하는 것인가? 최초의 수정란등 '인과' 신호 발생이 후에 영향준 것 맞고 또한 영향주었다 하더라도 ''한덩어리 인과''로 다루기엔 무리가 있는 부분이고 이걸 인간들도 잘모르는데 현재

또 어느날 따라 끌리지 않거나 하는 부분도 구조상 이유라 생각했지만 그게 과거 최초 신호라든가 현재 시공간적인 "인과" 의 영향으로 그럴 수 있지만 백퍼센트 그런 구조는 아닌게 "자유" 라 하는게 인과에 의한 구성체이긴 하나-마치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든게 인과에 의해서이긴 하나 만든 후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고 카오스를 보이듯이(이것의 본질이나 실체 자체가 정해진거를 착각하는거라면 뭐 그러나 그자체 카오스 복잡성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인간이 그거 밖에 발달을 안해서 인식상 자유니 유의미하게 느끼지만 인간인식이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그것이 현재 인간의 두뇌일 뿐이라서 그렇게 하는 건지도 몰라도 어쨌건 현재의 카오스 복잡성은 인간의 뇌를 만족시킨다. 한마디로 인간이 뇌로 이거밖에 못느끼고 이런식으로 대사를 밖에 못해서 그게 유의미한 전부-오히려 버거울 정도로 느끼나 생존기간에:다만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졌을 뿐이지- 로 느끼는 것일 뿐이지 사실상은 그거 이상으로 뭐 없을 수 있고 카오스가 전부인 착각일 수 있으나 경험칙은 자유가 있고 구사가능하고 인과는 있으나 자유도 있고 그것을 다룰 수 있다고 말한다.-또 적어도 생존기간에는 그런식으로 충족하고 별 무리가 없고 잘느끼고 그거 이상으로 느낄 필요도 없고 그래서 추구도 안하므로-인간의 뇌 부위나 느끼는 방식이 전부라서- 그냥 그선에서 패턴으로 인생들이 다 끝나고 마무리 짓는 그런 식이 사실상의 전부이다. 인생의 전부들) 마찬가지로 인과에 의해서 인간이 형성되었으나 그 전체 처음과 힘의 구성에 의해 구성된 그런 구성체 자체의 사이의 그런 절대적인 연결은 없는 그런 부분이고, 마치 그 애를 놨으나 그자체로 그런 사건을 일으키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들 생각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유전자라든가 계기라든가 인과라든가 작용을 한 것인데 그것이 일반적인 사실-수정란 자체가 생겼다는 사실-만 떼어놓고 보면 영향을 그다지 안미친 것 같이 그런 양상이다. 그 유전자가 어떻게 조합이 되고 환경과 상호작용했느냐가 중요하지-이것이 "인과" 라 하면 중요한 중대한 부분을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이 인간이 죽기전까지 그런 점이 그다지 인간 충족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므로 필요상 이런 부분 철학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는다. 구조상 그러는거지-다만 추구해서 인간 자유를 더 분석적으로 활용하듯(화참는법처럼) 유용한 점은 있으나 창조주 신은 좀더 일상적인데 집중하기를 원하시는 듯하다.

그렇게 과거 망가졌다가 이제서야 정상적인 관계로 정립하는 그런 부분이 있고-짐승 유전의 힘의우열로 손상된 관계도:아마 감빵이나 검사로 만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새끼를 다루는데는 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지네는 모르나)-조련기술처럼 그런 속성들에 그게 생전에 깨여있는 인간의 판타지 사실 이딴 철학보다 그런 방법학이 더 유용하다 사는덴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기본 심법은 이미 다 답이 나와있다 그대로 하면 된다 그간 지식으로도 넘치고 충분할 지경 처세적인-물론 결론 나면 새롭고 확실해 질 수 있으나 사실 그래봤자 뻔한 답을 헤메고 있는 듯하다-이자체도 팔자라 할 수 있고 INTJ 특성이라 할 수 있지만 그걸 신이 안타까워하고 자유의 다른 측면이 있을 수도 있어-일상익숙한 그런것과 비슷한 느낌에...-그런 부분으로 좀 사는게 운전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온갖 이론이 빠삭해도 마치 운전 못할 수 있듯 그러나 도움은 될 수 있듯 마치 그런 덜만든 찐빵같은 느낌이다 이런 부분은 또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걸 건드리는 혼자 헤메서 침잠되고 낭비... 그냥 신을 믿는게 나을 듯 믿고있지만 또 거기서 시작하는 중심잡기 그게 핵심 전략전쟁-"인생은 짧다." 새겨들을 말이다-물론 같이 시간이 지났어도 그 사람은 온갖일에 엄청 긴세월같을 수 있고 다른자는 단조로운 일상에 아니었을 수 있으니 기억과 인식받아들이는 차이라도 그때 느끼는 것, 회상과 추억등 그런 부분들이 차이가 나고 전체 "행복" 이라 하는데 무의미한 것 만은 아닐 것 다시 말해서 "어차피 죽는데 왜살어" "어차피 똥되는데 왜 먹어" 하는 것과 비슷한 부분. 물론 틀린 명제다.

사실은 그렇게 인간이 갑자기 뒤진다 해도 물질 적인 측면이 강한 것인데,-그런걸 보면 인간에겐 물질적인 측면이 강하고- 그런 식의 "인과" 가 중요함에도 그런 추상적인 정신을 형성하고 신은 그렇게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정신을 나오게 물질로써 만들었음에도 그런 것 보다는 추상적인 자체를 운용하여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니 뭐 그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왜 뭘 먹어야 생명이 유지가 되는 것일까- 그게 뭐 호흡에너지나 운동에너지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에너지가 성장후에는 유지가 필요없어야 하는데 그런 "인과" 적 측면이 존재 비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계속 먹고 혹은 부정적인 것도 인간이 적응한다기 보단

뭐 성격이나 습성이나 헤아림이라기 보다는 잘모르는 상황에서 상대 정보 알려고 그렇게 하는거 같은데 묻고 등

인간이 인간한테 그러면 안된단 개념없이 한다지만 사실 그냥 발생한 생물체나 뭐 아님 독자적인 구성개체로 보면 그래도 된다 왜 안되는데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생존기간에는 그러면 안된다-삶이란 각자에게 소중하므로

무정보 상태가 본능에 의존해야 하므로 더 본성, 본능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성경책은 형식이나 구조는 종이조가리지만 그안에 생명을 담고 있다고 하고, 그런 전파도 기술상에 부분이나 "내용" 은 다르다고 하지만 실상은 뇌의 기억조차 물질 구조 맺힘이고-시간은 계속 가고 그냥 행동이고 대사가 일어나는 것일 수

순수한 사랑이란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는 사랑은 진화심리의 결과이다. 일단 진화적으로 종족 번식을 위해 물질뇌를 추상적인 정신의 감정으로 착각 시킨 것이고, 그런 결과로 뇌의 조건반응으로 외모나 조건, 혹은 유전자 상동성 상보성 등으로 끌려서 그런 추억이니 뭐니 배경과 진화적인 공기나 연민, 그런것에 "사랑" 이라 진실하다 착각하는 것인데 어쨌든 구조상 그걸로 마약을 얻고 인간의 최선이고 전부니 집착할 수 밖에 없겠지. "아무려면 어떠냐..." 하고 즐기듯. 그리고 그걸 진실한 사랑이라 부르건 그냥 인간이 붙인 이름에 불과하건 인간의 머릿속 관념의 옷을 입히건 상관없이 어쨌건 본질은 그렇고 "그자리에 누가있건" 아마 사랑했을 것 상황을 보자면-일반적으로 뇌반응이니까 그렇게 사랑빠지는 과정 유전자 상동성, 보완성까지 맞아 떨어져 그렇게 다만 그사람이 만약 지방에서 농사짓고 얼굴못생기고 서울 갓상경했어도 사랑했겠나? 하지만 그런 "아이덴티티" 의 문제가 있다 그자는 누구냐? 그런 인과라든가 하는 문제의 실체-아마 사주와 관련된 "나는 누구인가" 그인간은 누구인가, 제각각은 누구인가 그런 관련 정체성 실존 문제-시공간 관점에서:신이 해답 어쩌면 이게 사실 뿌리, 핵심 상기를 안할 따름...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든걸 해야 한다고 그안에 개체가 공간적으로 자유작동이 안되는건 아니다. 시간에 매여서 시간으로 인해서 모든 인과가 발생하여 인간은 전적으로 인과에 의해서 작동하고 결정되어 있다 하는건 무리한 주장이다. 시간과 인과는 존재하나 인과는 시간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고 인과에 의해서 시간이 발생할 수도 있고 인과는 인간이 인식하는 원리일뿐 (혹은 시공간 안에서만 물질계 안에서만 특수한 상황에서만 존재하는 원리일뿐 실존하는게 아닐 수가 있다.) 실제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다만 특수한 시공간 상황의 물질계에서 인간에게 영향을 주고, -어쨌든 시간에 의해서 인간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것이 아니고, 인과도 영향을 주긴하지만 그안에서 인간은 특수한 구조적인 조합으로 줏대를 가지고 (후에 기능이 발달을 했으나 그것으로 인해서 또 깨달은 이후에) 자유를 구사할 수 있고 그런 여유있는 시공간에서 그렇게 자기 주체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있다. 만약에 인간이 시공간을 벗어나도 존재할 수 있느냐? 물질적으론 불가하겠지만 이론적인 원리는 그렇다. 다만 아쉬운게 아마 물질에서 시작한 추상이라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런 "특수한 구조" 가 발생한 원동력, 그 구조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 시공간에서 자유작동이 가능하게 만드는 그 근원(적인 구조)은 무엇인가? 인과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시간과 공간은 왜 이런 상태의 상황으로 분배가 되어 있고 그 안에서 인간은 이런 구조로 만들어져 형성이 되어 있고, 또 (인과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유작동이 되게-그것도 뇌기능으로 인해서, 또 깨달은 이후로 또 정보축적으로 정보대사하면서 자유작동하게) 그런 절묘한 상태에서 구조적으로 작동을 하면서 그런식으로 시공간내에서 이런 구조로 뭉쳐서 작동을 하고 움직이게 되었는가? 그 본질과 실체는 무엇이고 근원적인 법칙의 원리는 무엇일까? 그게 원리가 무엇이고 방정식? 글쎄다.. 그보단 본질적인 원리를 좀 알아내고 싶다..... 그게 뭘까 직감으론 오는데 답이 시공간 공간속에 그런 인간이 존재하며 -인식하는건 진리 인간에겐-  그런 구조로 작동하고 여유성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원리..... 특수한 상태 특수한 구조 그 시간과 공간과 인간과 작동상황 그런 걸 반영하고 조합된 그상태, 구조와 그런걸 반영하는 그 원리 투명한 원리의 본질의 실체 그 구성을 만든 힘, 조합상태, 반죽관계, 있는 조합된 믹서의 그런 상태, 그걸 만든 뿌리원리의 힘, 어떤 힘.... 그게 카오스 원리만은 아닐 것이고 그건 "인과" 의 어떤 축이다... 그런거라는 것..... - 인과가 자유를 준건 맞지만 그 후에 자유는 인과를 다루게 되었듯이 그런 시공간 내에서 특수 원리가 있다.

우리가 숨쉬고 보고 있는 이유-시공간 속에 이렇게 존재?하는 이유.......-존재하는건 맞는거 같으니까

이건 우주 밖과 우주안으로 공간적으로 나누기 보단 그런 원리가 통하는 안과 원리가 존재하지 않는 밖으로 그렇게 나누어 하는 뭐 그런게 낫다는 그런 부분 그런 것인 것이다 그런거 같은데.... -그런 반응을 하고 그런 감정에 뭐 그런 것도 분명 그런걸 가능케하고 담당하고 그런 원리 부분이 있을진대 그런 딱딱한 과학과 수식으로만 나타내기엔 한계가 있는 그런 부분...

그냥 이런걸 모르고 처살아도 되긴하나 -이것도 인과이자 혹은 자유 대사일 수 있고- 적어도 나몰라라 보단 세계이해에 나으니까

다른건 다 시시한 것 그냥 그런 인간본능대로 한 것에 대한 연민, 편린 감정일 뿐

그사람이 거기 있어서 달라졌고 변화했었다는걸 -그런 인식을- 전제로 말하는 것이다.

또렷한 정신으론 안했을 실수 흐지부지 인과 그런걸 뇌신경으로 그런 상태로 인해 그랬으니 다잡고 적어도 깨어있는 동안엔 제대로 작동하자 구성된 완전한상태로서

그런 상황에서 그런 역할을 하면서 반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당사자는 모르고 그런 상황을 벗어나면 안될거라고 하더라도 뭐 그때 그런 상황에서 또 그런 한정된 젊음이란 시기에 사랑을 나누면 그것도-인과에 의한 것이고 주어진 발달된 뇌로 반응나는 것이긴하나- 그걸로 된거 아닐런지 아무나 못겪고 어쨌건 두뇌기준으론 행복했을거 아닌가. 추억이 되고

엄청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잠시여서)- '지금 왔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는데-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반정도 앞당겨서 진짜로 왔고(그런 특수한 날과 비슷한 심리가 맞아떨어져서 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상의 어떤 가능성이 있는 세계) 또 이건 이렇게 해도 되겠다 했는데 무의식이 예상한건지 몰라도 그게 원하던 의도하던 바대로 되었고 근데 이런 쪽으로 초지각 그런데만 집중이 된 연구상태 몰입후반이라서 그랬는지 동작이 어색했고 위험한 상황일 수 있는데 동시에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은 그런걸 수도 있고 운전같은 상황엔 위험할 수도 간헐적으로 능숙하게 한다면 모를까 비효율적일 수도-보고 피하는게 낫지 과자 뜯는 것도 마찬가지고 인과니 뭐니 초지각보단 정확히 뜯는 원리쪽의 테크를 타는게 나을 수도 있는데 그게 원초적 욕망에 흐려질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걸 위한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

그렇게 계속 연구를 하다가 방법을 알아내고 돌파하고 하는 그런 "연구하는 자세" 가 중요한 부분-그럴 수록 더 다가간다 도와 진리와 궁극의 원하는걸 성취하는 반지와 궁극의 도를...

심리나 이런걸 신비주의로 접근하지 말고-물론 그런 능력으로 예상치 못한걸 예상할 수 있으나-현실 기반 정확한 예측이나 대응 그게 기반이 되는게 탄탄하다.

사실은 그런거 말해봤자 깔보기나 하지 그런건 차라리 말안하고 그냥 사는게 낫다
평생 그러고 사는거다... 자기거 가지고 사는건데 말이다....

어차피 상대적인거. 쫄지마.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고 결국 그런 유전차이나 별거아닌 차이가 우월과 열등을 만들 뿐이다.
그걸 모르는 어리석은 애들이 허세를 하는 것일 뿐이고.

사실 그때 냉동식품만 사고 싶어서 산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런걸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구나-외식을 하러 돌아다닐 수도 없었던 것이고 해보니까 알겠다 이제 그러나 사는 사람에겐 기쁨

그거라도 그 튀김이라도 먹으려고....(원한게 뭔지)-...정을 찾았던게 아닐까

구성상태 상황에선 구성상태의 원리에 크게 좌우되지 뭐 다른 인과니 뭐니 공기중에 그다지 영향안받음-받아도 구성상태나 신호나 그런 뉴런 신호발생 상황 그런 단위차원에서 영향받지 아원자나 그런건 구성상태 구성된 힘의 개체에서 그다지 영향을 안받음........ 신의 섭리

구성상태에서 신경뉴런에서 뭐 시도, 의도가 좌절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영향을 안끼침-그게 진리 뭐 아원자 인과고 뭐고 구성상태는 그런 "힘"을가지고 있다.

그런 구성상태가 프랙탈이고 뭐고 다른 차원이고 그런 원인 시도건 꼬여서 그렇다기 보단 그냥 구성상태에선 독자적으로 인식하는 그런 부분 그게 맞는 뭐 그런 부분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게 맞는 과학

구성상태에선 그냥 기억 회귀나 그런식으로 하면 지워짐-구성상태에서의 영향이란 한계나 아마 아원자도 전기신호로 도달하는 구조

인과로 우연히 뭐 잘맞았다나 착착된다 하지만 사실 기본적으로 99% 가 잘되게끔 컨디션등 관리한 구성개체의 문제-과학적으로 보자면 운보단 그런 부분 준비의 행복과 운명이라는부분 관리와 등등 기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이게 다뭐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신의 의도 그렇게 늦게 깨닫는 것도 일부러나 신의 한계나 그런 식 그렇게 믿는게 낫다 어차피 미비한 인간 그렇게 처믿다 뒤지는게 더 깨끗한 세상...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비한게....... 인간이 알아버린게 문제긴 하지만

그걸 당대에 뭐 그 개체가 그런 그정도 정보습득으로 안다면 여호와도 그럴 수 있을텐데 자숙하고 있는건지 아님 예의없는것에 대한 그런건지

어쩌면 차원이란 것도 차원 변화란 것도 마치 인간이 베타파에서 알파파로 가듯이-같은뇌로- 그렇게 상태변화만 일어나는건 아닌지? 그걸 수식으로 풀다가 그렇게 다른걸로 여기듯이
마치 아원자가 그런 파동이었다 입자였다 한다는 것도 단지 뇌파변화를 인간의 감각이 인식하는(진화과정에서 발달한) 오류 아닐런지? 인간의 감각은 이성도 절대적이지 않잖아? 결국 '뇌' 가 인식하고 진실인식에 근접하긴 한다지만 그런 맹점이나 착시현상 등과 같이 그런것 처럼말이다 엄연히 생물학적인 결함이 자연수식에 반영되서 그런건데 그게 이미지상 절대적이지 사실 절대적인 그런 부분이 아닌 건데

그런 혼자서 스스로 화를 소리가 아니라 동작으로 해도 인과에 영향에 안미치듯 구성상태에선 그런 부분이 있다 그게 단지 "상태" 이고 단지 물질계도 소프트한 파동의 다른 상태에 불과하고 인간에겐 하드하게 느껴지나 다른 반물질이나 그 외에선(다른 차원관점이라든가 쉽게 말해 공간적 비유로 우주밖) 안그럴 수 있듯 그런거 아닐까

인간이 스스로들의 지식으로 착각하는걸지도 몰라도-그런 절대적 느낌의 그런 이미지로- 그걸 만약에 신이 성경을 쉽게 말했다는 절대성을 가지려면 성경아귀라도 맞아야 하는데 그런게 부족

어쩌면 과학자 팔자로 태어나 그렇게 사는건데 그러면서 잃은 그런걸 다른 두뇌로 연민에 지나지 않는것? - 그러면 진짜 슬픈일이다 어떻게든 이부당함을 해소하고 바꾸어야 하는것 유전개조라도 혹은 인류멸절 시스템변형등

만약 요셉이 그당시 부정을 저지른 그런 수많은 여자중 하나라고 알았다면 그런 마리아를 생각한 마음의 무의식의 신앙과 결합한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냥 부정한 여자로 봤겠지... 근데 신은 그걸 계산하고 잉태했을 수도 있는데 수정란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뭐 그렇게 하건 말건 신이 창조했다 그러니 믿으나 과학자 정신으론 잘 못믿을 수 있으나 믿어야 구원을 받기에 믿는건데 -이것도 인과라든가 하는 많은 문제가 있으나 신은 단순성을 요구하는듯하다 그러나 진짜 진심으로 믿어지는거다 아니다 따지면 씨발새끼지 왜냐하면 과학자형이 진심으로 믿으려면 사실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성경은 알다시피 그런 증거로 쓰여지지 못해 지가 창조한 피조물들의 생리도 몰라 우뇌형 여자가 더 믿거나 하는 그런 부분들이 존재하고 그런 오류들이 있음에도 안믿으면 끔찍한 영벌의 지옥이라?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신의 처벌은 문제가 있다. 인간의 법보다도 더 불합리함... 갱생의 기회라든가 기간 제한도 없는-적어도 생물 이해상 무기징역으로 끝낼 기회는 주나 물론 구원의 접할 박탈문제는 다른 문제 사실은 지옥에 떨어뜨리는 신이 더 불합리.

그렇게 뒤늦게야 깨닫고 그런 하는 점들이 ''인과'' 에 의하여 하는 그런 점들이 인간이 진화상 어쩔 수 없이 시간,공간이 있는 세계 안에서 마치 비소를 먹고 사는 물고기 진화처럼 그런 인과로 인해 두뇌 정보대사로 깨닫고 발전하고하는 시스템 자체에 익숙해 졌을 뿐이지-마치 가시광선만 보고 적외선 못보는 것을 익숙해지고 불편함이나 의문도 잘 안가지듯이-, 그걸 문제삼아 파기 시작하면 진짜 끝도 없는 오류가 난다: 인간 사회나 삶에서 인간이 구성한 그정도에서 스스로 두뇌 충족하고 자위하는데 별 문제 없다고 느끼거나 혹은 민주주의라는 혹은 자유경쟁이나 판결상 그런 죄묻고 근시안으로 따지고 현실보이는 적으로 그런식으로 묵살시키기 때문이지 사실 그 이면엔 일상적으로도 불공평이라든가 누군발전하고 누군 발전못하거나 아님 뒤늦게 깨달아서 연애를 실패하거나 전체교육등 제도적으로 커버를 하기 힘든 거대한 오류의 빙산이 자리잡고 인간전체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판결할때도 뭐 진짜로 안뉘우친다 어쩐다 하는게 불합리한게 복잡한 심리들이 있는데-남자들은 원래 자존심으로 잘못했다고 서로들 잘안한다 더구나 생판 모르는 이득만 번들거리는 자들앞에 피해자도 보통은 그런 자들이기에 피차 그런 자들끼리 굳이 사과할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현장공기의 심리란 그런건데 그걸 책속의 조선시대 망상으로 재단하려 하니 전래동화나 미담책에선 바람직해 보여도 알다시피 애초에 그런 세상은 아니었지 않은가? 동화의 감정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자기들부터 정치나 역사가 그렇게 완전하게 그런식 세상으로 돌아가야지 누가 먼저깨고 왜 약자들(따지고 보면 힘으로 붙잡은 약자들)에게만 그런걸 요구하는지(입장전복된). 판사들도 마누라한테 그럴 수 있고 그런걸 요구한다는 자체가 가학심이다.

그런 구성상태에선 그게 그렇게 실수하거나 뭐 허접해도 그다지 영향아닌 듯-아원자 단위도 아니고 그런 "인과" 에서 그럴 수 있는 구조 희안하게 깨닫고 뭐 하면 자유구사 가능한 그런 안전빵 그나마 노력한 만큼

그런 구성상태에선 그렇게 허접하게 뭐 하거나 잘못말하거나 실수도 뭐 쿨하게 그렇게 넘어가거나 그런 "인과" 가 가능하고 조작도-다만 시간만 가는 핸디캡이지 그런 구사가 가능한 시공간내고 어쨌든 그런 방법찾아 돌파-시공간에서 인간 현재 개체 현주소로써 최선으로 그래서 - 아원자나 물리법칙은 이보단 좀더 빡빡할것 그런 부분 '허접한' 구성상태의 세계에선 그런 일말의 선택의 자유성 있음.... 하라구 조작하구 뭐 그런 자유성 여지있음-인간 흐물한 뇌만 안빡빡하면 그런 시공간성 상대적인 인간 위아래,다른 부분 결국 죽는것도 상대적인 뒤짐...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부분 그런 "정신" 에서 뭐 구성상태, 진화착각 아니라 그냥 그렇게 그런 느낌, 일상과 익숙하게 뭐 허접등 받아들이는거... 진화심리도 창조라면 해결될거 아닌가...(융합이) 그런식으로 뭐 가능한 구조든지 창조계획이든지 뭐든 있는거다 그런식 그런 정신 추상입장에서 구사가능하고 정당화되는 어떤 것이.... 정당화는 안되도 실존 존재 가능한 그런 부분도 익숙한 정신이 절대화 되는......


시간의 변화는 공간적 변위로 나타난다. 또는 인간이 나타내고(시계나 전자등으로) 그게 한계임과 동시에 인간의-연결된- 지각도 이루어지면서 역시 공간적으로 한계가 생기면 인간의 시간의 지각에도 영향을 받는다. 신경 충혈등으로 지각이상도 역으로ㅡ관찰자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 같은데 하나로 묶여서 돌아가는 상태니까
역으로 공간적 변위도 시간에 의해서 나타난다. 혹은 공간적 변위가 있어서 시간이 나타난다. 또는 공간적 변위가 없으면 시간은 가지 않는다. 방정식도 나올 수 있고
이걸 기존에 인간의 인식의 입지와의 관계 등 철학적인 문제에도 대입하면 이 세상 인간 지각과 그런 관계와 입지를 알 수 있다. 뭐 잠정적으로 인간이 적응하고 그렇게 익숙해진 시간 방향성의 산물로 보나 자유 작동적인 측면의 구조도 있는 그런게 존재하는 것
그러나 미시계보다 거시계가 중요하고 비중있듯 결국 그런식 증명 귀결 될 것-모든건 인간의 의식이 있기에 유의미한 것이다.

사실 인간이 시공간속에서 진리를 인식할 수 있게-자신조차 그런 법칙에 의존하면서-되었다는 것이 그간 인간 기준으론 신비 현재까진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자체가, 또 법칙성이 있어보이나 법칙성이 인과에 의해서 그러고 그걸 자유로 잡으려 애쓰나 쾌락관련등만 그렇게 주루룩 많다는거 그런 자체가 인과와 뒤섞이고 시간이 가고 자유와 인식으로 생각하는 인간에 대한 기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떨지 몰라도
지금 내가 처인식하는 것도 그냥 인과인지-법칙성 있어보이는 일상이란 투영의 착각인지
그러나 구조상 분명히 바꿀 수 있는게 있어 그리로 올인

사실은 자유 선택을 하건 안하건 행복할 수 있고 -이런 생각이나 발상을 하는 자체도 그런 인간 구조상에서 제기한 문제인데- 자유 선택을 하고 안하고 하는 문제도 그렇게 뭐든 생각할 수 있는 수만가지중 하나를 발상한 것이고 이런 생각자체도 인간에게 인간구조에 도움이 되기에 시공간내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실존인 것이지-존립자체도 상대적- 사실 이런 생각을 안해도 사는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증명하는게 이런 생각이 필요하다는 증명을 안해도 되게 하는 그런 것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간접적으로 그다지 불필요하다고 하는건데 사실 돌아서는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런 4년 배우면 기본적으로 구사가능한데 (상식을 갖게 되어 일정 시간안에 누구나 발상이 가능하다-두뇌속성상 창의력은 힘들 수 있지만 그런 비교적 수렴적인 문제들은) 인과로 뭐 생각이 난다하건 아니건 그게 상식적으로 되는거로 보아-마치 누구나 아이큐 테스트 정답은 같듯 시간이 걸리는거지 시간만주면- 어쩌면 이세상은 그냥 시간은 가고 경기를 준비하는 그런 자유에 불과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런 구조로 그게 가능한 시공간에

이렇게 생각을 하는 자체도 그런 자유성 막생긴 세상에 적응해 그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기반위에 하는 것이고,

현실이 중요한 부분인데-그런다고 먹고 사는게 해결되는게 아니니까- 오히려 아는게 나을 수도 있고(해결점이) 내가 지금쓴거 날려먹은 것도 막생긴 세상에 적응과정 막막한거보단 나을 수도

인간이 만약에 완전해 진다면 거의 100% 가은 결론이 날텐데 그러면 "주체" 라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지만 그냥 선택하는 기계가 되는 것이고 그 고유성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래도 그 대가리가 충족하면 그만아닐까? 현재는 차별에 익숙해 진화하여 그러는 것이고 만약 다 똑같은데 익숙하게 진화하여 모두 충족하고 간다면 그냥 그런 것일 텐데... 감정이나 고유개성이 과연 주체가 되느냐? 글쎄 그건 대가리가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 현재는 그냥 이래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거고...... 안그래도 진화상 매력 떨어지는 애들은 사람으로 안보는거 발달해 있는데 다똑같이 그런다고-현실에서 그런 사례 강남스타일-충족못하는건 아님 오히려 뇌의 다른회로로 충족하여 -미적감각등- 좋음

이런거 몰라도 현실은 잘살 수 있고 막막한 짐승만은 아니라는 것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미비성 그런게 많은거 같은데

그런다고 복잡한 상황이 획일화 되느냐고? 글쎄 인과를 최대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선악과 따먹게한 고 못된 시간방향성과 연결된 어떤 것을?-인간실패혹은 구조자체와 그걸로 얽혀 피드백되는 행복감과 불행감을 만들어내는

적으러 안뛰어나온 것도 뭐 그런 능력발달 숙련과 판단력 그런 결과

알았다. 인간의 추상정신 곧 마음과 물질은 하나다. 말하자면 인간의 추상정신은 물질의 복잡성에서 구성되어 시간을 빌미로-시간 자체는 그다지 영향을 안끼친다 시간이 있고 공간이 이렇게 배분되어 구성된 그안에 끼여서 만들어진 구성체인데 그렇게 인간 대가리 구성체가 이렇게 구성되고 "주체" 를 가지는건 구조의 구성의 힘인데 그걸 가능하게 한 진화의 장구한 역사의 시간, 그리고 그런 "신호" 곧 원리, "최초신호" 가 중요한 것이다-말하자면 "인과" 를 만들고 수정란이 가능케하고 서로 반하게 하고-저열하고 유치하지만(인간 기준에서)- 죽으면 그 인간에게는 사라지는-혹은 사후세계나 다른 차원의 "꼬임" 으로 이동하는 참 때론 쳐다봤다는 유치한 감정을 만들어내고 이리로 저리로 마구 바뀔 수 있는 그런 "신호" 들 그게 핵심 같은데 바로 카오스 법칙을 만들어내는 원천의 전기신호, 그게 핵심같은데 그래서 바로 창조라는 것이다. 그 실체는 무얼까... 하는

사유도 가능케하고 최초 에너지-음식물에도 영향받고 그 물질계 안에서

이런식의 고도생각, 재평가도 가능케 하고 말이다.

단지 빅뱅으로 인한 시간적 방향성을 가지게 한 폭발의 힘과 전자기력같이 발생시킨 그런 맥락일까? 오히려 그런 걸 만들게한 또 원천이 아닐런지 그 신호가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되" - 이미 또다른 구성체가

현재도 숨쉬고 살아서 움직이는 운동력이 있는

결국 그가 만든 룰과 원리대로 깨달음-벗어나고 청종하고

차별도 가능하게 한 설계와 함꼐-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힘

이런 관점에서 보니 사실 원수고 뭐고 아무것도 아니구려 그냥 동물 구성체고 그냥 그랬던거 과거에는

다 미비실수의 인간과 오히려 일상관점에 매여 용서니 뭐니 지랄하는거 보다는-정신적 회피가 아니라

왜 깡패두목이 죽어서 억울하니?-이입해서 씨발놈(자기도 모르게 존경하는 과학자에 이입하듯 등-각기 뭐 성격유형도 있겠으나 그로 인해 현대에 펼쳐지는 과거사):이미지일 뿐이고 속은 썩은 씨발놈일 수 있는데 그런 도덕관념들 없이 개새끼 그래서 그런 사태 파토를 만들었겠으나 개씹종자 벌레새끼

인간 스스로를 자각하게 하고 의학기술도 만들고 하는 그런 힘

그런 에너지와 신호 그것은 시공간계 내에서 하나로 연결된 상태일까? 수준차이가 있고?

있는데-꼬여있을 뿐이지

시대나 나라가 문제가 아니라 원래 그렇다 이세상 존재 자체도 상대적인 것이다-자유가 있건 없건 그걸 추구하고 있다생각하건 없다 생각하건 그런 자체도 설령 그렇게 생각안해도 마찬가지고 그런 존립자체도 인간에 도움이 되건 안되건 등 실존 자체가 상대적인 문제이고

그 "신호" 라는 것은 돌도 만들고 욕도 만들고 하는 거라 그다지 절대적이라 할 수 없고 객관적인걸 그 후에 생긴 인간 대가리가 피해주고 안주고등 공동체 생존기준에서 다만 평가하고 그러는거 같은데 결국 그런 문제였다. 하잘것없는-통찰결과: 그걸 계속 추구하건 어리석게 노벨상 받건 연구하건 그건 자기가 결정할 문제-인간이란게 뭔지 진즉에 알고 추구할걸 추구해야지 난 그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이리로 어떻게든 빠질 순 있어도 자유로운 활동력과 사고력 결과 산물로

대다수는 거시계원리에 익숙하고 잘다루고 하나 미시계 원리에 대해 잘모르고 안다룬다는건 아마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사는데-적어도 생전에 구성상태 단위에서

사실은 거시계원리만 잘알고 잘다루어도 생존달인

신은 왜 세상의 부당한 일들과 오류를 방치했을까

그리고 그건 허브가 만든다는거-사실 자기 자유의지고 타고난 능력이라 생각하지만 DNA 가 주로 결정하고(그 이유는 인간의 90%가 무의식으로 움직이고 동물성이 강하기 때문)- 사실 대통령이 뭐 DNA가 특별하거나 외양이좋거나 관상등의 이유가 아니라 그 허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각양각색의 이유와 대통령이 될 이유 등으로 거기서 공천이 되고 세몰이가 되고 대통령이 된다는거-말하자면 연예인도 그런 방송국이란 그런게 있기에 자꾸 나오고 연결되고 해서 출연한다는거-대통령은 누가 되도 상관이 없는데 다만 (모두가 연결되고) 허브에 있어서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데 살면 서울대 입학생이 단하나도 없는데 대치동에 가면 60%가 서울대 입학이기에 그런데 가면 된다는거, 말하자면 명동에 직장다니려면 명동에 살아야 하고, 예술로 성공하려면 강남이나 홍대에 가야한다. 단순한거...-뭐가 개특출나서 유명해지고 부와권력을 얻는건 아니라는거지 인간인 식이 거기서 거기라서 심리상 대단하게 보고 그런 차이가 있을뿐이라는 거고 비슷하고 말고.....

자꾸 오그라 들면 좆되고
악명이든 오명이든 평범이든 허브가 극대화 된다는거-

말하자면 그런 자질도 있어야 겠지만 중심도로가 되야한다는거고-자기 자질과 적합한거 포함- 모든 사람과 연결되는-영화배우가 일반인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허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보다 맛있는 음식점도 많은데 왜 하필 그게 대박집이 되느냐? 그건 허브가 되었기 때문이다-수많은 자들이 연결되어 추천하고 연결되는 연결하려 하는 말하자면 충무로에서 자취를 하고 거기서 놀아야 수많은 감독이 연결되어 거기서 한번 써서 대박이든 쪽박이든 평타든 되는거지 안그럼 아니라는거-물론 자질도 개중요 기본이상은 되야
그동네에서 나름 허브라는 거고
-물론 완전 상관없는 사업도 있다
그러나 예술을 해도 고흐는 허브가 아니었기에 사장되다가 고난하고 살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것

그런걸 아니까 인간에게 인정이 더 없어지고 무서워진다.
전 세계적으로 갑자기 전쟁이나 재해가 많아지는것도 그간 너무 평안하고-그것도 특출난 노력이 있어서가 아니라-단지 빈도가 적어져서 심리니 뇌니 구조니 자유의지(소수나 한사람은 무력)등이 무색하고 힘을 못쓰게 난다는거고 마치 모래원리 그런식으로 그러면 이제 곧 3차대전 나겠네 인간 역사상

그걸 아니까 피해야 하고-그렇게 되는게 93%까진 그렇게 되고 나머지 7%는 예상을 좋은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벗어난다고 하는데 그걸 기대하는거지.

성격이든 그집단 적합성이든 매력이든 뭐든 거기서 허브가 되지 못했기에 못뜬것-신민아도
자기가 잘될데를 찾아서 거기서 허브가 되면 대박이 된다는거지... 원리는 단순했다 그러나 파괴력은 핵폭발-무슨 모델이니 피팅이니 연예인이니 다 마찬가지-성공자들의 공통점은 허브다-그시대의 허브 포함

허브가 되었다는 것 어떻게든.

가만 보니 잘나가는 애들이나 그런 역할 하는 애들도 사실 외모는 그거보다 더 잘난 애들이 많으나 전신에 흐르는 기나 애써 하는 그런 모든 것들이(간신히 포함) 말하자면 온몸으로 "나 허브다." 를 내뿜는 그런 애들이 그렇게 역할을 하고 권한이나 자격을 가지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성괴포함성형을 해서라도- 그러니까 그 또래니 뭐 그런 동네 분위기에서 (밤이냐 낮이냐 특히 밤도) 그런걸 생김새부터-적격이든 아니든- 그러고 다니고 다녔기 때문에 허브가 된거지 연결이 되고-뇌심리상(인간은 단순하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중요하고 반면에 더 잘생겼으나 소외되는건 허브가 아니었기 때문이고-말하자면 원빈이 채용되서 그런거지(그동네 법칙에 맞아서 외주제작사나 방송국 PD의 눈등 예절바르고 신인시절 허브된 당시 연예인이나 공채탤런트 "중" 에 잘생겼음) 그런 애들도 아무것도 없이 역할이나 드라마 없이 뒷골목에 던져져서 허브가 되라 하면 이미지상 안된단거지-무인기:비슷한애 봤음...- 그게 비밀이였다.

문제는 골격이 아니라 그 골격이 표현하는 "잘나감" 에 있었다-"나 허브다." 하는-스타일이나 헤어등 다 마찬가지 자세니 옷이니 기타 등등....이론은 단순했다-단 그동네나 그 나이대에 맞게 분위기등 페이스북도 마찬가지고-사교친목좆목질 중심이라 그런데 최적이고 역할되는 삐까뻔쩍포함 소외되고 도태되고 만화그리게 생겼으면 그냥 개도태 개무시

핵심비밀은 "잘나감의 신호"
어색하고 이상하지 않고 비대칭아닌
어떻게 자유의지가 있는데 그렇게 93%로 일어나냐 하는 거-근데 그게 나비효과라 하지만 나비효과적인 인과도 있는 반면에 그게 극소수고 마치 상자안에 점을 어떻게 잇든지 결국엔 상자이듯이 그런 사건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정사각형 모양에 수렴하듯이 그런 양상으로 5초에 하건 10초에 하건 그게 그 안에선 절대적인 의미를 가져서 그 하는 주체의 점에겐 마치 생사까지도 좌지우지 하는 큰 사건이나 결국 전체로 봤을때-대사건의 입장에서 봤을때- 5초에 하건 10초에 하건 전쟁은 나고 지진은 나는 식으로 그런 원리 역학의 단위로 움직이고(구성상태의 단위) 그런 사건이 일어나고 안일어나고는 사소한 사건의 집합, 즉 임계점이 결정한다는 그런 것이다.(사건의 축적과 구조역학으로 사회심리 물리등 기타 등등)

알바의 성격 등이 개인의 운명엔 크게 좌지우지 이나 그것의 총합이 국가별로 그냥 그렇고 다 모습이 비슷하고 편차가 크듯-공산주의도 사람사는기본이 비슷하고

우주 입장이나 전체 운명의 입장에선 다르고 역시 관찰자의 입장의 문제라는 거지-

또 개인은 평생 좋은거 하고 행복하면 그만이고 그게 그다지 전체에 안미치듯이-허브면 몰라도:결국 구조상의 문제도 크고- 개인은 그렇게 살면 된다.
가족도

말하자면 모든 것은 임계점이 결정하는데 그런 거절 사건도 한쪽은 공통기반 호감에 계속 호감으로 임계가 되었던거고 다른 쪽은 비호감으로 임계가 되었던거다. 그것이 사건으로 나온 것이고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동네에 불량청소년들이 어른들이 혼내면 뭐 그런줄 알고 순진했는데 요즘에는 인터넷 네트워크로 같은 종자라도 수준이 다르고 그렇게 함부로 막하고 더 막가는 그런걸 습득하고 배우기도 하고 그런식으로 하는 것이 허브의 역할이다. 도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그리고 예수님도 35살이 될때까지 사회 불만과 자기처지, 모순적인 현실등 내면 무의식의 임계가 차올라 특별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것인데 그런 모든 '인과' 가 일어나는 것을 신의 최선의 방식이라면 역시 그런식으로 하여 누군가가 예수가 되어 재림을 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

그게 신의 한계같은데 어떡하지? 신이 발전 못하는 구조면?-고착혹은 이미 쓴맛단맛 다보고 고착화된-마치 사람이 그렇게 하여 인과로 그러듯 그걸 이런 법칙에서 결과적으로 깨닫게 하고 그렇게 되는-근데 결국엔 박스안으로 수렴하듯이 그렇게 되나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안에서 A냐 비냐 어떤 것이냐가 인간에게 유의미한 거지 못살고 짱박혀 있음 뭘해.... 결국 더 중요한건 그 안의 '부분'이라 하는 개체의 주체의식인데-그게 뭘느끼고 시스템상 소멸하느냐가 더 중한 문제인데 딴나라에선 독립이 아무것도 아닌 문제이나 조선인에겐 대단한 문제였듯이

씨발 하고 나니까 허무하고 나는 뭘한거지... 다시 현실에 충실하게 된다. 낭비
다른걸 추구하게 됨 더 집착하고 몰입하여....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운이라도 정리하게 되는
악습을
자살에 대한 지식의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자살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인간에게 존재-그런데 그런 시공간지구위 그런 인과속의 운에 흐르면서 -그런 특이한 구조 기반 위에- 자살이나 그럴 수 밖에 없거나 그런 상황처지(인과로 되긴하나) 그럴 수 있고 자유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인간의 운명처지가 좆같은거-그런게 된다는 자체가

근데 그냥 성격 맞는 몇이 중요한 권한들을 잡고 영향력을 주며 움직이는 일이 많다. 좆목질이라고 까이는

행복이란건 삶에대한 주관적인 만족도라는 결론-성공만이 아니라-그거도 주관적으로 그러면 그렇다는거-성공보다 클럽가는게 더 행복이고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행복이라는 그런거.....
성공도 행복안에 포함이 된다는거지-평생 만족하고 자기대로 살면 되나 그게 국가나 국자전체의 인과-국가탓하는게 맞는것-인간들의 가치관이나 헐뜯음, 그런거 때문에 방해되므로 그래서 그런거지 사실은 자기가 행복하고 행복만들고 하면 되는거 '성공' 이란 개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거-그냥 포함되고 드라마의 한컷이나 베이스일 뿐이다 자기가 그런거로 행복느끼면 그런거고-중세나 전통의 관점이 많이 바뀜
어차피 그런 낭만, 예술등 상대적인 유전자로 그냥 느끼고 살다가-시대가 반복되-죽는거라면-정관유전자도 마찬가지고-어차피 피차더러운거 도덕문제가 아니니까-그렇게 자기 하고픈대로 맘대로 살다가 죽으면 되는건데 왜그렇게 들볶나 시발 국가 씨발.
어차피 유행강요등 부당한게 많아
어차피 그런 유전자가 그런 행위행동을 하고 국가발전이나 개혁이나 차별금지 법등 그런 운동등 하고 뭐 그런 양상이나 형국에 지나지 않는 뭐 그런거고 그런 상황인 것인데....... 그렇게 상대적일거면 억압말고 자기강요하지말고 제대로 하여 그렇게해서 자기충족하고 살면되지 사주상이건 뭐건 2%가 모자라건 뭐건......

야근데 막노동이라도 해라 그런말에 안따르는 이유가 있다-개소리인거-그렇게 부당한 기업구조와 사회구조와 좆같은 구조를 처만들어서 그걸 좆같은 임금에 고역을 시키고 그런거로 술값으로 지랄하고 그렇게 하니 그게 문제
그런 거도 인간이 인식하는 기준이나 그런거로 보기에 허술하고 뭐 그런거고 그런부분이지만
말듣게 하고 이기적 욕망 충족하고 그런게 열받는건 사실
원하는거 안해주고 하는건 똑같지-그리고 뭐 애미애비벗어나서 메틸화가 풀려 더 잘할 수 있는거라면 진작그러는게 좋고-경직등-그게 아니라면 뭐 상관없겠지 기를 죽이건 말건 어차피 세상도 다시 리셋이고 첨부터 시작해야 하는거니까

그런 명분선이 중요한게 그런거로 인해 감정반응폭발등조절되니까-
그런 일강요등 좆같은
한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이런걸 겪고 간다는게 사실은 좆같은 것-인간은 본능대로 할 수 밖에 없다 뭐 상실에 대한 두려움, 사회공포 등-안그래보여도 내재된-인간의 본능은 바꾸기 힘들고 그게 강할 수록 좆같음 그래서 알아서 피해야 스스로가 결정

근데 인간도 거기서 거기인데-다 쓰레기, 구린거 있음-근데 남배려하다가 인생종치는 그런 식의 삶이 제일 어리석다고 봄-의리지키려다 자기손해보는 유형들

운명도 통계다.-말하자면 수많은 유형중의 하나라는 것이다-그런 조건이 되면 일어나는 그런거고 그런 조건형성도 인과와 연결되는 그런 접합점 발견-중대한 부분의 발견인데

상처받을까 두려워 아무것도 못하다 인생끝나는거-그냥 자기가 뒤집어 쓰는 그러나 그런 인식한다고 못바뀌는 그런 부ㅜㅂㄴ

근데 모든 사주가 그런건 아니겠으나 연예인과 똑같은 거의 흡사한 사주를 봤는데 어릴때 서울 상경하고 비슷한 일을 하고 있더라-피팅등- 그게 유전자 때문이든 그때의 운의 작용때문이든 어쨌든 픽업되어 함 연예인은 그냥 우연히 픽업되었고(매력은 있었다는 것) 일반인의 경우는 자꾸 지원하고 노력함


드라마마다 팬층이 있다. MBC 보는 애들 KBS보는애들 SBS보는 애들-근데 기본적으로 KBS는 만화위주 많이하는데 많이 망함

이유가 그렇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시청자와의 공감대형성이 기본이다-또 여기엔 남주나 여주에 대한 감정이입이 중요하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여 대리 카타르시스로 인한 재미와 감동발생이 중요한데-그래서 보는 것인데- 그런 기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충실하지 못하면 망한다. 예를 들어 클래식같은 소재는 말도 안된다. 왕따같고 소외-현대 애들이 꺼리는거- 시대가 아닌거지- 반면에 특이 소재도 남주나 여주 캐스팅 빨로 보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 배우가 이전 작품으로 주목받은 것인데 배우자체의 매력때문이나 캐릭터때문이라 착각하여 쓰면 기대효과가 나지 않지. 예를 들어 예쁜남자-요즘은 잘노는 남자인데 2000년대 초반도 아니고- 이 것이 대표적으로 대중도 못잡고 매니아들도 못잡은 케이스인데 이런걸 보는 애들이 이만화를 아는 만화팬밖에 없는데 대중들은 그냥 재수없다고 안보고-비호감:원래 남자가 예쁘면 재수없고 그걸 또 전면에 내놔도 그런데-KBS가 센스가 좀 떨어져 광고천재니 그딴 재수없고 공감대 안되는-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런걸 이성으로 하여 꺼내어 대중들이 외면하고 매니아층은 매니아층대로 캐스팅에 흡입력이 없어-특히 광고쪽은 진구같은 배우 위협적이고 동성으로써 그다지이고-뭐 공부만한 범생이들은 주먹콤플렉스 양아치콤플렉스 해결할 수 있지만:이런 민감한 부분도 다 작용:무의식에서-또 예쁜남자는 그 만화매니아층이 초반부터 시비걸고 딴지걸고 캐스팅적으로 싫어하는 이미지의 배우다-예를 들어 그런 관상이나 유전자를 싫어한다 그 만화를 보는 애들은 그래서 그 배우의 팬층은 또 따로있는건데 또 역시나 KBS가 동료의식인지-남자끼리의:분위기가 위계질서적-주먹, 유대콤플렉스인지 군인식 강조인지 하여튼 그런 남자들끼리 잘어울리는 이미지의 배우를 쓰고 그래서 공감대 부족으로 망함-그 만화팬층은 차라리 남자주인공은 인터넷얼짱류를 좋아하고 여주는 이입가능한 여자를 좋아하는데-인터넷소설-이런쪽으로도 감각이 한참떨어지는 그런 부분이다-그런데 PD나 KBS직원들이나 제작사는 피가 꺼꾸로 솟겠지-얼짱이나 질투나 그런식으로 그러나 그 매니아 층이 그런걸 원하기에-바꾸기 힘든 대세라-이게 더 멋있지? 하고 가르치고 세뇌하려기 보단 그걸 따르는게 좋은데-이런 논리가 안맞으면 차라리 그런 작품이나 기존 검증된 만화스토리로 하려는걸 하지 말든지-언제나 걸림돌은 매니아층의 요구와 부합하느냐 안하느냐인데 아무리 캐스팅을 잘해도 이상이 워낙강한 픽션이라 미스캐스팅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단점이 있어-그래서 SBS흥행처럼 창의성이 좀 필요한데-배우에 의존하지만 이것이 SBS는 경험적으로 그걸 안다-그런 일진들이 하고 살아남은자들이 하는건 다 멋있게 느껴지는 그런 심리를 체득하고 있어 그런식으로 하는 것이고 KBS는 감잃은지 오래고 MBC, KBS를 막론하고 공감과 재미를 주는-자극적인 재미 그것도(다른거 다 포기해도)-아내의 유혹이나 루비반지는 대박, 그닥 공감성은 부족해도 따스함이나 편안함, 감동을 주고 잘나가는 대중성만땅 아이돌의 궁금증을 유발한 내생애봄날이나 의학드라마 팬층이나-기대심한- 선한 부동층을 잘움직인 굿닥터나 그런것들은 흥행... 뭐라도 줘야지 공감대도 안되고 이도저도 아니니까 망하는거

또다른 단점은 90년대나 통할법한-볼거없을때-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데 현대는 그래서 일본보다 더 획일화에 다양성이 받쳐주지 않는-일본이 아이돌 원조이긴하나 거의 아이돌이나 컨텐츠사업이 국가사업이 되버린 한국에선 더더욱힘들다-대중적이지 않고 돈안되는건 악이 되버리고 매장되버리기 때문-왜냐하면 예전부터 재수없게 인적자원밖에 기댈게 없단 식으로 밀고 나가서 사람의 비인간화 상품화가 빨리 진행되고 인터넷강국이란 명분으로 썩은게 더 빨리 진행된 한국인데 태국의 매춘관광상품화나 맥락을 같이하는-크게 보면

확실히 인간이 형성한 세계속에서 상대적인 혜택은 대단하다-재화라든가- 미국 이민해 성공한 아프리카 본토인들을 가끔 보았다
노예가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권한을 갖는다는 것부터-다른 사람의 합의에 의한 제도적 인정인데

사실 임계치 이론에 의하면 1초 늦게 출발하건 일찍 출발하건 전체 결과나 수렴에는 영향안주고 그 일이 일어나는데는 별다른 영향을 안준다는건데-인과고 나발이고-그게 어떤 경우나 미약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관점에서는 그게 간발의 차이로 생명이 결정되는 일도 많아서-그안의 개체나 소단위 에서는- 또 그런 사소한 계기가 결과를 만드는 나비효과적인 것도 무시할 수 없어서 죽기전까진 찰나란것도 아주 중요한 부분 개인에겐-이론 이전에 경험칙이 앞섬-연구자들은 자기 연구가 최고라는걸 알리기 위해, 또는 좌뇌편향 편집증탓에 나무만보거나 다른거 무시하고 하는데 옳지 못함
그것도 강할때 얘기지 당하는 입장에선-뭘해도 당한다지만- 그런 상황을 바꾸거나 하는 것도 사실 계기의 힘일 수 있는데-지속적 에너지의 조사가 다 해결하는게 아니라-물론 막강한 힘을 계속 갖다 부으면 바뀔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경우는 사소한 계기가 모든걸 바꿀 수 있다.갈라놓거나
봉지에 물이 찬경우와 아닌 경우 쏟아지는게 다른것도-우리가 사는 것은 박스권 그자체가 아닌 그안의 내부구조물인 미로이기 때문-미로 밖에서 보면 그냥 상자일 뿐이지만 불태우는게 가능한-그안의 생쥐에겐 생사의 갈림길이 될 수 있다-덫이나 먹이 획득 독이든거 분별등 다양한게 있음 자기가 길찾기 그안에선 획득상

오히려 지울 수 없는 구조가 누군가에겐 또는 개인에게도 대다수의 경우에 부끄러운 과거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득이 되기도 한다-



앞서 말한 인과란 허상이 아닐까? 란 내용....-근데 인간이 시간이 가고 공간으로 하고 돌아다니고 힘의 역학으로 뭉쳐져 언겁의 세월에 형성 구조 버티고 있는 '인간' 이란 구조 등...- 그런데 익숙해져 착각할 수 있으나-더구나 그안에 담기어- 사실은 시간은 시간대로가고, 공간은 공간대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고 만약 인과가 없고 -해봤자 고전역학적인 입지에 불과하고 <인과가 없고 다른 원리가 지배한다면 그것이 상대성과 양자역학 잇는 접합점이 될수도> 뒤집어 까면 다른 새로운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면-사실 음악보단 말로푸는게 낫다 어차피 그런걸 추구하면 때에따라선:진실추구하나 그런데선 그런 그런부분- 그것은 '만들어 가기' 가 아닐까... 착각하고 뭐 시간이란 컨베이어 벨트에 급급해 딸려가거나 무지식이나 무정보나 인간구조 취약성 시공간 구조 취약성이나 진화의 실수, 엉터리 지구위 법칙등 그러한 것들에 착각하여 자유는 없다지만 사실은 자유가 근본적으로 발휘가능하고 그런 "만들어가기" 라는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게 '새로운 원리'에 해당한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말하자면 그것이 새로운 원리... 만들어가는. -그것은 그런식으로 발현- 뭐 그런 구성원이나 '시간' 은 계속 가고 물론 '공간' 적으로 비스무리한 개체들이 반복되며-이부분도 인과나 기존원리로는 통합하기 어색한 부분 그러나 새로운 원리로는 설명가능(뒤집어:철학적 자유와의 접점)- 그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원리나 또는 세뇌나 다른 기법이나 유행이나-결국 인간사회에서의 최상위 '인간' 이 하는 것일 뿐인데<이것이 바로 인과론이 간과한 맹점>- 그런 '원리' 대로-또는 인간손이 안간다하나 갈수있는 가능성이 있는- 디엔에이나 그런 진화로 인한 변화나 그런 '뇌' 형성된 구조적인 것들 자체도- 결국 그들 인간 사회에서 그들끼리 공유하고 뭐 변화하고 영향받고 그안에선 진실이고 진리이고 그런식으로-또 자기 뜻대로 센스마저 변화시키고 인간본능까지 영향주고 메틸화하고 DNA변혁마저 올 수 있는 그런식의 시도나 의지나 것들... -그런 작용의 '에너지' 시도 부분 자체가<작은부분같으나 사실 내용적으론 핵심적이고 인간삶에서 조수키나 그걸 넘어선 아주 중요한 역할 담당> 사실 인간삶의 본질이나 그런 '새로운 원리' 의 표상이고 현실로 펼쳐지는 인간 세상의 근본속성 아닐런지.-다만 시간에 떠밀려 오해하고 있는건지도-오히려 공간적으로 하는 것이 본질이고 비슷한 구조의 개체가(DNA란 원리지만) 비슷하게 나타나 구현하고 그런 구조성을 만드는 그러한 원리부분-그간 인과성이 묵살한:분자나 고리정도로 다루어- 이 그러한 사실과 근본속성을 증명하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철학적 상대성이론 좆목을 넘어서
진실이 좆목에 파묻힌다면-그것도 인류적으로-큰 손실

많이 알면 통찰이 생기는거도 인과에 의한거 같은 착각이지만 만약 시간이 없으면 분명히 개체는 작동을 안해서 모르겠지만 시간이 없으면? 사실 모든걸 알고 있게 되는건 아닐까...-그반대일 수도 있고 -0아니면 100 (무한대는 아닐듯-한정은 있을듯 우주크기도) 정보기반 직관-그것도 관점전환한 전체보는 인간벗어나

먹잇감을 달리하여 충돌을 피하는 본능의 수법은 동물들에게서도 관찰되는데 말하자면 인간이 여러가지 수식어와 미사여구로 포장하나 사실 본질은 동물행동이고 감정이라는 것

구조문제도 편하게 설명가능...-그렇게 못생기거나 뭐 외모지상이나 그렇게 일어나면 거의 그런 구조적인 문제인데-비슷한 형태의 인간이 공부를 잘하면 그렇게 못하면 그렇게 사회구조 맞춰서 비슷한 형식으로 일어난다는 자체가 아마도 그런 것의 반영....

사실 인간이 잘생겨봐야 얼마나 잘생길까?-분명히 한계는 있다... 그후는 스토리와 배역경쟁이다.
역사상 스타들은 그런 것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어릴적 진짜 얼굴이 보기에 주먹보다 더 작고 혀를 내두르게 잘생긴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결국 연예인 못하고 하려 하지도 않고 그냥 놀고 늙어버리고 하는걸 보고 확실히 잘생겼다고 다 되는건 아니다. 어떤 것에선-물론 연예인보단 행복했겠지만

개독강요는 사실은 증산도 강요와 같다. 안믿겠다는게 아닌데 그걸 현실과 혼돈을 시켜서 현대시대상황의 생존-시대마다 진화심리학적으로도 그렇고 생존에 유리한 기제들이 있는데 그걸 말도안되는 중세시대로 치환하려 한다 억지로-요즘에 군국주의로 가려고 지랄하면 개좆되고 고립되듯- 말갖지않은 고전설화로 그래서 도태시키고 끌어내리고 자꾸 생존불리하게 만드는데 지네들만의 오락에 머무르면 되나 그걸 남에게 강요하면-마치 지만의 취미를 강요하듯- 뭐 인간모두의 신이다 식으로 합리화시키는데 진짜 그러면 신이란 개새끼가 인간에게 해준게 있어야 하고 일방적인게 아니라 관계란 상호인데 해준 것도 없이 좆같이 하고 일요일 아침 기분더럽게 할 필요는 없을듯-알다시피 놀다가 다음날 깨어나는 휴일의 아침의 기분이 훨씬 좋은건데 그걸 훼방하면서 까지 개새끼들-뭐 과거시대도 마찬가지였다고 보고 진화적인거니까 중세든 뭐든 개독이 카톨릭이 저지른 악행을 기억한다면 버로우 탈것이지 무식한 것들이 -상대적인거긴 하지만 행동은 친일파이나 친일은 아니듯 구조에서 기반하는 오류- 현대삶을 도태시키고 망가뜨리고 상큼하지도 않은 씨부림으로 저도 모르게 젖게 만들어 침잠시킴- 인생못나가게 자꾸 끌어내리면서 암흑시대나만들고 헛소리로 마녀사냥-그런 시간가서 어쩔 수 없는 구조인데 그렇게 오판하여 인간이 인식하기에 지구상에 좆같은 코미디 만들었으면 찌그러질것이지 뭔 소금기둥이야... 병신들
가짜를 통해 진실을 말한다면 성경속 설화는 다 겁주기 위한 가짜라는 건지 기분나쁘다 진짜-기분나빠도 회사가고 조폭속하고 하는것도 얻어지는게 있어서인데 얻어지는거도 없이 망상만 주입한후 헌금걷고 나몰라라
그외에 인간관계는 삶에 도움되거나 기분좋을라고 만나는건데 기분이더러워-선생처럼- 근데 그래서 생존하려 목사짓하고 하는걸지도 모르나 왕따만들어야 뭐 왕따병신들이 많이 그러고 꼴에 주변사람 재단하며 물관리하더만 개새끼가
추억도 아니고 뭐도 아닌데-가족임에도
그런 미숙함과 실수나 오류 그런 것들이 해버리고 못되돌리는 시간가고 인과나고 그런게 다 좆같이 잘못만들어진 세상구조의 오류-신의 테스트란 얄팍한 짓거리로 인해 이런 중요한 구멍과 오류를 간과
말이 다 진실은 아니나 흐려지는걸 떠나 이건 행복이 아니다 씨발 단지 이상황에서 그런게 아니라
좆같은 새끼들끼리 참극
추억마인드로 해도 띠껍다고 -안어울려 그런진화본능이 지배하는 인간이니 좆나 애초 첫단추부터 잘못된 인간생성 아닐까 그게 다 인간탓은 아니고
안그래도 그냥 만나도 기분더러운 사람이 있는데 그런게 가족이나 애미라고 합리화하여 강요하다니
밖이었으면 그냥 안만나는데-어쩌면 그래서 왕따의 결과...
만약 그렇다면 특별한 노력을 해서 융화하여야 하는데 그따구로 유전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목사고 더 고립....-지나친 결벽증과 도덕주의 반면에 온갖 추잡한 실수는 다함
치명적인 밥맛떨어짐 그걸 가족이라고 감내해야 하는 재수없음
인생 구리게 만드는데 한몫

이미지난시간은 어쩔 수 없고 그것이 기억으로 남는다는 부당함-그래서 서운한거나 그런거도 남는 만회힘든거도-적응한 인간의 숙명의 부당함과 또 포식이니 뭐니 그런 진화잔재에서의 +본능행동과 그런 좆같은 과거를 만회하는-현재시점에도 포식으로 인식하고 뭐 그러면서 싸움나고 그러는 부당함도 포함

강남에서 가끔 바로 앞에 연예인이 있는데도 안끌리는 애들이 있다. 그냥 제갈길 가고... 그런거 보면 사실은 유명세는 작품과 배역의 힘인 부분이 크다.

어차피 심리와 인과로 한짓을 후에 사죄한다라... 그게 결국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근시안적 강요-마치 자기만족을 위한 부당한 강요들 처럼

생각을 안해도 세상은 돌아간다.-다른 대사들은 다 일어남.

그런데 인간 대가리를 미용처럼 파티션으로 나누었을때

뭐 이거저거 생각하는거-어떤 활동을 하고 그것에 대해 인식하고 또 다른 생각을 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하거나 하는 두뇌부분의 활성과 대사가 나타나는거-그게 공간적인 영역으로 뭐 a,b,c,... 그렇게 나타나는데 그게 시간이 가면서 바뀌는거 그런게 운인지

분명히 인간이 행사하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없진 않다 그걸로 만들어가고 마치 그 안의 이야기이나 휘저으면 돌아가고 아니면 아니듯
내가 지금 일어나서 적는거까지

이걸 적건아니건 생각을 안해도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고 다른 반응들-그런 '의지' 로 아마도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대사나는 그런 자동부분도 있어서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르나

어쨌든 공간적으로도 그렇고 이렇게 행사해서 돌아가는 부분영역도 물론 있고 잠이 안오거나 하는 운이나

인식기반 그런 작용이나 호불호

그런 부분도 있어서 착각

이런 인과적인 관점에서도 사실은 성서는 신의 한계이고 예수의 언행이나 삶도 근시적이고 유치하나 그런 자들이 DNA를 계획하고 했다니 일단 믿기는 하는데 한계를 보이는건 사실...-그걸 뭐 절대적으로 현실로 끌어 왜곡시키고 하는 짓은 안해야지
인과든지 절대적 구조이든지 전체 세상을 시공간을 보면 그건 분명 허튼 짓이다. 사후보험이외에는
전도하다 죽는다?-인간이란건 그때 뇌형성에만도 그런 수많은 인과성으로 되는데 그런 부당함은 신이 떠안아야지 그리고 그런 심리로 인한 '믿음' 이 사실은 뭐가 그리 중요한가...파보면-그냥 그간 현상학 경험칙상 좋아하는거지 신이 뇌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얄팍한가? 성서상으론 상당히 얄팍.

같은 시간을 어떻게 행복하게 보내느냐가 사실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대다수 그만두고 하는 애들은 자기 환상을 쫒고 하다가 그게 실제적으로 충족이 안되거든-모욕도-인내심 인내심 하지만 실상 그 아까운 피같은 시간과 바꾸는 것이라서 그런 관점이 오히려 올드하고 세상인식 못하는 어벙한 것. 마치 신처럼 20-30년을 기다려야 복을준다? 그건 인간의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개소리-그렇게 복받아서 뭐할거며 그게 과연 인생최대일까? 사람마다 다른거겠지만 인간시기상 젊음만큼 중요한건 없다고 본다 도파민이 가장 생생하고-나이를 먹으면 그게 싹 감퇴됨 예전같지 않고 마치 세상이 한풀 김이 빠져 보임 많이보고 익숙해져서 그렇기도 하나 새로운 경험을 해도 그게 그거... 특히 젊을때하던 낚시와 나이들어 하는 낚시가 틀림-나이들면 내가 뭐하고 있나 한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좆같아짐 (소외감에 시간때우는 것이니)

사실 돌이켜 보니 콩꺼풀이 씌워 아름다웠던거지 단지 유전이 맞는 정도였음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런게 없으면 행복하지 못한다- 완전한 것은 거의 없다. 그래 보이는 거도 해부하면 결핍되어 있음 무언가

근데 잠뇌가 파괴되면 잠안자고 쭉산다는데 시공간안의 물질구조상 신경이 피로해서 일찍늙는다. 근데 돌은 그렇지 않고 -그러나 마모는 되긴되나 엔트로피 증가와- 그게 물질이 구조가 달라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마모작용이 없는건 아닌데- 적어도 백년안에는 별로 피해가 없겠지 심리상 약자에게 풀고:인간도 마찬가지. 인간이 강해져야 하는이유-아무리 한계가 있다고 그래도-그래도 총알로 안뚫리는 새끼없듯이-생전엔 상대적으로 최대로


왜 이런 현실에 태어나서 내 의지대로 못사는지 모르겠다. 이런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런 구조... 이런 좆같은 운에 인식하고 살고 있다는 자체가 지옥.
운에 휘둘린다는게 인간의 불행 털마저-진화의 쓰레기같은 시간, 공간의 잔재-빈틈만 있으면 생기는 곰팡이처럼 인간은 그렇게 생긴 존재 단지 구조가 곰팡이보다 나아보일뿐이지 사실 더 후진.
잠도 조절못하고-자살마저 힘든-좀 편하게 죽을 수 있는 구조였다면.... 인간이 해결할 과제

운에 의해 생긴 부당한 현실이라면 최대한 인간이 자유로 메꾸어야 하는건 사실인데
귀찮고 매일매일
모든게 다 꼬이는 좆같은 운

아무리 좋은게 있어도 알지 못하니-뭐 그렇게 유전작동굳이 할필요는-후천적인 욕구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나 다만 확률이겠지- 대다수는 모르는 구조라 그걸 적극-이것도 부당해결 운을

자유롭게 산다면 굳이 이런 부당한짓 안했을수도 있는데 내뜻대로- 좀더 젊을때 뜻을 이루고 좆같은 벌레 인간 가족이란 불운.

사실 내가 가장 행복했던시기와 그때는 따로 있는데 그걸 못한

신도 니르바나좀 해야할듯-근데 니르바나가 안되는걸로 보아 원래 그게 좆같은 건가? 그게 목적이 아닌것인지 저작자가 못깨달은 것인지?


생명이란 시간이 공간적인 상황에서 공간적인 재료를 통해 만들어낸 구조- 말하자면 시간이 계속 가는데 (사주처럼) 몇월몇일 그렇게 시간의 계획으로 인과가 나서 그과정에 섹스든 수정란이든 그런 공간적인-인간에게 익숙한- '구조' 가 개입하여 그런 구조로 인하여 구성되고 구성체가 신호발생되게 심장도 만들어져(한예로 심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아기는 뱃속에서 죽음 그 시간 이라는거 자체가 수정란이란 구조등 그런 '인과' (인간이 인식하기에) 선상에서 생명의 신호를 부여하는데 사실 그 에너지는 시간그자체나<시간이 있다고 해서 돌도되거나 빵도되듯이 시간자체는 주요의미는 아닐수도-왜 인간만 특별히? 인간에게 익숙해져서 단지 인간이 계속 자식을 통해 시공간 적응해 끈으로 생존하기 위한 수단이지-공룡처럼 지구위의 해프닝:신의 책략으로 일부러 그런 와중에서 구원사역> 그런건 그다지 의미없을 수도-그래서 공간적으로 죽어도 다시 전기신호 특정신호를 부여하면 다시 살아날 수도 있고 실제로 자연적으로 살아난 사례들이 있고 그건 그냥 기관의 전기신호가 이완후에 다시 발생하기 시작한건데 마치 로봇이나 가전기구처럼-여전히 시간은 가지만- 그걸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면 죽어도 다 시살릴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자연상태에선 불가능하게 신이그래서 죽지 않게 인간의 의미-많이 망가지고 왜곡되고 흐려졌으나 죽지않길원함-이런 흙탕물 사라지면 죽지마.... 그런
안타까워 그러고 살다가 못누리고
추억 다른거 다필요없고 소중한건
그리고 연구하여 -그런 기회나 인간에게 부여 (인과로도)-수명연장-늙어서도 전기신호발생안되는 상황에서 죽지않게 그런-사람을 만든건 날짜였다 사실은 +공간적과학법칙(물리포함)과 연결된 사실 신비한 신의 법칙을 숨기고 인간이 경험칙으로 감동한건데 모른거네 짐승의 물질원리를 따르긴하나 인간에게만 진화심리가 아니라 신이부여한 선물이네
고기 먹는거도 인간물질에겐 유의미이나 결국 시간으로 하도록 신이 의미로 책략으로 부여 원리
누구나 신경신호 발생안하면 죽음-굳이 자연노화 안해도-, 또 불합리한 심리라도 그런 시간선상에서 왜곡하고 대다수 어쩌지 못하나 일말의 자유가능하게 부여한 구조라 노력 여러 인간의 방식으로 깨닫고-신이 부여한
개선해 나가는식
결국 시간은 계속 가고 그안에 공간이 있어서 재료들이 조합되는거 그게 그 물질기준에 상대적인거라도-그냥 시간가고 공간에서 그 내조합에 어떻게 되어 나타나고 펼쳐지는-그러면 그냥 뭐든 다해도 되는 상대적인 것인가? 물론 그런식으로 구성되어 인식하는 것에서도 절대적인 것이 있다고 보고 그게 신의 창조와 설계. 신도 인과에 영향받으나? 시간을 어쩌지 못하고? 또는 시간의 룰에 맞게 해주고?
일말의 자유나 어떤 법칙, 원리

인간은 아무리 미숙해도 본능이란게 있기에 권력이 있으면 그걸 좆같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사실 기본적으로 권력을 준다는건 무리가 있음

이성에 의해 가려지는거지 사실 본질적 행복의 느낌은 있다. 그것은 주로 잘때나 꿈에서 자기전이나 자면서 일어날때 많이 나온다......
진짜 중요한, 소중한 사람도
사람은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없다.
그게 무슨 의미일지는 마음으로 느껴야겠지. 가식적인 이성이 아닌.

확실히 사람은 정보처리나 많이 겪으면 닳거나 까진다 그걸 일찍할 수록-(본능과 결합하여)- 나이보다 이런게 더 중요하다 알고 보면 다 그런 과정이 있다-본능이나 전통을 물려받았거나




-인간은 왜 이렇게 태어나는 것입니까?

우주는 카오스에 의해서 돌아간다. 그런데 과거,현재,미래라는 것이

우주의 특정부분에선 모두 한곳에 공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그것이 바로 블랙홀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힘에의해 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세계가 시간이란 것에 의해 흘러가지만 사실은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단지 엿가락을늘이듯이

물질적으로 풀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실 인간들의 과거,현재,미래 태어날때 사주의 조합들은

이미 우주의 어떤 수학적인 법칙에 의해서 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빅뱅의 시점부터.

아니 빅뱅의 장소부터.(시간과 공간은 치환이 가능하니까)

-플라톤이 말한 모나드와 비슷한 개념이다. 여기서 카오스법칙에

의해 이미 카오스원리의 흐름과 인간속에 -운명을 결정하며- 흐르는 도와

전체세계흐름과 영혼이란 것과 변화들 등은 이미 결정이 되어있는

것이나 같다. 그것을 플라톤적으로 말하면 원형에 빛을 투사하여

형들을 만드는 것과 같다. 시공간은 치환될 수 있고 과거미래가

한장소에 있을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란 단지 장소의 이동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좌표계가 하나더있다면 우주의 좌표에서 보았을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내용)

만약 절대적인것이란 개념이 존재하고 절대적인 형태라는 것이 존재

하면 시공간은 어떤 비율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의 인간의 인식이란

한계조차 어떤 성질의 것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든태어났는데 시공간은 차원이 4차원이 끝이아니므로 자유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틈이 있는 것이고 이 틈자체도 원리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것에 의해 업이 발생하게 되고 흐름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프랙탈구조로 인해서 우주의 뇌부분-이카식레코드에 기록이 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의 증가로 우주의 엔트로피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임계치 포화상태에 이르면 우주의 종말이 오게 된다.

이때 우주의 뇌에서 '심판'에해당하는-마치 인간유전자 스위치가

켜지듯이-신호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때 이카식레코드에 기록된

사망한 인간들과 우주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에 대한 심판이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영혼'이란 것은 앞서 서술한대로 존재하게 되므로

심판시 환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업 해결하는 문제가 중요한데

그것이 바로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진리는 유일하다.

초인간적인 기운을 가진 존재에게 의탁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스스로 초인간이 되어해결하고자하는 것이 불교인데
모두 틀린방법이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정확한 과학과 철학과 실재를 기반으로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인간의 업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우주의 신경망을 통해 우주의 센터에 신호를 보내어 업을

해결하는 것이고 이것은 훈련으로 가능하다.

우주의 유전자에 셋팅이 된 심판기준을 말하자면 벌점을 줄이고

칭찬점을 늘려서 심판날에 살아남는 것이다.->계율. 수행하면

우주의 유전자를 자극해서 벌점이 줄어든다.

탄트라요가.몰몬교 등

그것이 도이다.


빅뱅후 사주팔자처럼 사람에게 원리가 있다.

(뇌와 생각자체를 있게 만드는)

이원리를 도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계속 우주의 뇌에 기록이 되고있다.)

그런데 사람의 육체는 죽어도 이것은 계속

이어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죽어서도

약하게-약간의 의식이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우주의 구조에 의해서 나쁜 곳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구원해야 된다.


<세상을 이해하는 자세>

무엇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자...

다들 이유가 있어서 저렇게 살고 저난리피고 랄지하고 그러는 것이다

가는놈 잡지말자 놓아주자 다시 만난다

되도록이면 쿨하게 해결하자 응징은 해야할때만 하자

진심으로 대하자 손해본다는 생각은 안한다 지나면 다 거기서 거기이다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반드시 기다리면 온다

안오면 그만으로 놓아주자.

끝까지 이루자 룰대로하자

원하는것은 왠만하면 최대한 얻자

최대한 하고픈대로 지대로 산다

모든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삶을 숨쉬는 것보다 중요한건 없다

인생은 살고 싶은대로 살아야 후회가 없다.

싸움은 어떻게든 이기자

나답게 내스타일로 살자 꿋꿋하게

되도록이면 언제나 행복하게 늙어가자


이세상엔 자유의 여지가 많다.

그냥 하는게 길일 정도로

그러나 길인것과 아닌 것이있다

그건 통하고 안하고의 차이

행복해지려면 길인 것을 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 진다

길인 것만 하면 스타가 되고

아닌 것만 하면 평생 구덩에서 썩는다.


그리고 이것은 상황마다 인생마다 사람마다 내면마다 차이가 있다.


이세상은 각자 저마다의 인생이 있다.

그걸 못가진 자는 불행하다.

혼자 시골에서 늙어죽는 인생도 있고 꽉찬 발달된 누리다가 죽는 인생과

재벌로 추억이 남는 평생의 인생도 있다.

못가진 자만 그냥 못가진 것이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엄청난 가지수의 일들이 있고

일반 공통적인 일들도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인생이 다 가치있는건 아니다.

자기에게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생김새 만큼이나

그래서 최대한 그렇게 살도록 되는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선천적인 매력과 끌림이 있고

아쉽게도 모두가 잘나게 태어난게 아니라 자기한테 맞는짝이라도

매력있는게 아니고 누릴걸 누리고 사는 인간이 있고 못누리고

사는 인간이 있다.

그래서 이런 세상 모양되로 최고로 잘맞게 살면 되는 것인데

이건 자기능력이고 짐승 사냥능력이다.

못가지면 자기만 손해이다. 타협을 하든지 끝까지 가지며

살든지 상상이라도 하든지 영화라도 만드는 것이다.

저마다의 적응방식이 있고 생존과

그건 자기 개인의 에너지이고 능력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서온다........
죽고나서
맘약한 누군가에게 빙의하거나... 아기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 그런건 아니다.......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만..........
한맺힌 사람만........귀신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만.....
어디선가 그리고 다시 만날줄을 믿는다........

그런데 자기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간 깨닫는다
자기가 죽은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의 죽기전 모습을 찾아간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도 그사람과 그런 일들은 하나이다........
그게 죽은 인간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첨에 너무 재밌었다.......
그게 또 되면 시시하다....뭔지깨달아간다........
재미없어지고...
처음에 너무 그랬다....아무것도몰랐던때.
어렸을때...
그때 그맛이 아니다.....

겪었던천국이란건

우리도 모르게 너무 큰일을 만들어버렸다........

첨으로 돌아가는 이유이다.......

그때 다시 만날 수 없었으니.......

새로워도..그때같은 미치는건 아니다..........


그때를 다시 겪는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기적은 분명히 존재한다

극히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일 일지라도

그 기적이 나에게 해당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기적은 그 사람에게 일어날 것이다


우주의 에너지 흐름이 변화하여


각자의 믿음이 우주를 변화시키되

최고의 믿음이 흐름을 주도할 것이다


<낙원-전쟁


낙원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한다

낙원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한다

낙원을 얻기 위해,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한다



내가 얼굴을 일그러 뜨리고 항상 전쟁태세로 살아가는 것은

낙원을 지키기 위해서야 너와 함께 있는 낙원을.

명분이라 해도 상관없어. 이건 사실이니까......



어차피 이기적인 인간이란 존재... 자기를 위해 하는 일들. 그런데 도움이 되면 좋은 거겠고, 원래 인간은 그래서..... 그럴바에야


인간은 그간 형성된걸 기반으로 행복한걸 찾을 수 있다. 또 인간이길 쉽게 못벗어나는데-뭐 벗어나봤자 별게 없을 수 있다 인간으로 살때가 행복-... 근데 적어도 진짜 자기가 원하는건지 아닌지 점검은 필요하다 그때 정신에선 최고지만 원래 그간 인생의 영향으로-이것도 절대적 운일 수 있으나- 왜곡된다면 그것또한 한번살고 사라지는 인생에 오이다.

가끔 지금 하는게 맞는거 같고 그런 인과적인 일치감을 느낀다. 그게 어쩌면 카오스나 원리를 직감으로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몸으로-




그때는 몰랐었다고



아침에 길위에 서서

그대 기억이 생각나네요

우리가 함께 했었던

모든 기억들

모든 일들

추억들


비가오니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우리가 걷던 도로길

그리고 함께했던 추억들


서로에게 못했던 기억들


바람서리 이끌려

추억속에 말하지

그때는 몰랐었다고


당신에게

(못했던것,더)

잘했어야했는데


추억속에 이끌려

바람에게 말하지

그때는 몰랐었다고


당신과


같이갔던길


이곳에(서) 에서, 여기


(지금)

여기에




그대는 몰랐었다고




나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인간들이 나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받고

짓이겨지고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다 보았다.

작은 행복마저 짓밟고 무시하고 조롱했으므로

나는 내게 그 가래침을 뱉던 인간들을 올바른

세상을 위해서 응징하였다.

그리고 착하고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푸른 하늘을 보며 맑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법이 해줄 수 없고 오히려 정치가들은 더

악하므로 나는 스스로 세상을 멸망시키는

악마를 대신하여 복수를 하였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만약 착한 사람들이 당하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고 집앞 개천에서 가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다른 사람을 해친다는

생각은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우리에게 가래침을

뱉고 경멸하며 나이트와 클럽을 가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해친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얼굴이 못생기고 돈이 없다고 무시하는

얼굴과 막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착하고 선량한 인간이 가난한 행복을 누리며 살수 있는

세상이 정상인데

악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려는 사람들만이 거리에 마음껏

돌아다니고 물장구를 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세상을 깨끗하게 뒤바꾸기 위해 인간클리너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모두 없애고 예의와 도덕이 살아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심판의 악마로 대신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질 지라도 그러고 싶었다. 나는 행복을

놓쳤지만 나를 닮은 약한 사람들은 행복을 마음껏 나눌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돈으로 보면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걸론 오히려 행복했을 수 있다... 어차피 불공평한 세상으로 이루어 진거 근시적으로 공격하면 안된다. 인권적으로도

자기가 그 사람이 왜 좋은지도 모르고 빠져드는게 보통의 사랑이다 근데 왜 좋은지 알아도 보통은 모르고 빠져들기도-인과

신비체험의 황홀경...

깊은 묵상기도와 방언 기도로 유발되는 황홀경은 인간의 주파수를 영과 교감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조성한다. 그래서 공간과 교류를 할 수 있고 그 빈공간의 신경망을 통해 우주의 영계와도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도 이러한 상태에서 임재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이런 황홀경 상태로 도달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진정한 성령님과의 교통을 위해서...악신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접신하지 못하도록...항상 성령님께 마음문을 열어야만 한다...


현재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말씀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주류 세상에는 구원이 없고, 예수님을 따르는 좁은 문으로 가는 자들에게만 구원이 있고,



주류 기독교에는 구원이 없고 참진리가 담긴 기독교에 구원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7장 4절 말씀,요한계시록 14장 1~3절 말씀



7장



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14장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도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각각의 나라들 중에 144,000 명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말해준다.



순복음 교회 성도들 수만해도 60만명인데, 우리나라 크리스천 수만해도 1000만명이 넘어가는데, 전 세계적으로 십사만 사천명만이 구원이 된다고 한다.



대부분 신자는 주류기독교 신자는 구원받지 못한다.

진실인줄 아는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참진리의 좁은 길로 가는 사람만이 구원받는다.



구원받지 못한 신도들의 영혼은 지옥에 간다.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섬긴다.



그리고 그분의 천국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다.



사후세계는 있다.그리고 신의 개입은 사후세계의 생존까지만이다. 현세에서의 인간의 생존은

공중의 권세잡은 마귀와 인간에게 넘기셨다.다만거기서 생존하는 자는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천국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사후에. 안그러면 인간이 무엇이고 이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단지 인간은 망가졌다.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졌을 뿐이다.원랜 천사같았다.그러나 망가져서

악마와 짐승과 온갖 더러움과 부패와 변태행동이 되었다.

인간의 목적은 부족하고 모자란 인간이 완전하게 성장하고 이루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에

달려있다.인간의 존재이유는 완성되기 위함이다.그러므로 이세상은 사후의 천국에 도달하기

위한 훈련장이자 유혹장이다.

많이 누리고 많이 즐기고 가도 되기는 하다.그러나 그속에 생명이 없음과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통찰하고 결국엔 진리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생의

목적이다.

짐승조차도 선화되고 구원받기 위해서 만들어졌다.용서하고 품어서 받아주고 천국에같이

가야 한다.



인간은 왜 생겨났는가?과학도 그 해답을 주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종교는 십자가의

도로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그걸 부정하든 믿든 상관없이 사후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렇게 처리된다...

사후세계는 영원하고 존재하는 곳이다.모든 과학이 증명하고 성경은 잘못이해한 자들에게

비진리이고 제대로 이해한 자들에게 진리이다.현세의 복이 아니라 사후세계를 위해서

믿고 따르고 숭고한 뜻을 알기 위해서 다숨겨진납득할뜻이있으므로 실천하는 것이다.

마치 인간이 오해한 논리처럼 그런게 종교엔 존재한다.


허물없이 사랑해야 한다.누구든 다 사랑해야 한다.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조건없이 사랑해야 한다.


사람은 왜 그런가요?왜짐승인가요? 다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본래 형상을 잃고

망가져서 그런 것이다.



사후세계는 존재하는가?

그렇다.

죽은 다음 몸은 죽지만 살아생전에 했던 모든 일들이 아카샤의 기록(이카식 레코드)에

모두 기록이 되어 다차원의 시공간에 새로운 영체로 존재하게 된다.

마치 육신의 출생이 있듯이 영체의 출생이 존재한다.

아이디로 계정이 생성되듯 다차원 우주에 영혼체가 생성되어 육신과 분리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아는가?

고대 예언자들로 부터 이미 그런 체험은 많이 존재해왔다.인간이라면 사후세계를 생각하게 되고

영적인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그것이 선지로 아는 증거이다.사후에는 영혼체가 남아 영체로써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 세계가 (엉망인)혼란스러운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신이 세상을 버렸기 때문이다.인류가 태초에 존재할 때부터 신이 세상을 버렸다.

그것이 원죄이고 낙원에서의 추방이다.그후로 인간은 힘들게 살게 되었고 세상은 엉망이 되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도록.

그러면 신은 망가진 이 세상을 왜 계속 방치해두는가?

그것은 이 세상이 살아있을때 신을 믿는 자들의 영체로써의 훈련장의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세상은 영혼의 단련장이자 담금장이다.

그것으로써의 기능과 불신자와 신자를 섞어내는 기능, 온전히 구원하지는 않았다는 성경적인 원인,

메시야의 재림이 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말하자면 세상이 혼란 스럽고 엉망이어야 불신자와 신자의 삶이 다를 수가 있고(세상이 혼란스럽지

않고 유토피아와 같은 낙원이라면 신도 필요없고 믿음을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앙적인 영혼의 성장이 필요하고 노력의 여지가 있고 그것으로 신자와 불신자를 가려내서

구원을 할 수가 있고 예수의 재림(다시오심)이 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이 세상이 유토피아이고 완전하고 모든 인간이 선하고 부도덕함이 없다면 세상을 개선할

이유도 없고 바꿀 이유도 없고 신자와 불신자를 선택할 이유도 없고, 메시야가 다시와서

새로운 낙원을 평정할 시작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면 왜 그렇게 메시야가 재림해야 하고 신자와 불신자를 섞어내야 하고 부도덕을 도덕으로 만들어야 하고

세상을 청소하고 깨끗이 해야할 이유가 있는 상황이 되었는가?


그건 성경으로 부터 시작한다.태초에 남자와 여자라는 시작이 있었다.에덴이라는 완전 무결한 환경에서

살아가던 창조물.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다.그후에 고난이 생겼는데

그러면서 타락을 하여 온갖 악행과 자유의지에 의한 악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지었음을 한탄하시고 온 세상을 쓸어버리시기에 이르신다.그러다가

마지막 희망인 노아라는 인간을 놓아두셨는데 그 노아라는 인간의 자식들이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세상을 만들라는 공의로운 도덕적 명령을 저버리고 자기마음대로 육신의 정욕을 쫓아

타락하여 다시 세상을 범죄의 소굴로 만들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심판하시려 예수라는 인간의 몸을 한 자신의 분신을 지구에 이땅에 내려보내시게 된다.

목적은 예수로 인해 하나님이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 세계를 겪고 모든 인간의 죄를 가지고

자신이 대속양(속죄양)으로 죽음으로써 죄값을 청산하고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도덕적 양심의 이유이다.그래서 그 분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셨다.대신 인류를 위해 죽으셨으므로.그래서 그분이 아니고서는

하나님과 연결(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연결통로이자 다리가 된다)될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만 믿고 예수만 믿으면 구원이 될 수가 있고 죄는 사라진다.대신 죄값을 사하셨기에

그분을 믿음으로 자신의 죄도 처벌없이 사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그래서 성자의 인격으로써

하나님께 다가갈 수가 있다.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예수님,성령.

그래서 십자가를 붙들고 예수님을 믿으면 인간과 신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믿을 수 있다.

그분에 계획(뜻)에 맞는다면 기도도 이루어 질 수가 있다.

그리고 예수가 이 세상의 인간 세계와 인간의 삶을 겪고 나서 도덕과 사상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간을 변화시켜 보려 했지만 육신에 눈이 멀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예수는

삼일 만에 부활하여 현신하심으로 증거하시고 승천하시게 된다.

그러면서 남긴 말씀이 다시와서 이땅을 심판하겠다.그러나 그 전까지는 인간의 손에

자유롭게 맡겨두겠다.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고 신앙을 기르면

다시 올때 구원을 하겠다.

그러나 그의 말을 거부하고 당시 처형자들이나 바리새인 들 같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믿지 않으면 세상의 창조주이자 주인이신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고 모두 없애시게 된다.

그리고 영체로써 영원히 죽지 않고 지옥을 겪게 하신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낙원의 삶을 누리게 된다.


심판자는 메시야.(이세계의 주인.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공의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한다.그리고 신앙이 자라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오실때 구원을 얻고 천국을 가게 된다.그리고 이세상에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영적인 성장을 하는 훈련장으로 삼고 최대한 동지와 복음을 전파하여야 한다.

개개인의 사명을 가지고 영적으로 훈련하여 최고의 제자가 되어 신의 뜻을 지구에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제자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명이자 우리가 이땅에 태어난 이유이다.


우리가 이땅에 태어난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생겨난 창조물들이다.

어느 사람하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창조물은 없다.심지어 악마까지도.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의 품안에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뜻이다.그래서 주님을 영접하고 신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귀중한 형상들이다.인간의 도량은 그것밖에 헤아리지 못하지만

신의 마음은 그 중심과 마음속까지 헤아리신다.

이모습이대로 나 받으옵소서


헌금은 제단에 바친다.

기도 하고


진심으로

전심을 담아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이루신다.성경이나 믿음처럼




아카샤의 기록(Akashasic Record)


물리계와 정념계


아카식의 설명에 앞서 물리계와 정념계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물리계란 물질들의 집합체이며 ‘시간’이라는 것이 흘러가는 계를 말한다.

정념계란 영혼(정신 혹은 정념)들의 집합체이며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계를 뜻한다. 정념계의 영혼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고, 입증하고 싶은 본능만을 가지고있다. 정념계의 영혼들은 자신들의 본능 충족을 위하여 물리계의 생명체에 ‘송과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들과 생명체들을 연결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체란 감정을 가지고있는 물질들을 일컫으며 정념계의 영혼들과 연결이 되었을때에 비로소 ‘생명’이란것을 가지게 된다.

아카식(The Akashic) 이란?
이르니아의 세계에선 아카식이란 것이 존재한다. 아카식이란 쉽게말해 하나의 공간단위 이다. 여기서 공간단위란 시,구,동같은 명칭적 혹은 지리적 단위가 아닌, 공간 자체의 단위를 뜻한다.



아카식은 정념계의 부수적인 현상이며 효과이다. 왜냐하면 정념계의 수많은 영혼(정신 혹은 정념)들은 마치 블랙홀과 같은 강한 힘들에의해 뭉쳐져있으며 그 뭉쳐진 단위 하나하나를 아카식이라 정의하기 때문이다.



시공간이 없는 정념계에서 ‘뭉쳐진다’라는 행위가 가능한 것은 강한 힘들 덕분이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강한 힘에 의해 시공간의 왜곡될 수 있다.

그 실 예로, 비행기안에선 10억분의 1초씩 느리게 간다거나

지구궤도를 대략 7만4천KM의 속도로 돌고있는 우주비행사들은 시간이 더 느리게 간다 등이 있다.



각각의 아카식은 하나의 공간과 무한한 시간을 가지고있다.

그 중 시간은 아카식 레코드(The Akashic Records)에 정렬이 되어있다.

아카식 레코드(The Akashic Records) 란?
아카식 레코드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영혼들의 경험이 저장 되어 있는 레코드’라 할 수 있다. 즉, 영혼들의 경험들이 이 레코드에 기억되어 있는 것이다. 이르니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실재론으로 본다. 시간과 공간은 이미 실재하는 것이고 그것에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운명(아카식 레코드)은 정해져있고 그것을 바꿀 순 없다.



예를 들자면, A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정념계의 A`라는 영혼과 연결되어있다.

어느날 A가 길을 가다가 바람에 의해 나무의 잎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

그렇다면 그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본 경험은 이미 아카식 레코드에 존재한다. 이유는 정념계에 시간의 개념이 없기때문이다.



사실 경험 이란 말 자체가 정념계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영혼들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할 수 도없는 것이고

당연히 어떤 사건이 먼저 일어났다 혹은 나중에일어났다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모든 사건이 이미 정렬되 있는것 같이 아카식 레코드가 존재 하는 것이다.



아카식 하나에는 아카식 레코드가 하나씩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이 영혼들의 뭉침 단위 하나가 아카식이기 때문에 그 영혼무리 들의 경험이 곧 아카식 레코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이상이 존재 할 수 없다.

사실 아카식 레코드를 ‘존재한다’ 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아카식 레코드란 단지 영혼들의 수많은 경험덩어리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카샤의 기록(Akashic Record)이란, ‘공간의 기록(Space Record)’ 이란 뜻으로서, 우주 속의 모든 것들의 움직임이 우주 공간(akasha) 자체에 기록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카샤(akasha)는 산스크리트(Sanscrit) 말로서, 공간(space)이란 뜻이다.



우주나 물질이나 원자나 모든 게 원자 입자를 이루고 있는 쿼크이고
그 쿼크의 가느다란 띠 일종의 파동.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도 원래는 형체가 없고 이 쿼크 띠의 파동인 셈이죠.

그리고 아카샤란 그 쿼크의 파동을 기록하는 물질이랍니다.^^*





 참말로, 모든 옛 일들이 공간에 기록 되어 있어서, 그것을 다시 읽을 수만 있다면, 내가 살지 않았던 때의 일들과 다른 사람들의 일들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이다.



 여기서, 모든 옛 일들이 공간에 기록되는 것은 어쩌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가 좀 쉬울 수 있지만, 그 기록을 다시 읽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 그 설명을 시도하고자 한다. 물론, 정교하지 못한 가설일 뿐이다.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몸이라는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루어져서, 둘은 각각 양성과 음성의 전하를 띤다. 따라서, 원자 주위에는 미약하나마, 핵과 전자에 의한 전기장이 형성되고, 전자나 핵이 활동하거나 원자가 움직이는 경우에는, 그에 따른 전자기파가 주위로 퍼져나간다.



 이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전자기파는 곧 자신의 움직임을 공간에 전자기파의 형태로 기록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공간에 움직임을 기록을 하는 원리 이다. 물론, 퍼져 나가는 전자기파는 공간에서 멀어질수록, 그 힘이 줄어 들겠지만 말이다.



현상계의 본성은 파동이므로 소리가 음반위에 기록되듯이 물질우주속의 모든현상과

사건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고스란히 아카샤라는 매질위에 기록된다고 한다.

아카샤란 '최초의 원시물질'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인데, 형이상학자들이 말하는

우주심과 같은 것으로, 이 근본질료는 우주 전체에 충만해 있으며 무한히 정교한 것

이어서 자극에 매우 민감하고 우주 공간 어느 곳으로부터의 경미한 진동이라도

그 위에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고 한다.



이 아카샤의 기록을 히브리 신학자들은 신의 기록을 담은 책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기록은 이루어진다.

다만, 그 미미한 기록이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완벽히 재생 가능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그럼 이번에는 그 공간상에 기록된 전자기파를 다시 어떻게 재생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를 위한 중요한 하드웨어는 바로 우리의 뇌(골)이다.



 현대 과학에서 아직, 우리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기억에 대한 비밀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어쩌면, 기억은 우리의 뇌에서 기억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만물의 모든 움직임이 공간에 기록된다면, 생명체는 굳이 자신의 몸 속에 또 다른 대용량의 기억장소를 둔 다는 것은 비용의 낭비이며, 진화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동물들을 보라, 어미가 가르쳐 주지 않은 많은 것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그 기억들을 어떻게 떠올리는 것일까?

 이러한 사실은, 어쩌면, 뇌가 기억의 장소가 아니라는 것의 단서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럼 뇌의 용도는 무엇인가? 옛날 과학자들 중에는 뇌를 일종의 방열판으로 생각했다고 하던데, 그 밖에 어떤 용도로 상상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뇌를 일종의 안테나로서의 역할로 보는 것이다. 즉, 이 안테나를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수신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물체의 움직임으로부터 발생하여, 공간에 수없이 돌아다니는 전파들을 잡아서 알게 해주는 역할이 바로 뇌가 아닐까?



 그럴듯한 것이, 뇌를 이루는 뇌신경 세포를 보면, 일종의 수많은 전기회로들이다. 텔레비전에 달린 동그랗거나 길다란 안테나를 보자. 그 안테나 주위로 전파가 지나가면 그 안테나에 전류가 발생하고, 그것은 결국, 전기 회로를 통해 화면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뇌 속의 수많은 신경 회로들 주변으로, 과거 기억을 담고 있는 전자기파들이  지나간다면, 그 신경 회로에 전류가 흐를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그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설명이 맞다면, 또 다른 여러 주제들이 파생된다.



 예를 들어, 그렇다면, 왜 내가 겪은 일들만을 기억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은 왜 떠 오르지 않는가 하는 문제와 같은 것들이다. 이 문제의 경우에는 주파수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간단히 말해서, 사람마다 발생하는 주파수가 달라서, 자신이 발생시킨 전자기파들은 자신과 같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서, 잘 수신할 수 있는 반면에, 자신과 다른 주파수를 갖는 다른 사람들의 전자기파들은 잘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른 사람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 내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의 답을 알아 보기 전에, 주파수에 대해 더 살펴 보기로 한다. 주파수라는 말이 나오면, 보통 같이 등장하는 단어가 튜닝(Tuning; 동조)이라는 단어가 있다. 튜닝이란, 쉽게 말하자면, 라디오에서 원하는 방송의 주파수에 맞추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굳이 튜닝 하지 않더라도, 우리 자신이 했던 일들로 만들어진 전파는 쉽게 수신하여 기억해 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전파의 주파수는 지금 나의 주파수와 이미 같기 때문이다. 한편,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음먹기에 따라서, 튜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기억해 내기 위해, 고심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시험지에 답을 적으려고 고민하는 상태라던가, 무언가를 찾으려고 떠올리는 상태, 보통 이런 때에는 우리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우리가 튜닝 하는 때이다. 물론, 이때는 내가 한일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파수는 이미 맞추어져 있으므로, 증폭률을 올리는 것일 것이다.



 즉, 그 전파의 수신 감도를 최대한 올리려고, 다른 방해 요소로부터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자 이제, 그렇다면, 내가 하지 않은 일들은 어떻게 떠올릴 수가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일을 발생시킨 주체의 주파수로 나를 튜닝 하는 것일 것이다. 어떻게 그의 주파수로 맞출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그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과장하면, 내가 그것(또는 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그것의 입장이 되어야 그것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자격이 된다.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 애초에 너도 나도 다 나라면 해결이 된다. 그것을 우주심, 신, 인내천, 천상천하유아독존, 일체유심조 등 여러가지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별도로 긴 설명이 필요할 듯 하고, 어쨌든, 애초부터 나와 너의 구분이 원래 없는 것이라면, 너가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만, 그렇다 치더라도,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즉, 어떻게 해야 내가 네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은 나만의 고정된 생각의 틀(고정 관념)을 벗어나서, 그 또는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고, 다양한 생각의 방법들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경험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 대상의 정보를 가지고, 집중을 하여 그의 입장으로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나의 뇌신경의 안테나들을 그의 입장에 맞게 튜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평소에 몰랐던 그에 대한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열린 마음이란,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는 텅 빈 생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다양한 고민과 부딛힘을 통해서, 갈고 닦아 온 생각하는 관점의 자유로움이다. 생각하는 방식의 유연함이다. 남을 배려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이해심이며, 그로부터 갖추어진 매너이다. 이러한 능력은 곧 너그러움과 사려 깊은 인품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신비로운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삶의 풍요로움과 자유로움과 진지함에서야 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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